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89
289화
진무가 말을 멈추고 잠시간 뜸을 들이다 자신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음을 느끼고 입을 열었다.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산서상회는 일궁이라는 자들이었습니다.”
“일궁?”
“예. 그들은 관인들과 결탁해 산서의 상단들은 물론, 죄 없는 민초들까지 억압하고 있었습니다. 와중에 사패천을 이용해 대규모로 아이들을 납치해서 어디론가 보내고 있었고요. 그 수가 물경 천을 넘는다고 합니다.”
“허!”
오백에서 조금 더 보탰지만 뭐 어떠랴?
“사패천의 반란 세력이 산서상회를 공격한 것은 민초들을 해방하고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반란을 일으킨 사패오왕 중 셋은 그 같은 일에 분개해 사패천의 본성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믿을 수가 없네. 사파의 간악한 무리가 사람들을 납치해 팔아먹은 것은 사황 때도 마찬가지였네. 물론 사황의 지시였겠지. 그런데 그들이 아이들의 납치에 분개해서 반란을 일으켰다고?”
“…….”
종남의 유진산이 신랄한 어조로 반박했다.
뭐, 내가 애들을 납치하라고 지시해? 니가 봤냐? 망할 놈이 사람을 어떻게 보고.
부글부글 끓는 화를 겨우 가라앉힌 진무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과거에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하다 보니 또 열 받네. 유진산, 너도 나중에 기대해라.
진무는 종남에서 세작을 잡을 때 방해했던 유진산을 줘 패 놓지 못한 것이 후회됐다.
“제 말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입니다. 여러분께서 원하신다면 무당지검의 이름을 걸 수도 있습니다.”
“음…….”
돈도 아니고, 그깟 이름이야 몇 번도 걸 수 있는 것 아닌가 싶겠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바는 달랐다. 무당지검이라는 이름은 무당의 자존심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재미있군. 사패천에 깊은 원한을 가진 무당의 제자가 그들을 옹호할 줄은 몰랐네. 자네 말을 들으면 사특한 무리들이 정의라도 실현하려는 줄 알겠군.”
“…….”
한참 동안 말이 없었던 남궁무휴가 입가에 비웃음을 가득 걸어 물고 진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자네의 말은 알겠네. 한데 자네는 어찌 그리도 잘 아는가? 어찌 그리 잘 알기에 그들을 대신하여 항변하는가?”
허를 찔러 오는 듯한 남궁무휴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진무를 향한다.
그 시선을 느낀 진무는 숨을 한 번 들이쉰 뒤, 결정적인 한마디를 뱉었다.
“제가 그들을 돕고 있기 때문입니다.”
“뭣이?”
진무의 대답에 좌중에서 탄식, 혹은 경악이 터져 나왔다.
“아니, 무당지검이 그 간악한 자들을 항변한 것도 모자라 돕고 있다고?”
“정파의 태산북두라 불렸던 무당의 제자가 되어 사파와 결탁하였다 말하고 있는 것인가!”
탄식과 경악은 곧장 거센 비난이 되어 진무를 향했다. 하지만 진무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했다.
손을 들어 좌중을 진정시킨 남궁무휴가 진무를 향해 말했다.
“허허, 무당지검께서는 참으로 대단하시구먼. 내 듣기로 저들의 반란 세력에 과거 무당의 혈겁을 주도했던 철혈붕권이 있음을 아는데 그럼에도 저들을 돕는다? 공식적으로는 정파 무림의 적이요, 사사롭게는 문파 불공대천의 원수를?”
“…….”
“어려서 그런지 사리 분별이 안 되는 것인가? 아니면 파문을 당하려 작정이라도 한 것인가?”
남궁무휴의 말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기름을 부은 꼴이었다.
옆에 있던 명현마저도 얼굴을 찡그리며 난색을 표하던 그때, 진무만이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다시금 입을 열었다.
“창천 어른.”
“…….”
진무의 부름에 남궁무휴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그 한마디에 웅성거림이 잦아들어서가 아니라, 진무가 목소리에 진기를 담아 좌중을 짓눌러 버렸기 때문이다.
“말씀대로 어려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따르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나 무당에서는 해묵은 원한에 사로잡혀 편견으로 바라보라는 가르침을 주지 않습니다.”
“뭐라?”
진무의 또렷한 목소리가 잔잔하게 회의장 안을 휘돌자 사람들의 표정이 진중하게 가라앉았다.
“제 스승님이 제게 가르치시길, 과거에 발목이 잡히면 나아갈 수 없다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습니다.”
“…….”
“해결되어야 하지요. 무당지검으로서 과거의 원한은 반드시 받아 낼 것입니다. 그들의 사죄를 받을 것이고, 고개를 숙이게 만들 것입니다. 하나 그것이 똑같은 방법이어서는 안 된다 배웠습니다.”
진무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지자 회의장 안의 수뇌들이 그의 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숨소리를 낮춘다.
“저들보다 강해지는 것. 저들을 칼로써 해하지 않고 굴복시킴으로 계도하고 잘못을 뉘우치게 하여 당당하게 사죄를 받는 것. 그것이 도가의 길이며 무당이 나아갈 길이라고, 저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
“그리고, 저는, 아니 무당은 옳은 일을 행함에 정사의 구분이 있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뭣이…… 이…….”
순식간에 분위기를 사로잡아 버린 진무의 모습에 남궁무휴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진무의 말은 정파가 오랫동안 품어 온 의기(義氣)의 한중간을 관통하는 말이었고, 그만큼 모두의 심중에 진한 파문을 남긴 것이다.
더욱이 때맞춰 혜조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떼었다.
“허허, 이거 참……. 이거 백 년을 넘게 살아온 내가 다 부끄러워지는 구먼. 옳은 일을 함에는 정사의 구분이 없다니, 무당이 참으로 걸출한 인재를 길러 내었어.”
혜조의 감탄에 명현의 얼굴에 자부심이 떠오르는 반면, 남궁무휴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썩어 들어갈 듯이 시커멓게 변했다.
혜조의 저 말로 인해 마치 자신이 진무에게 가르침을 받은 듯한 더러운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모여 있는 사람들이 진무를 바라보는 눈빛마저 달라지고 있었다.
“좋네. 내 실언은 인정하지. 나 역시 자네의 말처럼 옳은 일을 하는 데 정사의 구분이 있다 여기는 것은 아닐세.”
“…….”
주변의 분위기를 파악했기 때문인지 의외로 쉽게 인정을 해 오는 남궁무휴의 모습에 진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음충한 자식이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믿기지는 않지만, 저들이 민초들을 구하고, 납치된 아이들을 구했다고 치세. 하지만 나는 그것이 저들에게 길을 내어 줘야 하는 합당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지 않네.”
“…….”
“자네의 높은 뜻은 알겠으나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 법이지. 나는 차라리 이번 기회를 이용해 사패천의 남하를 막고, 천중산의 본성을 쓸어 버리는 것이 이후를 위해 나을 것이라 생각하네.”
남궁무휴의 뜻은 확고했다. 중원에서 사파를 무너뜨리는 중심에 자신이 있다면 대대손손 칭송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안 됩니다.”
“……뭐?”
진무의 단호한 말에 남궁무휴의 미간이 와락 찌푸려졌다.
“지금은 그들과 동맹을 맺어야 할 때입니다.”
“뭐라? 동맹을 해야 한다? 그 간악한 놈들과?”
“예.”
“그런 말도 안 되는!”
“…….”
남궁무휴가 화를 내려다가 혜조를 의식하고 콧김을 거칠게 뿜으며 숨을 골랐다.
“이유가 뭔가?”
“……궁이 가진 힘이 정사의 힘을 모아야만 이겨 낼 수 있을 정도로 강하기 때문입니다.”
“강하다?”
“예.”
“무슨 근거로? 이미 정무맹에서 저들의 삼궁이 축출되었고, 자네의 말대로라면 사패천에서 일궁이 축출된 것인데?”
“그랬지요.”
“그랬…….”
이 자식이 지금 자신을 놀리는 것인가?
남궁무휴가 크게 치뜬 눈으로 진무를 노려본다.
“실은 제가 그들과 싸워 보았습니다.”
“그야, 익히…….”
“내궁주라는 여인, 그리고 일궁주라는 무인. 다행히 그들을 죽일 수는 있었으나 그들은 진정으로 강했습니다. 정무칠성보다 강하고, 사패오왕보다 강합니다.”
“……말인즉슨 정무칠성보다 강한 무인 둘의 목숨을 자네가 거두었다?”
“예.”
“…….”
“또한, 저들은 그 긴 세월 동안 음지에 숨어 정무맹과 사패천을 무너뜨릴 계획까지 세워 왔던 자들이지요. 필시 이것이 다가 아닐 것입니다. 분명 그 배후에…….”
“그만!”
“……?”
“내 잘못 이해하지 않았다면 자네가 정무칠성, 이 나나 여기 팽의방보다 강하다고 말하는 것인가?”
“예.”
진무가 조금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마치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뭐, 저런 미친놈이…….”
대답은 팽의방에게서 터져 나왔고, 입을 다문 남궁무휴는 진무가 과대망상에 걸린 게 아닌가 의심했다.
하긴, 어린 나이에 강한 힘을 얻게 되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제가 제일인 줄 착각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남궁무휴는 진무도 그런 것으로 생각했다. 그게 아니고서는 저 과한 자신감을 설명할 수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자신보다 강하다고 하다니, 제 놈은 지금 자신이 무슨 망발을 지껄이고 있는지 알기는 하는 걸까?
대체 이 미친놈을 어찌하는가?
“자네의 말, 증명할 수 있겠는가?”
“…….”
진무가 기가 찬 표정으로 이죽거리는 남궁무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당연히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이놈아.
증명? 그까짓 거 뭐가 그리 어렵다고.
“좋습니다. 어떻게 증명할까요?”
“……허 참.”
남궁무휴로서는 진무의 당돌함에 헛웃음마저 터질 지경이었다.
어린놈의 자식이 감히 눈깔을 똑바로 뜨고 날 쳐다봐?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감히 자신에게 그리하지 못하는데?
당장이라도 진무의 멱살을 잡아 보란 듯이 땅바닥에 패대기를 쳐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직접 시험해 보시겠습니까?”
“……뭐라?”
슬쩍 걸어 오는 진무의 도발에 남궁무휴의 눈 주위가 쉴 새 없이 씰룩거렸다.
자, 어서 하겠다고 해라, 남궁무휴. 아까부터 몇 번이나 주먹을 움켜쥐었는지 모르겠다.
“듣자 듣자 하니 오만하기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감히 북진의 수좌이신 창천께 그따위 망발을 하다니! 무당지검은 사문에서 예의도 배우지 못했는가!”
옆에 있던 팽의방이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성을 지르며 삿대질을 했다. 하지만 진무는 개의치 않고 이번에는 팽의방에게 담담히 물었다.
“그럼 광호 어른께서 하시겠습니까?”
“뭐, 뭣이라?”
팽의방이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씩씩거린다.
너도 상관없다. 아니, 차라리 쌍으로 덤벼라, 이 새끼들아.
아주 아작을 내어 잘근잘근 짓밟아 줄 테니까.
“흐음, 이거 참.”
또 끼어드는 혜조의 말에 남궁무휴가 뱁새눈을 뜨고 그를 째려봤다. 이제는 아주 미간이 찡그려지다 못해 골이 팰 지경이었다.
“뭡니까? 또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는 겁니까?”
기분이 완전히 상한 남궁무휴의 말투는 최소한의 예를 지키던 이전과 달리 날 선 칼처럼 예리했다.
“허허, 창천 시주. 내 들어 보니 진무 도장이 자신의 경지를 입증하지 않고서는 그의 말을 모두가 신뢰하기 어렵겠구려.”
당연한 말이었다.
저런 미친놈의 말을 누가 곧이곧대로 믿겠는가?
“진무 도장이 강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이미 전 중원이 다 아는 사실이오. 이 자리에서 그의 경지를 입증할 수 있는 사람은 창천 시주와 광호 시주뿐일 것이나, 직접 상대하시기에는 두 분의 연배와 지위를 생각지 아니할 수 없고…….”
“…….”
“해서 내 제안을 하나 해도 되겠소이까?”
“말씀해 보시지요.”
“수뇌들을 제외하고 각 파의 무인들이 북진의 곳곳에 배치되어 흩어진 지금, 이곳 정주를 지키고 있는 무인들의 대다수가 소림이니 그들을 통해 진무 도장의 힘을 증명하는 것이오.”
“……설마?”
남궁무휴의 말에 혜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때마침 사대금강과 나한전의 무인들이 함께 이곳에 와 있으니 금강나한진(金剛羅漢陳)이면 충분할 것 같소만, 모두 어떠시오?”
“……!”
혜조의 말은 모두의 얼굴을 경악으로 물들이기 충분했다.
무림에 존재하는 수많은 문파는 그들 나름대로 적을 상대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진법을 연구하고 훈련한다.
이름 있는 진법을 가진다는 것은 문파의 자랑이기 때문이다.
화산의 매화검진이 그랬고, 무당의 태극검진이 그랬으며 곤륜의 태허도룡진이 그러했다.
그러나 그들 누구도 섣불리 자신의 검진을 수좌에 놓지는 못했다.
무림이 역사를 이어 온 이래, 가장 높은 자리는 항상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사대금강과 백팔 명의 나한에 의해 펼쳐지는 대규모의 진법, 금강나한진.
오래전 일월마교의 대장로이자 마교 서열 삼 위의 강자였던 마군 괴월의 걸음을 막아 내었던 최강의 진법이었다.
비록 최후에 그의 한쪽 팔을 날린 것은 검성 철지량이나, 그를 결정적으로 몰아붙인 것은 나한진이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곤륜의 풍환자와도 동수를 이루었던 괴월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런 나한진과의 대결이라는 패를 꺼낸 혜조의 의견에 누구도 쉬이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감히 도전하지는 않았으나 정무칠성이라 해도 그 위명을 넘을 수 있으리라고는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좋습니다.”
“……응?”
“……뭐?”
흔쾌히 터져 나온 대답에 모두가 멍한 표정으로 진무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진무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중원 최강의 진법으로 군림해 온 소림의 금강나한진.
그래, 그쯤은 되어야지. 그래야 다들 알아먹을 것 아닌가?
내가 최강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