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70
270화
산서의 경계를 지나고 난 뒤부터 지금까지 벌써 네 번째다.
망할 놈이 자비라고는 배운 적이 없는지 정말 매몰차게 밟아 댄다.
이젠 땅바닥이 친숙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금쪽같은 내 새끼를 연발하며 언제나 자신을 감싸 주던 소약벽을 제 어미보다 더 따랐던 소동보였다.
해서 더욱 이해되지 않는다. 자신의 조모는 어째서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하지만 짓밟히는 와중에 비로소 알게 되었다.
조모님은 어쩌면 자신을 예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혈육이라는 굴레 때문에 직접 혼내지 못하고, 절호의 기회를 만나 차도살인지계를 발휘한 것이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자신을 이런 악마 같은 놈들과 함께 보냈단 말인가?
더욱이 최선을 다해 개기면 된다는 말에 개겼을 뿐인데 망할 천주 놈이 ‘신!’이라고 부르기만 하면 황신이라는 어린놈이 득달같이 달려든다.
개 같은 놈들. 내 언젠가는, 언젠가는…….
점차 희미해져 가는 소동보의 의식 속으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주님!”
“……왜?”
“…….”
황신이 말은 하지 않고 정신을 잃어 가는 소동보를 가리켰다.
“하아, 그러게 내가 패는 데도 절차와 법도가 있다고 했잖아. 그냥 무턱대고 때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니까? 정신을 차리게끔 만들어 놔야 아픔이 배가 된다고 몇 번을 말하냐?”
“…….”
황신이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자 진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역시 백문(百聞)이 불여일통(不如一痛)이려나?”
일견이 아니고 일통?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아파 보는 게 낫다고? 그 무슨 고사(古事)의 가르침을 제멋대로 비틀어 놓는 개소리란 말인가?
소동보의 흐릿해진 눈에 진무와 황신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황신에게 다가섬과 동시에 움직이는 진무의 손과 발로 인해 신명 나게 울려 퍼지는 흥겨운 장단의 구타음.
복날 개도 저렇게는 안 맞을 일이다. 그야말로 끝내주게 얻어터지는 황신의 모습에, 차츰 소동보의 정신이 말짱해지고 초점이 돌아오며 귓가가 선명해진다.
퍼억! 쿠억! 콰직! 콱!
거, 소리만 들으면 사자탈이라도 뒤집어쓰고 어울려야 할 것 같네.
“…….”
진무는 때리는 것 하나만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예술적으로 구타를 했다.
황신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뭐라고 해야 할까, 구타라는 형식을 빌린 수준 높은 기예?
등줄기로 소름이 잔뜩 돋아 오른다.
사람을 저렇게 팰 수도 있구나.
내심 그럼에도 정신을 잃지 않고 버티는 황신에게는 존경심마저 생겼다.
그러기를 한참.
“……가, 감사합니다.”
자신과 같은 모양새로 마구 짓밟힌 황신이 힘겹게 몸을 세워 진무를 향해 고개를 숙인다.
그 무지막지한 구타에 버틴 것도 용한 일인데…… 감사? 뭐가?
때려 줘서?
“……다음에 또 부탁드립니다!”
“……?”
저 자식이 미친 건가? 그렇게 처맞아 놓고 다시 때려 달라고 부탁을 해?
“감사는 무슨. 보려고 하지 말고 어떤 소리가 났었는지 기억을 하란 말이야. 너의 청력이면 얼마 안 가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다고.”
“예. 가르침 깊이 새기겠습니다.”
소동보는 도무지 저 미친 소리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처맞고 감사하는 놈이나 처패고 큰 은총이라도 내린 듯한 모습이나.
구타 교육이 끝난 뒤 황신이 다가와 자신의 옆에 꿇어앉고는 속삭인다.
“소동보 씨?”
“…….”
한껏 송곳니를 드러낸 듯한 저 묘한 미소. 기이하게 반짝이는 눈빛.
마치 자신이 당한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시험해 보고 싶어…… 하는 것처럼…….
죽은 척하자. 그래야 산다.
소동보가 힘없이 고개를 꺾으며 눈을 스르륵 감는데.
짜악!
얼굴에 불이 번쩍 일더니 황신이 소동보의 눈꺼풀을 찢어 낼 기세로 확 벌렸다.
“이런 씨이벌 개망둥이 같은 잡놈이 어디서 귀엽게 대가리를 굴리고 뒈진 척이야? 그 염병할 빡대가리 아주 천 리 만 리 굴러가게 해 줘? 니놈 뼈다귀로 관짝을 짜 줄까? 야. 말로 할 때 일어나라. 개병신을 만들어 버리기 전에.”
“…….”
주둥이에 걸레를 처문 어린놈의 새끼.
욕을 할 때면 항상 진무가 듣지 못하게 몰래 귓가에 다가와 은밀하게 속삭이는데, 그 다양하고도 엄청난 욕설에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소동보는 늘 그랬듯 지금도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이전과 같이 환영미리보를 사용하자마자 걸려서 쉬지 않고 짓밟혔다.
희한한 건 이 망할 어린놈의 구타 능력이 기연이라도 만난 것인지 점점 더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더 많이 맞고 있다는 것.
즉, 고통의 시간이 더욱 길어졌다는 것.
설마 맷집이 길러진 것인가?
젠장, 늘라는 무공은 안 늘고 맷집만 늘다니……. 자신은 살수인데…….
“인사!”
“……금스험니다.”
기나긴 구타의 시간이 이제야 끝나는가 싶었는데 이를 악물고 노려보며 대답했다는 이유로 또 맞았다.
황신이 천주님 야식을 준비한다며 사냥감을 잡으러 간 사이 소동보는 한쪽 구석에서 소리 죽여 울었다.
너무 서러웠다.
이제까지 한 번도 맞아 본 적 없이 귀하게 컸는데…….
나이도 어린 새끼에게 꼬박꼬박 형 대접해 가며 개처럼 짓밟히다니.
살막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유 없이 생명을 해하지도 않았고 타인에게 손해를 끼쳐 본 적도 없는 자신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흑흑…….”
혹여 밤 벌레가 들을까 숨죽여 울던 소동보의 어깨에 손이 하나 올려진다.
“헉!”
구타의 여운 때문일까?
소동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흠칫 놀랐다.
“놀라긴.”
“…….”
천주다.
황신이 줘 터지는 걸 목도한 뒤였다.
그나마 황신은 양반이다. 이 새끼는 살아 숨 쉬는 악마가 틀림없었다.
조모님은 무조건 개기라고 했지만…… 너무 놀라서 몸이 경직된 탓인지 입술조차 떨어지지 않는데?
“쯧쯧, 어린 나이에 실력이 좋길래 금세 눈치챌 줄 알았는데…… 아둔하긴.”
“……?”
“왜? 환영미리보를 사용했는데도 매번 걸려서 맞으니 억울하냐?”
“……!”
제 마음을 정확히 아는 듯한 진무의 말에 소동보가 눈을 부릅떴다.
“궁금하지? 어떻게 니 위치를 알고 있는지?”
진무의 말에 소동보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사용한 환영미리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
“문제는 너지.”
“……예?”
“넌 걷는 게 너무 시끄러워. 황신은 네 생각보다 귀가 엄청 밝거든.”
시끄럽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
“더 가벼워야지. 아니, 소리 자체가 사라져야 해. 그리되면 잔영이 수도 없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게 될 것이고, 지면에 깃털 스친 흔적조차도 남지 않을 거야.”
“…….”
진무가 그 말을 하고는 씩 웃었다.
그런데 무게를 싣지 않는다고? 아무리 환영미리보가 한 푼의 무거움도 실리지 않는 고속 이동술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왜? 안 될 것 같아? 하긴, 나도 해 봤는데 안 되더라고.”
괴물인 자기도 못 한다면서 잘도 그런 말을.
“그런데 넌 이미 오랫동안 곁에서 지켜봤잖아. 가능한 사람을…….”
“…….”
야화 소약벽.
“기운의 흐름은 같지만 미세하게 움직임에서 차이가 날 거야. 잘 떠올려 봐, 그녀의 움직임을. 특히 발을 어떻게 움직였는지. 그럼 답이 보일 거다.”
“…….”
순간 소동보의 눈동자가 잘게 떨린다.
미묘한 움직임의 차이……. 거기에 답이 있다는 것인가?
그가 다 알아서 해 줄 것이라던 조모님의 말씀은 이런 의미였나?
개기라는 것은 그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한 것?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잘해 봐, 내가 말해 준 것만 잘 숙지하면 황신에게 이기게 될지도 모르니까.”
진무가 대수롭지 않게 일어나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다.
소동보는 깨닫지 못한 것을 알려 준 그에게 어느새 약간의 호감이 생겼다. 또한, 황신에게 이길 수도 있다는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동보가 제멋대로 열의를 보이며 차근히 자신을 되돌아보는 사이 진무의 마음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굳이 황신이 없을 때 패배의 이유를 가르쳐 준 이유.
소동보의 성취를 높여 주기 위해? 그딴 건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둘의 실력은 비슷하다. 소동보가 매번 처맞고 뻗는 것은 황신의 청각이 너무 뛰어나기 때문에 생긴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 뿐.
말하자면 불완전한 환영미리보를 사용하는 이상 황신은 소동보의 천적이나 다름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왜냐.
일방적이기만 하면 보는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원래 구경 중에 최고로 치는 것이 강 건너 불구경과 남 싸우는 모습인 법이다. 둘이 형과 아우를 정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치고받으면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황신에게는 수준 높은 구타술을 가르치고 소동보에게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방법을 가르친다.
과거에 소약벽보다 약했던 명세찬에게 했던 것처럼.
과해서는 안 된다.
딱 이간질 한 숟가락에 아주 약간의 도움 한 숟가락씩 떠먹여 주는 정도면 충분하다.
그럼 모자란 놈이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 시작하고, 센 놈은 거기에 자극받아서 날뛰고……. 여하간에 돈 주고도 못 보는 박 터지는 싸움이 시작된다.
그 둘이야 이제 실력도 비슷하고 늙어서 싸우지도 않으니 볼 장 다 봤고, 이제 이 소소한 재미를 어디서 느끼나 싶었는데 이놈들이 생겨서 어찌나 다행인지.
흐흐흐, 빨리빨리 연습해서 계속 치고받으렴.
진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동보는 진무가 자신에게 내려 준 가르침에 감사하며 환영미리보를 처음부터 다시 관조하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소약벽의 움직임을 그리면서…….
* * *
야숙과 이동을 반복하며 보낸 지 사흘.
퍼억!
“허억, 허억…….”
“…….”
진무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구타를 자행하던 황신이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찰나의 순간 움직임을 놓쳤다.
뭐가 변한 거지?
황신이 싸늘한 눈으로 소동보를 바라봤다.
그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
지친 표정이었지만 무언가 득의양양해하는 느낌에 왠지 기분이 나빴다.
황신이 양쪽 눈썹을 상하로 찌그러트리며 재차 공격을 가하려는 순간이었다.
“신!”
“…….”
움직임을 멈춘 황신이 진무를 향해 눈을 부라린다.
“……어쭈? 이게 요 며칠 적당히 대해 줬더니 아주 간땡이가 부었네? 주먹까지 움켜쥐고?”
“…….”
실수였음을 깨달은 황신이 금세 눈을 내리깔며 헤실거렸다.
그런 황신을 잠시 째려본 진무가 저 멀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삭주다.”
“…….”
소동보와 황신이 그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
산서성의 거대 도시 삭주. 관과 무림보다 상계의 힘이 비정상적으로 강한 도시.
진무가 이곳으로 온 이유는 간단했다.
일단 하오문에서조차 정보를 수집하지 못했던 산서상회였다. 그렇다면 그들의 본거지로 직접 찾아가 봐야 의미 없을 터였다.
그리고 진무가 이곳까지 오는 동안 황신을 시켜 하오문과 수많은 정보를 주고받은 바에 의하면 산서상회 예하에 삭주상단이라는 곳이 있었다.
해서 산서상회를 찾아가기 전 그들에 대해 먼저 파악해 보려는 생각이었다.
아무리 대단한 조직이라도 예하 세력을 완벽히 단속하기는 힘들 것이다. 분명히 틈이 있을 것이다.
궁과의 연관성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아니, 반드시 연관되어 있어야만 했다. 그래야 그들을 무찌르고 산서 상계를 모조리 손에 넣을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삭주의 관도에서 가장 큰 객점에 머물겠다.”
“…….”
“너희는 지금부터 각자의 능력을 발휘해 관, 민초, 무관, 상단을 가리지 말고 산서상회에 대한 모든 것을 수집해라. 나쁜 짓을 했는지, 하고 있는지, 할 것인지.”
반드시 나쁜 짓을 하고 있어야만 한다는 듯한 말투에 황신과 소동보가 의아하게 쳐다본다.
“그리고 더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오는 놈이…… 무조건 형이다.”
“……!”
“……!”
진무의 말이 그들의 가슴에 갑자기 열의를 만든다.
갑자기 차오른 흥분에 둘의 얼굴에 홍조마저 피어나고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듯이 발뒤꿈치를 들썩거린다.
“그리고, 앞으로 이동할 때의 모든 숙식은 진 놈이 책임진다. 자, 질문?”
타오른 열의에 기름을 들이붓는 진무의 말에 소동보와 황신이 고삐 매인 허기진 늑대처럼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럼, 출발!”
파앗! 슛!
고삐가 풀렸다.
황신과 소동보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른 방향으로 쏘아져 나간다.
황신은 도시의 왼쪽으로, 소동보는 오른쪽으로.
“햐, 빠르네.”
순식간에 사라지는 둘의 뒷모습을 보며 진무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네. 자, 그럼 천천히 출발해 볼까?”
미소를 머금은 진무가 산서상회의 영역을 향해 천천히 발을 들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