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50
250화
“이놈아, 상대가 기감을 사방에 뿌려 두고 있는데 그렇게 대책 없이 접근하면 어떻게 하냐?”
“…….”
이런 개…….
하마터면 원래 말버릇이 터질 뻔한 것을 겨우 참았다. 조심하자, 까딱하단 뒈질 수도 있으니까.
“명세찬에 비하면 아주 한참 멀었구나. 멀었어.”
뭘 씨발 당연한 소리를…….
아니 사패오왕이자 은위단주인 명세찬과 자신을 어찌 비교한단 말인가?
황신이 속으로 쉼표조차 없이 욕을 하는 사이, 진무는 턱을 쓸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대충 황신의 능력은 알았다.
이젠 가르침을 줄 차례였다.
“흠, 그냥은 안 될 것 같고, 너의 능력을 끌어 올리자면 다른 방법을 써야겠다.”
“……!”
설마? 이젠 진짜로 가르쳐 주려는 건가? 지금까지의 구타는 가르침을 위한 사전 작업?
진무의 말에 황신의 기대감이 다시 끓어오른다.
황신. 뛰어난 재능을 가진 녀석이다. 잘 키우면 사패천의 든든한 기둥으로 성장할 재목이며, 언젠가 하오문, 아니 사패천을 대표하는 무인이 될 것이다.
또한, 자신이 정한 부하 오 호.
하지만 아직은 무공도 은신술도 부족하다.
그럼 어떻게 한다?
은신술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워 본 적도 없는 진무가 방법을 알려 줄 수는 없었다. 은신자들이 사용하는 비겁한 무공 따위 알 게 뭐냐?
그렇다면 결론은?
스스로 해결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입에서 단내가 풀풀 날 정도로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것.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을 수없이 견디다 보면 저절로 능력이 상승할 것이다.
사실 진무가 타인을 가르쳐 본 방법이라고는 그뿐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가르친 만큼 보상이 돌아온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정파나 사파나 예외는 없었다. 일찍이 천우명이 그러했고, 원공후가 그랬으며 청우와 청상이 그러했다.
구타가 결과를 말한다. 얼마나 세밀하게 패고, 극한까지 패느냐에 따라 성취가 결정되는 법.
자신의 방법이 절대 틀리지 않았음이라 생각한 진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난다.
“자, 그럼 경공술부터 가르쳐 주마.”
“겨, 경공술!”
황신의 눈동자가 기대감으로 들뜬다.
역시 제 생각이 맞았다. 속으로 욕한 자신이 얼마나 옹졸했는지 천주께 엎드려 사죄를 올리고 싶을 정도였다.
과연, 천주가 가르쳐 주실 경공술은 뭘까? 분명 중원 최강의 속도를 가진 어마어마한 경공술이리라.
“경공술이란. 몸을 가볍게 하는 기술을 말한다.”
“…….”
당연한 이야기지만 무럭무럭 자랄 준비가 된 황신이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했다.
“보법은 특정한 무공을 쓰기 위한 발의 움직임이며 신법은 몸의 움직임이다.”
그 역시 아는 내용이다.
점점 가슴이 두근거린다. 서두가 이토록 진부한 것을 보니 본론에 대한 기대감으로 심장이 두근거려 온다.
“보법과 신법은 무공과 떼려야 뗄 수 없으나 경공술은 다르다.”
이젠 마른침마저 쉴 새 없이 넘어갔다.
말해! 말해 줘!
황신은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진무의 입에 시선을 집중했다.
“자, 그럼!”
“……!”
“……이제부터 자장현까지 재주껏 도망쳐.”
“……?”
“만약에 나한테 잡히면 아마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맞을 거야.”
“……에?”
뭘 어쩌라고?
기대감에 한껏 부풀었던 황신의 가슴이 바람 빠진 공처럼 가라앉고, 얼굴은 황당함으로 물든다.
“뭐, 왜?”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입 닫아. 청력 줄어든다. 항상 긴장하란 말이다.”
“…….”
진무는 일부러 말을 하지 못하게 했다.
청상의 부탁도 있었거니와, 명세찬이 말했듯이 입을 봉인함으로써 그의 축복받은 재능이자 초감각에 가까운 청력을 항시 한계치까지 끌어 올려 두려는 것이다.
진무는 사색으로 변한 황신을 보며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웃었다.
“쉽게 생각해, 쉽게. 그냥 즐거운 놀잇거리인 셈 치자고. 숨바꼭질, 어릴 때 해 봤지?”
“…….”
이런 미친 개천주가!
세상천지 어디에 잡히면 맞아 뒈지는 숨바꼭질이 있다는 말인가? 목숨 내놓고 즐겁게 놀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거부해야 한다. 맹렬하게 거부해야 한다.
황신이 사력을 다해서 입을 떼려는 찰나.
휘휙!
진무가 측면으로 가볍게 손을 떨쳤다.
퍼어엉!
“…….”
강렬한 소음에 황신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간다.
숲이…… 나무가…….
울창하던 그것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흠, 대충 이 정도면 죽지는 않겠지?”
진무가 황신을 향해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여운 자연을 무자비하게 파괴해 놓고는…….
이젠 노려보지도 못하겠다.
황신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초점을 잃은 눈으로 아련하게 진무를 바라본다.
천주님…… 진짜 개소리하지 마세요…….
그 정도 위력의 공격을 정타로 맞으면 문주님이라도 피를 토하실 거라고요. 하물며 그분 발톱에 낀 때만도 못한 저는 무조건 죽어요.
정말로 열렬히 호소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말을 하지 않으니 알 게 뭔가. 설령 목 놓아 읍소한다고 해도 진무가 들어 줄 리도 없었지만.
“딱, 열까지만 셀게.”
“…….”
“자, 시~작!”
그 해맑은 미소를 보는 순간 황신은 곧장 달려야만 했다.
미친 듯이.
“…….”
여유롭게 열까지 세려 했던 진무는 자신이 무모했음을 깨달았다.
이 새끼, 생각보다 빠르잖아?
단거리에 특화된 자신의 경공으로 거리가 지나치게 벌어지는 것은 좋지 못했다. 쪽팔리게 수하 놈을 놓칠 수야 없지 않은가? 그럼 내내 기다렸을 가르침도 못 받게 될 황신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닐 터였다.
그럼 어떻게?
“열!”
하나부터 시작한다고는 안 했으니까.
다리를 접는 순간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이 터져 나갈 듯이 부풀고, 폭발적인 기운이 용천혈로 몰리는 것과 동시에 바닥의 흙이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파아앙!
공간을 접어 버린 것처럼 순식간에 황신을 따라잡아 뒷덜미를 잡아채고는 씨익 웃는 진무.
“잡았네.”
“……!”
“자, 그럼 약속한 대로.”
열을 센다는 약속도 지키고 팬다는 약속은 더욱 철저하게 지키는 진무였다.
“끄아아악!”
흥겨운 구타음과 함께 이십 장도 채 달리지 못한 황신의 비명이 숲을 쩌렁쩌렁하게 울려 놓았다.
첫 번째 구타가 끝났을 때.
“수, 수고하셨습니다.”
맞다 지친 황신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맘 같아서는 쌍욕이라도 해 주고 싶었지만, 그는 천주였다.
욕했다가는 여기서 더 맞을 게 뻔하고…….
그래도 이제 끝났으리라. 경공 수련이고 나발이고, 이 정도 맞아 줬으면 망할 천주의 구타 욕구도 좀 해소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빨리 마을에 도착해서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 황신이 주섬주섬 몸을 일으키는데,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진무가 히죽 웃으며 그를 불렀다.
“신!”
“…….”
“뛰어!”
“…….”
“하나! 둘! 세…….”
야 이 개새끼야!
파아앙!
황신은 정말로 죽자 사자 뛰었다. 하지만 족족 잡혔고, 또 두들겨 맞았다.
근데 이 망할 구타가 신기하다. 맞을 때마다 죽을 만큼 아픈 와중에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해지고, 전신에는 호랑이 기운마저 솟구치는 기분이다.
뭔 이딴 구타가 다 있단 말인가?
악마 같은 천주. 인세에 다시 없을 잔혹한 천주.
이런 개……천주.
황신은 속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욕설들을 짜 맞춰 쉴 새 없이 중얼거리며 달리고 또 달렸다.
* * *
보름이 가까워진 하늘에는 휘영청 밝은 달이 떠올라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저, 저게 뭐야?”
관도에서 손님을 확보하고 있던 정안객점의 이필성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앞쪽을 응시한다.
저만치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다가오는 왜소한 소년.
“사…… 살려…… 줘…….”
“……?”
살려 달라니? 설마 횡액이라도 당한 것일까?
그러고 보니 입고 있는 옷은 땅바닥을 구르기라도 했는지 먼지투성이였고, 불빛 아래 드러난 얼굴은 시퍼렇게 부어 있었다.
“이, 이보시…….”
이필성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려다 주춤했다. 괜한 시비에 휘말렸다가는 좋을 게 없으니까.
더욱이 한눈에도 사악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가 소년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톡!
그러곤 가볍게 소년의 머리를 때린다.
“아쉽네. 한 번은 더 잡힐 줄 알았는데.”
“…….”
“잘했어. 오늘 수련 끝.”
환하게 웃는 사내의 말에 소년이 쓰러지듯이 주저앉았다.
사내는 진무였고, 소년은 당연히 황신이었다.
황신은 경공술을 정말로 극한까지 끌어 올려야 했다.
여섯 번 잡혔고 여섯 번 구타를 당하며, 세 번째부터는 차라리 죽여 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랬더니 입을 뗐다고 또 맞았다.
씨발, 독한 천주 새끼. 비명도 지르지 못하게 하다니.
그런데 희한한 건 정말로 경공술이 늘었다. 세 번째 구타 이후, 경공의 속도가 이전보다 훨씬 빨라진 것이다.
사람이 극한에 다다르면 초인적인 힘이 발휘된다고 하더니.
하지만 황신은 알지 못했다.
진무가 구타의 손길에 분골착근 대신 혈맥을 교묘하게 때려 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타혈사통(打血四通)의 묘리를 담았다는 사실을.
구타를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진무만이 가능한 고절한 수법.
어차피 때리는 방식은 똑같다. 어떤 방법으로 사용하느냐가 다를 뿐이었다.
황신이야 그저 한 대라도 덜 맞고 싶었을 뿐이지만.
* * *
“재미있는 조합이로군.”
정말 희한한 소동이었다.
갑자기 바깥이 시끌벅적해졌기에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살피던 수검의 눈에 한 사내와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처음에는 소년이 산중에 횡액을 만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고, 뒤이어 나타난 사악한 사내의 모습을 본 다음에는 구해 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서려 했다.
그런데 검을 움켜쥐는 순간 ‘수련 끝.’과 ‘감사합니다.’를 주고받는 것을 보니 사부와 제자의 관계가 분명하다.
웃기는 것은 그사이에 수많은 사람이 소년의 모습을 보았는데도 아무도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의 어려움을 보아도 못 본 체하는 것이 생활화된 곳.
그것은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섣불리 나섰다가 사파의 무인들에게 핍박을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리라.
해서 타인의 삶에 관여하지 않는다. 망할 사파인들.
“무량수불…….”
수검은 도호를 뇌까리며 자신의 녹슨 검을 힘주어 움켜쥐었다.
비록 사파인들을 계도해 세상을 바꾸는 것은 오래 걸릴 일이었지만, 눈앞에 어려움을 당한 이들을 구하는 것은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일단은 대룡방부터다.
수검은 사람들의 시선이 사내와 소년에게 집중된 틈을 타, 소리조차 없는 가벼운 발놀림으로 순식간에 지붕 위로 올라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