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60
260화
타는 듯한 긴장감이 사내의 목울대를 쉼 없이 움직이게 했다.
비록 마적들에게 하심곡에 대한 소문이 나돌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곳을 살막과 연관 짓지 않았고, 발견하지도 못했다.
눈 앞의 사내.
스스로를 사패천주라고 말하며 하심곡을 살막이라 단정 짓는 자.
살막의 독문무공을 알아보기까지 했다.
살막이 중원 무림과 교류를 단절한 채 황하를 넘어 북쪽에 터를 잡은 지 삼 년.
선자불래, 내자불선.
선한 자는 오지 않고, 찾아온 자는 선하지 않은 법이다.
살인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필연적인 것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주저함이 살막을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는 일이니까.
“뭐냐, 그 눈빛?”
“…….”
“비밀 같지도 않은 비밀을 들켰으니 죽여서라도 입을 막아야겠다, 뭐 이딴 느낌인데?”
“애석하군요. 그리할 수밖에 없어서.”
사내가 앉은 채로 상체를 슬쩍 앞으로 숙인다. 언제라도 쏘아져 나갈 수 있도록 전신에 긴장을 가하는 자세.
그 모습을 쳐다보던 진무가 빙긋이 웃는다.
“그럼 해 봐.”
“……?”
“확인시켜 줄게.”
너무나 여유롭게 웃는 모습. 조금 전 자신의 살기를 지워 버렸던 무지막지한 기운 따윈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지만, 사내의 긴장감과 경계심은 늘어만 갔다.
그것을 바라보는 진무는 흐뭇하기만 했다.
좋은 자세다.
살수는 언제나 생과 사의 경계에 있는 자들, 작은 실수 하나 놓쳐서는 안 되며, 어린아이라도 소홀하게 대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선 무척이나 훈련이 잘된 녀석이다.
더욱이 자신을 상대하는 와중에 황신까지 경계하지 않는가. 수하가 다섯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쟤는 신경 쓰지 마. 나서지 않을 거야. 날 믿거든.”
“…….”
“근데 혼자 할 생각이야? 수하들이랑 같이 해도 되는데?”
“저들도 저를 믿습니다.”
어쭈, 요 새끼 봐라.
그의 발칙한 대답에 진무가 무척이나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 살막의 대살주라면 그 정도 기개는 있어야지. 어디 한번 해 봐라.
그리 말하는 것처럼 진무가 앉은 채로 양팔을 활짝 벌리는 것과 동시에 사내의 모습이 흐릿해진다.
진무는 앉은 채로 고개만 옆으로 꺾었다.
피윳!
날카롭게 세워졌던 손끝이 진무의 목이 있던 자리를 관통하고, 진무는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사내의 형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휘익, 팍.
움켜쥔 손안에 잡힌 것이라고는 공기 반에 바람 스치는 소리 반이라.
더불어 그때까지도 흐릿하게 남아 있던 잔상이 완전히 흩어진 것도 모자라 기척까지 사라지자 진무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기척을 이 정도로 완벽하게 감출 수 있다고? 이건 뭐 아예 없어진 느낌인데?
이거 두 눈 빤히 뜨고 코 베일 상황이다.
순간 뒷덜미에 섬뜩함이 느껴져 왔다. 와중에 빠르다. 고개만 꺾어서는 턱도 없다.
파학! 스걱.
“…….”
앉은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몸을 움직여 측면으로 피해 버린 진무가 길게 찢어져 나풀거리는 자신의 옷자락을 가만히 바라보다 원래 자신이 앉아 있던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붉은빛이 도는 단도를 곧게 뻗은 채 어정쩡한 자세로 선 사내.
그 역시 진무가 자신의 일격을 피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듯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호오? 이것 봐라? 무흔삭(無痕削)도 가지고 있었어? 어쩐지 가까이 올 때까지 예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더라니.”
“……그걸 어떻게?”
진무의 말에 사내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무공도 모자라서 살막의 기보까지 알아본다고? 그걸 본 사람 중 살아 있는 자가 없는데?
“그저 대살주 중에 한 놈인가 싶었는데…….”
“……?”
“너, 소가냐?”
“……!”
사내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더욱이 이번에는 숨어 있는 다섯 놈들조차 크게 놀란 것인지 대기가 미세하게 떨려 오는 것이 느껴진다.
이쯤 되면 대답하지 않아도 알겠다. 티가 너무 나니까.
뭐, 그러지 않고서야 소약벽이 무흔삭을 줬을 리도 없고.
“맞네, 맞아. 하, 그 꼬맹이가 이렇게 커 버렸다니.”
이제야 기억이 났다.
살막주 소약벽이 언제나 자랑했던 귀여운 손주 녀석. 살막을 잇게 하려 자신의 성씨까지 내준 녀석이나 출중한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마음이 여려서 살수로서는 어울리지 않아 걱정이라 했던.
“이름이…… 아마 소동보였지?”
“……!”
사내, 소동보는 이제 넋이 반쯤 나가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아는 자가 있다고? 대체 이자는?
하지만 진무는 그의 황망함 따위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좋아, 아주 좋아. 살막의 후계자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과연 실력을 자신할 만해. 하마터면 소약벽을 만나기도 전에 저승차사 놈을 다시 만날 뻔했어.”
“…….”
“근데 너 그거 아냐?”
“……?”
“이 옷, 내가 꽤 마음에 들어 하는 옷이야. 좀 비싸기도 하고.”
진무의 입가에 감돈 미소가 짙어진다.
“그럼 조금만 더 힘을 써 주마.”
말이 끝남과 동시에 거대한 새처럼 덮쳐 오는 진무를 피해 소동보는 재빨리 모습을 숨겼…….
“……!”
순간 소동보는 신체 구조를 무시해 버린 듯한 움직임을 만들어 내야 했다.
진무의 속도가 자신의 예상을 초월한 것이다.
파아악!
짐승의 발톱처럼 날카롭게 세워졌던 진무의 손이 소동보의 귀밑머리를 스치며 찢어 놓았고.
가까스로 피해 내었으나 중심을 잃은 소동보가 땅바닥을 굴렀다가 튕기듯 일어나 물러난다.
“큭…….”
소동보가 아랫부분이 찢긴 제 귀를 잡고 인상을 찡그린다.
“…….”
진무는 허공을 움켜쥔 자신의 손과 그를 차례로 응시했다.
소동보가 순간적으로 사용한 신법은 환영미리보(幻影迷離步). 한 걸음에 여러 개의 잔상을 만들어 낼 정도로 빠른 살막의 보법이었다.
여기까지는 익히 예상한 바였다. 그러나 자신이 사용한 것은 묵룡혼원공의 흑룡난투. 죽일 생각은 아니었으되 모가지를 움켜쥐는 정도는 되었어야 했건만, 고작 귀를 살짝 찢어 놓는 것으로 그쳤다?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해도 살수 하나 잡기는 충분한 속도였는데……. 피한다 이거지. 그것도 두 번이나.
“……허! 이거 참.”
진무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무림에서 고수라 불리는 이들은 대부분 노인들이다. 오랜 세월의 흐름과 그 성취가 정비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살지도 않은 것들이.
진무의 시선이 황신을 향한다.
초감각적인 청각 외에도 열아홉의 어린 나이에 의기의 무인과 맞붙어 이길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녀석.
앞서 만났던 청상, 운암, 당세령, 제갈산산 등과 같은 천재들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는 녀석이다.
사실 필요한 만큼 써먹어야 하기도 하고, 정파 놈들보다 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가르치는 중이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살막주의 후계자, 소동보.
이 녀석 역시 많이 잡아야 약관을 갓 넘겼을 터.
그런데 그가 지금 자신의 손을 피했다.
도대체 이놈들이 태어날 시기에 뭔 일이 있었단 말인가? 천재들이 십 년에 걸쳐서 연달아 태어나기라도 한 건가? 아니면 복중일 때 어미들이 한자리에 모여 사이좋게 영초라도 나눠 먹은 걸까?
아주 천재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니네.
진무의 미소가 변한다. 좀 더 음산하고, 진득한 느낌으로.
“이거 사과해야겠는데?”
“…….”
뭘 사과한다고?
진무의 눈빛에 소동보가 의아함을 품는다.
“진심을 다해 주마. 꼬맹아.”
“……!”
순간 소동보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스으으으.
갑자기 터질 듯 뿜어져 나오는 기세와 더불어 흑요석처럼 새까맣게 반질거리는 눈동자와 몸 주위로 회오리처럼 휘몰아치는 검은 기운.
“이건! 서, 설마?”
* * *
놀란 것은 소동보뿐만이 아니었다.
몸을 숨기고 둘의 싸움을 지켜보던 다섯 명의 은신자들이 동시에 경탄성과 같은 고함을 내지른다.
“묵룡기!”
사패천주 어쩌고 하길래 혹시나 하고 생각했는데, 설마 정말 혁련무강의 전인이었다고?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은신자들이 일제히 몸을 날린다.
하지만 그들은 엄습하는 스산한 기세에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싹퉁머리 없는 놈의 새끼들이 어디다 그 염병할 칼을 들이밀어?”
“……!”
곱상한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귀에 찰떡처럼 달라붙는 욕설.
이제까지 잠자코 기다리기만 하던 황신이 두 자루의 비수를 들고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은신자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 모습에 진무를 막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던 은신자들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진다.
위치가 좋지 못하다.
황신이 알고 그리했는지는 모르지만 무척이나 절묘한 위치를 점하고 그들을 막은 것이다.
더욱이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세가 심상치 않은 것으로 보아 일반적인 무인이 아니다.
지운 듯 지우지 않은 듯이 갈무리된 기세가 당장이라도 벨 듯한 예리함을 품고 있다.
살수는 살수를 알아보는 법.
은신자들은 대번에 황신이 자신들과 같은 종류의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이 빠르게 눈빛을 교환하는 모습에 황신이 한숨을 내쉰다.
필시 몇 놈은 자신을 막고 몇 놈은 제 주인을 보호하러 가려는 생각이겠지.
아서라, 얘들아.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지옥의 경계선이야. 넘어가면 죽는 걸로 안 끝나.
참 말이 이상하지?
원래는 죽으면 끝인데, 그게…… 으음, 아무튼 경험해 보면 알게 될 거야.
그러니까 니들은 나한테 감사해야 해.
어차피 니들 주인 놈 안 죽어. 저 양반 지금 죽일 생각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그냥 좀 맞는 게 다야. 그러니까 잠자코 물러나 있어라.
하지만 은신자들은 황신의 마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소막주님을 보호해라!”
둘은 황신을 막고, 셋은 소동보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이런 미친놈들아! 안 된다고!”
황신은 울분을 담아 그들을 걱정하듯 외쳤다.
* * *
츄아악!
소동보의 귓가에 대기의 마찰음이 들리고, 눈동자가 순식간에 다가오는 진무의 모습으로 가득 찬다.
멈춰 있을 때는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하더니 발을 떼자 장마 뒤 불어난 급류처럼 거칠고 쾌속한 움직임.
순식간에 파고드는 일보에 간격이 좁혀지고, 소름 끼치는 칙칙함을 머금은 두 개의 눈동자가 다가들었다.
“……!”
은신술을 펼칠 기회조차 놓쳐 버린 소동보가 삽시간에 코앞까지 다가온 검은 기운을 피해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슷, 스스슷!
그의 손에 들린 무흔삭이 빠르게 종횡을 반복하며 검은 기운을 잘라 낸다.
하지만 흩어진 듯 보였던 검은 기운이 칼에 베인 물처럼 이내 제 모습을 찾으며 소동보를 집어삼킨다.
그리고 검은 기운 안쪽에서 엄청난 속도로 뻗어 오는 일장.
소동보는 피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그 순간 머리에 떠오른 것은 동귀어진(同歸於盡).
행동은 생각과 동시에 이어졌고, 피할 생각을 완전히 버린 소동보가 진무를 향해 무흔삭을 곧게 찔러 넣었다.
취릿!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변화.
“……!”
가슴까지 다가왔던 진무의 손이 방향을 바꾼다.
까드득!
검게 물든 손이 무흔삭을 말아 쥐며 당기자 소동보의 중심이 흐트러지고, 그와 동시에 진무의 나머지 손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터엉!
옆구리를 깊숙하게 강타한 일장.
“크으윽!”
진무의 손에 무흔삭을 빼앗겨 버린 소동보가 옆으로 몸을 꺾으며 길게 미끌린다.
“소막주!”
은신자 하나가 진무의 앞을 가로막고, 다른 둘이 소동보를 부축했다.
하지만 진무는 더 이상 공격을 하지 않고 우뚝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엄살 부리기는…….”
“…….”
“황신!”
진무의 외침에 은신자 둘을 매섭게 몰아붙이던 황신이 급히 몸을 물려 진무 옆으로 다가온다.
딱!
“아극!”
“나서지 말랬잖아.”
가벼운 꿀밤에 황신이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궁시렁거렸다.
기껏 호위로서의 역할 좀 해 보려고 했더니…….
“어이, 소동보.”
“…….”
진무의 부름에 수하들의 부축을 뿌리친 소동보가 굳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끝까지 싸워 보겠다면 말릴 생각은 없어.”
“…….”
빙글거리며 웃는 진무의 모습을 소동보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진무의 손에 빼앗긴 무흔삭.
그리고 그는 진심을 다한다 했으면서도 무언가 봐주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죽일 수 있을까?
수하 다섯과 협공을 한다고 해도 자신이 들지 않았다.
“후우……. 물러나라.”
“……소막주님!”
“물러나. 일단은 들어 봐야겠다.”
“…….”
소동보의 말에 은신자들이 진무를 경계하면서도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에 황신이 입을 댓 발이나 뽑아내며 진무를 쳐다본다.
“뭐? 왜?”
“…….”
아니, 저기요.
“안 때리……시나요?”
“…….”
황신의 뜬금없는 말에 진무가 머리를 쥐어박았다.
“뭔 개소리야? 때리긴 왜 때려? 쟤가 적이냐?”
“……아니, 그래도 천주님의 목숨을 노린.”
“저깟 놈들이 어떻게 내 목숨을 노려?”
그야 그렇지만…….
저는 언제 적이었나요?
황신이 불만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진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살막주가 얼마나 아끼는 녀석인데…….”
아, 그렇구나.
살막주가 아끼는 녀석이구나. 그게 문제였구나.
씨발, 뒷배 없는 놈 서러워서 살겠나.
아니 잠깐, 그렇게 치면 나도 우리 단주님 새낀데.
아끼는 것까진 모르겠지만…….
황신은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표정으로 소동보와 함께 자리를 잡고 앉는 진무를 응시했다.
왜 사람 가리는데요, 이 망할 천주 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