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72
272화
부우- 부우-
칠흑처럼 검은 어둠이 내려앉은 시각, 담벼락에 걸쳐진 노송의 높은 가지에 앉은 올빼미가 날카로운 눈매로 쥐새끼를 찾는다.
기괴하게 꺾이는 그 목의 움직임은 전 방향을 모두 감시할 수 있었기에…….
퓻!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올빼미가 빠르게 목을 돌려 주변을 살폈지만, 어떤 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부우……?
올빼미는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하며 날카로운 눈을…….
퓻!
……?
이전과 비슷한 소리가 났는데 또 아무것도 없었다.
뭐지? 재빠른 쥐새끼인가?
왠지 체면을 구긴 듯한 상황에 올빼미가 더욱 날카로운 눈으로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감시하는데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그 옆에 내려섰다.
꽈아악!
올빼미의 목을 움켜쥔 손.
기겁한 녀석이 눈을 부릅뜨고 날개를 푸드덕거리려는데.
“이런 미친 새 새끼가 기분 나쁘게 째려보고 지랄이야?”
브, 브으…….
“브으-는 염병.”
꾸드득.
시커먼 그림자가 올빼미의 목을 비틀었다.
“얼레? 이 새끼 봐라? 모가지가 왜 이래, 이거?”
야심 차게 일용할 양식을 준비하러 나왔던 올빼미는 더 이상 돌아가지 않을 때까지 목이 돌려져 삶을 마감했다.
복면을 쓴 그림자의 정체는 악독하기 짝이 없는 진무였고, 먼저 났던 소리의 정체는 황신과 소동보였다.
나뭇가지 하나를 차지하고 앉은 진무는 장원을 내려다보았다.
그가 찾아온 곳은 상단이 아닌 표국.
독립적인 상단이라면 산서와 접하는 섬서, 하북, 하남의 세 곳 성과 교류하기 위해 다양한 이송로를 선택한다.
가까운 거리는 짐꾼을 이용할 것이고, 먼 길로 가자면 표국이나 해운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진무가 원하는 것은 상행의 흐름이 아니라 산서상회 내부의 움직임.
산서성은 지형적으로 큰 도시들이 세로로 길게 형성되었고, 이를 연결하는 관도가 자연히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산서상회 내에서 물건을 옮기는 이동로가 한정적이라는 소리였다.
황신을 시켜 알아본 바에 의하면 현재 삭주에서 남북으로 가장 이동이 빈번한 곳이 바로 이곳, 산음(山阴)표국이었다.
이동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표물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높은 확률로 산서상회 내에서 움직이는 물자가 대부분 이곳을 지나게 된다는 소리다.
다양한 표물을 취급하는 곳이기 때문에 당연히 기록을 남길 테고, 뒤 구린 놈들이라면 분명히 표물 중에 의심스러운 것이 있을 터.
그것만 찾으면 된다.
“근데 뭔 표국에 감시하는 놈들이 이렇게 많아?”
불이 꺼져야 할 곳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은 예사고, 홰를 들고 돌아다니는 감시인들의 수가 상상을 초월한다.
와중에 미친놈들이 지붕 위에까지 경계 병력을 풀어 놔?
일개 표국이 이럴 필요가 있나?
“새끼들. 보면 볼수록 의심스럽네. 숨기는 게 많다 이거지?”
복면 위로 드러난 진무의 눈매가 즐겁다는 듯 살짝 휘었다.
어쩌면 궁일지도, 인지도, 임이 확실하면…… 상단이, 돈이……크흐흐.
표국을 살펴보며 기다리던 사이에 경계하던 감시조가 두 번째 교대를 시작했다.
대략 한 시진.
그런데 같은 위치에서 처음 보았던 놈이 교대 시점에 또 나타났다.
맞교대를 한다고?
이 미친놈들은 잠도 안 자나?
밤새 경계를 서고 낮에 자는 건가?
그럴 리가 없지.
고작 표국이다. 사람이 한정적일 터인데 경계만 서는 무인들을 이 정도 규모로 상시 운용할 리가 없었다.
“하, 이 새끼들 보게?”
진무가 같잖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자 소동보와 황신이 의아하게 쳐다본다.
무슨 이유에선지 경계가 강화된 것이 분명하다.
“신, 동보.”
“예.”
“가서 삭주상단과 연결된 곳을 좀 돌아다녀 봐.”
“……?”
“외부에서 확인만 해. 경계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
“……알겠습니다. 천주님께서는?”
“나? 들어가 봐야지. 저렇게 의심스러운데 기다리면 안 되지 않겠어?”
진무가 유쾌한 어조로 답했다.
“확인 끝나는 대로 객점에서 대기해.”
“…….”
그 말을 끝으로 더 물을 새도 없이 몸을 솟구쳐 표국의 대전각으로 날아가 버리는 진무의 모습에 소동보가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뭔 이유라도 말해 주고 가든가 하지.
파앗!
“…….”
와중에 황신은 이미 표국 밖으로 몸을 날리고 있었다.
저놈은 말도 잘 듣는다. 의심이라고는 없는 놈인가?
벌써 사라져 버린 황신의 뒷모습에 소동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몸을 날렸다.
말 안 들었다고 또 맞을지도 모르니까.
* * *
지붕 위를 지키는 무인들은 감시인치고는 실력이 뛰어났다.
어디까지나 감시인‘치고는’.
“누…….”
빡! 쩍!
숨어 있던 이들은 둘.
진무는 대전각의 지붕 위에 도착하자마자 은신자들을 제압했고, 그들은 엎드려 있던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친절하게 수혈에 마혈까지 짚어 준 진무는 지붕의 기와를 뜯어내고 조심스럽게 내부로 숨어들었다.
막 교대가 끝났으니 허락된 시간은 한 시진. 그 안에 거래 장부를 찾는다.
그냥 쳐들어가서 죄다 박살 내도 될 만큼 강했지만, 일단은 흔적이 드러나지 않아야 했기에 진무는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였다.
스르륵, 톡.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해 바닥을 밟은 진무가 도착한 곳은 수 개의 방들이 줄지어 늘어선 복도였다.
내부를 돌아다니는 순찰조가 있었지만 기척을 감추고 복도의 그림자를 이용해 움직이는 진무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달깍, 끼이이.
순찰조가 사라지기를 기다려 첫 번째 방문을 연 진무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부를 살폈다.
집무실.
표국주, 혹은 살림을 맡은 총관의 방을 찾아야 한다. 장부 대부분은 그곳에 있을 테니까.
몇 개의 방을 살폈으나 원하는 곳을 찾지 못했다.
망할 놈들. 방문 앞에 명패라도 붙여 놓으면 얼마나 좋냐?
하다못해 좀 비싸 보이는 장식이라도 해 두면 얼마나 좋아.
진무가 다섯 번째 방문을…….
“……!”
어? 사람?
제대로 확인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주먹이 날아갔다.
퍼억!
“크으…….”
얼굴을 얻어맞은 인물이 비틀거리며 물러난다.
응? 한 방에 안 쓰러진다고?
잘못 때렸나?
퍼퍽!
빠르게 다가서며 조금 더 힘을 실어 날린 두 번째 주먹을 맞고서야 급살 맞은 개구리인 양 널브러졌다.
그런데 왜 못 느꼈지?
기척을 감추느라 기감의 범위가 줄어서 그런 건가?
“…….”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런데 자세히 보니 여인이었다.
두 팔에 옷이 끼어 있는 것을 보니 갈아입는 중이었던 모양이다.
여인인데…… 얼굴은 좀 심했나?
염병, 그러게 불이나 제대로 켜고 있든가. 대전각이 무슨 규방(閨房)도 아니고 옷은 왜 갈아입고 지랄인지.
그래, 이건 네 잘못이다.
진무는 여인이 깨어나지 못하게 수혈에 손을 대었다.
그런데…… 어?
“…….”
너무 쉽게 처맞고 쓰러지길래 그냥 여염집의 여인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혈도에서 느껴지는 반탄력이 제법이었다.
원래 혈도를 짚다 보면 상대의 혈맥을 흐르는 내력이 방어력을 발휘하게 된다.
해서 행동 불능 상태가 아니라면 하수가 고수를 점혈하기는 무척이나 어려웠다.
물론 진무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지만, 여인의 몸에서 느껴지는 내력이 심상치 않았다.
의아함을 느낀 진무가 여인의 손목을 잡고 기운을 불어넣었다.
“허!”
정말 놀랄 일이다.
대충 느끼기로 단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기운의 양이 의기에 이른 무인과 동일하다. 그것도 한계치에 가까울 정도.
의기의 극성이면 웬만한 대문파의 장로나 장문인급의 무위가 아니던가?
아마도 본인도 순간적으로 당해 버려서 기운을 발현시키지 못한 모양이었다.
어쩐지 한 방에 안 쓰러진다고 했더니. 나름 한가락 하는 년이었구나.
그래도 다행이다. 옷을 갈아입느라 손이 자유롭지 못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소란이 생길 뻔했다.
그런데 이 정도의 무인이 왜 표국에 있는 거지?
식객, 뭐 그런 건가?
정체가 궁금하기는 했지만 더 지체할 시간이 없었던 진무가 방을 나가려 일어났다가 탁자 위에 시선을 고정한다.
묘하게 신경을 거스르는 붉은 색 서신 하나, 그리고 겉장에 쓰인 글귀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회주님 친전(親展).
회주? 산서상회 회주?
고작 상회 주제에 대단하구만. 의기급의 고수를 식객으로 모셨다거나 상단 무인으로 데리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찌이익. 슥.
진무는 주저하지 않고 서신을 뜯어 내용을 살폈다.
지금 그는 도둑이다.
좀 뜯어서 살펴본다 한들, 뭘 훔쳐간다 한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우옥현(右玉縣) 추가장?”
그 외에 다른 내용은 없었지만, 별 쓸데없는 내용이라 치부하기에는 여인의 무위가 너무 강했고 수신자가 산서상회의 회주였다.
왠지 꺼림칙한 느낌에 진무가 서신을 품속에 집어넣고 방 밖으로 나왔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표국의 장부였으니까.
방을 나온 진무는 빠르게 전각 내부의 방을 살폈다.
뭔 방이 이리도 많은지, 여덟 개의 방을 지나고서야 겨우 표국주의 집무실을 찾을 수 있었다.
진무는 고민할 것도 없이 겉옷을 벗어 장부로 보이는 것은 모조리 쓸어 담았다.
굳이 그가 살펴볼 필요는 없었다. 쓸 만한 일꾼이 둘이나 있는데 뭐 하러 일일이 살펴본단 말인가?
잔뜩 쌓인 장부를 담은 겉옷을 자루처럼 움켜쥔 진무는 재빨리 집무실을 벗어났다.
제법 시간이 지났다.
감시하는 무인들이 교대를 시작하면 누군가 침입했다는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될 것이었다.
놈들에게 들키기 전에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서두르는 진무의 귀에 어디선가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복도가 꺾어지는 곳에서 희미하게 번져 나오는 불빛 쪽이었다.
“이런…… 정말…… 망할…….”
“……?”
너무 멀었기에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울분이 가득 담겨 있는 듯한 느낌에 진무가 잠시 고민하다가 불빛을 향해 다가섰다.
“젠장, 이게 무슨 고생이란 말이냐?”
목소리가 선명해질수록 그 안에 담긴 감정이 명확하게 느껴진다.
때때로 욕설까지 섞이는 것을 보니 쌓인 게 많은 듯했다.
“아무리 산서상회라고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냔 말이야.”
“국주님, 목소리를 낮추시는 게. 누가 듣기라도 하면…….”
대화를 나누는 인물은 둘이었다.
한 사람은 불만을 토로하고, 또 한 사람은 불안하게 그의 말을 제지하고 있다.
그런데 산서상회?
솔깃해진 진무의 걸음이 불빛이 있는 곳을 향해 점점 가까워졌다.
“자네도 생각해 보게. 이게 말이 되는가?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는가 말이야. 아무리 그들이 산서를 지배하고 있다고 하지만, 일언반구도 없이 갑자기 상납금을 올리다니.”
“국주님. 범정 님께서 휘하의 무인들과 함께 표국에 머무르고 계신 것을 잊으셨습니까?”
“…….”
끼이익. 탁.
잠시 대화가 끊어지고,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
주변을 의식한 것인지 목소리의 크기가 줄어드는 바람에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자세히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호기심으로 가득 찬 진무는 방문 근처까지 은밀하게 다가갔다.
작은 호롱불이 켜진 방.
내부에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젠장, 내 표국에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다니.”
거의 혼잣말처럼 낮아진 목소리였으나 방문 옆 벽에 붙어 청력을 높인 진무는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말하는 것을 보면 한 사람은 이 표국의 주인이고, 다른 이는 총관쯤 되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성정을 아시지 않습니까? 괜히 거슬렀다가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된 곳이 하나둘이 아닙니다. 괜히 입을 잘못 놀렸다가 사체로 발견된 사람도 있고요.”
“망할, 그때 그런 계약을 하는 것이 아니었어.”
“참으십시오. 참으셔야 합니다.”
“참아야지. 참아야 하고말고…….”
짙은 후회가 서린 어조였다.
역시. 그럼 그렇지. 계약 어쩌고 한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 새끼들, 어쩐지 사람들이 칭찬만 한다고 했더니 자신들에게 반하는 말을 하면 죽여 없애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 두려웠겠지.
그래서 누가 들을까 과도하게 칭찬할 수밖에 없었겠지.
망할 놈들.
산서가 아무리 패쇄적인 곳이기는 해도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억압하고 있었다니.
상인 놈들이면 상인 놈들답게 물건이나 제대로 팔 일이지.
확 치미는 언짢은 느낌에 진무의 눈이 살짝 찌푸려진다.
하지만 이제 정말로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다.
경계조의 움직임에 변화가 생겼다.
한 시진만의 교대시간.
지체할 시간이 없었던 진무가 표국에서 안전하게 벗어났을 때, 날카로운 호각성이 울려 퍼졌다.
진무가 제압해 둔 지붕 위의 감시인이나 얼굴을 때려 기절시킨 여인이 발견된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