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6
26화
‘젠장!’
격중당하는 순간 몸을 비틀어 충격을 줄였음에도 장력에 당한 고통이 상당했다.
팔뼈가 아스라지는 것만 같았다.
쐐애액!
그런데 뒤를 이어 대기를 꿰뚫는 엄청난 파공음.
망할. 이렇게 집요할 줄이야.
진무는 비룡번신(飛龍飜身)의 수법으로 허공에서 몸을 비틀며 뒤쪽을 향해 검을 횡으로 그었다.
따아아앙!
강렬한 충격과 함께 검이 터져 버렸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진무는 떨어지는 속도를 더해 땅바닥에 처박혔다.
퍼억! 데구르르.
“쿨럭, 우웩!”
혹시나 공격이 더 있을지 몰라 바닥을 굴러 피한 진무는 몸을 일으키자마자 한 사발에 가까운 검은 피를 토해 내었다.
“크으…….”
두 손을 땅에 짚고 있음에도 천지가 빙글빙글 도는 듯 어지러웠다.
빌어먹을 노인네.
당장이라도 돌아가 노인의 면상 가득 잡힌 주름을 모조리 펴 버리고 싶었지만.
‘젠장, 고작 장력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지. 하지만 다시 만나면…… 반드시!’
진무가 이를 박박 갈며 다짐을 하는데, 다행히 상처 없이 도망쳤던 청상과 청우가 급히 다가왔다.
“사숙! 괜찮으십니까?”
“크으…… 괜찮으니까 튀어. 그 노인네 또 무슨 짓을…….”
진무가 둘을 채근하는 순간.
우지끈! 콰드득! 콰쾅!
주루가 통째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
노인은?
콰드드드.
거센 먼지와 함께 건물 전체가 폭삭 내려앉았다.
날카로운 눈으로 먼지 자욱한 건물의 잔해를 살폈지만, 사람의 형체는 보이지 않았다.
설마? 깔려 죽……었을 리가 없지. 그 괴물 같은 노인네가.
분명 도망쳤을 것이다.
건물을 무너뜨린 것도 노인이 한 짓이 틀림없을 터였다.
근데 왜 사라졌지?
부딪쳐 본 노인의 힘이라면 곧장 나와서 자신을 죽일 수도 있을 정도였는데.
“휴우…….”
어쨌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 진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
거지 같은 노인네.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일단 서둘러 피해서 몸부터 회복한 다음에.
“금적산. 이 개자식이 감히 나를 죽이려고.”
모든 습격의 원흉은 금적산이었다.
하는 짓이 귀엽고 어설퍼서 지켜봤다가 골로 갈 뻔했다.
“청우, 청상!”
진무가 자신의 옆에 있는 둘에게 부축을 부탁하려고 부르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주먹을 움켜쥐고 자세를 잡는 청우, 검을 꺼내 주위를 노려보고 있는 청상.
어째……서?
“하! 이것들 보게. 살아 있잖아?”
멀리서 들려오는 걸쭉한 목소리와 함께 흐릿해졌던 시야가 선명해지고,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십 명의 무인들.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장비 수염을 하고 팔짱을 낀 거한.
뭐야, 이건 또?
“멍청한 단강칠괴(丹江七怪) 녀석들. 고작 무당의 어린 도사 셋을 못 잡다니. 보아하니 모두 당해서 무너진 건물에 깔려 죽었나?”
거한이 건물의 잔해를 보며 비웃고 있었다.
그러니까 넌 또 누구냐고!
“여하튼 다행이군. 팔룡이가 실패해서 청부금을 돌려줘야 하나 했는데. 이걸로 우가장에 추가금을 좀 더 뜯어도 되겠어.”
그런 중요한 정보를 막 늘어놔도 되는 거냐?
어쨌든 팔룡이는 익숙한데, 우가장? 거긴 또 어디냐?
혼잣말을 너무도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거한의 모습에 진무가 눈살을 찌푸렸다.
염병, 돌겠네.
산 넘어 산이라더니. 하필이면 몸 상태가 이런데 수십 명이나 되다니.
금적산 이 개잡놈의 자식. 살아 나가기만 하면 아주 찢어 죽일 테다.
하지만 복수는 복수고 일단은,
“네놈은 뭐냐?”
진무가 천천히 일어나 거한을 향해 물었다.
“뭐? 네놈? 이런 싸가지 없는 도사 새끼를 봤나. 어린놈의 새끼가 어디 어른한테.”
“닥치고. 내가 지금 기분이 몹시 엿 같거든? 그니까 너 누구냐고, 미친 놈아.”
“허!”
도사인 진무의 걸쭉한 욕설에 거한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살면서 도사에게, 그것도 약관도 안 된 도사에게 욕을 들어 본 것은 처음이었다.
“도사 놈이 실성을 했나? 이 단강에서 나 공사척에게 그따위 욕을 하다니, 미치지 않고서야.”
공사척?
다행히 들어 본 적은 없는 놈이다. 그런데 느껴지는 기세가 보통은 아니었다.
적어도 현기 이상.
그 정도라면 웬만한 가문의 잘나가는 후기지수요. 대문파의 일대제자 중에서도 수위에 들어가는 수준이다.
단강구에 뭔 꿀이라도 발라 놓은 건가, 무뢰배 두목 따위가 뭐 이리 강해?
원래의 몸 상태라면 뼈와 살을 친절하게 발라 버릴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위험했다.
하지만 자고로 승부라는 건 실력으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지.
일단은 허세.
“야!”
“야아?”
“공사척이고 공사판이고 관심 없으니까 꺼져라. 그럼 봐줄게. 좋은 기회잖냐? 안 그래?”
진무의 말에 거한, 공사척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웃었다.
“허 참, 거 웃긴 도사 새낄세. 너 내 이름 모르냐?”
“내가 염병, 너 같은 떨거지 놈 이름을 알겠냐?”
당연히 모르지.
아무리 상대가 현기급의 고수라 해도, 그리고 사패천의 주인이었던 진무라고 해도 전국구도 아닌 지역구 뒷골목 무뢰배 두목 따위를 알 리가 있나.
그래도 신중해야 했다.
지금의 몸 상태로는 공사척을 이기지 못한다.
단 한 번의 기회.
최대한 놈을 도발해 틈을 만들어야 했다.
“야, 나 공사척이야. 공사척.”
“하아, 힘 빠지네, 진짜. 야, 됐다. 그냥 덤벼. 내상 좀 입었기로서니 너 따위 뒷골목 불량배한테 질까?”
“뭐? 하하핫! 이런 정신머리 없는 새끼를 봤나.”
공사척이 팔짱을 풀고 수하들을 돌아보며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 순간의 틈을 진무는 놓치지 않았다.
파학!
언제 움직인 것인지 진무가 빠르게 거리를 좁혀 와 공사척의 목 어림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허헉!”
기습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공사척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검극이 공사척의 목덜미 앞으로 지나가면서 가벼운 자상을 만들고 피를 튀어 올렸다.
아, 짧았다.
목을 따 버렸어야 했는데.
놈을 죽이는 데 실패했으니 이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천금 같은 기회를 놓쳐 버린 진무는 공사척을 노려보며 아쉬운 듯이 호흡을 골랐다.
평소라면 죽이고도 남았다.
하지만 지금의 몸 상태로는 그것이 한계였다.
단 한 번의 움직임이었는데도 핏물이 올라올 것처럼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갑자기 기습을 해? 뭐 이런 황당한 도사 새끼가 있어?”
공사척이 제 목을 잡고 흉신악살처럼 얼굴을 구기며 박도(朴刀)를 뽑았다.
그리곤, 눈을 치켜뜨며 곧장 진무를 향해 쏘아지듯 달려들었다.
깡! 까강!
박도와 검이 부딪치며 허공에 불꽃을 그려 내었다.
‘크윽. 젠장, 뭔 놈의 힘이!’
예상했던 대로 공사척의 무공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몰아쳐 오는 그 힘이 엄청났다.
박도는 그 무게와 크기 때문에 양손으로 드는 경우가 많아 쌍수대(雙手帶)라 불린다.
그럼에도 공사척은 그걸 마치 부지깽이처럼 한 손으로 들고 휘둘렀다.
더욱이 그 속도란.
망할, 몸 상태만 멀쩡했어도…….
비록 내공의 차이를 초식의 활용도로 메꾸고 있었으나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 틀림없었다.
부딪힐 때마다 목구멍으로 핏물이 솟구치는 것을 겨우 참고 있었다.
따당!
후려쳐진 박도에 쭉 하고 밀려 버린 진무가 어금니를 힘껏 깨물었다.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진무의 뇌가 미친 듯이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힘이 없을 때 가장 중요한 건 잔대가리를 얼마나 굴리냐였다.
하지만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진무의 눈에 서서히 초조함이 어리기 시작할 때.
아!
그 순간 자신을 이 꼴로 만든 노인의 말이 떠올랐다.
잠깐, 사악한 놈들이라 했던 건 공사척 패거리가 맞는 것 같은데.
제갈세가라고 하지 않았었나?
그 정도 능력을 가진 노인이 허언할 리 없었고, 할 이유도 없었다.
어쩌면 자신을 죽이지 않고 물러난 것도 제갈세가 때문인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하면 어디냐?
분명 어딘가에서 보고 있다는 뜻인데.
진무는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찾아야만 했다.
아무리 중원의 무가가 이해관계에 치중된 곳이라 해도 뒷골목 무뢰배들과 손을 잡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놈, 실력은 제법이다만 그 정도로는 어림없다.”
갑자기 공사척의 박도에서 푸르스름한 기운이 어리더니 반 장에 가까운 길이로 늘어났다.
도기(刀氣).
놈이 도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상 시간은 더욱 촉박해졌다.
젠장, 미리 청상에게 검기를 사용하는 방법이라도 가르쳐 둘걸.
후회막급한 일이었지만, 그런 걸 따지고 있을 틈도 없었다.
공사척이 다가오는 사이 진무는 계속해서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제갈세가의 모습을 찾았다.
그리고 시선이 어느 한 곳을 스치는 순간, 진무의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무당의 어린 도사 놈. 네놈들을 죽이고…….”
땅!
순간 진무가 공사척의 박도를 흘리지 않고 때려 내며 뒤로 물러났다.
“후우, 놀고 있네, 병신.”
“…….”
위기에 몰리더니 미치기라도 한 것일까?
방금까지 긴장감에 잔뜩 굳은 표정을 하고 있던 진무가 갑자기 너무도 여유로워졌다.
아예 검까지 집어넣는 모습.
“어이, 공사척이.”
“어이 공사척이? 이 자식이 죽을…….”
“닥쳐, 머저리 새끼야.”
진무의 달라진 반응에 공사척이 점점 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놈이 진짜 실성을 했나?”
누가 봐도 그랬다.
그런데 진무가 히죽 웃었다.
허세가 실패했으니 남은 것은 주변에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적이든 아군이든 닥치는 대로 이용하는 것뿐.
“안 느껴지냐? 아가리 여물고 주변 좀 봐.”
“뭐?”
진무의 말에 공사척이 눈을 찡그리며 주변을 훑었다.
그리고,
“어?”
공사척의 눈에 보인 것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청삼을 입은 학사들이었다.
‘뭐야? 제갈근? 그리고 저 모습은 청화……대? 이런 빌어먹을, 청화대가 여긴 웬일이야?’
공사척의 눈동자에 당황이 스치는 것을 진무는 놓치지 않았다.
“이제 이해했냐?”
“…….”
“등신. 내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곳에 있을 만큼 멍청해 보였냐?”
진무의 말에 공사척의 얼굴이 와장창 일그러졌다.
단강구 최강의 세력이라고 불리는 제갈세가였다.
그들은 정무맹의 한 축이었다.
비록 근래 들어 쇠락해졌다고 하지만 무당 역시 정무맹 소속이었다.
아무리 호북성의 이권과 패권을 놓고 다툰다 해도 같은 정무맹 소속인 제갈세가가 무당파의 도사들이 사파에 당하는 것을 두고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적어도 공사척은 그렇게 생각했다.
‘젠장. 놈이 제갈세가에 도움을 요청했을 줄이야.’
시기적절하게 함께하고 있는 제갈세가의 모습에 공사척은 자연스럽게 오해를 했고,
잔머리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진무가 멀리 청화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하마터면 정말로 죽을 뻔했잖아. 아, 내상만 아니었어도.”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제갈근을 향해 친근하게 외치는 진무로 인해 공사척은 더욱 갈등했다.
어찌해야 하는가?
딱 봐도 진무와 제갈가가 친해 보인다.
강행해야 하는가?
눈앞에 있는 것은 단강 제갈분가에서 최강으로 꼽히는 청화대의 무인들이었다.
숫자는 끌고 온 수하들과 엇비슷하지만,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제갈세가의 청화대라면 대부분이 충검의 경지를 넘었을 것이고, 일부는 현기 초입에 이른 실력이다.
공사척 하나만으로는 상대가 되지 못함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도 없었다.
무당의 제자를 노렸다.
그것만으로도 무당에 평생 쫓겨 다닐 일이었다.
‘망할, 어찌해야 하지?’
공사척이 고민하는 사이 진무가 음흉하게 웃으며 청상에게 전음을 보냈다.
눈치 없는 청우에게 말해 봐야 긁어 부스럼일 뿐이었다.
[청상.] [예, 사숙.] [튀자.] [예? 안 싸우고요?] [싸우긴 뭘 싸워.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은 놈인데.]제갈세가는 돕지 않을 것이다.
진무는 일전에 방천에서 만난 제갈세가의 인물들을 떠올렸다.
진무는 그들에게 굴욕감을 주었다. 꽁한 성격의 먹물들이 잊을 리가 없었다.
정황상 아마도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돕고자 했다면 공사척이 나타나는 순간 끼어들었겠지.
하지만 싸워 주진 않아도 도망치는 데 충분히 이용할 수는 있었다.
감시해 준 것이 어찌나 다행인지.
“자 그럼, 뒤를 부탁할게.”
진무는 물러났고, 공사척은 이를 갈며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