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92
292화
진무가 나서자 모두가 우려를 표해 왔다.
“진무 도장, 아니 될 말이오. 조금 전 그 같은 대결을 치르고 창천 어른의 시험에 응한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소.”
“…….”
제갈웅현, 그래도 꼴에 제갈본가의 가주라고 공과 사는 구분하는 모양이다. 일단 너는 우호 세력.
“물러나게. 우리가 보기에 진무 도장은 이미 무위를 충분히 입증하였어. 당금 정파의 누구라도 금강나한진을 넘은 도장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야.”
태허가 말을 도왔고, 악연을 맺었던 종남의 유진산까지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진무야, 모두의 의견이 그러하지 않으냐? 이것은 아니 될 말이다. 상대는 창천 어른이야. 북진의 문제는 맹주께 연락을 보낸 후 대군사와 논의하면 되는 일이다.”
진무의 손을 꼭 쥐고 만류하는 명현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했다.
걱정해 주는 건 좋은데 그래도 반드시 해야만 한다.
남궁무휴 저 자식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짓이겨 놓아야 사람들이 내가 최강인 줄 알지.
그리고 모든 계획의 완성은 나한진이 아닌 정무칠성을 넘는 것에 있었다.
“창천 시주!”
급기야 혜조마저 목소리를 높인다.
평소에 누구보다 인자한 그였으나, 창천의 그릇된 행동이 도를 넘었음을 알기에 참지 못하고 나선 것이다.
“그만하시오. 정파의 어른으로 어찌 이런 부끄러운 행동을 보인단 말이오!”
“…….”
혜조가 무림의 큰 어른으로서 꾸짖었으나 남궁무휴의 귓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뭐? 입증해? 누구라도 금강나한진을 넘은 저놈을 무시하지 못한다고?
개소리. 전부 개소리다.
그까짓 나한진 열 번, 아니 백 번도 무너뜨릴 수 있다.
도대체 다들 이게 뭐 하는 짓이란 말인가? 북진의 수좌인 자신의 앞에서 무당지검을 두둔해? 감히?
평소에는 꼬리를 내리고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내 앞에서 고개를 숙여 대던 놈들이?
남궁무휴의 눈빛은 이미 시기심을 넘어 분노와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다들 뭐 하는 짓이오! 어찌 감히 북진의 수좌이신 창천께 이 같은 무례를 범한단 말인가!”
옆에서 듣고 있던 팽의방이 모두를 꾸짖듯이 매섭게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다들 진정하십시오.”
진무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사람들을 안정시키며 모두의 앞으로 나섰다.
일부러 한 행동이었다.
원래 이런 경우에는 무조건 겸손을 보여 줘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이 여세를 몰아 남궁무휴를 맞아도 싼 놈으로 만들고, 자신의 입지를 굳힌다.
“모두의 마음은 알고 있습니다. 하나, 창천 어른의 마음을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기운을 담아 퍼트린 목소리는 거장의 연주처럼 모두의 귓가에 잔잔하게 파고들었다.
“저도 압니다. 의심스럽겠지요. 누구보다 경험이 많으신 창천 어른이십니다. 저를 한 번 더 시험해서 제 말을 다시 한번 확인하시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일단은 물러나 주십시오.”
“……음, 하지만.”
“물러나 주십시오.”
모두를 향해 포권하며 허리를 직각으로 숙이는 진무의 모습에 사람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저리 이해심이 넘치다니.
과연 무당이다. 젊디젊은 도사가 생각마저 깊지 않은가?
이곳저곳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진무의 귓가에 들려온다.
그에 반해, 남궁무휴와 팽의방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멸시마저 어리기 시작했다.
“저는 사문으로부터 억압받는 상황에서도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배웠습니다. 비록 제가 금강나한진과 대결을 끝낸 뒤라 많이 지쳐 있기는 하지만!”
진무가 자신이 지쳐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듯 말을 끊었다.
이것이야말로 사기의 기초.
그 말 하나로 듣고 있는 이들은 ‘진무가 몹시 지쳐 있다.’라는 생각을 머릿속 깊이 각인하게 될 것이다.
“의혹이 있다면 반드시 풀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하니 정무 칠성이자 무림의 큰 어른, 창천 남궁 대협의 시험을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최선을 다해 임할 뿐입니다.”
“…….”
모두가 진무의 언변에 휘둘려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본 남궁무휴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다.
“하지만, 지금의 힘으로는 창천 어른의 시험에 누가 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아마 일 초도 버티지 못하겠지요.”
표정과 목소리에 안타까움마저 싣자 이제는 모두가 진무에게 동화된 듯이 탄식을 터트린다.
자, 지금부터는 미끼.
“하나 하늘의 보살핌이 있어 제가 무당의 양의심공을 익혔습니다.”
“…….”
“양의는 음양의 조화이기에 부득불 무당의 제자임에도 방문좌도의 무공을 익혔음을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께 고하는 바입니다.”
진무는 잠시 말을 멈추고 분위기를 살폈다. 혹여나 사파의 무공을 익혔다는 사실에 언짢아하는 자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들어 알고 있네.”
이미 회의장에서 들은 이야기라서 그런지 각 파의 수뇌들이 문제 될 것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진무는 남궁무휴를 바라보며 매우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창천 어른, 사파의 무공으로 시험에 임해도 될는지요?”
“흥, 그까짓 게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마음대로 하라!”
남궁무휴가 코웃음을 쳤다.
사파의 무공?
평생을 노력해도 하나의 무공을 대성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진무는 이미 무당의 무공으로 강의 경지에 이른 무인이다.
무당의 양의심공으로 사파의 무공을 익혔다 하여 그것이 얼마나 대단할 일이라고.
“……그럼 감사히.”
진무가 인사를 하며 고개를 숙이고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놈, 미끼를 물었구나.
하긴, 물지 않을 수가 없겠지.
이것으로 전 중원을 대상으로 사기를 칠 준비는 모두 마쳤다. 이제 대미를 장식할 일만 남았을 뿐.
“그럼 바로 시작하시죠.”
“좋다! 실력 차를 고려해 선배의 예의로 삼 초를 양보해 주마!”
어이구, 그럼 더 고맙지.
“감사합니다.”
천천히 자세를 잡고 양의심공을 운용하는 진무를 마주 보고 선 남궁무휴는 거만하게 뒷짐을 진 채 검조차 뽑지 않고 있었다.
우우웅.
선기가 빠르게 임맥으로 움직이고, 독맥에 흐르는 사기가 거칠게 흘러 비어 있는 단전을 가득 채운다.
쿠우우.
발을 앞으로 내밀며 주먹을 움켜쥔 진무가 자세를 잡자 급작스럽게 공간을 차지하는 기운에 대기가 괴성을 질렀다.
‘응? 이, 이건?’
질투에 눈이 멀어 사리 분별을 하지 못했던 남궁무휴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진무를 주시했다.
진무의 몸에서 피어나는 검은 안개 같은 기의 아지랑이. 칙칙함을 머금고 검게 변해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
진무의 변화에 남궁무휴의 눈동자가 거세게 떨리기 시작했다.
익숙하다. 저 무공은 분명히…….
“서, 설마?”
익숙함의 정체를 깨닫는 순간 남궁무휴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눈치챘네? 근데 어쩌냐? 이미 늦었는데…….
파앗!
“……!”
진무가 움직였다.
마치 검은 안개가 세차게 쏘아져 들어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진무가 그의 코앞까지 다가와 섬뜩하게 웃고 있었다.
“이, 이런 젠장!”
뒷짐을 푼 남궁무휴가 다급하게 기운을 끌어 올리며 물러난다.
“……일 초.”
후아악! 쩌어억!
진무의 주먹이 남궁무휴의 옆구리에 박혀 모습을 감춘다.
“크어억!”
방심하다가 졸지에 얻어맞은 남궁무휴의 거친 숨결과 함께 진기가 흐르지 못하고 끊어졌다.
몸을 바로 세우기도 전에, 이번에는 남궁무휴의 뒤쪽에서 스산한 기운이 느껴져 왔다.
“이익!”
남궁무휴가 고통을 씹어 삼키며 황급히 검을 뽑아 휘둘렀다.
하지만 진기가 흐르지 않는 상태였다. 중심마저 흐트러진 상태로 휘두른 검은 파리의 날갯짓보다 못한 법.
슈우욱!
몸을 비틀며 뒤로 그은 검이 자세를 낮춘 진무의 머리 위를 스친다.
그리고 곧장 솟구친 진무가 양손을 뻗어 남궁무휴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 초…….”
“……!”
그와 동시에 남궁무휴를 힘껏 잡아당긴 진무가 무릎을 세차게 찍어 올린다.
콰직!
남궁무휴의 턱에 힘차게 작렬하는 진무의 무릎.
“큽!”
강제로 다물어진 충격에 얼굴이 짓눌린 합죽이처럼 변했다.
“그리고 이제 삼 초.”
남궁무휴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물러나는 순간 진무가 빠르게 그의 품으로 파고든다.
빡!
첫 번째는 주먹.
빠박! 빡! 퍽퍽퍽! 퍼퍽!
이어서 손과 발이 신들린 듯이 움직인다.
진무의 거침없는 난타에 남궁무휴의 몸은 빠져나갈 틈도 없이 무자비하게 구타당했다.
방심했기에 제대로 기운을 일으키지 못해 제 실력을 보이지 못한 것이 첫 번째 실수였고, 진무의 무공을 알아보고 당황한 것이 두 번째였다.
뭐, 방심하지 않았다고 해도 결과는 똑같았겠지만.
그리고 제까짓 게 뭐라고 삼 초나 양보한단 말인가. 감히 이 몸을 상대로.
쩌적!
뒤돌려 찬 발이 남궁무휴의 턱 언저리에 무참히 작렬한다.
쿠당탕! 털썩.
순식간에 개처럼 두들겨 맞은 남궁무휴는 한참을 날아 땅바닥에 처박혀 굴렀다.
그리고 그의 발치에 우뚝 선 진무는 내리깐 눈으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겨우 몸을 일으키는 남궁무휴를 바라보았다.
“…….”
절대라 불려 온 남궁무휴가 무당지검을 상대로 삼 초 만에 땅바닥을 굴렀다.
제대로 된 대항조차 해 보지 못하고 바닥에 엎드려 컥컥거리며 숨을 토해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충격적인 모습이 모두를 놀라게 했다.
북진의 수뇌부들은 찢어질 듯이 부릅뜬 눈으로 진무를 바라보았다.
우뚝 선 진무의 몸 주위로 흐르는 묵빛 사기.
그리고 흑요석처럼 빛나는, 사람의 심령을 제압할 정도로 강렬한 힘을 가진 검은 눈동자.
어찌 모를까?
그것은 사파인들에게는 축복이었으나 정파인들에게는 저주와 다름없었다.
“아…… 으…… 어…….”
진무가 사용한 무공이 악적 혁련무강의 그것임을 알게 된 명현은 입으로 어떤 말조차 내뱉지 못한 채로 경련하듯이 몸을 떨고 있었다.
어찌하여 많고 많은 사파의 무공 중 하필이면 그의 무공이란 말인가?
어찌하여 다른 이도 아니고 진무란 말인가? 어째서 무당을 다시 일으킨 젊은 영웅의 몸에 불공대천의 원수와 같은 그놈의 연이 닿아 버렸단 말인가?
털썩.
“장문인!”
충격에 다리에 힘이 풀려 버린 명현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진명을 비롯한 일대제자들이 그를 부축해 일으켰지만, 명현의 시선은 오직 진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명현은 지금의 상황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명진을 통해 진무에게 양의심공을 전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저 무당의 영웅으로만 남았을 것인데…….
명현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아, 진무야……. 이 일을 대체 어찌한단 말이냐.
“…….”
진무가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런 명현을 바라본다.
마음이 아프다.
자신의 무공을 드러내어 이제 간신히 아물어 가는 그들의 아픔을 다시 헤집는 것만 같아서…… 괴롭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중생활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새로운 삶에서 진무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수순이었다.
무당, 지금은 아플지라도 낫고 나면 더욱 힘차게 비상하도록 발판이 되어 주마.
진무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명현에게서 시선을 떼고 경악에 물든 북진의 수뇌부를 응시했다.
자, 이제 물어봐라. 이미 머릿속에 계획은 다 세워 놓았고, 설득할 준비도 끝냈다.
가장 먼저 침묵을 깬 것은 팽의방이었다.
“……네, 네놈이 어찌?”
경련을 일으키듯이 부들부들 떨며 손가락질하는 그를 진무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럴 만도 하지.
그 지경으로 처맞아 본 놈이 나이가 들었다고 그때의 기억을 잊을 리가 없지.
진무의 담담한 시선에 이성을 잃은 팽의방이 울부짖듯 외쳤다.
“네놈이 어찌 그 무공을 아는 것이냐! 그 빌어먹을 무공을!”
“…….”
그의 말에 수뇌부들뿐만 아니라 북진의 무인 전체의 얼굴에 싸늘함이 어리고, 명현은 숫제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팽의방이 횡설수설하듯이 외치며 손가락질을 해 대자 머뭇거리며 눈치를 살피던 무인들이 하나둘 칼을 뽑아 든다.
그들의 머리가 기억하는 혁련무강. 간악함과 비열함의 대명사이자 정파의 역사 아래 가장 강했던 적.
하아, 내가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부터 차근차근 모두를 설명해야 했지만, 그들 이전에 아직 끝내지 못한 문제가 남은 모양이다.
“비켜…….”
“…….”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진무가 고개를 돌렸다.
몸을 일으킨 남궁무휴가 시퍼런 살기를 뿜어내며 진무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야, 그걸 맞고도 일어났어?
이 새끼, 못 본 사이 강골(强骨)이 다 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