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96
296화
다시 이틀이 지났다.
금룡협은 화산을 통해 공개되었고, 직접 찾아오지 못한 양소방은 서신으로 진무의 결백을 증언했다.
편지에 쓰인 글귀에 그의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뭐, 직접 까발리는 바람에 이제는 굳이 비밀이 알려질까 막지 않아도 되니까 마음은 더 편해졌을지도 모르겠네.
어쨌든 진무는 자유의 몸이 되어 풀려났고, 진무를 배웅하는 수뇌부 중 누구에게도 그를 의심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이제는 누가 뭐래도 정파의 최고수였고, 사패천마저 아우르는 그가 아니던가?
“정말로 혼자 갈 생각이신가?”
“…….”
남궁무휴가 깨어나지 못하는 바람에 임시로 북진을 맡게 된 혜조가 물어 왔다.
“자네가 사황의 무공을 익힌 이상 그의 전인이나 다름없네. 자네가 원하지 않는다 해도 저들은 분명 그리 생각할 것이네. 어쩌면 자네를 새로운 사패천주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고.”
“…….”
진무를 바라보는 수뇌부들이 한결같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 양반들이 뭘 모르네. 사패천은 원래부터 내 거야.
“어떤가? 저들이 자네를 따르는 이상, 유월청의 죄를 묻기 위한 것이라면 정사가 손을 잡아도 될 일이네.”
진무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번 일은 저들이 해결해야 할 일입니다. 정파가 관여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요. 그리고 잠시 돕고 있다고는 하지만 저들의 삶에 끼어들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음.”
“다만, 중원을 노리는 궁의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한동안 힘을 보태야 한다 생각합니다.”
“음……. 그건 내 맹주와 다시 한번 상의해 보도록 하겠네. 그땐 자네도 함께 자리하게.”
“예. 사패천의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찾아뵙겠습니다.”
“허허, 어찌 되었건 자네와 같은 인물이 가교(架橋)가 되어 주어서 다행이네.”
혜조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진무를 바라본다.
와중에 명현과 무당제자들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해 보였다.
“이제 북진을 열어 주십시오. 저들은 오직 천중산에 있는 사패천 본성만 생각하고 있으니 관월 원공후와 천웅방을 막고 있는 강서의 경계도 풀어 달라 하시고요.”
“이미 그쪽에는 내가 연락을 취해 두었네.”
“감사합니다.”
진무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 혜조가 수뇌부에 명령을 내리러 물러나자 명현과 무당의 무인들이 다가왔다.
“진무야, 조심해야 한다.”
“걱정 마십시오.”
“사숙.”
진무를 바라보는 청상과 청우의 애틋한 눈빛.
“안으면 뒈질 줄 알아.”
“…….”
위협이 통했음인지 더 이상 다가오지는 않았다.
“사형, 다음에는 무당산에서 뵙죠.”
진무의 말에 진명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술을 준비해 놓고 있으마.”
“그럼 생각보다 빨리 돌아가야겠네요.”
“그래.”
이런저런 인사가 끝나자 혜조가 북진을 바라보며 나이에 맞지 않게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북진을 해(解)하라!”
혜조의 명이 떨어지자 정무맹의 무인들이 썰물처럼 물러나며 나루를 비웠다.
북진의 해제.
그 모습을 바라본 진무가 갈라진 길 틈에 나서서 강을 바라보며 숨을 깊이 들이쉰다.
이제는 굳이 감출 필요가 없었다.
그는 무당지검임과 동시에 혁련무강의 무공을 이은 무인으로서 모두에게 인정을 받았으니까.
“사패천은 강을 넘어라!”
숨을 가득 토해 내며 외친 진무의 목소리가 황하를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황신에게 보내는 신호다.
귀 밝은 그 녀석이라면 충분히 듣고도 남을 테니까.
진무의 외침에 모두가 강 너머를 바라본다.
아주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강 건너에서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리 도착해서 진무의 신호만 기다리고 있었던 사패천의 무인들이었다.
철혈붕권 천우명과 사도서생 명세찬, 야화 소약벽이 선두에 서고 정무맹에도 그 위명이 자자한 철검단을 비롯해 수많은 사파인이 그 뒤를 따라 황하를 넘는다.
사패천의 당당한 진군을, 정파 일곱 세력의 수뇌와 정무맹 북진의 무인들이 좌우로 갈라서서 지켜보았다.
“가자!”
누군가에게는 정파의 영웅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사패천주인 진무의 목소리가 정주에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한 마디의 명령과 함께 말을 달려 앞장서는 진무를 따라 적생과 사패오왕 셋이 뒤따르고, 강을 넘은 사패천의 무인들이 일제히 뒤쫓는다.
정파의 대지에 사파의 무인들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걸음을 내디딘 첫 번째 날이었다.
* * *
사패천 본성, 천중전의 최하층 대전.
“그, 그게 무슨 개소리냐!”
“…….”
유월청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요 며칠 사이에 그를 당황시킨 수많은 이야기.
감숙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던 반란 세력이 갑자기 산서에 나타났고, 동시에 산서상회가 습격당했다. 산서 전체가 반란 세력의 수중에 떨어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전대 천주의 전인이라는 놈이 있었다.
놈이 자신을 배신했던 사패오왕을 모조리 꾀어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알게 된 것이다.
당장에 산서상회를 구하고자 무인들을 소집했으나 갑자기 정무맹의 무인들이 반란 세력을 막기 위해 북쪽과 남쪽에 진을 구축했다.
유월청으로는 한숨 돌릴 수 있는 소식이었다.
반란 세력의 남진을 정무맹이 막았으니 응당 정사대전이 이어지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미친 정파 놈들이 갑자기 반란 세력과 화해를 하는 것도 모자라, 그들을 그대로 통과시켰다지 않는가.
“어째서 싸우지 않았단 말이냐? 어째서 그놈들이 순순히 길을 열어?”
“그것은 저희도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이런 망할 놈들이! 대체 네놈들은 뭐 하는 놈들이란 말이냐!”
유월청이 고성을 지르며 길길이 날뛰자 고개 숙인 전령부주, 고일태가 속으로 욕설을 뱉었다.
그걸 왜 자신에게 묻는단 말인가?
전령부는 하오문이 아니다.
그저 소식을 모으고 전할 뿐이다.
이미 하오문마저 진즉에 돌아선 마당에 누가 정보를 모아서 가져다 바친단 말인가?
아니, 하오문이 대놓고 정보를 통제하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 자신들이 어찌 알겠는가?
천웅방이야 스스로 반기를 들었으나 하오문이며 살막은 제가 스스로 버려 놓고 어찌 수하 탓을 한단 말인가?
애초에 모든 잘못은 유월청에게 있었다.
“해서 그들이 어디쯤 오고 있단 말이냐?”
유월청이 크게 뜬 눈으로 고일태를 노려보았다.
“정주를 지난 반란 세력이 이미 허창(許昌)을 지났고, 관월 원공후가 이끄는 천웅방이 신현(新縣)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허! 시, 신현이라고?”
허탈함을 느낀 유월청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허창과 신현이라면 천중산에서 고작 삼백여 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파발마로 하루면 충분히 도달할 거리였다. 여유를 가지고 걸어와도 사흘, 일반마를 타고 달리면 하루 반이면 충분히 도달할 거리였다.
“이런 쓸모없는 것들! 놈들이 그리 가까이 올 때까지 아무도 몰랐단 말이냐!”
“…….”
유월청의 호통에 고일태뿐 아니라 대전에 모여 있던 이들이 모두 얼굴을 굳혔다.
정무맹이 진을 구축했다는 소식에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풀게 생겼다며 신이 나 애첩들을 끼고 잔치까지 벌인 놈이다.
멍청한 놈이 정무맹이나 반란 세력이나 그들 간의 대치가 끝나고 나면 다음은 사패천의 본성임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차라리 정무맹의 뒤를 쳐서 반란 세력을 도왔어야 했다.
그랬다면 주인이 누가 되든 천중산의 사패천 본성은 지켜 낼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전대 천주가 있을 때는 그 누구도 넘보지 못했던 사패천이었다.
그러나 유월청이 넘겨받고 나서는 상단의 똥구멍이나 빨고 있다가, 이제는 목숨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위태로워진 것이다.
“젠장, 좋다. 이 망할 놈들. 오냐오냐해 주었더니 감히 사패오왕의 힘만 믿고 어중이떠중이들을 모아 도전을 해? 전대 천주의 유지를 이어 사패천의 주인이 된 나에게?”
주먹을 꽉 움켜쥔 유월청이 매서운 눈빛으로 외친다.
“전 사패천에 명을 전하라! 사패천 본성이 반란 세력을 직접 섬멸할 것이며, 만약 그들을 돕는 자가 있으면 전쟁이 끝나고 반드시 그 죄를 물을 것이라고!”
“예! 천주님!”
대전에 모인 이들의 우렁차게 대답했고, 유월청이 옷자락을 펄럭이며 대전을 빠져나갔다.
* * *
대전의 회의가 끝난 이후, 사패천 본성 내부의 대장로 단경주의 집무실에서는 사패천 장로들 몇 명의 은밀한 회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대주님, 산서상회가 저들의 손에 들어간 뒤 궁주님은 물론 산서의 세력과 일절 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음…….”
외성의 경계를 총괄하고 있는 순찰 장로 곽칠성이 답답한 표정으로 운을 뗐다.
그는 ‘궁주’를 지칭하고 대장로 단경주를 대주라는 직명으로 불렀다.
삼궁 소속 암영대의 대체자들.
송여방의 명령에 의해 번천계가 시행된 이후 사패천의 장로들과 무인대의 수좌가 대부분 대체되었다.
물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암영대의 무인, 송여방과 그의 직속세력인 전궁대뿐이었다.
대장로 단경주로 위장한 것은 암영대주 일경이었고, 나머지 장로들은 전부 암영대의 조장급 무인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녹림과 수채, 야금당과 흑사방 등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심상치 않다?”
“예. 아마도 전쟁에서 한발 물러나 저들에게 접선해 볼 모양입니다.”
“박쥐 같은 놈들.”
하지만 이미 대충은 예상했던 일이었다.
녹림을 포함한 네 곳은 순전히 제 이득을 위해서 사패천 본성에 충성하고 있는 놈들이었다.
위기가 찾아오면 언제든지 등을 돌릴 수 있는 족속들.
수는 많으나 산적에 수적, 뒷골목 무뢰배에 불과한 이들이 대다수이기에 실상 전력은 얼마 되지 않는다.
또한, 수뇌부를 제외한 대부분이 중원 전역에 퍼져 있었기 때문에 칼받이의 역할조차 되지 못했다.
“어찌할까요?”
내성 장로 동관이 묻는다.
“놔둬라. 제깟 놈들이 저쪽의 편을 든다고 해서 대세는 변하지 않는다. 지금은 궁주님의 생사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설마 산서에 연락을 취하실 생각입니까?”
“당연한 말이다. 저들이 산서상회를 무너뜨렸다고 하나 궁주님만 살아 계신다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전서구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직접 다녀오기에는 시일이…….”
“시일은 충분하다.”
“……예?”
의아한 표정의 동관을 향해 단경주가 음흉한 미소를 머금는다.
“성문을 굳게 닫고 농성(籠城)한다.”
단경주의 말에 장로들이 모두가 작게 탄성을 질렀다.
농성전, 성문을 닫고 방비만 하는 계책이다.
“저들이 허창을 지났다면 천중산 인근에 도착하는 것은 빨라도 내일 오후. 먼 거리를 이동해 왔으니 당장에 공격을 해 올 리 없다.”
“또한, 저들을 이끄는 것이 사패오왕이라면 더더욱 함부로 공격을 해 오지 못하겠지요.”
“옳다. 절대로 공격을 할 수가 없지.”
사패천 본성의 전력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본성을 지키고 있는 무인대만 해도 다섯이고, 그 수가 물경 이천을 헤아린다.
무인의 수도 무인의 수였지만, 중요한 것은 성곽에 설치된 절진과 살상용 기관이었다.
전설적인 명장, 구야자 방유척이 직접 설치한 기관이니 그 위력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암영대의 무인들도 나중에서나 그러한 방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섬뜩함을 느낄 정도였으니까.
“흠, 그리되면 최소 열흘 정도의 시간을 벌 수 있겠군요.”
동관의 말에 어두운 낯빛을 하고 있던 장로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농성의 계책을 시행하는 것은 유월청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다.
장로들이 한목소리로 외치면 그도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또한, 사패천 본성을 지키는 무인대의 수좌들은 번천계가 시행된 이후 암영대의 무인들로 바뀌었으니 그들의 결정에 반발할 일도 없었다.
“곽칠성. 지금 즉시 산서에 사람을 보내라. 열흘이면 상황을 파악하고 돌아오기에 충분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동관, 놈들이 도착하면 은신이 뛰어난 아이들을 뽑아 직접 적의 내부를 살피게 해라. 살막이 있으니 주의에 만전을 기울이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암영대의 모두에게 은밀하게 전하라. 나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각자의 위치에서 대기한다.”
“…….”
“만약 일이 잘못되어 전쟁이 벌어지면 최선을 다해 싸운다. 내전을 통해 사패천이 무너지게 되는 것 또한 우리의 목적 중 하나. 다만 저들의 승리가 확실시될 때에는 망설임 없이 투항해 후일을 도모하라.”
“알겠습니다.”
단경주의 말에 장로들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