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82
282화
재미없는 싸움에 뻔하기만 한 결과. 이럴 줄 알았으면 적생에게 산서상회의 주력을 빼내 가지 말라고 할 것을 그랬다.
산서상회라는 놈들, 궁의 핵심인 줄 알았더니 곁가지였나?
아니, 이놈들이 약하다기보단 적생이 너무 뛰어난 건지도 모르겠다.
“흐음.”
아무리 생각해도 군사 하나는 잘 뽑았다.
옛사람 사마휘가 와룡(臥龍)과 봉추(鳳雛)를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 했다더니 틀린 말은 아닌가 보다. 산서상회의 무인들이 이렇게까지 맥을 못 추고 있는 것을 보면.
문제는 그 잘 뽑은 전략가 때문에 너무 심심하다는 것이었다.
자고로 싸움이라는 것이 깨고 부수고 해야 제맛인데.
팔짱을 낀 채 전장을 쳐다보던 진무의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생각.
우명, 이 자식은 대체 어디까지 간 거야? 그냥 대충 하고 올 일이지. 애새끼도 아니고, 이 정도만 하라고 꼭 말을 해 줘야 하나.
“신!”
“예!”
“가서 천 단주 좀 찾아 와라. 저쪽 어딘가에…… 응?”
순간 천우명이 사라졌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던 진무의 기감에 살벌하기 짝이 없는 기운이 감지되었다.
천우명이 아니다. 누구지?
이 정도라면 묵룡혼원공을 운용한 자신과 엇비슷하다. 적어도 미현에서 만났던 종려군이라는 여인에 필적하는 힘.
이것 봐라, 심심해 죽겠다 했더니 이렇게 또 재미있는 놈 하나를 던져 주네?
진무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담긴다.
어떤 놈일까? 어떤 놈이길래 이 정도로 강한 기운을 가지고 있을까?
누구든 간에 부수는 맛이 끝내줄 것은 분명하다.
파앙!
호승심과 흥분으로 가득 찬 진무는 순식간에 몸을 날렸다.
“…….”
황신은 홀연히 사라져 가는 진무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뭔 말을 하다 말고는…… 직접 찾아가시려는 건가?
아니, 그런데 이 소리는 뭐지?
귓가에 들려오는 엄청난 폭음. 굳이 청력이 좋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강렬한 소음이었다.
더욱이 이 기세…… 설마 그때처럼 또 괴물 한 마리가 나타난 건가? 어쩐지, 저 개천주가 저렇게 좋아라 뛰어간다 했더니.
황신은 구겨진 얼굴로 진무가 사라진 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어쨌든 그의 직분은 천주의 호위였기 때문이다.
“……?”
미친 천주 말고도 이런 괴물이 또 있을 줄이야.
한숨을 푹 내쉰 소동보도 재빨리 진무가 몸을 날린 방향으로 달렸다.
“호오?”
먼저 도착한 진무는 둘의 싸움이 맹렬하게 벌어지고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작은 건물 지붕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천주님 갑자기 그렇게 가시…… 응? 저자는?”
어느새 맨 마지막으로 쫓아온 소동보가 투덜거리려다 전투의 현장을 바라본다.
“저 노인, 아마도 산서상회의 주인 송여방 같은데……. 대단한 실력이군요. 천 단주님과 저리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니.”
소동보의 말에 황신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하는 것을 본 진무는 코웃음을 쳤다.
대등? 그래 보이는 건가?
쿠우웅!
진한 떨림에 이은 충돌음.
송여방이 뒤로 밀려나고 천우명이 빠른 속도로 뒤쫓으며 주먹을 퍼부었다.
저 정도는 이상할 것이 없다. 천우명의 붕권은 기본적으로 적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 연환권. 와중에 강기를 머금었으니 한 방 한 방의 위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 당연했다.
“과연 붕권! 와, 저 정도로 몰아치면 막는 것도 힘들겠는데요?”
“천 단주께서 사패오왕 중 최고라고 하시더니 과연 틀리지 않는 모양입니다.”
“저런 위력이면 주변에 은신하기도 힘들겠어.”
“그러게 말입니다, 형님. 와, 천 단주님의 실력에 대해서는 할머님께 말로만 들었는데.”
“잘 봐 두자. 열심히 해서 우리도 언젠가 저렇게 강해져야지.”
“암요. 미래에 사패오왕의 이름을 이어받을 저희가 아닙니까?”
소동보에 이어 말 없는 황신마저 연신 감탄사를 터트린다.
죽이 짝짝 맞는 게 귀엽긴 한데 사패오왕? 꿈 깨라, 이 자식들아.
지금 상황에 대해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것들이.
“…….”
천우명과 송여방의 싸움.
계속해서 몰아붙이고 있으니 천우명이 승기를 잡은 것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그건 모르고 하는 소리다. 천우명은 지금 사력을 다하고 있다. 그에 반해…….
묘한 새끼네. 어떻게 저렇게 여유로울 수 있지?
천우명을 그리 약하게 훈련시켜 놓은 것이 아닌데.
가늘게 뜬 눈으로 송여방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진무의 눈에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치고 들어가는 천우명이 보였다.
기회를 잡은 것이다.
주먹이 송여방의 왼쪽 아래에서 사선으로 솟구쳐 오른다.
송여방의 중심이 살짝 흐트러졌으니, 저런 경우 백이면 백 늑골 하나쯤은 내줘야 하는…… 어?
순간적으로 진무의 눈동자에 이채가 스쳤다.
츄릿!
이어 부드럽게 휘어진 송여방의 검 끝이 천우명의 어깻죽지를 가르고 지나가자 천우명이 얼굴을 찡그리며 물러났다.
“하아! 아깝다. 저 상황에서의 반격이라니. 송여방이 운이 좋았네요.”
어느새 관객이 되어 버린 소동보가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
방금 운이 좋았던 것은 천우명이었다.
천우명의 공격은 완벽했다.
하지만 그의 주먹이 닿으려던 찰나 송여방의 몸에서 일어난, 정체를 알 수 없는 투명한 막.
호신강기(護身罡氣)? 아니, 그것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마치 기운이 살아 있는 것처럼 천우명의 주먹에 실린 기운을 막아 내고 송여방의 몸을 보호했다.
검극이 날아왔을 때 몸을 비틀지 않았으면 천우명의 목에는 지금쯤 구멍이 뚫렸을 것이다.
“하압!”
거친 기합성과 함께 다시 천우명의 무지막지한 공격이 이어졌다.
진무의 시선은 오직 송여방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천우명의 공격이 스치는 순간순간 생성되는 투명한 막이 주먹에 실린 기운을 흡수하며 비껴 내고 있다. 주먹이 격중되는 것처럼 보여도 타격을 입었을 리가 없다.
문제는 천우명이 지쳐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거 봐라? 저거 그냥 두면 위험하겠는데?”
진무가 일어나자 소동보와 황신이 의아하게 쳐다본다.
“직접 하시게요?”
“천 단주님께서 거의 다 이기셨는데. 아무리 천주님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분이라지만 지금 끼어들면 그분의 자존심이…….”
“…….”
물론 그렇지.
애초에 싸움 구경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진무였다. 박빙의 승부가 펼쳐진다 싶으면 그게 무슨 상황이건 열과 성을 다한 응원까지 일삼을 정도로.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존심을 세워 주는 것도 근소한 차이로 이길 수 있을 때나 하는 거지, 저러다가는 아까운 내 새끼가 죽는다.
하는 짓을 봐서는 투명한 막에 대해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천우명 스스로도 송여방의 상대가 되지 못함을 몸으로 깨닫고 있을 것이 분명할 터.
그럼에도 저리도 끈질기게 싸우려는 것은 아마 뒤에 싸울 나를 위해 조금이라도 힘을 빼 놓으려는 심산이겠지.
칼에 맞아 생긴 상처에서 붉은 피가 솟구쳐 오를 때마다 진무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충성스럽게도 멍청한 놈 같으니.
상대가 안 되면 도망칠 생각부터 했어야지.
* * *
차아악!
검이 훑고 지나간 가슴이 거칠게 찢어진다.
재빨리 물러난 천우명이 얼굴을 찡그리며 송여방을 노려보았다.
“후우, 후우…… 제법이구나, 천우명.”
“…….”
송여방이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며 거들먹거렸지만 천우명은 깊은 상처를 입고도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볼 뿐이었다.
송여방은 강해도 너무 강했다.
그리 수많은 공격을 퍼부었고 몇 방은 송여방의 몸을 스친 것도 같은데 도무지 손에 느낌이 오지 않는다.
와중에 검은 또 어찌나 빠른지…….
“허억, 허억. 뭐 하는 새끼야? 뭔데 이렇게 강하지?”
피로 범벅이 되어 버린 두 팔을 늘어뜨린 천우명이 송여방을 향해 물었다.
“흠, 나를 알고 찾아온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더냐?”
“어떤 거? 니가 씨발, 상인 나부랭이 새끼인 거? 아니면 그냥 이름 없는 궁의 졸개라는 거?”
“……덩치에 맞지 않게 입만 산 놈 같으니.”
천우명의 이죽거림에 송여방이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가 슬쩍 시선을 돌려 주위를 훑었다.
“저런, 벌써 네놈의 수하들이 시신을 수습해 가기 위해 온 모양이구나.”
“……?”
“어차피 다 죽을 것을…….”
송여방의 힐끗거림을 따라 천우명이 고개를 돌린다.
지붕 위에 서 있는 젊은 사내 셋. 싸움에 집중하느라 다가와 지켜보고 있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젠장…….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여 드렸군.”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마음속에는 불길이 일어난다.
천주님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반면 너무도 멀쩡한 송여방. 이래서야 아무것도 해 놓은 것이 없는 꼴이다.
천우명은 언제나 자신이 선두에 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싸움에서 그의 역할은 진무가 차분히 걸을 수 있도록 길을 닦아 놓는 것.
누가 그리 명한 것도 아니었고 누가 그리 정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이 자신의 충성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너무 사렸어. 그깟 검 따위가 뭐가 무섭다고. 피하긴 왜 피했는지, 후우…….”
어느 순간 천우명의 눈빛이 바뀐다. 이전에 없던 살벌한 투기, 주먹 하나하나에 목숨을 거는 자들이 가진 그것이 그의 몸에서 넘실거리며 피어올랐다.
“호오? 마지막 발악이라도 해 볼 모양이구나. 하지만 그래 봐야…… 결과는 같다!”
쏴아악!
천우명의 변화를 비웃은 송여방의 몸이 지면을 낮게 스치며 날아든다.
망할 놈이 지가 무슨 제비 새끼도 아닌 것이.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띄운 천우명이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이제부터는 생각이라는 것 자체를 배제하기로 했다. 상대가 이렇게 움직이면 자신은 이렇게 움직이고, 저렇게 움직이고.
그딴 게 뭐가 그리 대수라고.
자신에게는 한 가지 방법뿐이다. 무조건적인 돌진.
상대가 막으면 막은 대로 부수고, 피하면 피하는 대로 쫓아가 조진다.
그것이 자신이 아는, 길을 여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압!”
두 발로 지면을 힘껏 밟자 끓어오른 투기가 모조리 뿜어져 주먹에 어리고 수직으로 떨어진다.
쿠우웅!
하늘을 밀어 낸다는 야곤배천.
찍어 누른 주먹이 대지와 충돌하며 거대한 충격파를 만들고, 땅에 막힌 충격파는 곧바로 솟구쳐 올라 수십여 장의 공간을 장악해 버렸다.
자신의 시야를 가리려는 빤한 수라 생각한 송여방이 검을 직각으로 그었다.
콰드드드.
기와 기의 마찰음이 날카롭게 울려 퍼지고, 천우명이 만들어 낸 충격파에 균열이 일어났다.
쩌저저적!
송여방은 눈꽃처럼 부서지는 기의 조각들을 흩어 내며 그 중심에 있을 천우명을 찾았다.
하지만 땅바닥을 때렸을 때 일어난 먼지로 인해 앞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흥! 무의미한 짓!”
취리릿!
검을 잡아당겼다 빠르게 찌르듯이 뻗은 검극에서 강기가 연속적으로 쏘아졌다.
쾅! 콰쾅! 쾅쾅!
거센 폭발음이 쉬지 않고 터져 나왔고, 먼지는 더욱 짙어져 시야를 완전히 가린다.
“…….”
그런데 이 더러운 기분은 뭘까?
송여방이 몸을 물리며 재차 공격을 가하려는 찰나, 먼지 속에서 무언가 날아온다.
후아악!
거대한 주먹!
송여방은 재빨리 검 면의 끝부분에 손을 더해 막았다.
따아앙!
거칠게 틀어박힌 주먹에 자신의 내기를 담아 넣은 검날이 활처럼 휘어진다.
“……!”
강기에 격중당해 이곳저곳에 상처를 입어 혈신(血身)이 된 천우명의 모습.
설마, 강기를 버티면서 다가왔다고?
밀어 튕기려 했던 주먹이 갑자기 뒤로 물러나더니 반대편 주먹이 재차 같은 곳으로 날아온다.
“두 번이나 가능할 것 같으냐!”
취릿!
면이 아닌 날 방향.
주먹째로 잘라 버리리라.
날아 들어오는 주먹을 통째로 베어 버리려고 작정한 송여방이 검을 세로로 세워 막았다.
떠어엉!
“……!”
천우명의 주먹이 멈추지 않았다.
송여방의 검이 그의 주먹에 어린 강기를 갈라놓고 피륙을 잘라 내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 번째 주먹이 같은 곳을 향해 빠르게 날아온다.
떠어엉!
똑같은 방법의 주먹, 또 그 뒤를 이은 주먹.
계속 막아 봐라, 개자식아.
언젠간 뚫리겠지. 주먹이 베이면 뼈로 때리고, 주먹 뼈가 잘리면 팔목 뼈로 때린다.
기필코 네놈의 검을 부수고, 가슴에 주먹을 박아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