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81
281화
쿵! 콰쾅! 콰드득.
“…….”
이게 무슨 소린가? 지진이라도 난 것인가?
어찌하여 이렇게 건물이 흔들리고 있단 말인가?
안 그래도 심기가 불편했던 송여방의 눈썹이 거칠게 찡그려진다.
땅땅땅.
이제는 경계용 타종 소리마저 들려온다.
뒤이어 건물, 아니 대지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어마어마한 진동.
벌컥!
“궁주님!”
“…….”
허락도 없이 문을 열고 뛰어 들어오는 일이 오늘 하루만 해도 몇 번째인지.
“적입니다. 적이 습격해 왔습니다!”
“…….”
그래 적…… 적?
우드득.
한쪽이 부서진 팔걸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놈들이 성벽을 무너뜨리고 난입해 전각을 모조리 부수고 있습니다!”
“…….”
망연히 뜬 눈.
어느 순간부터 전령의 목소리가 송여방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
태원상단이 습격받았다는 소식에 유굉을 비롯한 전궁대에게 공격 명령을 내린 지 반 시진도 되지 않았다. 그들이 떠나자마자 곧바로 습격해 온 것이다.
누가 봐도 노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일부러 태원상단을 제일 마지막에 습격해, 산서상회의 본장에 있는 무인들이 빠져나가게끔.
“허허.”
허탈함에 헛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놈들의 계략에 깨끗이 당해 버린 것이다.
각 지역에 퍼져 있던 감시조와 예하 상단들이 모조리 당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살막을 공격했던 광도와 마군의 생사는 이제 와 굳이 따져 볼 필요조차 없으리라.
그리고 이제는 본장을 직접 공격해?
새삼 사패천 반란 세력의 군사가 되었다는 놈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흥분하지 않고 조금만 더 깊이 생각했더라면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을 일이었다.
성동격서(聲東擊西)에 조호이산(調虎離山)이라.
삽십육계의 책략.
널리 알려진 병법이지만 상대가 눈치를 채지 못하게 감쪽같이 실행하기란 정말로 어려운데 놈이 그걸 해낸 것이다.
대단한 놈. 여물기가 늙은 생강보다 더한 자신을 여기까지 몰아붙일 줄이야.
하지만 놈은 모른다.
상인으로 위장해 힘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사패오왕보다 강한 자신이 산서상회의 회주라는 사실을…….
그래, 하긴 아무도 모르겠지. 드러내고자 했으면 그때 천우명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지는 않았을 것이니까.
그 개자식의 목을 진작에 뽑아내서 산서상회의 정문에 걸어 놓았을 테니까.
뿌드득.
하나밖에 남지 않은 팔걸이에 진한 손자국을 남기며 일어난 송여방이 체경(體鏡: 전신 거울)에 비친 모습을 바라보며 상투관을 고쳤다.
“궁주님!”
전령의 다급한 목소리에도 송여방은 무덤덤한 얼굴로 그동안 입고 있던 비단 장삼을 벗어 놓고 소매 좁은 황색 장포(長袍)를 걸쳐 입었다.
느릿한 그의 행동이 이어지는 동안 밖에서는 계속해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궁주…….”
퍼억!
재차 부르던 전령의 머리가 송여방이 휘저은 손길에 터트려진다.
순식간에 몸뚱어리만 남아 털썩 소리를 내며 쓰러지고, 시신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그의 발치까지 흘러왔음에도 송여방은 돌아보지 않았다.
“시끄러운 놈 같으니.”
어느새 장포의 요대를 단단하게 고정한 송여방이 벽에 걸려 있던 검을 쥐고 뒷짐을 진다.
비단 장삼을 입었던 그의 모습이 고고한 노학사처럼 보였다면, 황포를 입고 검을 뒤로 든 채 우뚝 선 그에게서는 한 세대의 절대자와 같은 기도가 물씬 풍겨 나왔다.
“오냐, 몇 놈이나 왔는지 모르겠다만 모조리 죽여 주겠노라.”
담담하게 뜬 그의 눈동자가 번들거리고, 살광이 짙게 배어 나온다.
폭발하듯이 끓어오른 기세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그의 전신을 감싸고, 선 채로 가볍게 내디딘 일 보가 삼 장여의 공간을 한 번에 뛰어넘는다.
슥, 슥, 슥.
그저 지면을 스치듯이 내뻗는 발걸음,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여유롭게 걷고 있으나, 그 속도는 달리는 것보다 빨랐다.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거처의 작은 담벽을 넘고 귓가를 날카롭게 울리는 병장기의 쇳소리를 향해 다가섰다.
* * *
콰드득! 쾅!
몇 개쯤 부쉈을까? 여덟 개? 아홉 개?
“후우, 후우.”
진무의 명령으로 싸움보다 건물을 부수는 것에 열중했던 천우명은 조금 지친 듯 숨을 크게 몰아 내쉬었다.
“더 부숴야 하나?”
그냥 닥치는 대로 부수며 지나오다 보니 어느새 너무 깊이 들어와 버렸다.
주변에 칼을 들고 포진한 산서상회의 무인들은 천우명의 무지막지한 모습에 감히 다가설 생각도 하지 못하고 눈만 마주쳐도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덤비지도 않는데 조질 수도 없고……. 어쩌지? 천주님께 돌아가야 하나?
천우명이 잠시 턱을 쓸면서 고민을 하다가 볼멘소리를 했다.
“에이 씨, 이럴 거면 건물을 어디까지 부수라고 말이라도 좀 해 주시지.”
돌아가야겠다. 괜히 너무 깊이 들어왔다가 나중에 혼날지도 모르니까.
곧바로 결정을 내린 천우명이 근육질의 몸을 씰룩거리며 돌리자 포위하고 있던 무인들이 일제히 물러나며 길을 텄다.
“그래, 잘 생각했다. 괜히 덤벼서 뒈지지 말고. 나도 힘없는 것들 괴롭히긴 싫으니까.”
피식 웃은 천우명이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을 향해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
섬뜩한 느낌이 목덜미에 소름을 돋게 한다.
슈슈슉!
미세하게 들려오는 파공성.
천우명이 급히 고개를 꺾으며 몸을 한쪽으로 움직였다.
“…….”
피한다고 피했건만 목덜미에서 화끈한 쓰라림이 느껴졌다.
아슬아슬했나……. 그런데 산서상회에 자신에게 상처를 입힐 만큼 강한 자가 있었다고?
몸을 바로잡은 천우명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어? 너는?”
눈앞에 나타난 노인. 아는 얼굴이다.
“송여방?”
분명 그다. 언젠가 자신의 발아래 고개를 조아리며 잘못을 빌던, 산서상회주 송여방.
천우명은 그의 등장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저 노인네가 나왔지? 검까지 꼬나쥐고?
힘도 없는…… 게 아니라 저거 뭐야? 저 엄청나게 있어 보이는 기의 아지랑이는 대체……?
“이거 놀랄 노 자네. 너 무인이었냐? 상인이 아니라?”
적잖이 놀란 듯한 천우명의 반응에 담담하기만 했던 송여방의 한쪽 눈썹이 씰룩거린다.
하지만 반응은 그뿐, 얼굴은 여전히 담담하기만 했다.
“능구렁이 같은 놈, 지금까지 무공을 숨기고 있었단 말이지?”
천우명이 입을 씰룩거리며 주먹을 움켜쥐고 돌아서며 자세를 잡는다.
그 모습에 송여방이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분명 자신의 기세를 느끼고 있음일 것인데 저런 건방진 모습이라니.
“무인이든 상인이든 상관없지 뭐. 어차피 뒈질 텐데.”
쿵!
내려찍듯 거칠게 밟은 일 보.
거대한 덩치를 가진 천우명의 몸이 순식간에 공간을 좁히며 송여방에게 다가선다.
송여방의 체구도 작진 않았으나 몸집의 차이 때문인지 허리를 굽히고 있는 천우명이 더욱 커 보였다.
낮게 지면을 스쳐 날아온 주먹이 가공할 기세를 머금고 무언가를 퍼 올리듯이 송여방의 턱을 향해 솟구쳐 오른다.
턱!
그 모습을 담담히 바라보던 송여방이 슬쩍 발을 들어 솟구쳐 오르는 천우명의 주먹을 밟았다.
후우웅!
거친 바람을 일으키며 끝까지 뻗어진 주먹과 함께 솟구친 송여방이 허리를 꺾으며 뒤로 제비를 넘는다.
“……!”
온 힘을 담은 주먹이 허망하게 허공을 가른 느낌에 천우명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동시에 뒤로 원을 그렸던 송여방의 몸이 그대로 천우명을 향해 쏘아져 들어온다.
쉬익! 파악!
날카롭게 세워진 손끝이 목젖을 때리는 순간 숨이 멎는다.
“큽!”
천우명이 억눌린 신음과 함께 뒷걸음질을 쳤다.
탁, 타타탁!
뒤로 한참이나 물러난 천우명이 눌린 목젖을 빼내며 막힌 숨을 터트렸다.
“파하!”
아찔했다.
곧바로 공격이 이어졌다면 위험할 뻔했다.
하지만 송여방은 더 공격해 오지 않았다. 한 번의 공격으로 자신을 뒤로 물리고, 거만하게 뒷짐을 진 채 서 있을 뿐이었다.
“힘만 센 멧돼지 같은 놈. 자, 어디 한번 또 들어와 보거라.”
“…….”
도발이 분명하다.
송여방은 비웃음을 머금고 천우명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천우명은 다소 모자라기는 해도 무모하지는 않았다.
산서상회주 송여방.
그가 보여 준 움직임은 분명 범상치 않았다. 방심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방금 전 한 수, 그가 작정하고 목을 꿰뚫고자 했다면 자신은 지금 서 있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제야 똑바로 보고 느끼게 된 그의 기세.
억누르고 있는 듯한데도 기운의 열기로 인해 아지랑이까지 피어오를 정도라면?
이자…… 강하다.
적어도 자신만큼, 아니 자신보다 훨씬 더 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껏 천주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겁을 먹어 본 적 없는 천우명이었다.
하물며 자신이 이긴다면 다행이지만, 진다면 곧바로 천주님과 싸우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씨발, 무조건 힘을 빼 놔야지.
너 따위가 우리 천주님께 작은 생채기라도 내게 둘 것 같냐, 내가.
“후우, 이 새끼…… 따끔하네.”
천우명이 웃으며 이내 웅크리고 있던 가슴과 함께 몸을 과장되리만큼 크게 펴서 세운다.
“따끔?”
천우명의 반응에 이때까지 담담하던 송여방이 어이없다는 듯 웃고 말았다.
두 팔을 크게 벌려 편 몸.
마치 힘없는 곤충이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일부러 몸집을 부풀리는 것과 같은 전형적인 무인들의 허세다.
더욱이 기운을 있는 대로 끌어 올리고 비장하게 두 주먹을 움켜쥔 자세라니.
“크크크, 크핫핫핫!”
송여방이 미친 듯이 웃어 젖힌다.
철검단주, 천우명. 반란군의 수좌는 필시 그일 것이다.
그일 수밖에 없다.
살막과 은위단은 세력의 중심이 되지 못한다. 그들의 특성상 보조적인 위치일 뿐. 더욱이 원공후는 이미 천웅방의 방주다.
특히나 전대 천주에 대한 천우명의 남다른 충성심은 사패천 바깥까지 널리 알려진 사실 아닌가.
전대 천주 혁련무강이 자신의 진신무공을 전한 후인이 없는 이상, 유월청에게 반감을 품은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인물은 천우명밖에 없다.
“철혈붕권, 철검단주, 이제는 반란군의 수괴 천우명.”
“…….”
천우명을 향해 송여방이 비릿한 웃음을 짓는다.
그런 송여방을 보며 천우명은 의문을 품었다.
지금 나를 가리켜 반란군의 수괴라고 하는 것인가? 천주님을 두고?
그런데 수괴?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가 감히 천주님께 수괴라고? 수장이라는 좋은 말도 있는데?
“너는 산서상회를 노리지 말았어야 했다. 또한 조금이라도 나를 이길 생각이었다면 사패오왕 중 셋 이상은 데려왔어야 했다.”
“…….”
“반란군의 수장인 네놈 홀로 이곳으로 온 것은 매우 큰 실수다. 너희는 나를 몰랐…….”
가만히 기운을 끌어 올리며 듣고 있던 천우명이 눈을 치뜨며 욕설을 내뱉었다.
“이 새끼가! 듣자 듣자 하니까 왜 자꾸 반란군이래? 우리가 진(眞)이야! 그리고 니가 뭘 잘 모르는 모양인데. 나 아냐, 이 새끼야.”
“…….”
주어가 빠졌다. 뭘 모른다는 것이고, 뭐가 아니라는 거지?
됐다. 멍청한 놈과 말을 섞어 봐야 괜히 힘만 빠지지.
천우명의 우직한 얼굴을 바라보던 송여방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보니 뭐 하러 굳이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있단 말인가?
어차피 죽을 놈인데.
이 자리에서 천우명을 죽이고, 이어 사패오왕을 한 놈씩 찾아내서 직접 죽여 버리리라.
“그래, 더 말해 무엇하리!”
파앗!
뒤편에 잡았던 검을 뽑아 내고 검집을 버린 송여방이 가볍게 일보를 내디딘다.
쑤우욱!
마치 그의 몸과 함께 거대한 공간 전체가 한 번에 밀려드는 것 같았다.
“우리를 이끄시는 분은……!”
슈가가각!
천우명이 말을 마치지도 못했는데 벌써 다가온 송여방이 검을 횡으로 쓸어 왔다.
이런 망할 놈.
지가 말을 시켜 놓고 갑자기 공격을 하다니.
하지만 이미 한계치까지 기운을 끌어 올리고 있던 천우명은 당황하지 않고 힘껏 진각을 밟았다.
쿵!
짓밟은 발이 땅속 깊이 틀어박히고, 내공을 깡그리 담은 주먹이 곧게 뻗어진다.
쿠루루, 콰아아앙!
절대의 힘을 가진 둘의 격돌이 산서상회 본장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려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