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78
278화
모든 것이 뜻대로 맞아 들어가는 느낌에 제갈협진이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남궁무휴를 바라봤다.
“먼저 협약을 맺은 이유는 하나입니다. 내전 중이기 때문이지요. 저들끼리 서로 치고받으며 전력을 소모하겠다는데 말릴 이유는 무엇이며, 끼어들 이유는 또 무엇이겠습니까.”
“…….”
“알아서 제 살을 깎는 꼴입니다. 우리로서는 참으로 다행인 일이 아닙니까?”
“……그건 그렇군.”
“하지만 그것도 이제 깰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앞뒤가 맞지 않는군.”
남궁무휴가 기가 찬다는 듯이 웃자 제갈협진이 양소방을 바라본다.
“나 역시 대군사와 같은 뜻이오.”
“뭐요?”
“실은 이번 사패천 내전이 묘하게 흐르고 있소이다.”
“……?”
“애초에 대군사의 말대로 내전을 통해 저들의 전력이 줄 것으로 예상하고 맺은 협약이었소. 그런데 천웅방을 중심으로 한 반란 세력의 행보가 심상치 않소이다.”
“그게 무슨?”
“개방에서 파악한 바에 의하면 천우명, 원공후, 명세찬, 소약벽. 즉 혁련무강 사후에 갈라졌던 사패오왕 중 넷이 묵룡의 전인을 새로운 천주로 옹립하고 세를 확장하고 있소.”
“……사패오왕이 모였다고?”
“그렇소, 그 때문에 사파의 여론이 돌아섰고, 가는 곳마다 무혈입성해 세를 불리고 있소. 이미 관월 원공후가 중원 남쪽의 세를 결집해서 북진을 시작해 강서를 넘고 있소. 빠르면 한 달 안에 하남에 도착할 것이오.”
“…….”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하오문에서 정보를 모조리 차단하고 있었기에 개방도 겨우 알아낸 정보였으니 당연했다.
당황한 표정의 남궁무휴를 지그시 바라본 제갈협진이 모두를 향해 말했다.
“제 생각에는 원공후를 제외한 저들의 본대가 남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만약 그들이 세력이 줄기는커녕 더해져서 하남의 경계를 넘는다면 유월청은 막지 못할 것입니다. 명분이 반란군에 있는 이상 새로운 천주에게 본성을 빼앗기게 되겠지요.”
좌중에 웅성거림이 생겨난다.
혁련무강이 죽은 이후로 쇠퇴해 가던 사패천이었다.
얼마나 눈엣가시 같았던가?
정무맹의 세력권 중심에다가 떡하니 자신의 집을 지어 놓다니.
하지만 사황이 원체 강했기 때문에 감히 쫓아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고, 사후에는 궁의 세력이 모습을 드러냈기에 잠시 묵혀 둔 문제였다.
“세를 불린 반란 세력이 다시 본성을 차지하게 되면 사패오왕이 한자리에 모일 것입니다.”
“……그리되면?”
“이전처럼 철옹성이 되겠지요.”
“말도 안 되네. 전인이라는 놈이 사황 본인도 아닌데.”
“그렇지요. 하지만 그의 전인입니다. 사패오왕이 옆에서 돕는다면 아마 금방 성장하겠지요.”
“…….”
제갈협진의 말에 남궁무휴의 눈가가 씰룩거린다.
사황 혁련무강…… 그 개새끼.
자신의 가슴에 유일하게 공포라는 감정을 심어 놓은 놈.
그와 싸웠다가 쉬지 않고 구타를 당했던 때가 떠올랐다.
천하제일이라 칭해지던 놈이면 자신의 체면을 세워 줄 만도 하거늘, 남궁가의 후손들이 보는 앞에서 주먹으로 패고, 발로 개처럼 짓밟고…….
그때만 생각하면…… 섬뜩하도록 두렵다. 그가 죽었을 때 어찌나 다행이라 생각했던지.
뒤를 이은 전인 놈에게 다시 같은 꼴을 당할 수는 없었다.
“……바, 반드시 막아야겠군.”
남궁무휴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예. 막아야 합니다. 해서 방어선을 구축하려고 합니다.”
“…….”
“화산, 종남, 소림, 남궁, 팽가를 주축으로 북진하여 저들의 본대를 막고, 정무맹의 무인대는 남진하여 원공후의 진입을 막습니다.”
“…….”
이야기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흐르자 남궁무휴가 미간을 찡그린다.
대군사 저 망할 놈이 휴전 협정 건으로 내부에 분란을 만들려던 것을 눈치챈 것이 분명했다.
“이번 전쟁에 당가와 공동은 곤륜을 도와 혹시나 모를 마교의 준동에 대비해 주십시오. 정사 간에 전쟁이 일어나면 그들이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쳇, 재미있을 전쟁에 나만 빠지게 생겼군. 알겠다. 독혈각 전원과 함께 곤륜으로 가 보도록 하지.”
당위가 심드렁하게 대답하자 공동의 장문인 정심이 고개를 끄덕인다.
과거와 달리 누구도 제갈협진의 결정에 대해 반문하지 않았다.
“창천 어른.”
“……뭔가?”
뭔가 정무맹이 중심이 되어 버린 듯한 모습에 남궁무휴가 언짢음이 역력하게 묻어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북진의 수좌를 맡아 주십시오.”
“…….”
젠장, 역시나…….
하지만, 이미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
“알겠네. 그리하지.”
“허허, 창천께서 이리도 직접 나서 주시니 본 맹주는 기쁘기 한량없소. 그럼 북진은 믿고 맡기리다.”
“……걱정 마시오.”
철지량까지 가세하는 통에 남궁무휴는 그리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이렇게 된 이상 내 반드시 묵룡의 전인이라는 놈의 목을 베어 입지를 탄탄하게 굳힐 것이다.
“자, 그럼 회의는 여기까지 하십시다. 밖에 연회가 준비되어 있으니 다들 떠나기 전에 잠시 즐기십시오.”
철지량의 종회 선언으로 길었던 회의가 끝났다.
모인 이들이 하나둘씩 회의장을 빠져나가고,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다 일어선 제갈협진을 향해 철지량이 빙긋 웃었다.
“자네는 참으로 음흉한 사람일세. 창천이 아주 속이 말이 아닐 게야.”
“맹주님만 하겠습니까? 이미 다 논의한 것을 제게 떠넘기시고는. 결국 또 창천 어른께 저만 미운털이 박혔지 않습니까.”
“말은 자네가 잘하니까.”
“…….”
철지량의 말에 제갈협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보다 형주에서 구했던 아이의 정체가 밝혀졌다고?”
“예. 칠음은맥이라더군요.”
“칠음……절맥이 아니고?”
“예. 저도 처음 들었습니다. 의선께서 몇백 년 전의 기록까지 뒤져서 겨우 찾아내었다고 하더군요.”
“흠……. 궁은 어찌 그런 것을 알고 있을까? 칠음은맥의 아이를 납치하려던 이유는 또 뭐고?”
“글쎄요. 일단은 좀 더 조사를 해 봐야겠습니다. 의선께서 내용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니 곧 밝혀지겠지요.”
“의선이 고생이 많군.”
“응당 해야 할 일인 것을요.”
“그래, 그나저나 안타깝구만. 진무, 그 아이가 있었다면 하남에서 일어날 사패천과의 전쟁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인데.”
철지량의 말에 제갈협진이 얼굴을 찌푸린다.
“그러게 말입니다. 어떻게 된 위인인지 좀처럼 행적을 알아낼 수가 없습니다.”
“하긴 운암에게 들으니 풍환자, 그 어른과도 동수를 이루었다지? 양의심공을 얻은 지금이라면 더 성장했을지도 모르겠군.”
“그러게요. 어쨌든 다행인 일이지요. 그런 인물이 정파에 있으니.”
제갈협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서 걷기 시작한 철지량의 뒤를 따랐다.
지금은 종적 모를 진무를 아쉬워하기보다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였다.
드디어 정무맹 내의 궁의 세작들이 축출되고 힘이 한곳으로 모인 시점이다.
오랜 적인 사패천과의 전쟁.
이제부터는 그것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했다.
* * *
쿠르르르.
“……!”
보고도 믿지 못할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을 때, 사람들은 사고가 정지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지금 소동보와 황신이 그랬다. 눈앞에서 벌어진 기괴한 상황이 머리로 이해하기가 힘겨웠다.
삭주를 떠난 진무는 산서상회의 본 장원이 있다는 진중을 향해 모처럼 여유 있게 수련하며 이동하는 중이었다.
적생이 천천히 와 달라고 부탁을 했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폭포가 장쾌하게 쏟아져 내리는 곳을 야숙 장소로 정하고 지난 열흘과 다름없는 그저 그런 시간을 보내던 그때.
심드렁하게 황신과 소동보의 대련을 지켜보던 진무가 ‘수련이라도 좀 할까?’ 하고 중얼거리며 물 위를 걸어갔다.
수상비(水上飛)도 아니고 수상보(水上步)?
말로만 들은 절세의 경공술을 너무도 쉽게 펼쳐 쏟아진 폭포가 만들어 낸 호수의 중앙으로 걸어 들어간 진무.
뭐, 그 정도는 놀랍지도 않았다. 허공답보까지 하는 사람인데 수상보 따위가 뭔 문제일까?
그런데 다음 순간, 눈이 찢어질 정도로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묵룡혼원공을 운용해 모든 힘을 발현한 그의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대기가 괴성을 질렀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그냥 놀라운 정도였다.
그런데 갑자기 호수의 물이 밀려나기 시작하더니…….
“저, 저…….”
그를 중심으로 물이 원형으로 밀려나고 호수의 바닥이 드러났다.
곧이어 바닥에 발이 닿은 진무가 손바닥에 묵룡기를 모아 응축시켰다가 폭포를 향해 빠르게 쏘아 낸다.
콰우우우!
검은 구체가 굉음과 함께 긴 꼬리를 만들어 날아가더니, 폭포를 타고 솟구쳤다.
마치 용틀임과도 같은 광경. 물속에 몸을 숨겼던 이무기가 때가 되어 승천해 용이 되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눈앞에서 환상처럼 펼쳐진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아주 매우 많이 놀라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이후에 벌어진 상황은 정말이지 눈으로 보고도 믿기가 어려웠다.
쿠르르르.
“포, 폭포가…….”
역류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자연의 이치 자체를, 진무의 묵룡이 뒤바꾸어 버렸다.
파아아아!
진무의 무위는 화산의 매화를 부쉈던 그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묵룡을 따라 호수의 물이 모조리 빨려 올라가 거대한 용오름을 만들어 내었다가, 허공에서 폭발하듯 터졌다.
쏴아아아!
“……비, 비가.”
터짐과 동시에 물방울로 변한 물이 여름날 소나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우웅!
기검이 만들어지고 수변에 놓아두었던 검, 일휘가 검집을 나와 진무를 향해 날아가더니, 곧바로 한판의 춤사위가 벌어졌다.
일휘가 살아 움직이고, 기검이 무당의 수많은 검공을 모조리 토해 내며 떨어져 내리는 물방울을 잘게 쪼개 놓는다.
장엄하다는 느낌이 절로 드는 광경에 황신과 소동보는 눈을 떼지 못했다.
“그…… 황 형님?”
“……어?”
멍한 표정의 소동보가 황신을 부른다.
“사람…… 맞겠죠?”
“…….”
“저분이 저 정도면…… 전대 천주님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그, 글쎄…….”
황신이 멍하니 진무의 검무를 응시했다.
어느 정도고 뭐고, 애초에 괴물을 사람이 판단할 수 있을까?
그러다 문득 갑자기 든 생각에 황신이 소동보를 바라봤다.
“왜요?”
“저녁…… 빨리 준비해야겠지?”
“……아!”
시간 끌다가 검무를 끝낸 진무가 배고프다고 역정을 내기라도 한다면?
파팟! 팍! 쉬쉿!
이심전심(以心傳心).
동병상련(同病相憐).
둘은 이미 같은 생각을 했고, 같은 아픔을 지녔기에 서로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최대한 빠른 식사 준비를 위해서…….
* * *
식사를 마친 진무는 황신과 소동보를 놓고 숲 안쪽으로 들어가 앉기 좋은 자리를 골라 좌정했다.
“후우…….”
가슴을 부풀렸다가 길게 숨을 내쉬며 눈을 감은 진무는 자신의 상태를 관조했다.
양의심공으로 익힌 육양진기와 묵룡혼원공을 번갈아 운용해 가며 그 양을 측정했다.
과거의 경지를 되찾지 못했다는 명세찬의 평가는 틀렸다.
미현의 싸움 뒤에 취한 자소단. 그 안에 담긴 영기를 모조리 흡수한 진무는 이미 과거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명세찬이 약하다 평가한 것은 진무가 아직 모든 힘을 내보인 적이 없었고, 명세찬 스스로가 많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의 눈에 어른의 모습은 거인처럼 거대해 보이지만 같은 어른이 되면 작아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해야 할까?
뭐, 그래 봐야 자신에게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좌우지간 앞서 양의심공을 운용해 두 가지 기운을 번갈아 사용해 본 것은 그 양을 측정해 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묵룡혼원공에 비해 육양진기가 현저하게 약하다.
균형이 맞지 않는 것이다.
앞서 진무 이전에 양의심공을 익혀 태극합일을 시도했던 청무 조사는 그 미세한 균형점을 찾지 못해 대성을 이루지 못하고 마인이 되었다.
태극을 이루자면 선기와 사기의 균형점을 찾아야만 했다.
“하아, 어떻게 한다.”
명상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관조해 본 진무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이대로는 아직 합일을 이룰 수가 없다.
육양진기를 묵룡혼원공만큼 끌어 올려야 할 것이나, 이놈의 망할 선공은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순도는 높은데 좀처럼 빨리 늘지 않는다.
어떻게 한다?
어디서 영물이라도 뚝 떨어지면 감사합니다, 하고 냉큼 주워 먹을 터인데…….
어서 태극을 익혀서 정무칠성이 떼거리로 덤벼도 웃으며 발라 버릴 정도로 강해져야 한다.
궁의 놈들은 번외로 둔다고 해도 사패천을 무너뜨리고 나면 곧장 정무칠성을 두들겨 패고 내가 최강이다! 라고 외치고 싶은 진무였다.
그래야 마교로 가서 북리도천을 조질 텐데…….
하남 숭산에 복면 쓰고 찾아가서 중놈들 대환단이라도 털어다 먹어야 하나, 아주 잠시 심각하게 고민해 본 진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