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95
295화
진무와 진명이 감옥의 쇠창살을 사이에 하고 서로를 똑바로 마주 본다.
“사형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이해가 잘 안 되네요.”
일단은 발뺌으로 시작하는 진무의 뻔뻔한 표정을 가만히 바라보던 진명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이거 참…….”
“…….”
“내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대룡방에서 너는 그때 분명히 말했다. 네가 혁련무강의 전인이라고. 틀렸느냐?”
아, 젠장. 그랬구나.
이놈의 새끼, 기억력도 좋네.
아니다. 얼마 지나지도 않았으니 기억 못 하는 게 이상한가?
“제가요? 저는 대룡방이라는 곳에 간 적도 없는데요?”
“뭐라?”
진무의 말에 진명이 눈살을 찌푸린다.
“흥, 복면을 쓰고 있었다고 하여 내가 못 알아볼 것이라 생각했느냐?”
“흠, 사형이야말로 이상하시네요. 사형께서 저라고 의심하는 자가 복면을 쓰고 있었는데 어찌 그리 단정하시는지요?”
진무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되레 진명에게 물었다.
“단정? 그럴 리가. 너는 그때 분명 나에게 태극혜검에 대해 깨우침을 주었다. 그리고 나한진을 상대할 때 펼친 것은 분명 완벽한 태극혜검이었어.”
이 새끼, 깨우쳐 주었으면 그냥 입이나 처닫고 있을 일이지.
“그것 또한 제가 거짓말을 한 증거는 되지 않는군요.”
“뭐라?”
“저의 경지에서 완전한 태극혜검을 깨닫는 것이 어렵다 생각하십니까?”
“……그건.”
“그리고 어째서 지금에 와서야 물으시는 겁니까? 사형을 구해 주었던 그때 물어보시지 않고요.”
“…….”
너무도 당당한 대답에 진명이 진무를 매섭게 째려보며 차게 대꾸했다.
“나는 네가 날 구했다고 한 적은 없다만.”
“……아, 그랬나요?”
이런 젠장.
생각지도 못한 실수에 진무의 입에서 짧게 헛웃음이 터졌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린놈이 어른의 말꼬투리나 잡고 말이야.
어찌할까? 사패천의 사람들에게 들었다고 딱 잡아뗄까?
그래도 상관없는 일이 아니던가? 내가 아니라는데 지가 뭘 알아낼 수 있을 것도 아니고.
제길, 기껏 머리 굴려서 사기 행각을 성공시켰다고 안심했더니……. 이놈이 입을 떼면 처음부터 다시 조사를 하자고 지랄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딱 잡아떼면서 버티면 어찌 설득은 할 수 있겠지만, 남은 이틀의 시간으로는 부족할 것이 틀림없다.
기왕 주위에 아무도 없겠다, 그냥 확 죽여 버리고 정파를 떠?
이놈을 죽이고 그냥 북진을 닥치는 대로 부숴 버릴까?
그래, 어차피 사패천을 되찾는 일이 목전까지 다가왔는데 그게 뭐가 그렇게 대수겠는가?
여기 있는 놈들을 죄다 죽여 버리고, 무당을…… 무당…….
젠장, 역시 내키지 않는다.
잠시간 치열하게 고민하던 진무는 일단 진명의 말을 들어 보기로 결정했다.
“그때 대룡방에 함께 왔던 무인들은 너를 천주님이라 부르며 지극히 공손하게 대했다. 하물며 혁련무강이 죽고 없는 지금, 그의 무공을 쓰는 자가 갑자기 둘이나 나타났다고는 생각지 않아. 그때 그자는 분명 너임이 틀림없다.”
“…….”
“그런데 너는 어찌 그의 무공이 혁련무강의 것임을 모른다 했느냐?”
텄네.
짧게 결론을 내린 진무가 진명과 시선을 맞추며 능글맞게 웃었다.
“하아,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대번에 달라진 진무의 태도.
반말은 물론 아예 자리를 옮겨서 감옥 벽에 등을 기대앉으며 귀까지 후벼 파고 있었다.
“……허, 사제들에게 듣던 그대로구나.”
“뭐?”
“무당으로 돌아갔을 때, 모두가 너에 대해 똑같이 말하더구나. 아직 어려서 싸가지가 없다고.”
“…….”
누가 말했는지 대충 알겠다.
진궁을 필두로 한 일대제자 놈들이 분명하겠지. 이 새끼들이 사람을 표현해도 꼭 그따위로.
“명진 사숙께서는 마치 너를 자식처럼 여기셨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어 가는 분신 같은 아이라 자랑스러워하시면서.”
“…….”
음, 스승님이 조금 보고 싶어진다.
“진궁은 너를 말투만 고치면 누구보다도 뛰어난 도인이 될 것이라 했다. 나보다 훨씬 장문인에 어울리는 인재라 하더구나.”
“…….”
“진소는 청상의 심중 깊은 곳에 자리한 복수심마저 흩어 내고 바른길로 이끌어 낸 너에게 감사했고, 진허는 너를 마치 무당에 광명을 가져온 진무대제의 현신인 것처럼 말하였다. 정체된 무당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침을 튀기며 칭찬하였지.”
진무는 묵묵하게 듣기만 했다.
“너에 대한 평은 모두가 한결같았다. 일대제자는 물론 사숙들과 이대제자들까지도 하나같이 네가 무당에 기여한 일들과 무림에서 행한 일들을 칭송하였다.”
그럴 테지. 그동안 벌어다 준 돈이 얼만데. 니가 차고 있는 검도 다 내가 번 돈으로 마련한 거다.
그래도 다들 그리 생각하고 있다니 조금 덜 아까운 느낌이 들었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었다. 진혜는 너를 세상에서 가장 악독한 놈이라 은밀하게 고해바치더구나.”
“…….”
그 새끼는 그럴 줄 알았다.
망할 놈, 알아들었든 못 알아들었든 기껏 줘 패 가며 가르침도 하나 던져 줬는데.
나중에 다시 만나면 기필코 다리 몽둥이를 분질러 줘야지.
거기까지 생각한 진무가 빙긋 웃자 진명이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네가 알고 싶은 것만 말해. 이리저리 말 돌리지 말고.”
“알고 싶은 것?”
진무의 물음에 진명이 잠시 답을 하지 못하고 말을 멈추었다.
누굴 눈치도 없는 애새끼로 보나?
만약 그가 아는 바를 그 자리에서 전부 말했다면 사람들은 진무가 무슨 말을 했어도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당장에 고해바칠 수 있음에도 일부러 둘만의 시간을 가지며 대화를 시도해 온 것이다.
진무가 보기에 진명은 지금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진명은 한동안 말없이 진무를 바라보다 입을 떼었다.
“너는 무당의 제자인가?”
“…….”
“…….”
뜬금없이 심각한 질문에 진무가 힘 빠진 웃음을 흘렸다.
“이봐, 차기 장문인 나리.”
“…….”
“뭘 오해하나 본데, 그게 그렇게 중요해? 나는 그냥 나야. 정파의 누구, 사파의 누구가 아니라.”
“……뭐?”
“혜조의 말대로 본질은 변하지 않아. 누구의 제자이든, 어떤 세력의 주인이든 그딴 것에 의미를 두어 본 적 없어. 나는 그저 내 품에 있는 것들에 최선을 다할 뿐이야. 지금의 나는 무당의 제자 진무이고, 혁련무강의 무공을 이은 전인이다.”
“…….”
“그런 나를 판단하는 건 다른 사람들의 시각이지, 내 의도가 아니야.”
“……음.”
“남들이 어찌 보건 간에 나는 그저 무학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야. 그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수많은 일과 부딪히고 있을 뿐이지.”
“…….”
“그런데 언젠가 스승님이 그러시더군. 어디에 있던 무당을 잊지 말라고, 힘들면 돌아와 쉬어도 좋다고.”
“사숙께서?”
“그럴 생각이야. 지금 나에게 무당은 그런 의미지.”
“고향……이라는 건가?”
그래. 그리 말할 수도 있겠다.
어째서 혁련무강인 내가 무당을 그렇게 여기고 있는 것인진 모르겠지만.
“진짜로 궁금한 건 어째서 내가 거짓말을 하며 진실을 감췄는가 하는 것 아냐? 사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었어. 보았듯이 나는 지금 누구보다 강해. 북진? 정무칠성? 그까짓 것은 나에게 어떤 장애도 되지 못해. 부수려면 충분히 부술 수 있었어.”
“……그런 광오한.”
“그냥 하는 소리 같아?”
자신감으로 충만한 진무의 형형한 눈빛에 진명은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난 내 방식대로 무당을 지킨 거야. 니가 입을 다물어 무당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
진명이 눈을 크게 떴다.
“뭘 놀라고 그래? 그 정도야 뻔하잖아. 내가 거짓으로 말하지 않았다면, 니가 아는 바를 모조리 말했다면 나 하나로는 끝나지 않았겠지. 분명 모두가 무당에 책임을 묻고자 했을 거야.”
옳은 말이었다.
“하지만, 사황의 무공을 쓰지 않을 수도 있었지 않은가?”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뭐라고?”
“그럴 생각은 없어. 말했듯이 나는 그냥 나야. 다만 앞으로 내가 사패천과 동행하는 것이 밝혀지더라도 언젠가 돌아갈 고향인 무당에 어떤 피해도 주지 않기 위해서 작은 노력을 기울인 것뿐.”
“……음.”
그것은 진명을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무의 진심이었고, 정무맹을 대상으로 사기를 친 두 번째 목적이기도 했다.
진심이 가득 담긴 진무의 말에 진명이 무거운 신음을 흘리며 진무를 바라본다.
정사의 구분과 관계없이 그저 무당을 지킨다.
또한 비록 그가 거짓을 말했다 하여도 그는 자신의 사제임과 동시에 무당의 제자였고, 그 거짓이 무당을 지키고자 한 선의를 담고 있었다면 눈감아 줄 만도 했다.
진명은 진궁처럼 고지식하지도 않았고 진소처럼 소극적이지도 않았으며 진허처럼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았다. 물론 진혜처럼 뒤에서 음모를 꾸미거나 욕을 하는 성정은 더더욱 아니었다.
이미 그가 뭐가 되든지 상관없다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의 말대로 진무는 그저 진무다. 대룡방에서 자신의 목숨을 구했고 누구보다 무당의 이름을 드높이고 있는.
“하나만 더 묻자. 만약 사패천 본성을 무너뜨리고 난 뒤엔 어찌할 생각이냐? 정사를 통일하려는 것이냐?”
진무라면 충분히 가능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북진을 홀로 뚫고 들어와 나한진을 부수고, 정무칠성의 한 사람인 창천을 무릎 꿇렸다. 그의 말대로 스스로의 무위가 정무칠성의 위에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질문에 진무가 의아한 표정으로 진명을 바라본다.
“정사를 통일해? 귀찮게 뭐 하러 그렇게 하지?”
“…….”
“정파조차도 완전한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품고 있는 이념이 상극인 놈들을 뭉치게 해? 뭐, 아주 잠깐은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러고 나면?”
“…….”
“다시 갈라질 거야. 제 이득을 위해서 또 싸울 테고, 비슷한 놈들끼리 또 뭉치겠지.”
옳다. 중원 무림은 언제나 이합집산의 세계였으니까. 원래 하나였던 것이 갈라져 셋이 되고, 때론 둘이 되기도 하고.
“어차피 세력이라는 건 제 이득을 위해 움직이는 거야. 또한 세상이란 건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발전하지 않아.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서로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싸워야 해. 그래야 발전하지. 어쨌든 이겨야 하니까.”
진무의 말에 진명은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을 정리했다.
무당이 쇠퇴한 원인.
혁련무강의 습격이 몰락을 가속화했으나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하나의 전통을 고수하느라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것.
무당이라는 이름값에 안주한 것.
도를 닦기 이전에 살아야 한다. 명맥을 유지해야 그 뜻을 이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 안에서 전통과 변화가 계속해서 싸우며 발전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았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난 그냥 가장 강한 무인이 되고 싶은 것뿐이야.”
무척이나 아쉽게도 정파를 타락시켜서 사파화하는 건 예전에 물 건너갔다고, 이 양반아.
진무의 말에 진명이 한참의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인다. 혼란스러웠던 머릿속이 한결 맑아진 듯 개운한 표정이었다.
“휴우, 네 뜻은 알겠다. 네가 사패천주라는 사실은 비밀로 해 두마. 허나 너도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남들이 그 사실을 모르게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있을 거야.”
“……누가 그런 일을?”
여태 잘 대답하던 진무였건만, 그 질문에는 그저 웃기만 했다.
누구긴? 당연히 양소방이지.
하오문이 그렇게 열심히 막았다고 해도 사패천에 묵룡의 전인이 나타났다는 사실이 정파에 알려지지 않은 것은 분명 그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터다.
물론 그때 내공을 빨아먹었던 그 무공이 사황의 것인 줄은 몰랐겠지.
아마 지금쯤 땅을 치면서 후회하고 있을걸?
하지만 자신의 이름과 사문의 어른들 이름에 천지신명까지 줄줄이 걸었으니 빼도 박도 못하겠지.
뭐, 정파에 해가 된다고 판단했으면 진작에 진무가 사황의 무공을 익혔다고 소문내고 무당부터 조사하기 시작했겠지만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지켜보는 것이 다일 터다.
“후우, 좋다. 이 일에 대해서는 다시 입에 담지 않겠다. 허나 명심하거라. 나는 계속해서 네가 옳은 길을 걷는지 주시할 것이다. 만약 네가 가는 길이 무당에 해가 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너를 벨 것이야.”
“…….”
쯧, 실력도 안 되는 게 저런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뭐, 그렇게 해. 너의 도전은 언제든지 받아 주지.”
피식 웃는 진무의 모습에 진명이 후련해진 표정으로 일어나 몸을 돌리다 문득 멈춘다.
“아,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
“그때 분명 대룡방에서 나에게 뭔가 미안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진명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진무의 얼굴이 살짝 발갛게 달아올랐다.
“내가? 글쎄? 잘못 들은 거겠지.”
“……그런가? 흠, 하긴. 그만 쉬거라. 고생이 많았다. 청상과 청우가 많이 기다리더구나. 일러 술이라도 보내 주마.”
“…….”
진명이 천천히 뇌옥을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진무가 씁쓸하게 웃었다.
만약 그가 자신의 뜻을 용납하지 못했다면 진무는 가볍게 손만 뻗으면 될 일이었다.
둘 사이를 막고 있는 감옥의 창살은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는다. 진명이 아무리 뛰어나도 목을 쥐고 꺾어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나선 북진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차례차례로 만나야겠지.
그중에서도 무당을 제일 먼저.
“다행이네. 이해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죽이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을 지킬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날 밤, 뇌옥에서는 술이 연달아 동이째로 비워졌다.
다른 도시에 진을 친 무당의 장로들과 제자들은 진무가 도착했다는 소식에도 오지 못함을 아쉬워했고, 북진에 있던 갑무반의 청상과 청우는 밤새 진무의 곁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