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94
294화
“이, 이놈이…….”
팽의방이 볼까지 부들부들 떨며 화를 내던 중에 혜조가 명현의 앞으로 다가 선다.
“명현 도장.”
“예, 대사님.”
“내가 무당지검과 잠시 대화를 나누어도 되겠는가?”
“……알겠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명현이 검을 거두고 조심스럽게 비켜 길을 열었다.
이어 혜조가 진무에게 다가와 차분한 표정으로 물었다.
“진무 도장.”
“예.”
“자네의 말, 진실인가?”
“예. 그곳에 묵룡동이 있습니다. 필요하시다면 화산에 연통을 보내 확인하시면 될 일입니다.”
“…….”
진무는 혜조가 불가의 법력을 빌어 진실 여부를 확인하려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 서린 불기가 이미 자신의 내면을 파헤치듯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해서 거짓말은 안 했다.
상대를 완전히 속이기 위해선 거짓이 과해서는 안 된다. 진실에 거짓 한두 숟가락만 얹어야 하는 법.
묵룡동이 있다고 했지, 그곳에서 묵룡혼원공을 얻었다고는 하지 않았다.
“……음. 그렇군. 내가 느끼기로 자네가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네.”
혜조의 한마디가 단숨에 사람들의 얼굴에서 의혹을 지워 놓는다.
그는 그런 인물이다.
정파의 가장 큰 어른이며 오랫동안 불기를 닦아 온 그의 혜안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으니까.
“당치 않은 소리! 저 간악한 놈에게 속아서는 안 됩니다. 사악한 무공을 익힌 놈입니다!”
팽의방이 반박하듯이 외치자 혜조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그를 응시한다.
“광호 시주께서는 지금 빈승(貧僧)이 익힌 소림의 불문선공을 무시하는 겐가?”
“……불문의 선공은 만능이 아닙니다. 항상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간악한 무공을 익힌 놈이 그마저도 속일 수 있다는 사실을 어찌 염두에 두지 않으십니까?”
“……불문선공이 제대로 판단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 인정하겠네. 하나 진무도장은 항마의 힘을 담은 나한진을 이겨 내었네. 간악한 심성으로 어찌 그리할 수 있단 말인가?”
“흥, 그까짓 나한진은 누구라도 부술 수 있습니다!”
팽의방의 말에 혜조를 비롯한 소림승들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지만, 정작 본인은 그 분위기를 느끼지 못했는지 진무를 매섭게 째려보며 외쳤다.
“저놈은 분명 사패천의 반란 세력을 돕고 있다고 제 입으로 말했습니다. 만약 그가 변절하는 대가로 사황의 무공을 얻었다면 어찌할 것입니까?”
“금룡협에서 얻었고, 몰랐다고 하지 않는가?”
“말도 안 되는!”
“또한, 창천이 말했듯 무공은 그저 무공!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법이네.”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고요? 그 말은 틀렸습니다. 하면 마교도들은 어찌 된 것입니까? 그들의 무공은 그들의 성향 자체를 바꿉니다!”
“그래서? 진무 도장이 간악했던가?”
“……뭐요?”
“좀 전의 창천과의 대결을 모두가 보았음인데, 자네는 보지 못했단 말인가!”
“…….”
“창천이 날린 검강을 진무 도장이 막지 않고 피했다면 어찌 되었을 것 같은가?”
“그, 그건.”
“창천 시주가 실수를 했다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네.”
“…….”
“비단 무당의 도인들만 피해를 입었을 것 같은가? 진무 도장은 그 피해를 막기 위해 피했던 걸음마저 돌려서 막아 내었네. 누가 더 간악한가? 관계없는 사람들까지 노려 가며 이기려 한 창천인가? 아니면 본인이 위험해질 것을 알면서도 막은 진무 도장인가!”
“…….”
팽의방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외통수다, 이놈아.
머리가 나쁘면 천우명처럼 주먹으로 말해야지, 입으로 말하니 그리되는 것이다.
진무는 입을 다물고 뛰어난 언변을 선보이는 혜조를 열심히 응원했다.
팽의방이 반박할수록 여론은 자신에게로 돌아서고 있었다.
“진무 도장은 사황의 무공을 화산 금룡협에서 얻었다고 했네. 그것이 확인되면 그의 결백은 밝혀지는 것이네.”
“…….”
팽의방이 자신을 바라보는 주변의 눈을 의식하고 볼을 씰룩거리는 모습에 진무가 쐐기를 박아 넣듯이 말을 더했다.
자신의 말에 신뢰를 더해 줄 한 사람.
“실은…….”
슬쩍 뒷말을 흘리는 진무의 목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돌리며 귀를 기울인다.
“이 무공은 화산에서 표주를 마무리 짓고 우연히 얻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에 종남에서 만났던 양소방 어른께서도 제가 이 사공을 익혔음을 알고 계십니다.”
“……뭐, 뭣이?”
양소방의 이름까지 거론되자 팽의방이 눈을 부릅떴다.
음지에서 정파를 위해 헌신해 온 무풍개 양소방, 그는 정의를 대변하는 표상과 같은 인물이었다.
“무풍개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 사실인가?”
“예.”
“허!”
혜조의 경악에 모두가 같은 표정을 지었다.
“당시에 이 무공이 사황의 것이라고는 말씀하지는 않으셨으나 무공은 그저 무공일 뿐이라며…… 심지어 제가 성취를 얻을 수 있도록 큰 도움까지 주셨습니다.”
“음…….”
물론 여기에도 거짓 한 숟가락.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양소방마저 묵인했다. 그 사실로 충분하다.
“흐음, 알겠네.”
잠시 고민하던 혜조가 뒤로 고개를 돌리고 각 파의 수뇌들에게 의견을 구한다.
“진무 도장이 양의심공을 익힌 이상 균형을 이루기 위해 사공을 익힐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모두가 아실 게요. 사황의 무공 또한 사공의 한 갈래일 뿐, 나는 그것이 죄라고 칭할 정도로 큰 문제가 된다 여기지 않소.”
혜조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화산은 지금 즉시 금룡협에 있다는 묵룡동의 존재를 확인하고, 무풍개에게 연락을 취해 진무 도장의 말을 확인하는 것이 어떻소이까?”
“옳습니다. 그리하시지요.”
굳이 무림의 큰 어른이어서가 아니었다.
혜조의 판단이 옳다는 것을 그 자리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진무 도장.”
“예. 대사님.”
“나는 자네의 결백을 지지하네만, 자네를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네.”
“이해합니다.”
“사실이 확인될 때까지 구금을…….”
조심스럽게 건네 오는 혜조의 말에 진무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자신이 필요한 시간은 적생이 이끄는 본대가 도착할 때까지의 사흘.
북진에 도착한 지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어차피 소식은 전서구로 오갈 것이고, 화산의 금룡협에서 묵룡동을 발견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틀이면 충분하다.
“하면 구금 동안 산공이나 점혈을 해 두시겠습니까?”
“……응?”
잠시 동안의 산공, 그리고 점혈은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죄가 확정되지 않은 입장에서 그것을 먼저 나서서 요구할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진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자 혜조는 갑자기 말문이 막혀 버렸다.
“오해를 푸는 것이 목적이니 저는 상관없습니다. 어떤 결정이 내려진다 해도 달게 받겠습니다.”
“…….”
겸허하기 짝이 없는 진무의 태도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허, 이런 자를 고작 무공 때문에 간악하다 손가락질하다니…….
혜조가 입을 꾹 다문 채 이쪽을 노려보는 팽의방을 의식하며 말했다.
“아닐세. 내 자네를 믿겠네. 그리고 혹여 불의한 자들이 자네를 노릴지도 모르니 형식상 정주지부의 뇌옥에 잠시 구금만 하겠네.”
일부러 먼저 산공이며 점혈에 대해 말하길 잘했다. 덕분에 진무에 대한 신뢰가 한층 더 높아졌다.
이쯤 되면 결론은 난 것이나 다름없다.
묵룡동을 이렇게 써먹게 될 줄은 몰랐다. 뭐, 어차피 알려져도 상관없는 일이었고.
묵룡혼원공의 기초인 채기법은 아무나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체질에 맞아야만 가능한 무공. 잘못 익히면 백표처럼 마성에 빠져들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혹여 체질을 타고나 채기법을 무사히 익힌 놈이 있다면 다 그놈의 운이고 팔자일 뿐, 진무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무당지검이라는 것을 앞세워 시작한 사기 행각이 완벽하게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신분 세탁은 끝났다.
“감사합니다.”
진무가 혜조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감금만 하다니요! 아니 될 말…….”
“닥치시게!”
팽의방이 곧바로 반박을 하자 혜조가 따끔하게 호통을 친다.
“어찌 아직도 그따위 말을 한단 말인가!”
“…….”
“둘러보게. 자네를 보는 시선들이 느껴지지 않는 겐가!”
“…….”
“못난 사람 같으니…… 사리 판단조차 하지 못하는 자가 그저 무공만 뛰어나다 하여 정무칠성이라 불리다니, 쯧쯧.”
혜조의 말은 날카로웠다.
하지만 주변의 분위기가 자신에게 너무도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은 팽의방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인상을 구길 뿐이었다.
자신은 혼자였고, 자신을 도와줄 남궁무휴는 벌써 들것에 실려 의방으로 이송되고 있었다.
제길…….
팽의방이 이를 악물고 진무를 째려보았다.
어디서 고양이 눈깔을 뜨고 꼬나봐?
다음은 너야. 기대해라, 팽의방.
“…….”
진무의 눈빛을 보는 순간 팽의방은 순간적으로 등줄기에 소름이 돋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저, 저기…… 보시오. 저 눈빛…… 아, 제길…….”
하지만 이젠 그의 말을 들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 *
정주지부 지하 뇌옥.
한동안 비어 있던 그곳에 진무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명현과 진명을 비롯한 일대제자들, 그리고 청상과 청우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진무를 바라본다.
“죄송합니다. 장문인. 양의심공을 대성하려는 욕심이 앞서서…… 워, 원수의 무공을…….”
좌정한 진무가 아련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는 명현을 향해 말했다.
“아니다. 아니야. 너무 마음 쓰지 말거라. 너를 믿어야 했음인데 잠시 흔들렸던 내가 부끄럽구나. 기억도 나지 않을 어린 나이에 명진의 품에 안겨 무당으로 들어와 도동으로 살았던 네가 아니더냐.”
명현이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진무를 위로한다.
“누구보다도 아픈 명진을 지극정성으로 살핀 너인데, 내가 의심을 품었구나. 이제 다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사황의 무공이면 어떠하단 말이냐? 혜조 대사의 말처럼 너의 본질은 변하지 않음인데.”
“…….”
진무는 독백과도 같은 명현의 말을 잠자코 듣기만 했다.
“진무야. 어떠한 경우에도 너는 무당의 자랑스러운 제자이자 무당지검이니라.”
“……예.”
명현의 말에 진무는 사기를 친 것에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다. 특히나 과거에 무당에 행했던 일이 새삼 생각났을 때쯤에는…….
그래,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현재와 미래가 중요하지.
걱정 마라.
이제부터 나의 삶은 무당지검 진무임과 동시에 사패천주이다.
진무가 원하는 것은 정사마의 가장 윗자리에 올라 세상을 굽어보는 것이지, 사패천으로 하여금 중원의 통일을 이루게 할 생각은 없다.
그저 각자의 이념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화해? 그딴 것도 필요 없다.
뭐 하러 애써 싸우지 못하게 한단 말인가? 무인이라는 족속은 싸우지 않으면 발전을 하지 않는 법이다.
그래도 언젠간 무당을 정파의 가장 윗자리에는 올려 둬야지.
“이제 다들 그만 가서 쉬십시오.”
“아니다.”
“장문인.”
“…….”
“비록 제가 결백하다 하나, 금룡협의 묵룡동이 확인되기 전에는 죄인의 신분입니다.”
“죄인이라니! 당치도 않다.”
짐짓 호통하는 명현에게 진무가 히죽 웃는다.
“남들이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남들 눈이 무에 그리 중요하단 말이더냐? 나는 무당의 장문이다. 제자의 죄는 곧 나의 죄이니라. 그리고 네가 이리 구금되어 있는데 어찌 내가 마음 편히 쉴 수 있단 말이냐?”
“제가 불편합니다, 장문인. 창천 어른과의 대결로 무척이나 피곤하기도 하고요.”
“…….”
아니, 뭘 한 게 있다고……. 그리 수월하게 이겨 놓고는…….
하지만 거듭되는 진무의 설득에 명현이 결국 한숨을 내쉬며 항복을 선언했다.
“휴우, 자리가 불편할 것인데…….”
“바닥의 짚을 모으고 그 위에 누우면 제법 편안합니다.”
“……녀석, 이리도 소탈하기까지.”
안쓰럽게 진무를 바라보던 명현을 향해 진명이 공손하게 말을 꺼냈다.
“장문인. 사제의 말대로 하시지요. 잠들 때까지 제가 말동무를 하겠습니다.”
진명까지 그리 말하자 명현이 한숨을 푹푹 쉬며 겨우 몸을 일으킨다.
“……후우, 그래, 알겠다. 너라도 남아 말동무를 하도록 하여라. 앞으로의 무당을 이끌어 갈 둘이니 나눌 이야기도 많겠지. 자, 우리는 이만 돌아가자꾸나.”
명현이 못내 아쉬워하는 청상과 청우를 채근해 뇌옥을 나서고, 남은 것은 경계를 서는 무인들과 진명, 그리고 갇힌 진무뿐이었다.
“잠시 자리를 비켜 주시겠습니까?”
진명의 말에 경계 무인들이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제대로 구속조차 하지 않은 진무였다. 북진에 진무를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전부 비워진 뇌옥.
진명이 진무를 조용하게 바라보다 담담히 입을 열었다.
“거짓말이 능하더구나.”
“…….”
아, 이 새끼. 대룡방 어쩌구 하더니. 근데 아까는 어째서 이제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