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58
258화
똑…… 똑…… 똑…….
어둠으로 가득 찬 깊디깊은 동굴의 안쪽.
습한 기운이 모여 생긴 물기가 동굴의 경사진 벽을 타고 흐르다 돌출부에 모여 바닥으로 떨어져 부서진다.
그리고 부서진 물기가 튀어 닿은 어둠의 중심에 사람의 형체가 어렴풋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막주님.”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적막을 깨자 눈동자 한 쌍이 드러난다.
“무슨 일이냐.”
눈동자의 주인이 뱉어 낸 목소리는 노쇠한 여인의 것이었다.
“하심곡의 주변을 서성거리는 놈들이 있습니다.”
“…….”
그의 말에 어둠에 가려진 그녀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진다.
“……또 마적 놈들이냐?”
“아닙니다. 처음 보는 자들입니다.”
“처음 보는 자들이라…….”
눈동자의 주인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얼마간의 정적이 흐르고 난 뒤, 다시금 말이 이어진다.
“어떤 행동을 하고 있더냐?”
노파의 물음에는 여러 가지가 빠져 있었다.
우선 어떤 자들이냐를 묻지 않았고, 강한지, 약한지, 수는 얼마나 되는지와 같은 일반적인 정보에 대한 의문이 없었다.
마치 누구라도 신경 쓰지 않는 듯한 자신감이 밴 물음이었다.
“무언가를 찾는 듯 조심스러웠습니다.”
“찾는다?”
노파의 목소리에 언짢음이 가득하게 어린다.
하심곡은 그들의 은거지였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지인들에게도 알려 주지 않은 곳이다.
외부와 완전히 단절하기 위해 모종의 대비를 해 둔 곳이기에 서성이며 무언가를 찾는 행동은 거슬릴 수밖에 없다.
“어찌할까요?”
“…….”
생과 사의 결정을 내려 달라는 뜻이다.
하지만 무언가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우리를 발견할 확률은?”
“아직은 모르겠으나 조금 귀찮아질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귀찮아진다는 것은 전투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나가 있는 이는 없더냐?”
“소막주께서 진마평으로 나가 있습니다.”
“또 말이냐?”
눈동자의 목소리에 이전보다 더 큰 짜증이 어렸다가 한숨으로 변했다.
“그리 당부했거늘…….”
“아마 답답하여 그러실 겁니다.”
“…….”
“실력은 뛰어나다 해도 아직 어리지 않습니까. 그래도 진마평에서 벗어난 적은 없으니 막주님께서 이해하십시오.”
모습도 보이지 않는데 왠지 미소를 짓고 있을 법한 어조였다.
“하아, 그렇기야 할 테지. 호위는?”
“다섯입니다.”
“알았다. 외부인이 서성인다는 것을 알면 함부로 복귀하지는 않을 테지만 혹시 모르니 연통은 넣어 놓거라.”
“예.”
“그리고 외부를 감시하는 아이들을 물리도록 해. 괜한 마찰을 일으켜 좋을 것이 없으니 일단은 주시만 한다.”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수하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고, 기척도 사라졌다.
눈동자의 주인은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망할 천주 놈 같으니……. 병신 같은 놈을 후계자로 앉혀서는.”
한탄의 감정이 진하게 서린 말을 내뱉은 그녀가 오랜 시간 유지했던 좌정을 끝내고 일어났다.
얼마나 걸었을까?
주위의 어둠이 사라지고 밝은 빛이 비치는 곳으로 나온 그녀의 모습이 드러난다.
지팡이를 짚고 허리가 구부정한 것이 영락없는 촌로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녀를 어둠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야화라 불렀다.
* * *
섬서와 산서의 경계를 나누어 흐르는 황하의 물결은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산서와 북쪽 대지와 다시 경계를 짓는다.
강의 남쪽은 산서였고, 북쪽은 과거 북원이 지배했던 땅이 있었다.
수차례의 정벌을 통해 황제의 통치를 받는 곳이 되었으나 관병이 배치되지 않은 곳은 불법의 온상이었고, 마적 떼들이 득실거렸다.
그중에서도 진마평이라는 곳은 마적들이 약탈한 물건을 사고파는 곳으로 유명했지만, 관에서 통제하지 못했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그 많은 마적 떼 전체와 전쟁을 벌여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좋은 게 좋다고 인근에 부임하는 관리 놈마다 방치하니, 그 규모가 점점 더 커져 진마평은 마치 마적들의 거대한 마을처럼 변해 버렸다.
황신과 함께 하곡의 다동루를 떠난 진무가 진마평에 도착한 것은 한밤중이었다.
“젠장, 뭔 놈의 땅이 죄다 먼지투성이냐.”
진무가 입 안이 까끌까끌해진 느낌에 얼굴을 찡그렸다.
하곡에서 진마평까지 내리 삼백여 리를 달렸다.
사막도 아닌데 오는 내내 황톳빛 대지뿐이었고, 황하를 벗어난 이후에는 그 흔한 냇가 하나 보이지 않았다.
“황신.”
진무가 고개를 홱 돌린 곳에는 수련(?)하느라 땅바닥을 쉼 없이 구르며 짓밟혀 먼지로 뽀얗게 변한 황신이 입 안에 가득한 흙먼지를 연신 뱉어 내고 있었다.
“일단 몸부터 좀 씻어야겠다. 쉴 곳을 찾아봐.”
그 말에 황신이 반색하는 얼굴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제 놈도 어지간히 힘들었던 모양이다.
안으로 들어선 진마평의 마을은 참으로 희한하게 생겼다.
흙을 구워 만든 벽돌로 지어진 건물에, 천장은 대충 두꺼운 천으로 덮어 놓은 것이 고작이었다.
그럼에도 골목들은 홰를 밝혀 훤했고, 길목마다 생전 보지도 못했던 물건들을 깔아 두고 파는 상인들이 가득했다.
“와!”
“…….”
“오옷!”
“…….”
뭐가 그리도 신기한지 황신이 눈을 크게 뜨고 이쪽저쪽으로 옮겨 다니며 구경을 하고 있다.
쉴 곳부터 찾으랬더니 이놈 자식이.
얼굴을 찡그린 진무가 들었던 주먹을 내리며 한숨을 쉬었다.
들어 보니 어릴 때는 부랑자로, 커서는 살수로, 그 뒤엔 은위단에 소속된 은신자로, 그렇게 살아온 녀석이다. 처음 보는 광경이니 신기할 만도 할 터이다. 아직은 어린 나이니까.
그래, 그동안 수련하느라 고생도 했는데 한 번쯤은 봐주자.
“황신.”
“……?”
“구경하고 있어. 쉴 곳은 내가 찾아볼 테니까. 부르면 딴 데 새지 말고 곧장 달려오고.”
진무의 말에 황신이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뭐, 돌보미도 아니고.
천주씩이나 돼서는…… 젠장, 이게 다 팔자가 사나워서 그렇다.
황신과 헤어진 진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시장을 지나 마을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갔다.
시장이 끝나고 난 뒤에 보인 것은 골목 가득히 늘어선 주점 거리였다.
보이는 건 온통 흙벽돌로 만들어진 외벽뿐. 말이 주점 거리지 술을 판다는 사실을 제외하곤 지나온 시장 거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보시오. 이곳에 숙식할 만한 곳이 어디요?”
진무의 물음에 한눈에도 범법자로 보이는 놈이 그의 위아래를 훑어보다가 손가락으로 골목 끄트머리를 가리켰다.
마흔 정도밖에 안 돼 보이는 놈이 싸가지 없이.
하지만 괜한 분란을 일으키기보다는 씻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던 진무는 감사를 전하고 걸음을 옮겼다.
막 목표에 다다라 문을 밀어젖히려는 순간이었다.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위험한 느낌에 진무는 재빨리 뒤로 물러나 안전한 위치로 비켜섰다.
와장창!
문이 부서지며 한 인물이 밖으로 튕겨 나왔다.
아마 물러나지 않았다면 부딪혔을 게 틀림없었다.
“이 개새끼! 너 내 눈에 띄지 말라고 했지!”
문안에서 또 다른 놈이 씩씩거리며 걸어 나온다.
근육질에 털보. 뭔가 전형적인 삼류 무뢰배 냄새가 물씬 나는 놈이었다.
딱히 상관도 없는 일이라 놈을 피해 안으로 들어가려던 진무는 또 걸음을 멈추었다.
뒤따른 놈들이 또 문을 막는다.
이것들이…….
그래 참자. 참아. 줘 패는 것도 귀찮다, 지금은.
다 나오면 들어가야지 싶은데…… 대체 언제까지 나오는 거냐? 몇 놈이나 더 나올 건데?
젠장, 문이나 크게 만들든가. 쪽문도 하나 없고.
한참을 투덜거리는 동안에도 꾸역꾸역 나오더니만, 이 망할 놈들이 다 나오고 나서도 문 앞에서 비킬 생각을 안 한다.
참다못한 진무가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하아, 거기 좀 비키…….”
“야, 너 다시 나타나면 내가 뒈진다고 했지?”
그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려는 진무의 목소리가 털보 놈의 목소리에 묻혀 버렸다.
“…….”
내가 진짜, 니들 안 패려고 했는데.
진무가 주먹을 꾹 움켜쥐고 맨 처음 나온 털보 놈을 노려보았다.
그런데 어째 좀 묘하다.
털보가 아니라 그의 손에 멱살이 잡혀 대롱거리는 사내.
처음에 문을 부수고 바닥에 처박힌 녀석이다.
진무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는데 사내가 헝클어진 머리를 걷어 내며 비굴하게 웃었다.
“아이구, 대형. 그럼 어쩝니까요? 이렇게라도 빌어먹어야 저도 주린 배를 채우지요.”
“그건 니 사정이지, 씨발 놈아.”
휘익! 털썩!
털보가 사내를 사정없이 집어 던지는 순간 진무의 눈동자에 이채가 어렸다.
“아이구우우.”
날아가기 직전 털보의 품속을 빠르게 스친 손.
땅바닥에 떨어지며 과장된 신음을 섞어 내는 사내의 모습에 진무가 피식 웃고 말았다.
떨어지는 순간 팔을 이용해 충격을 줄이고 몸을 크게 뻗으며 소리를 키웠다. 그러면서도 아픈 척을 한다.
하지만 진무 외에 그곳에 모여든 소 눈깔로 아무리 봐야 모를 것이다.
참으로 절묘한 놈이다.
“아이구우, 나 죽네.”
허리를 짚으며 과도하게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에 주변에 있던 이들이 웃음을 터트린다.
연기력마저 출중한 놈이다.
쉴 곳을 찾으려던 진무마저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헝클어진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얼굴은 대략 약관 전후.
“가, 이 거지 같은 새끼야! 우리 가게에 한 번만 더 오면 죽을 줄 알아!”
털보 녀석, 주점의 주인이었나?
구경하던 사람들이 떠날 때까지 땅바닥에 웅크리고 있던 사내가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아이구, 아이구구.”
구부정하게 허리를 굽히고 신음을 연발하던 사내는 비틀거리며 걸어갔고, 호기심이 생긴 진무는 거리를 유지한 채 그 뒤를 따라갔다.
직각으로 꺾어지는 골목.
진무가 방향을 트는 순간 사내가 사라졌다.
요 새끼 보게?
진무는 무표정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계속 걸어 가까이 위치한 주점으로 들어갔다.
스스스.
사라졌던 사내가 흙벽에서 돌출되듯이 모습을 드러내고는, 진무가 들어간 상점을 슬쩍 쳐다봤다.
“날 따라온 게 아니었나?”
고개를 갸웃거린 그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품에 손을 넣어 전리품을 확인했다.
짤랑.
갈색 가죽으로 만들어진 제법 묵직한 전낭.
“털보 자식, 지금쯤 전낭 없어진 걸 알고 속 좀 쓰리겠네.”
씩 웃은 사내가 언제 아픈 척을 했었냐는 듯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마을 밖을 향해 걸어갔다.
끼이익.
그리고 잠시 후, 상점으로 들어갔던 진무가 밖으로 나왔다.
“다섯 놈이나 붙어 있단 말이지? 그것도 은밀하게?”
사내의 기척이 사라진 이후 숨어서 끈질기게 바라보던 놈이 있었다.
그놈의 기척을 읽었기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점점 더 호기심이 끓어오르게 만드는 놈이다.
돈을 훔칠 때 보인 손놀림은 그림자도 생기지 않을 만큼 은밀하다는 절세의 금나수 잠영수(潛影手)였고, 떨어질 때 보인 신법은 고양이의 움직임을 본떠 만든 모묘법(摹猫法)이다.
둘 다 살막의 독문무공. 그렇다는 것은 최소 살막과 관계가 있거나 살막이라는 뜻.
만약 살막이라고 가정한다면 호위를 다섯 놈이나 데리고 다닐 만큼 높은 위치에 있다는 뜻이다.
“최소 대살주(大殺主)라는 뜻이구만. 저 어린놈이 말이야.”
지금부터 하심곡에 대해서 아는 놈을 찾아야 할 판이었는데, 이거 호박 놈이 발 앞에 굴러왔네?
자, 이렇게 되면.
“황시-인!”
진무는 주위의 시선이 모조리 쏠릴 정도로 큰 소리로 외쳤다.
누가 들어도 상관없다.
황신이라는 이름 따위 누가 알까? 그저 반가운 친구를 만났다고 생각하거나 그냥 미친놈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리고 같은 공간에 있는 이상 황신이 못 들을 리도 없다.
이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
기다리기만…….
기다리…….
이 새끼, 왜 안 와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