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65
265화
애초에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었다.
물론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끝났다거나 어른과 아이처럼 엄청난 격차를 보이며 빠르게 찍어 누른 것은 아니었다.
광도는 급급했고 진무는 여유로웠을 뿐.
“헉, 헉…….”
숨이 거칠어진 광도가 잠시 물러난 틈에 진무를 매섭게 노려본다.
앞서 진법을 힘으로 뚫고 들어왔기에 절반에 달하는 내공을 소모해 버린 광도는 진무의 검식을 막아 내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뭐야? 포기하는 거냐?”
빙글거리며 웃는 진무.
손에는 시퍼런 강기로 만들어진 기검을 들고 있다.
문제는 그의 머리 위에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떠 있는 한 자루의 검.
기검도 모자라서 이기어검이라고? 뭐 이런 놈이 다 있단 말인가?
그런 놈은 무당지검 하나인 줄로만 알았는데…….
설마 사파에도 있다고?
그러고 보니 비슷하게 생긴 것도 같지만, 무당지검이 살막과 함께 있다는 자체가 말이 되지 않으니.
“…….”
문득 바라본 자신과 진무의 상태.
잘려 나간 옷자락은 둘째 치고 온몸에 상처가 가득한데 눈앞의 망할 놈에겐 생채기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와중에 저 싸가지 없는 말투까지 속을 있는 대로 긁어 놓으니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뭐 하냐? 시간도 별로 없는데.”
“…….”
광도는 빙글거리며 웃는 진무의 낯짝을 짓이겨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싸워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놈은 자신보다 강하다.
정면으로 붙어서는 승산이 없다.
이기어검.
검의 마지막 깨달음이라 불릴 만큼 뛰어난 무공이기는 하지만 싸움을 오래 끌 수는 없으리라.
내공 소모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몸에서 반 장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수어검의 경지.
심지어 기검까지 사용하고 있으니 얼마 가지 않아서 내공이 마를 것이다. 아니, 이미 계속해서 기검의 순도가 줄어들고 있다.
상황을 봐서는 아직 놈은 자신의 변화를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 일단 버틴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도망치고 또 도망쳐서 기회를 만든다. 놈의 내력이 바닥을 드러내는 순간을 노려야 한다.
뒤편에 살막이 기다리고 있기는 하지만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일단은 놈을 죽이는 것에만 최선을 다한다.
“개새끼, 언제까지 그리 기세등등할 수 있는지 두고 보겠다!”
결정을 내린 광도가 참마도를 사선으로 내려 잡고 혈광이 스민 눈을 번뜩인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 재미있지.”
진무가 피식 웃으며 내뱉는 순간 광도의 신형이 폭사하듯이 쏘아져 들어왔다.
따아아앙!
거친 쇳소리와 함께 다시 둘의 공방이 시작되었다.
“…….”
그런데 광도의 참마도에 실린 기운이 갑자기 변했다.
미친 멧돼지 새끼처럼 휘둘러 오던 도격에서 잡다한 변화가 사라졌다. 딱 필요한 만큼만 실린 내력과 짧고 간결해진 초식.
뭐지?
진무는 참마도를 튕겨 내며 눈을 빛냈다.
혹시?
따아앙! 슈아악!
참마도와 함께 광도를 밀어 버린 진무의 기검이 이전보다 더욱 짙어진 푸른빛으로 횡격을 가하자 반월형의 강기가 공간을 가르며 날아간다.
급히 허리를 젖혀 강기를 피한 광도가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머금는다.
콰아앙!
절벽의 벽면에 닿은 강기가 폭발음을 남기는 사이 광도가 또다시 진무를 향해 쏘아져 들어왔다.
“…….”
같은 방법의 도격. 이제 대강 감이 잡힌다.
이 새끼, 이제야 뭘 노리는지 알겠네.
자신의 내공이 소진될 때까지 위협적인 도격으로 몰아붙이는 척하면서 시간을 벌고 있다. 우군을 기다림과 동시에 힘을 빼려는 것이다.
거, 머리도 나빠 보이는 새끼가 잔대가리를 굴리네.
뭐, 좋다. 어디 한번 해 봐라. 잠시 네놈 장단에 놀아나 주마.
대신 니들이 뭘 원하는지는 좀 알아야겠다.
뭐 하는 새끼인지, 어째서 살막을 노리는지.
파악!
갑자기 뒤로 훌쩍 물러난 진무가 별안간 내공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드득, 드드드득!
내디딘 두 발에서 푸른 선기가 회오리처럼 솟구쳐 올라 진무의 몸 전체를 감싸자 기운의 여파에 반응한 주위의 대지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쿠오오오.
강의 경지에 오른 그의 기운에 대기가 견디지 못하고 괴성을 질러 대었다.
* * *
“천주님!”
갑자기 변한 진무의 모습에 뒤에서 지켜보고만 있던 소약벽이 주먹을 꽉 쥐고 소리쳐 부른다.
어째서?
지금의 모습은 그동안 자신이 봐 왔던 천주의 모습과는 달랐다.
천주는 절대로 내공을 허비하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딱 필요한 만큼의 내공을 효율적으로 사용했다.
그러고 보니 어째서 묵룡혼원공이 아니라 푸른빛을 띠는 선기인 것인가?
상반된 두 가지 무공을 익혔다면 내력의 충돌이 일어날 터인데 어째서 아무렇지도 않지?
무엇보다도 저렇게 마구잡이로 강기를 사용했다가는 순식간에 내공이 바닥나게 될 것인데?
무언가 잘못된 건 아닐까 걱정된 마음에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그녀의 어깨를 황신이 툭툭 쳤다.
“……?”
해맑게 웃는 황신.
“괜찮습니다. 저, 개천…… 흠흠, 위대하신 천주님께서 다 생각이 있으실 겁니다.”
“……?”
개천…… 그건 무슨 다른 무공인가?
진무에게 양의심공에 대해서 듣지 못했던 소약벽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황신은 진무의 노림수를 알 듯했다.
분명 전의 그 방법을 쓰려는 것이다. 그때도 무당의 무공으로 상대의 혼을 쏙 빼놓고 마지막에 묵룡을 불러내어 사방을 찢어 놓았지.
갑자기 그때의 살벌한 상황이 떠오르자 온몸에 오한이 돋아 오르는 것만 같았다.
* * *
슈아악! 콰앙! 콰쾅!
사방이 강기로 채워졌다.
검격을 휘두를 때마다 절벽이 무너지고, 발에 짓밟힌 대지가 괴성을 지르며 뒤틀린다.
오직 파괴라는 한 가지의 목표만 가진 것처럼 날뛰어 대는 진무의 모습에 광도는 섬뜩함을 느끼며 연신 몸을 뒤로 물려 도망쳐야 했다.
“망할!”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단 말인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을까?
피하는 것만 해도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다.
언젠가부터는 비껴 내는 것조차 버거워 내공을 경공술을 쓰는 것에 모조리 때려 박아야 했다.
진무의 강함은 광도의 예상을 훨씬 더 초월하고 있었다.
도무지 내력이 마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눈앞의 괴물은 일궁의 주인 송여방과 비슷…… 아니, 더 강할지도 모른다.
저 어린놈이 궁을 이끌어 가는 다섯 명 중 하나와 동급이거나 더 강하다는 소리다.
휘릭. 탁.
한순간 진무가 기검을 흩어 버리고 허공에 떠 있던 일휘를 잡았다.
꾸우.
내디딘 발에 무게가 실리며 지면 깊숙하게 박혀 드는 것과 동시에 진무의 손이 빠르게 당겨진다.
무당의 검공 중 진무가 가장 좋아하는 검공, 구혼탈백.
원래는 그 뜻도 다르고 많은 초식이 있는 무공이었으나, 진무는 그중 마음에 드는 한 가지 초식을 골라 발검술로 바꿔 버린 참이었다.
오직 자신만의 검공으로.
추아악!
가공할 속도로 검집을 빠져나온 일휘가 언제 호선을 그렸냐 싶게 그 반대편에서 멈춘다.
“……!”
일순간 눈앞에 보이는 세상이 상하로 분리되는 듯 선명하게 경계를 짓는다.
강의 경지를 초월한 자들이 사용하는 응축된 강기의 실, 강사.
세상을 반으로 나누어 놓은 강사가 검의 궤적을 따라 채찍처럼 휘어져 다가온다.
광도는 남은 내공을 모조리 용천혈에 때려 박으며 솟구쳐 올랐다.
몸을 비틀며 강사를 뛰어넘은 광도가 지면에 착지하고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조금만 늦었으면 다리가 잘릴 뻔했다.
“이런 씨발 새끼. 그걸 피하다니… 헉, 헉……. 전생에 쥐새끼였어? 헉, 헉, 더럽게 재빠르네.”
“……!”
거친 숨을 몰아쉬는 진무를 바라보는 광도의 눈에 이채가 어린다.
지쳤다. 가공할 위력을 가진 마지막 공격 때문인가?
그러고 보니 이젠 검을 쥐고 있었다. 아니, 기검과 이기어검을 사용할 내력이 부족해진 것이 분명하다.
더욱이 현저하게 줄어든 기의 폭풍. 검에 덧씌워진 강기의 푸른빛마저 옅어져 있다.
내공이 서서히 바닥을 보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자신의 계략이 먹혔다는 증거다.
광도가 문득 환영진을 슬쩍 바라본다. 미친 듯이 변화하는 진법의 환영,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하긴 내부에서 이만한 충격을 받았으니 버틸 리가 없었다.
이제 됐다. 진이 열리면 마군과 비마대가 들이닥칠 것이고, 자존심은 상하지만 그와 합세하면 이놈을 잡는 것은 물론 살막까지 무너뜨릴 수 있었다.
광도의 눈빛에 희망을 담은 혈광이 어리자 진무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물었다.
“하아, 하아……. 대체 니들 정체가 뭐냐? 어떻게 이렇게 강하지?”
승기를 잡았다 생각한 광도가 속을 더 긁어 놓기 위해 이전과는 달리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크크크, 어린놈. 그리 날뛰더니 여기까지로구나. 오냐, 알려 주마. 나는 일궁의 무인 광도다.”
“……궁?”
휴, 또 니놈들이냐?
진무의 얼굴이 괴상하게 찌푸려졌다.
이 새끼들 정말 지치지도 않네. 대체 언제까지 나를 방해할 셈이지?
“네놈들 설마, 사패천을 노리고 있는 것인가?”
“눈치챘다 해도 이젠 늦었다. 네놈은 살막과 함께 죽을 테니!”
새끼, 입만 살아 가지고.
“그런데 어째서 살막이지?”
“그야 당연히…….”
술술 잘만 말하던 광도가 갑자기 의아함을 느꼈다.
어째서 신문을 당하는 느낌이지?
광도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놈 설마?
“네놈…….”
“…….”
아, 연기하는 걸 눈치챈 거냐? 힘만 센 놈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덜 멍청한가 본데?
“아깝게 됐…….”
“네놈! 나에게 말을 시켜서 회복할 시간을 번 것이구나!”
“…….”
아, 그런 쪽으로 생각한 거야?
천우명보다 멍청한 새끼가 있을 줄이야. 궁 놈들도 고생이 많구나.
뭐, 어쨌거나 더 물어봐야 나올 건 없어 보이고……. 그래도 하나는 알았다.
궁, 그 개새끼들이 사사건건 나를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
뭘 꾸미든지 상관없다. 노리고 있다는 사실 하나면 충분하다.
진무가 슬며시 몸을 세우는 와중에 광도가 더는 기다려 줄 수 없었던지 온 힘을 다해 몸을 날려 왔다.
“죽어라!”
“…….”
광도는 땅바닥을 쓸 듯 낮게 스치고 날며 양손으로 잡은 참마도를 온 힘을 다해 휘둘렀다.
저놈의 허리를 베어 버리기 위해서.
따아아앙!
거친 타격음이 터져…… 응? 타격음?
광도의 눈이 일그러졌다.
분명 저놈의 검은 여전히 반대편에 있는데? 그럼 참마도를 잡은 건? 시커먼 빛을 띠는 강기가 덧씌워진…….
“검은…… 손?”
묵룡혼원공, 흑수.
꽈악.
진무는 구혼탈백을 사용한 뒤 단전이 비는 것과 동시에 묵룡혼원공을 운용했다.
“왜, 놀랐냐?”
“…….”
“병신, 놀아 주니까 좋아서 날뛰기는.”
“……이, 이게 대체.”
분명 내력을 전부 소모한 것처럼 보였는데 어째서 이런 막대한 양의 기운이 느껴지는 거지? 더욱이 이전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저 사악함을 머금은 기운은 뭐란 말인가?
그리고 저 시커멓게 번들거리는 눈동자와…… 웃어?
“준비됐어?”
“……뭐?”
쩌어억!
복부를 향해 거칠게 파고든 주먹에 실린 경력이 오장육부를 지나 척추를 부수고 등 어림을 솟구치게 만든다.
“꺼억!”
살면서 느껴 보지 못한 충격에 광도의 벌어진 입에서 기괴한 신음이 터져 나온다.
슈악!
고통을 이겨 낼 틈도 없이 후려쳐 오는 공격에 곧바로 팔을 교차하여 막았으나 무쇠 같은 강도를 가진 주먹은 방해물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뿌드득, 콰앙!
거대한 망치로 때려 맞은 듯 팔뼈가 으스러지고, 턱 언저리에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전투에 임하며 투사체(鬪士體)를 운용해 온몸의 근육을 유연하게 만들어 버린 진무의 공격은 예측을 불가능하게 했고, 심지어 빨랐다.
빡! 빠박! 빠악!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주먹이 광도의 몸을 누빈다.
광도는 다듬이 위에 놓인 빨랫감처럼 속절없이 몸을 내주었고, 진무의 주먹은 방망이가 되어 옷감의 구김살을 펴듯 그의 살과 뼈를 평평하게, 부드럽게 다졌다.
쾅, 콰쾅!
본능적으로 들어 올렸던 참마도마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주먹에 흉하게 찌그러진 채 바닥에 떨어진다.
방어 자체를 무시하는 박투술, 흑룡난투(黑龍亂鬪)가 일각에 걸쳐 펼쳐진 끝에 광도는 진무의 발과 손에 뼈마디가 부서지다 못해 살이 찢겨 나가고 있었다.
빠각!
후려쳐 올린 주먹에 광도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쳐 오른다.
“…….”
진무의 눈동자가 감정 한 올 품지 않은 채 광도의 몸을 뒤쫓고.
쿠우우.
펼쳐진 그의 손에 강의 기운이 응축된 검은 구체가 몰려든다.
“내 걸 노렸을 때 이 정도 각오는 했겠지.”
콰아아아!
뻗어 낸 손을 따라 구체가 긴 꼬리를 이루며 쏘아졌다.
하늘을 찢어 낸다는 광룡, 천교열(天咬裂).
광도를 집어삼킨 검은 구체가 날카로운 이빨로 화해 그의 몸을 찢어발겼다.
쫘자자작!
귀를 막고 싶을 정도로 소름이 끼치는 소리가 사방을 흔들어 놓았을 때, 광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쏴아아아.
잘게 찢어진 육편과 함께 혈우(血雨)가 화창한 날의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
고요한 침묵.
묵룡을 불러낸 진무의 신위.
두려움과 공포를 넘어 경외마저 느껴지는 그의 모습에 감탄사조차 채 터트리지 못한 살막의 무인들은 그저 멍하니 진무를 쳐다보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