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54
254화
“왜, 포위한 게 잘못됐냐?”
“……아니, 그건.”
자신의 성격과는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젠장, 긴장감이라고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이 망할 놈에게 말려 버린 것이다.
그래, 미친놈의 말을 너무 받아 주었다.
자신이 잘못 본 것이리라.
고수?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놈에게는 그만한 기세도, 품격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정신이 조금 이상해져서 겁대가리를 상실한 놈이 분명하다. 포위만 믿고 허세를 부리며 자신을 농락하다니.
우담은 자신의 거대한 낫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황당함에 잠시 접어 두었던 살기를 끌어 올렸다.
“나 참, 같잖은 허세에 내가 잠시 휘둘린 모양이군. 그래, 인정하마. 그 뛰어난 언변으로 나를 현혹하는 사이 주변을 포위하려는 것이 네놈의 계략이라면 성공했다. 하지만, 네놈은 식견이 짧아 우리가 누구인지 모르는 모양이로구나. 우리는 귀살대다.”
“……귀살?”
진무가 놀란 표정을 하자 우담의 살기 어린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이제 알겠…….”
“아, 씨발! 한가락 하는 놈들인 줄 알았는데 듣도 보도 못한 잡놈들일 줄이야.”
“……뭐?”
“근데 이름이 왜 그따위야? 귀신 잡는 무인대?”
“…….”
“니들이 무슨 퇴마사냐? 귀신이나 잡고 다니게?”
“…….”
“난 귀신 아니고 사람이니까 귓구멍 열고 처듣기나 해. 투항하면 산다.”
진무의 말에 또 휩쓸려 할 말을 잃었던 우담은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런 미친 자식이!”
쓰아아아.
살기를 줄기줄기 내뿜으며 몸을 날린 우담이 거대한 낫을 힘껏 휘둘러왔다.
‘ㄱ’ 자로 꺾인 상단 부분의 날이 대기를 잘라 내듯 호선을 그림과 동시에 귀살대의 무인들이 진무를 향해 사슬 낫을 들고 덤벼들었다.
“이보시오! 위험하오!”
진명이 재빨리 진무를 보호하기 위해 녹슨 검을 잡고 뒤늦게 뛰어들었다.
위험?
낫 따위가 위험해 봐야 농기구지. 기껏 준 기회에 목숨까지 얹어서 버린 건 쟤들이고.
가볍게 내디딘 한 발자국에 공간이 접힌 듯 진무의 몸이 대낫의 궤적 안으로 파고들었다.
“……!”
마치 이형환위(移形換位)처럼 자신의 앞으로 다가서 버린 모습에 우담이 기겁하며 힘껏 낫을 당겼다.
“새끼, 놀라기는.”
싱긋 웃은 진무가 손을 뻗어 날의 윗면을 가볍게 눌러 방향을 바꾼다.
푸욱!
졸지에 횡에서 종으로 방향을 바꾼 낫이 바닥에 처박혔다.
“……!”
놀란 우담의 시야를 빠르게 잠식하는 발바닥…… 발바닥?
콰직!
“크윽!”
코뼈가 얼굴 속으로 박혀 드는 충격과 함께 우담이 쾌속하게 튕겨 나갔다.
우우웅!
동시에 진무의 손에서 검은 안개와도 같은 기운이 회오리치듯 몰려들었다가 하늘을 향해 뻗은 양손을 따라 솟구친다.
두 마리의 용이 승천하여 하늘의 주인 자리를 놓고 맞부딪치니 천둥소리가 울리고 천지 사방에 벼락이 쏟아진다.
묵룡혼원공의 초식 중 하나로 대규모 살상 능력을 가진 쌍룡투(雙龍鬪) 뢰격(雷格)이 펼쳐졌다.
쾅! 콰쾅! 콰드득! 쾅!
벼락은 목표를 가리지 않고 진무의 몸을 중심으로 이십여 장에 달하는 공간에 거칠게 떨어져 내렸다.
쏟아지는 강기에 몸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 버린 자들, 지면에서 일어난 폭발에 휩쓸려 버린 자들.
“……!”
그 처참한 광경의 중심에 놓인 진명은 움직일 수도, 숨 한번 제대로 쉴 수도 없었다.
단 두 번의 손짓으로 대룡장에 있었던 생명체 대부분을 말살한 것이다.
그 와중에도 진무와 가까운 곳에 서 있던 진명에게는 조금의 피해가 없었다.
진무의 등을 바라보던 진명은 자신의 손이 잘게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전율?
아니다. 이것은 공포다.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막강한 사기에 몸이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허! 강기라니. 참으로 대단한 자로구나. 사파에 이런 고수가 있을 줄이야.’
진명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감탄을 넘어 경외심마저 들었다.
발바닥에 맞아 벼락의 사정권 밖으로 튕겨 나갔기에 살아남은 우담도, 애초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살아남은 귀살대 일부나 대룡방의 무인들도 진명과 똑같은 표정이었다.
진무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남겨진 광경은 그들에게 두려움을 심어 놓기 충분했다.
한순간에 서른에 가까운 무인이 형체조차 온전히 남기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
가까이 있던 자들은 진무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숨 막히는 살기에 질려 움직이지도 못했고, 멀리 떨어진 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으으으…… 살려 줘!”
누군가의 외침.
그것이 발화점이 된 것인지 멀리 떨어져 있던 이들이 도망치기 위해 앞다퉈 대룡방의 담을 넘기 시작했다.
쐐액! 푹! 스걱!
그런 그들을 비웃듯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
또 다른 방향에서 날아온 암기.
그리고 담벼락 아래서 솟구친 은신자들의 비수.
털썩. 털썩.
도망치던 자들은 제 키보다 조금 높은 담조차도 넘지 못하고 바닥에 처박혔다.
하오문이 만든 완벽한 차단의 벽. 대룡방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런, 내가 말을 안 해 줬네.”
포위망의 정체는 대룡방을 공격할 목적이 아니었다.
“내 허락 없이는 여기 있는 누구도 밖으로 못 나가.”
스산하게 웃는 진무의 말에 좌중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대룡방에 있던 모든 이가 진무 한 사람에게 압도당한 것이다.
숨소리마저 잦아든 그 적막 속으로 진무의 발걸음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진다.
저벅, 저벅.
진무는 우담이 떨어뜨린 낫을 주워 그가 있는 곳을 향해 던졌다.
휙. 푸욱.
커다란 원을 그리며 날아가 우담의 앞에 꽂히는 낫.
“필요할 것 같아서. 지금부터.”
“…….”
코뼈가 내려앉아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우담의 눈동자가 잘게 떨린다.
“네, 네놈은 도대체 누구냐?”
두려움이 잔뜩 서린 목소리에 그 앞까지 다가선 진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 새끼, 이놈 저놈 하지 말라니까 참 말 안 듣네. 그리고 내가 누군지 니까짓 게 알아서 뭘 하게?”
“……?”
“아무튼, 지금부터는 최선을 다해 움직여야 할 거야. 난 한번 시작하면 좀처럼 봐주는 법이 없거든.”
“……!”
말이 끝나기 무섭게 뻗어지는 진무의 주먹에 우담은 하늘이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괴물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눈을 파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모가지가 잘릴 듯한 살기를 느꼈을 때 냅다 도망갔어야 했는데.
귀살대? 대룡방의 무인?
이 괴물에게 그따위 건 아무런 소용도 없다.
절대적인 무위를 지닌 이자 앞에서 자신 따위는 바위 치는 계란도 못 된다. 계란은 바위에 흔적이라도 남기지, 분명 불 속으로 뛰어든 나방처럼 형체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이려 무기마저 버린 우담이 사력을 다해 바닥을 굴렀다.
주먹을 피하고 곧장 도망칠 것이다.
콱.
“끄악!”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작은 바람이었을 뿐이다.
진무는 이미 예상이나 한 것처럼 우담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있었다.
“새끼가 청우보다 못 구르는 게. 기껏 덤벼 보라고 무기까지 돌려줬더니 도망을 쳐?”
“…….”
당긴 힘에 우담의 머리가 쳐들리고, 그의 시야에 진무의 얼굴이 들어왔다.
진무가 환하게 웃으며 꽉 움켜쥔 주먹을 들어 올렸다.
오랜만이다. 이 느낌.
“아, 안 돼!”
안 되긴 뭐가 안 돼, 이 대가리만 큰 새끼야.
진무의 주먹이 낙하를 시작한 유성군처럼 수직으로 떨어져 내린다. 유성이 아니라 유성군이다. 즉, 하나가 아니라 수십, 수백이라는 소리.
콰직! 콰직! 콰직!
그 소리가 끝날 줄을 몰랐다.
분명 죽었을 것인데.
진무의 주먹은 멈추지 않았고, 으스러진 뼈를 다시 부숴 가루로 만들어 놓으며 묘한 미소마저 띤 모습에 살아남은 이들은 전의를 상실해 버렸다.
수좌가 죽어서가 아니다.
반항했다가는 자신이 우담이 될 것 같은 그런 환상이 보였기 때문이다.
“후우…….”
얼굴 자체가 뭉개져 축 늘어진 우담을 잡고 드디어 멈춘 진무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꿇어.”
단 한마디.
눈치를 보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모두의 마음은 똑같았으니까.
살아남은 이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손에 쥐고 있던 병장기를 바닥에 떨구며 무릎을 꿇었다.
그로써 야금당 소속 대룡방은 무너졌고 귀살대는 처음으로 임무에 실패했다.
진무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남은 일은 하오문에서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노예로 잡혀 와 갇혀 있는 자들은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고, 살아남은 대룡방과 귀살대의 무인들은 포로로 잡힐 것이다.
그들에게 남겨진 선택권은 두 가지뿐이다.
죽든가, 전향하든가.
천천히 몸을 돌린 진무를 진명이 멍한 눈으로 바라본다.
“당신은 도대체…….”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말에 진무가 환하게 웃으며 답해 온다.
오랜만의 등장이다.
“지나가는 정의의 장사…… 아니 의적.”
“……예?”
* * *
전투는 끝났다.
뭐, 전투랄 것도 없었다.
진무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어쨌든 대룡방의 일들이 빠르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포위망을 구성했던 하오문은 살아남은 귀살대와 대룡방의 무인들을 제압해 포박하고 어디론가 끌고 갔고, 또 일부는 건물 안을 뒤져 잡혀 있는 이들을 구출했다.
“천주님!”
뒤늦게 달려온 황신이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진무의 곁으로 다가온다.
모두가 하는 양을 멀뚱하게 바라보던 진명은 천주라는 호칭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저자가 말하는 천주가 사패천주를 뜻하는 것이라면 당연한 반응이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무당이 망할 뻔한 것이 전대 사패천주 혁련무강 때문인데.
아니, 잠깐. 그런데 천주라고?
분노 사이로 의아함이 생겨났다. 작금에 천주라고 불릴 사람이라면 단 하나밖에 없지 않던가?
사패천주 유월청.
본 적은 없어도 유월청의 나이가 예순을 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저자가 천주라고?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일단은 그보다 먼저 할 일이 있었다.
그가 구하고자 했던 민초들의 안위. 눈앞의 사내가 대단한 고수라는 것을 알지만 자신이 죽게 되더라도 그들만큼은 구해야만 했다.
“이보시…….”
그러나 진명은 운을 떼자마자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싸늘함.
새파랗게 날이 선 비수가 어느새 그의 목덜미에 닿아 있었다.
“손 떼. 안 그럼 모가지에 바람구멍 내서 피리처럼 불어 버릴라니까.”
“…….”
어, 언제?
진무의 곁으로 다가가 있던 왜소한 체구의 복면인, 황신이다.
진명은 크게 놀랐다. 분명 눈앞에 있었는데 언제 움직였단 말인가?
괴물의 곁에는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법인가?
딱!
“아극!”
“……!”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큰 괴물이 작은 괴물을 갑자기 때렸다.
“이 새끼가 낄 때 안 낄 때 모르고 나대고 지랄이야? 뭐 피리? 이게 확 그냥!”
돌아가는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진명은 황망한 표정으로 두 괴물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넣어.”
“…….”
큰 괴물 진무의 말에 작은 괴물 황신이 복면 아래로 입을 쭉 내밀었다.
“확!”
짧고 간결한 위협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깨를 움츠리며 뒷머리를 긁적이는 황신.
“가서 술이나 한 병 가져와.”
진무의 말에 황신이 고개를 숙이고 투덜거리며 물러났다.
“어이, 거기 잠깐 앉지.”
“…….”
툭 내뱉고 대충 걸터앉는 진무의 모습에 진명이 엉거주춤하게 따라 앉았다.
“저 사람들 걱정은 하지 마. 알아서 지들 살던 곳으로 잘 돌려보내 줄 거니까.”
돌려보낸다고?
진명이 의아하게 쳐다본다.
“그렇게 볼 것 없어.”
“…….”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오는 모습에 진명은 답답하기만 했다.
그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