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53
253화
진명은 보잘것없기만 한 자신의 무위에 참담함을 느끼고 양손에 기운을 가득히 몰아넣었다.
휘휘휘휘.
급격히 끌어 올린 기운에 그의 옷자락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고, 내뻗은 쌍장에서 거친 선기가 전면을 향해 휘몰아쳐 나갔다.
퍼어엉!
쌍장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진명의 앞으로 달려들던 무인 다섯이 대번에 피떡이 되어 튕겨 나갔다.
일시적으로 단전이 비어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퇴로가 생겼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서둘러 도망쳐야 한다 생각하며 몸을 돌리는 순간.
차르르르, 차르륵!
“…….”
좀 전의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진명의 움직임을 제약하기 위해 날아오는 사슬 낫이었다.
강맹한 내력이 발출된 이후에 생기는 틈. 놈들은 그것을 기다린 것이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사슬 낫은 직접적으로 진명을 노리지 않았고 퇴로만 차단했고, 대신에 대낫이 진명을 향해 곧장 날아들었다.
쐐애액!
공기를 가르는 소음.
따아앙!
“크으윽!”
기운을 담아 손등으로 대낫을 쳐 내려던 진명이 도리어 반탄력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 나가 담벼락에 처박혔다.
“우웩!”
진명이 몸을 일으키려다가 땅바닥을 짚고 엎드려 검은 울혈을 토해 내었다. 내상을 입은 것이다.
대낫의 주인은 생각 이상으로 강했다.
부딪쳐 본 그의 힘은 자신과는 달리 이미 완숙에 이른 의기의 경지. 단전이 비어 버린 지금 그의 대낫에 담긴 기운을 버텨 내기란 무리였다.
“…….”
진명이 자신의 주변을 노려본다.
그의 주위로 붉은 장포를 걸친 괴인들이 포위망을 이루고, 한 인물이 포위망을 헤치며 진명의 앞으로 다가왔다.
한쪽 눈에 안대를 한 애꾸, 치켜 올라간 눈썹에 찢어질 듯이 가는 눈매를 가진 중년 사내.
“네놈이 수검이라는 놈인가 보지?”
“…….”
“이거 의왼데? 혹시 부현, 감천, 연안 사업장을 공격한 것도 너였냐?”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진명은 의아함을 느꼈으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눈앞의 애꾸 사내도 강하지만, 붉은 장포의 괴인들뿐만 아니라 대룡방에 있는 무인의 수가 너무 많다. 이제는 도망치는 것조차 무리였다.
“귀하는?”
“…….”
진명이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며 묻자 물끄러미 쳐다보던 애꾸 사내가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하, 이 새끼 봐라? 귀하? 뒈지게 생긴 놈이 예의를 다 차리네? 그리고 선문답하냐? 묻긴 내가 묻는데 되레 질문을 하고 앉았어?”
“…….”
“뭐, 좋아. 어차피 지금부터 껍데기를 홀딱 벗겨 놓을 놈이니 알려 주마.”
머리가 큰 애꾸 사내가 포위망을 힐끗거린다.
“얘들아!”
“예!”
“우리가 누구냐?”
“귀살대입니다!”
애꾸 사내의 말에 붉은 장포의 무인들이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한목소리로 외쳤다.
“들었지? 얘들은 귀살대. 나는 귀살대주. 이름은 우담.”
“…….”
어깨를 으쓱하며 장난스럽게 말하는 애꾸 사내의 모습에 진명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우담의 이름을 들은 적은 없으나 귀살대는 알고 있었다.
되찾고자 하는 것이 돈이든 사람의 목숨이든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는 야금당의 최정예이자 전문 수금꾼들.
그들의 잔혹성과 악명은 듣는 이로 하여금 치가 떨릴 정도로 유명했다.
혹자는 귀살대를 다른 말로 부르기도 했다. 돈이 된다면 썩은 고기조차 마다하지 않는 들개 떼.
“대충 투항하지? 우리 사업장에서 털어 간 돈도 내놓고 말이야. 그럼 껍데기는 벗겨도 목숨은 부지할 수 있게 해 주마.”
“…….”
여유롭게 이죽거리는 애꾸 사내, 우담의 말에 진명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움켜쥔 주먹에 힘을 담았다.
돈이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이곳이 자신이 죽을 자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었다.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옳은 일을 행하다 가는 것이니 사문에도 전혀 부끄러울 것이 없다.
그저 더 이상 구해 주지 못한 민초들에게 미안할 따름이었다.
“하, 이 새끼. 이런 상황에서도 해볼 생각이네. 좋아. 원한다면 썰어 주지. 우리야 네놈 대가리만 가져가면 되니까.”
진명이 투항하기는커녕 더욱 기운을 끌어 올리자 우담이 피식 웃으며 한발을 뒤로 물리고, 귀살대의 무인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그 모습에 진명의 눈이 찌푸려진다.
적어도 한 무리를 이끄는 수장이라면 맞상대를 할 것으로 생각했거늘…… 무인으로서의 자존심도 없단 말인가.
어쩔 수 없이 살계를 열어야만 했다. 때론 계도가 불가능한 무리도 있는 법이니.
오라, 내 죽는 한이 있어도 몇 놈은 저승길 동무로 삼을 것이다.
진명은 처음으로 살심을 끌어 올렸다.
“얘들아!”
“예!”
“저 새끼 껍데기를 벗…… 응?”
우담이 싸늘한 표정으로 진명을 비웃으며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려 고개를 돌리는데 그의 시선에 의아한 광경이 들어온다.
저 새낀 또 뭐지?
대룡방의 인물도 아니요, 귀살대 소속 무인은 더더욱 아니었다.
적당한 키에 복면을 썼고 드러난 부분마저 헝클어진 머리카락으로 대강 가린 채 어깨에는 검을 대충 얹은 사내.
처음 보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진명의 검을 옆구리에 박은 채 포위망에서 벗어나 있는 귀살대의 무인, 남포에게 다가가 있었다.
그의 등장과 동시에 모든 움직임이 멈추고, 정적이 흘렀다.
대체 언제?
모두가 똑같은 생각이었다.
당혹에 휩싸인 좌중을 무시하고 남포에게 다가간 진무가 나지막이 말했다.
“놔.”
“……?”
당사자인 남표는 황당하기까지 했다.
“이 새끼야, 니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그거 배 속에 박고 있으면 파상풍 걸려.”
“…….”
뭔가 걱정을 하는 듯한 말투이긴 한데. 대체 언제 다가온 거지?
“안 놔?”
너무 황당해서 멍하니 쳐다보는 남포를 향해 진무가 빙긋이 웃는다.
“그럼 어쩔 수 없지.”
“……!”
순간 남포가 눈을 부릅떴다. 복부와 검을 잡은 손아귀에서 막대한 고통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손잡이를 잡은 진무가 좌우로 골고루 비틀며 검을 빼고 있었다.
“끄으으…….”
억눌린 신음을 내면서도 남포는 검을 놓지 않았다.
“거, 독한 새끼네. 어쩔 수 없지.”
검을 휘휘 돌려도 빠지지 않자 이번에는 칼이 들어간 반대 방향으로 힘주어 휘두른다.
쯔아악!
횡으로 그어지며 빠져나온 칼과 함께 엄청난 양의 피가 뿜어진다.
그리고 남포의 허리를 기준점으로 상하가 양분되어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거봐, 놓으랬잖아. 쓸데없이 버티지만 않았어도 죽진 않았을 건데 말이야.”
남포를 죽인 진무가 고개를 돌렸다. 녹슨 검을 들고, 환하게 웃으면서.
그런 그의 모습에 모두가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복면으로 눈 아래를 가리고 나타난 그의 모습은 대룡방 안의 상황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홀로 동떨어져 보였다.
어디 산보라도 나온 것처럼 느긋한 표정에 어깨에 검 하나, 다른 손에 녹슨 검을 들고 짝다리를 짚고서.
이건 뭐, 뒷골목 파락호도 아니고, 대체 누구길래?
“네놈은 뭐냐?”
모두의 의문을 대신해 우담이 진무를 노려보며 물었다.
살기를 풀풀 날리는 그의 질문에 진무가 눈매를 짝짝이로 찌그러뜨리며 입을 열었다.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가 얻다 대고 이놈 저놈 씨불이고 지랄이야?”
“…….”
“너는 집에 삼촌도 없냐?”
진무의 반응에 우담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경우 통상은 ‘내가 누구다.’ 혹은 ‘누구를 구하러 왔다.’라고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우담의 나이 마흔 줄.
드러난 부위가 얼마 안 되기는 하지만 분명 자신이 훨씬 많을 것 같은데 삼촌?
어이가 없어 멍한 와중에 진무가 진명을 향해 검을 던졌다.
탁.
“……거, 사문의 검을 함부로 버리고 다니시면 되겠수?”
“……?”
검을 받은 진명의 표정에 당혹감이 떠오른다.
말투나 자세로 봐서는 필시 사파의 무인일 것이다.
검을 돌려주는 것을 보면 자신에게 우호적인 것이 분명하다. 설마 자신을 구해 주려는 것인가?
하지만 그가 어떤 목적으로 참견을 했건 간에 지금의 행동은 매우 위험천만한 것이었다.
귀살대는 의기에 오른 자신으로서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든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이보시오. 위험하오! 서둘러 도망치시오!”
“…….”
진명의 말에 진무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도망치라고?
여유롭네, 여유로워.
지금 니가 남 걱정할 때냐? 속도 편한 놈.
내가 끼어들지 않았으면 당장에 저 낫에 제 모가지가 논두렁 잡초처럼 뎅강 잘렸을 것인데.
진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몸을 돌리자 진명이 다시금 외쳤다.
“이, 이보시오. 내 말을 들으셔야 하오!”
이보시오는 염병.
진무는 그를 완전히 무시하고 우담과 주변으로 빼곡하게 들어찬 무인들을 바라보았다.
“나 참, 이 새끼들 문신한 꼬라지하고는. 적당히라는 말도 모르냐, 적당히! 아주 얼굴까지 떡칠을 해서는……. 하긴 니들이 여백의 미학(美學)에 대해 알 리가 없지.”
진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우담을 바라본다.
“희한한 새끼네. 뭔 대가리가 그렇게 크냐? 보기 부담스럽게.”
이죽거리는 말에 우담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뭘 야리고 지랄이야? 뒈질라고. 어쨌든 한 놈을 여러 놈이 공격하는 건 사파로서 매우 칭찬해 줄 훌륭한 일이긴 한데……. 니들이 그러는 건 맘에 안 들어.”
“…….”
“그러니까 여기서 투항해라.”
뭘 잘못 들었나?
칭찬, 맘에 안 듦, 투항. 뭔 대화 흐름이 이딴 식이란 말인가?
그리고 뭐? 투항?
이쪽은 대룡방에 귀살대까지 이백.
놈들은…… 복면과 수검 달랑 둘.
설마 숫자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강한 고수?
하지만 실력이 높다고 보기에는 너무 어린 느낌 아닌가?
어린 나이에 뛰어난 무위를 가지는 것은 잘 처먹고 잘 배운 정파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철혈의 전장에서 살아가는 사파의 무인들에게는 연륜이 곧 실력. 고로 저 어린놈은…… 잘 봐줘도 이류나 될 법하다. 운이 좋아 현기에 이른 정도?
뭔가 입장이 바뀐 듯한 말을 내뱉는 주제에 어째서 저렇게 당당한 걸까?
“내가 그러고 싶진 않은데 부탁을 받아서 말이야. 웬만하면 안 죽이려고 하거든? 그러니까 투항하는 놈은 안 죽인다. 잘 판단해.”
진무의 말에 우담의 눈두덩이가 씰룩거리고 얼굴색이 붉으락푸르락해진다.
“이런 미…….”
……친 새끼까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번들거리는 진무의 눈동자에 살기가 스미는 순간 목덜미에 스산한 칼날이 닿은 듯한 착각이 들었다.
“뭐? 할 말 있으면 해. 일단은 들어 줄게.”
“…….”
이번엔 친절하게 눈웃음을 친다. 조금 전까지 자신을 위협하던 살기는 온데간데없이.
잘못 본 건가?
우담이 긴장한 눈빛으로 진무를 노려봤지만, 진무의 몸에서는 아무런 기세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옆에 있는 수검에게서 더욱 강한 기세가 느껴진다.
“말 안 하면 내가 먼저 할게.”
“…….”
“내가 부현은 너무 화가 나서 그랬는데, 감천이랑 연안에서는 미리 물어봤거든.”
감천? 연안?
“근데 이 새끼들이 기회를 줬는데도 칼질을 하더라고. 그래서 이렇게…….”
진무가 손을 내밀어 손가락 다섯 개를 활짝 폈다가 공기를 우그러뜨리듯 움켜쥔다.
마치 손으로 사람의 머리를 터트리는 것처럼.
“……!”
설마 세 곳 사업장을 습격한 것이?
우담이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홀로 세 곳을 공격할 정도로 대단한 무인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냥 객기뿐인 미친놈 정도가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담의 눈이 빠르게 대룡방 담벼락 밖을 살폈다.
묘하게 조용하다.
“네놈…… 대룡방 주변을 포위한 것이냐?”
“어.”
“…….”
아까부터 왜 그렇게 당당한가 했더니, 믿는 구석이 있었나?
아니, 그래도 그렇지. 대답이 간단해도 너무 간단하잖아.
자랑이라도 하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