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52
252화
진무의 얼굴에 약간의 놀라움이 떠올랐다.
무당을 대표하는 무공은 손에 꼽기 힘들 정도로 많다. 무당 무공이 원체 우수하고 뛰어나니까.
하지만 그 안에도 격차라는 것이 존재했다.
심공은 양의요, 경공은 제운종이며 장법은 면장과 십단금이라.
그리고 검공.
누대를 걸쳐 유명한 검공이야 셀 수조차 없으나 무당 하면 누구나 태극혜검(太極慧劍)을 수좌에 놓는다.
하여 무당의 제자라면 누구나 익힐 수 있는 검공이지만, 대성하는 사람은 역사를 뒤져도 몇 되지 않았다.
까아앙!
그사이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 퍼지고, 대룡방의 무인들이 진명을 향해 개떼처럼 달려들었다.
“허!”
진무는 진명을 보며 탄성을 연발했다.
녹슨 검에서 발현된 푸른 실처럼 얇은 선기, 검사.
의기의 경지다.
현 무당의 장로들 중에서도 몇 되지 않는 경지를 아직 일대제자인 그가 개척한 것이다.
뭐, 청상은 워낙 천재인 데다가 진무가 가르쳤으니 조만간 그 정도 경지에 오르는 것은 당연하고.
진명의 성취가 홀로 이루어 낸 것이라면 실로 놀라울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검에 대한 깨달음이 부족해 보였다.
“아깝네. 태극혜검을 대성했으면 그냥 죄다 썰어 버렸을 텐데.”
의기에 이르렀음에도 형과 식에 얽매여 태극혜검이 가진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 적을 앞에 두고 머뭇거리고 있다.
“근데 외유를 나갔다던 양반이 왜 저기 있는 거지?”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던 와중 퍼뜩 든 의문에 진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옆에서 진달이 놓칠세라 설명을 돕는다.
“수검이 야금당에서 운영하는 노예 시장만 골라서 습격한 것이 총 십오 회쯤 됩니다. 한동안 모습을 감추었다고 들었는데 다시 나타난 모양이군요.”
“노예 시장을 습격했다고?”
“예. 사람들을 구해 주었다고 하더군요.”
아, 그래서 대룡방을 공격한 것이구나.
하오문에서 파악한 정보에 의하면 대룡방은 노예 시장에 팔리기 전에 사람들을 잠시 가두어 두는 장소였다.
그나저나 상황이 곤란하게 되었다.
명세찬에 의해 진무의 신분은 이미 하오문에 의해 조작되어 있었고, 아는 이들에게는 함구령이 떨어졌다.
까드득!
또다시 거친 쇳소리가 들려온다.
이전과는 달라졌다. 튕겨 내지 못하고 긁어 대는 소리. 힘에 부치기 시작한 것이다.
언뜻 보기에도 그의 검에 상처를 입어 피를 뿌리는 자는 부지기수였으나, 목숨을 잃은 자는 없었다.
누가 도사 아니랄까 봐 멍청하게도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을 상대로 손속에 사정을 두며 싸우다니.
저러다가는 곧 잡히겠네.
쳇, 그래. 나서 주자.
진명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건 그냥 음…… 대룡방을 치려는 와중에 그가 끼어든 것이다.
“좋아, 그럼 우리도 시작해 볼까?”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고개를 숙인 진달이 손짓을 보내자 멀리 떨어진 곳에서 불화살 하나가 대룡방의 반대 방향으로 쏘아진다.
동시에, 대룡방과 오 리 가량 떨어져 있는 도심의 한 곳에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솟구쳐 오른다.
호오? 제법이다.
불화살을 신호로 미리 준비되었던 곳에 불을 지른 것이다.
오 리나 떨어져 있음에도 화염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라면 상당히 큰불이다.
그리고 하오문이 일부러 낸 불이니만큼 쉽게 꺼지지도 않을 터. 관이고 사람들이고 온통 화재에 관심이 쏠릴 것이다.
하오문 이 새끼들, 하여간 잔머리가 참 좋아.
진무가 돌아보지 않고 엄지손가락 하나를 슬며시 치켜세우자 뒤에서 그를 발견한 진달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그나저나 신분을 감출 것이 필요하다.
무당의 제자가 사파인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서 좋을 것은 없으니까.
“진달. 복면 있나?”
“복면이 있기는 합니다만…….”
진달이 품에서 꺼내 내민 검은 천으로 재빨리 턱 아래를 감싼 진무가 진달을 향해 말했다.
“니들은 그냥 여기서 대기해라. 빠져나가는 놈이 없도록 차단만 해.”
“……예?”
“끼어들지 말란 말이다.”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됩니다. 적들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천주님의 존체에 무슨 문제라도 생기는 날에는…….”
“혼동하지 마.”
“……?”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다.”
“…….”
진무는 당황해하는 진달을 뒤로하고 곧장 대룡방을 향해 몸을 날렸다.
대룡방을 박살 낼 겸, 큰 사형이라는 진명도 한번 만나 볼 겸.
* * *
무당을 대표하는 태극혜검.
삼대가 살아가는 무당에서 태극혜검을 진명만큼이나 달통한 이는 없었다.
어렵고 힘든 길이었다.
뼈를 깎는 수련을 거치면서 수도 없이 구결의 해석을 바꾸고, 그 해석이 틀렸음을 깨달아 다시 참오하기를 계속 반복했다.
탄기의 경지를 넘었을 때, 진명은 오랜 정체기를 맞이했다.
태극은 세상 만물에 존재하는 음양의 이치였다. 때로는 하나로 뭉치고 때로는 둘로 나뉘는, 억제되지 않은 자유로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무당의 격식이, 도사로서 굳어진 사고가 그 자유를 저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무당을 떠났다. 구도자의 마음으로 태극혜검을 완성하기 위한 걸음이었다.
그렇게 떠돈 지 오 년여. 드디어 의기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했다. 형과 식이라는 틀 안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 틀을 깼을 때야말로 진정한 태극혜검을 익힐 수 있으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으나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없이 지치고 피로했다.
진명은 자신에게 휴식이 필요함을 느끼고 모든 것을 손에서 놓았다.
하지만 회복되지 않았다. 내려놓고자 해도 항상 머리에 맴돌고 있으니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의 걸음이 섬서에 다다랐다.
사패천의 영역에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광경을 목도하고 말았다.
자신이 무당을 떠날 때만 해도 볼 수 없었던 광경이었다. 자유로이 떠돌며 정사마의 구분 자체가 모호함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던 그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파라는 이름을 내세워 민초를 핍박하는 무인들의 모습. 사람을 짐승처럼 사고팔고, 자신의 신경을 거스른다는 이유로 그들의 목숨까지 빼앗는 자들.
정파의 도문에서 자라며 어려서부터 사파나 마교를 구분 짓고 배척하도록 배웠으나, 실제로 그들을 접하며 오해라는 것을 깨닫고 옹호했던 마음이 배신당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생명이라는 것이 천지간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니 아무리 악인이라 해도 죽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 생각했기에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부상만을 입혔다. 그의 목적은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지 무차별적인 살생이 아니었으니까.
까아앙!
진명은 자신을 향해 날아온 검격을 매섭게 쳐 내며 뒤로 물러났다.
촤아악!
그를 구속하려는 쇠 그물이 활짝 펼쳐진다. 진명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고, 손에 잡힌 검이 곧은 방향으로 반 바퀴를 비틀린다.
취릭.
비틀린 검날을 따라 청량감을 머금은 푸른 선기가 회오리처럼 그를 감싸 흐르고.
츄아악!
도망치던 진명이 쇠 그물을 향해 뛰어들며 녹슨 검에 간결한 움직임을 담는다.
만변(萬變)은 곧 일검.
검이 무수히 많은 변화를 만든다고 해도 시작은 하나이고 끝도 하나일 뿐이다.
태극혜검의 첫 번째 묘리가 쇠 그물의 중심을 때린다.
따아앙!
펼쳐졌던 쇠 그물이 한 점을 중심으로 우산처럼 접히고, 일검은 다시 만변한다.
두 번째 묘리가 쇠 그물 안에 갇혀 검날을 진동시켰다.
까가가각!
검에 담긴 변화가 선기와 함께 일어나 쇠 그물을 찢어 조각내었다.
휘릭!
진명이 검을 거칠게 휘돌려 회전을 만들자 쇠 그물의 조각들이 나선을 만들며 사방으로 쏘아져 나간다.
“크엑!”
“커억!”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쇳조각은 곧 매서운 암기로 변해 포위한 적들의 신체를 꿰뚫고 지나갔다.
몇몇이 목숨을 잃은 것이 안타까웠으나 이제는 그로서도 사정을 봐줄 겨를이 없었다.
그 수가 워낙 많기에 겹겹이 쌓였던 포위망이 개미 떼가 모여들 듯 시체를 넘고 좁혀져 온다.
그리고 포위망의 마지막 선, 대룡방의 인물들과 달리 붉은 장포에 몸은 물론 얼굴에까지 흉한 문신으로 도배를 한 자들이 포위망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들은 부상자나 사망자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였다. 부상자들에 의해 진명의 검이 점점 더 느려지는 것.
그 하나를 위해 대룡방의 무인들이 도망조차 치지 못하게 밀어 대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진명의 검이 사람 수에 치여 멈칫하는 순간, 붉은 장포의 무인 하나가 뛰어든다.
퍼퍽.
잘리는 것이 아니라 박히는 소리.
날카롭게 휘저은 진명의 검이 붉은 장포의 무인의 옆구리에 박혀 있었다.
“……!”
빼려 했으나 빠지지 않는다.
검이 베고 들어간 옆구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붉은 장포의 무인은 양손으로 검날을 움켜쥐고 사악하게 웃었다.
“이런 독한?”
설마하니 검기를 잔뜩 머금고 있는 검을 자신의 몸으로 붙잡아 멈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진명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떠오른다.
“끝이다, 이놈.”
푸른 검기가 그의 뱃속을 헤집고 있을 것인데, 살과 근육이 잘리고 내장마저 조각나고 있을 것인데.
이놈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단 말인가? 어째서 웃는단 말인가?
그의 독함에 경탄마저 나왔지만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붉은 장포의 무인에 의해 칼을 쓰지 못하게 된 진명이 서둘러 권장을 뿌려 자신의 주위에 몰려드는 이들을 공격했다.
의기에 이른 그의 기운이 사방으로 뿌려졌지만 아무래도 주무기가 검인지라 자유자재로 공격을 이어 나가기가 힘들었다.
진명은 마치 개미 떼에 습격당한 사마귀처럼 점차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운신조차 자유롭지 못할 정도로 많은 수의 무인들에게 둘러싸인 순간.
차르르르, 차르륵!
소름 끼치는 쇳소리와 함께 음험한 기운을 가진 무언가가 포위망을 가르며 날아왔다.
어느새 원형으로 자리 잡은 붉은 장포의 무인들이 던진 사슬 낫.
“이런!”
잔혹한 그것은 진명을 포위했던 무인들이 통째로 조각나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땅! 따다당!
선기를 덧씌워 휘두른 주먹에 맞은 낫이 튕기자 이어진 사슬이 포물선을 그리며 멀찍이 날아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붉은 장포의 무인들이 손을 휘저으며 당기자 사슬이 허공에서 얽히고설켜 다시 그물을 만들어 진명을 감싸듯 조여 왔다.
탁!
진명이 더 이상 막을 수 없음을 직감하고 허공으로 솟구쳐 오른다.
슈가가각!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대기를 갈라 내며 쓸어 오는 거대한 그림자.
사슬이 달린 낫보다 훨씬 거대한 크기를 가진 낫이었다.
“……!”
설마 자신이 뛰어오르기를 기다린 것인가?
다급해진 진명은 재빨리 비룡번신으로 몸을 비틀며 그로 인해 발생한 회전력을 주먹에 담아 후려쳤다.
따아아앙!
폭음과도 같은 거친 쇳소리.
“크윽!”
하지만 실려 있는 힘이 만만치 않았다.
대낫의 속도를 줄일 수는 있었지만, 완전히 막아 내지 못한 진명이 바닥에 처박혀 굴렀다.
몸을 세우려 하자마자 이번에는 셀 수 없는 검격이 동시에 날아온다.
땅! 까드득!
진명은 한쪽 무릎을 다 펴지도 못하고 다급히 장력을 발출했다.
검극을 튕겨 낸 순간 곧이어 그의 가슴팍을 노리고 들어오는 발 하나.
퍼억!
그리 강한 기운은 아니었으나, 중심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던 탓에 진명이 또다시 뒤로 밀려 난다.
놈들은 기회를 잡은 동시에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밀려 난 거리 사이를 채워 버린 무인들의 공격이 사방에서 진명을 공격해 왔다.
‘젠장!’
얼굴이 일그러진 진명은 자신이 아는 모든 무당의 권각술을 동원했으나, 아무리 권각술이 대단하다 해도 검공을 사용하는 실력에 비할 수가 없었다.
팡! 파팡!
장력이 쉬지도 않고 발출되어 달려드는 대룡방의 무인들을 쳐 냈다.
문제는 붉은 장포를 걸친 문신 괴인들.
그들은 또다시 뒤로 물러나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지치기를 바라고 있는 것처럼.
진명은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대룡방의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는 무인들의 수를 파악할 수 없다. 함정에 빠진 데다 승산조차 없으니 도망을 쳐야만 했다.
고통받을 민초들이 안타깝지만, 자신이 가진 능력은 딱 거기까지였다.
좀 더 강했다면 좋았을 것인데, 만약 강의 경지를 깨달았다면 악적들을 제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