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83
283화
떵! 떵떵! 떠엉!
제 손은 잃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우직하리만큼 내질러지는 천우명의 주먹.
어느 순간 송여방은 팔꿈치가 시큰해짐을 느꼈다.
“크으…….”
몸을 빼고 싶었으나 약해지기는커녕 주먹의 위력과 속도가 점점 더해졌기에 계속 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천우명의 손에서 튄 피가 송여방의 옷을 물들이고, 충격이 계속해서 팔꿈치에 축적되었다.
“으아아!”
떵! 떠덩! 떵!
살점이 베이고 뼈가 다 드러난 주먹임에도 천우명은 고통조차 잊은 듯 우레와 같은 기합을 내지르며 칼날을 때려 댔다.
더해지고 더해지는 충격에 밀려 땅바닥에 긴 족적마저 남기며 물러나던 송여방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이, 이런 미친놈이!”
천우명의 저돌적인 힘을 이기지 못하고 팔이 구부러지는가 싶더니, 이내 가슴을 짓누르며 파고드는 검.
더 버텼다가는 이 말도 안 되는 무식한 공격에 이대로 가슴이 쪼개질 판이었다. 거칠게 욕설을 내뱉은 송여방은 재빨리 검을 회수하며 천우명의 턱을 향해 무릎을 찍어 올렸다.
쩌억! 퍼어억!
무릎에 맞아 솟구치는 와중에도 송여방의 가슴팍을 때리는 주먹.
“크!”
미약한 신음이 터져 나온다.
전형적인 치고받기.
주먹이 닿지는 않았다. 아니, 닿을 수는 없다.
송여방이 익히고 있는 절대의 방어기 기산강막(氣散罡膜). 아무리 대단한 기운이라고 해도 기운 자체를 흩어 버리는 그 사술을 뚫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너무 가까웠기 때문일까?
아니면 천우명의 주먹에 독하디독한 의지가 담겨 있었기 때문일까?
둔탁한 충격파가 그의 가슴을 뚫고 들어와 내부를 온통 흔들어 놓았다.
“이 개자식!”
자존심이 상한 송여방이 몸을 꼿꼿이 세우는 순간 밀려났던 천우명이 또다시 주먹을 움켜쥐고 돌진해 왔다.
쩌어엉!
온 힘을 다해 후려친 검과 천우명의 주먹이 격돌해 거친 충격파를 만든다.
피를 토하고 밀리면서도 계속해서 덤벼드는 천우명의 모습에 송여방은 참을 수 없는 짜증이 치밀어 오름을 느꼈다.
고작 사패오왕 따위가 자신에게 이따위 더러운 충격을 느끼게 하다니!
우우웅!
머리끝까지 뻗친 분노와 함께 송여방의 검에 가공할 기운이 어린다.
“갈가리 찢어 버리겠다!”
슈가가각!
힘껏 휘돌려지는 검의 움직임에 맞춰 지긋지긋한 주먹이 또다시 날아들었다.
송여방의 검이 주먹은 물론 천우명의 몸을 찢어발길 기세로 휘둘러진다.
따아아앙!
“……!”
천우명의 몸을 잘라 내려는 순간 거칠게 튕겨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송여방의 검.
멈춰 버린 천우명과 그의 앞을 막고 선 젊은…… 부하 놈의 뒷모습?
“이거 참, 손목이 다 욱신거리네.”
“……?”
시답잖은 목소리로 감탄하는 젊은 놈의 손에 들린 검이 사선으로 뻗어져 있다.
고작 시신이나 거두어 갈 어린놈이 자신의 검을 한 손으로 튕겨 버렸다고? 온 힘이 담긴 그것을? 어떻게?
뭔가 어안이 벙벙한 느낌이다.
“천주님!”
천우명의 외침.
천주님? 천주님이라고?
송여방은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천우명이 어째서 저 어린놈을 향해 천주님이라고 부른단 말인가?
혼란스러움에 송여방이 잠시 행동을 멈춘 사이, 진무는 천우명을 살폈다.
“쯧, 손이 엉망이 됐네.”
“……더 할 수 있습니다. 놈의 팔 하나 정도는 작살 낼 수 있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
진무는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머금고 발악하듯 외치는 그의 난자된 두 주먹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 처참한 모습에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져 오는 한편, 거대하게 차오르는 분노가 자다 깬 광룡처럼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걸레가 됐구만. 아주 걸레가 되었어. 이래 가지고 오늘 밤에 술잔이나 쥘 수 있겠냐?”
“……천주님.”
“그만하면 됐다.”
“…….”
“우명.”
“……예.”
“이제 나한테 맡겨.”
“……하지만.”
딱!
진무가 주먹을 쥐어 천우명의 머리를 가볍게 때렸다.
“나 이제 스물 조금 넘었다. 앞날이 구만리라고. 죽을 때까지 충성해도 먼저 죽을 놈이 벌써 뒈지려고 하면 어쩌자는 거야?”
“…….”
“황신!”
송여방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외친 진무의 앞에 황신이 섬전처럼 뛰어내렸다.
“데려가서 치료해.”
“예!”
진무의 명령에 황신과 소동보가 천우명을 양쪽에서 부축해 일으켰다.
“……죄송합니다.”
“죄송은 염병…….”
못내 송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는 천우명의 모습에 진무가 피식 웃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 약한 것들이 괜히 휩쓸려서 다치지 말고.”
손을 휘휘 내젓는 진무의 모습에 천우명을 이끌고 물러나는 황신과 소동보.
난입한 것도 모자라 자신을 완전히 배제하고 돌아가는 상황을 그제야 인지한 송여방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누구 마음대로 도망친단 말이더냐? 내 허락도 없이!”
살기를 사방으로 뿜어내며 외치는 그의 귓가로 섬뜩하리만치 낮은 일갈이 들려왔다.
“닥쳐. 내가 허락한 거니까.”
“……!”
천천히 몸을 돌려 선 진무의 심연 같은 흑요석 눈동자와 마주한 순간 송여방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났다.
눈을 뚫고 뇌리를 관통하는 듯한 느낌의 살기에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 버린 것이다.
두려움을 느꼈단 말인가? 이 내가? 대, 대체 이놈의 정체는?
충격을 애써 가라앉히며 진무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던 송여방은 무언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네, 네놈…… 무당지검?”
분명 그놈이다.
약관의 나이로 보이는 외모. 아무렇게나 대충 묶어 헝클어진 머리카락.
“어, 어찌 네놈이……?”
황당함을 이기지 못한 송여방의 말에 진무가 한숨을 내쉬었다.
“대가리나 꼬랑지나 반응이 하도 한결같아서 이젠 놀랍지도 않네.”
“…….”
“어찌 된 게 니들은 나만 보면 그렇게 놀라고 지랄들이냐?”
정제되지 않은 투박한 말투에 송여방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어째서 무당지검이란 말인가?
어째서 그가 사패천의 반란 세력과 함께…… 아니, 그 전에.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어째서 네놈이 천주인 게야?”
“미친 새끼. 니가 물어보면 내가 예, 이래서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해 줘야 하냐?”
“뭐라고?”
“대충 보니 그 종려군이라는 년이랑 비슷한 정도인 것 같은데.”
“……종려…… 네놈이 내궁주를 어찌?”
“직접 죽였는데 모를 리가 있나.”
“……죽, 죽였다고?”
송여방은 거대한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 참작인가? 하여간에 어마어마하더군. 씨팔, 그 엿 같은 강기에 뒈질 뻔한 걸 생각하면.”
“…….”
비공 참작. 대궁주에게 사사한 종려군의 독문무공이다.
정말로 무당지검이 그녀를 죽였단 말인가?
“그 병신 같은 두 놈에게 살막을 쓸어 버리라고 명령한 것도 니놈이겠지. 안 그래?”
“…….”
“거의 성공할 뻔했어. 때마침 내가 그곳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종려군에 이어 마군과 광도까지……. 전부 이놈이 한 짓이라고?
송여방의 눈이 점점 더 크게 뜨인다.
“아 참, 추가장 건은 좀 심했어. 죄도 없는 사람들을 죽이질 않나, 애를 납치하려고 들질 않나.”
“……설마 범정까지?”
“아, 이름이 범정이야? 하여간 지금쯤 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야. 세찬이가 고문에는 일가견이 있거든.”
“…….”
더 놀랄 정신도 없었다. 분명 범정이 칠음은맥의 아이를 확보했다는 전서구를 보내 왔었는데…… 그것마저 조작된 것이라니.
“하여간 이놈의 도문, 사람을 너무 친절하게 만들어 놓았다니까. 묻지도 않은 걸 죄 답해 줬네. 어떻게, 이제 시작할까?”
“…….”
진무의 이죽거림에 송여방은 석상이 된 듯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아니 모두가 놓친 사실.
무당지검 진무.
아니, 이제는 사패천의 반란 세력을 이끄는 그가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그에 대해 놓친 것이 지금의 결과를 만든 것이다.
대랑 오척산의 죽음과 상관평의 좌천. 내궁주의 죽음과 삼궁의 몰락.
그리고 사패천을 집어삼키고 있던 자신의 산서상회까지…….
“허……. 허허허.”
너무 놀랐기 때문일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멍하니 벌어진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고작 약관밖에 되지 않은 핏덩이에게…….”
“…….”
“백년대계를 세워 온 궁이 이리도 휘둘렸단 말인가? 고작 둑방의 작은 틈 하나를 발견하지 못해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회한 서린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송여방의 말에 진무가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다.
“쯧, 또 백 년이야? 대체 그때 뭔 일이 있었던 거냐? 뭘 그렇게 오래 준비했어?”
“…….”
“참, 지랄도 가지가지다.”
“…….”
“니들은 준비부터가 틀려먹었어.”
“틀렸다? 무엇이 틀렸단 말이냐?”
“중원 제패가 고수 몇 명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아?”
“…….”
차게 비웃으며 대꾸하는 말에 송여방이 웃음을 멈추고 싸늘한 표정으로 진무를 노려본다.
“그 정도였으면 내가 예전에 다 차지했어, 이 멍청한 노인네야. 뭐, 많이 봐줘서 중원 삼패 중 한 곳 정도는 차지할 수 있겠지. 근데 중원 전체는 불가능해.”
“…….”
“평소에는 정사마로 나뉘어서 서로가 잡아먹을 듯이 굴다가도, 중원 무림의 위기가 닥치면 피를 나눈 형제처럼 손을 잡고 대항한단 말이야.”
“…….”
“웃기지? 참 웃긴 일이야. 그래 놓고는 문제가 해결되면 언제 동맹을 맺었냐는 듯 도로 죽일 듯이 싸우지.”
“…….”
“이놈의 중원이 그래. 한 사람이 주인이 되는 꼴을 절대로 못 보거든. 남 잘되는 꼴은 절대 못 보는 놈들이라니까?”
진무가 과거를 회상하듯이 키득거렸다.
“……어린놈이 마치 해 본 것처럼 말하는구나.”
“…….”
해 봤지, 오래전에. 하긴 이 몸뚱어리로 말해 봐야 믿지도 않겠지만.
“뭐, 어쨌든 니들은 안 될 일인데 나는 가능할 것 같기도 해. 나름 자신도 생겼고.”
진무의 말에 송여방이 미간을 깊이 찌푸렸다.
제 놈이 무슨 수로.
“그래. 중원은 내가 먹을 거야. 근데 니들이 손을 댔단 말이지.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놈들이 나타나서는 주인인 양 행세를 하는 것도 모자라,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짓들을 해 가면서.”
싫어하는 짓?
약간의 의문이 일었지만, 송여방은 진무의 말을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놈이 무엇이든, 어떤 망상을 가지고 있든 자신들이 세운 대계를 방해했으니 죽음으로 갚아야 할 것이다.
무당지검이든 사패천의 새로운 천주든, 이 자리에서 죽이고 나아가 사패오왕이라 불리는 놈들을 모조리 죽인다.
그리고 다시 차근히 준비할 것이다.
명이 다해 죽으면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굳은 의지로 이어진 새로운 궁주가 대계를 향해 다가갈 것이다.
오래전 그때, 피맺힌 원한을 갚기 위해 중원 무림에서 검을 들고 사는 자들을 모조리 말살하고, 나아가 배덕(背德)의 탈을 쓰고 세워진 이 나라를 무너뜨릴 것이다.
휘리리리.
검을 늘어뜨린 송여방의 몸이 곧게 서고, 그가 끌어 올린 기운이 이내 바람이 되어 그의 옷자락을 흩날리며 회오리를 일으킨다.
죽일 것이다.
무당지검 진무를, 산서상회에 들이닥친 모든 무림인을.
“…….”
한계를 넘어설 만큼의 가공할 기운을 끌어 올리고 있는 송여방의 모습을 진무가 지그시 바라본다.
“그래, 무림인이란 그런 거야. 자신의 뜻을 세우기 위해서는 칼을 들어야 하지.”
적어도 이 무림에서는 이기는 자의 뜻이 정의고, 살아남은 이의 말이 진실이니까.
그리고 넌 큰 잘못을 했다.
그냥은 안 죽인다.
걸레처럼 변해 버린 우명의 손값은 받아야 하니까. 아주 비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