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99
299화
한 차례의 공격을 통해 사패천 본성의 움직임을 찬찬히 살피고 돌아온 적생은 야영지의 상황에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
야영지의 중앙에 심하게 얻어터진 각양각색의 무인들이 철검단의 감시 아래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진무와 천우명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더욱이 쉴 새 없이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는 저곳은 분명 명세찬의 거처인데?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건가?
말에서 내린 적생이 재빨리 진무에게로 뛰어갔다.
“천주님.”
“어, 왔어? 잘 살펴봤고?”
“예. 하지만 몇 번 더 살펴봐야 확신이 설 듯합니다.”
“그래.”
“한데 이들은?”
적생이 슬쩍 고개를 돌려 진무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이들을 살폈다.
“별거 아냐. 저 새낀 산도적, 요 새낀 물귀신, 그리고…….”
퍼억!
한 사람씩 지목하던 진무가 갑자기 무슨 생각에선지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중년인을 발로 차 버렸다.
“야금당주 정목립, 이 쌍놈 새끼.”
“……아!”
왜 찼는지 알 것 같았다.
섬서성 도박장에서의 일로 야금당에 꽤 화가 난 참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저들이 왜?”
“왜긴 왜야? 눈치 봐서 이쪽에 붙어 보려고 찾아온 거지.”
“…….”
“박쥐 같은 새끼들이.”
진무의 말에 적생이 발에 차였다가 급히 제자리로 돌아와 무릎을 꿇는 정목립과 녹림 총표파자, 수로 총수채주를 바라본다.
“망할 새끼들이 돈으로 자리를 사? 민초들의 고혈이나 빨아 처먹은 돈으로 감히 나의 사패천에 발을 들여?”
진무가 눈을 힘주어 부라리며 천우명을 쳐다본다.
“우명!”
“예. 천주님!”
“이 새끼들 죄다 모가지를 잘라 버려.”
“알겠습니다.”
명을 받은 천우명이 옆에 있던 무인의 박도를 받아 들고 흉흉한 기세로 다가서는 모습에 정목립을 비롯한 셋이 사색이 된 표정으로 살려 달라 외쳤다.
“천 단주! 멈추세요.”
“……예?”
적생의 다급한 만류에 천우명이 걸음을 멈추고 진무와 적생을 번갈아 쳐다봤다.
“천주님. 지금 저들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어째서?”
진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본다.
“……그게, 적들이 보는 데서 죽여야지요.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
진무가 적생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뭘 또 노리는 게 있구만.
하여간 현장 상황에 맞춰서 잘도 뭔가를 생각해 낸다니까.
진무가 속으로 웃고는 일부러 위엄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좋아. 그 이유가 합당하다면 일단은 살려 두겠다. 따라와!”
“예, 천주님.”
진무의 말과 행동에 담긴 뜻을 눈치챈 적생이 재빨리 답하고 뒤를 따랐다.
* * *
진무의 천막.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천우명에게 번을 서게 한 진무가 적생에게 물었다.
“무슨 생각이냐?”
“……갑자기 저들을 좀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써먹어?”
“예. 내일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면 내부에 돌격대를 투입하기 위해 적의 시선을 끌 필요가 있습니다.”
“……계속해 봐.”
“원래는 남쪽의 원 방주와 천 단주에게 이곳저곳을 공격해서 시선을 끌 계획이었는데 때마침 저들이 나타난 거지요.”
적생이 말을 하면서도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이 눈의 초점을 흐린다.
“일부러 탈출시키고 저들을 사패천 본성 쪽으로 몰면 시선은 제법 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뒤따라서 추격대도 좀 보내고요.”
“그사이에 돌격대를 침투시킨다?”
“예.”
적생이 탁자 위에 놓인 사패천 본성 내부 도면 앞으로 다가갔다.
“사패천 본성의 성문은 총 네 곳입니다. 애초의 계획은 남쪽과 북쪽을 천 단주와 원 방주가 공격해 시선을 끌고, 살막주에게 돌격대를 편성해서 내부에 혼란을 일으켜 저들의 병력이 그 세 곳으로 집중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
“그러곤 비어 있는 서문과 동문 중 하나를 택해서 하오문주를 보내 공격하는 거죠.”
“흐음. 그럼 잡힌 놈들을 동문이나 서문 쪽으로 보낼 생각인가?”
“아닙니다. 상황이 달라졌으니 계획도 바뀌어야지요.”
“…….”
“저들을 북문 쪽으로 몰 생각입니다. 그리고 추격대를 보내 그쪽으로 시선을 돌려야지요.”
적생이 성의 도면을 짚어 가며 설명하는 동안 진무가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남쪽은 공후에게 그대로 맡기고?”
“예. 또한 살막주가 내부에서 혼란을 일으키면 저들의 시선은 세 곳으로 분산될 것입니다. 그 사이에 천 단주와 하오문주가 동서를 치는 거죠.”
여기까지는 진무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전형적인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전략이 아니던가.
문제는 살막주가 이끄는 돌격대였다. 정목립과 녹림, 수적 놈이 찾아올 줄은 몰랐을 터인데 어찌 이틀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지?
진무가 적생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적생.”
“예, 천주님.”
“이제 말해 봐, 돌격대를 저 안으로 어떻게 투입할 생각이지? 성벽을 넘을 건가?”
진무의 질문에 적생이 빙긋이 웃었다.
“연(鳶)입니다.”
“…….”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진무가 멀뚱히 쳐다보다가 한쪽 눈을 위로 치켜뜬다.
“여언?”
“예. 연입니다.”
“…….”
“군문에서는 산중이나 고립된 지역에서 연락을 보내기 위해 봉화나 서로 다른 색을 칠한 연을 사용합니다. 이를 전술비연(戰述秘鳶)이라고 하지요.”
진무가 적생의 말을 귀담아듣다가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서 묻는다.
“설마? 연에 돌격대를 실어서?”
“예. 군문의 장수들은 갑옷의 무게 때문에 어렵지만 경신법을 익힌 무인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특히나 살막은 경신법에 특화된 자들입니다. 충분히 가능하리라 봅니다.”
“……하!”
설마하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이야.
“확인해 보니 때마침 바람도 좋습니다. 북풍(北風)이거든요.”
“……!”
아, 그때 지푸라기를 날린 것이…….
“이미 한 번의 전투를 통해 거리도 재 보았습니다.”
이틀이 필요한 이유를 깨달았다. 그리고 밤에 공격해야 한다는 이유도.
필시 여남으로 간 하오문도들은 연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사람을 싣고 날아오를 만한 거대한 연을.
“그런데…… 너무 높지 않을까? 들키지 않으려면 꽤 높은 위치까지 날아야 할 텐데.”
“예, 높지요.”
대답이 빠른 걸 보면 이미 그에 관해서도 생각해 두었다는 뜻일 터였다.
“대책은?”
“연과 함께 특별히 고안한 옷을 만들고 있습니다.”
“옷?”
“예. 비석서(飛鼫鼠)라는 동물을 아십니까?”
“석서라면 다람쥐를 말하는 건가? 그런데 날아다닌다고?”
“예. 어떤 지역에서는 하늘다람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늘다람쥐는 다른 녀석들과는 달리 바람을 타고 활공을 하며 나무를 옮겨 다니는 놈이지요.”
“활공을? 난단 말인가?”
“예. 곧 보게 되실 겁니다.”
“…….”
그저 웃기만 하는 적생을 진무가 멍하니 바라보았다.
대체 이 녀석의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 있는 거지?
늘 느끼는 생각이지만 어째서 이런 인물이 초야에 묻혀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나저나, 연을 타고 활공해서 진입한다라.
잘하면 싸움을 생각보다 훨씬 일찍 끝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 진무가 잡고 싶은 것은 유월청과 사패천을 이 꼴로 만든 수뇌부였다.
휘하의 무인들은 죄가 없다.
잠시 고민하던 진무가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적생.”
“예?”
“돌격대는 내가 직접 이끌겠다.”
“……예에?”
생각지도 못한 말에 적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잔말 말고 그리 알아. 돌격대는 무조건 내가 이끈다.”
“…….”
“생각해 봐. 야화는 너무 늙었어. 뼈마디도 성치 않은데 뛰어내리다가 조금만 삐끗해도 큰일 난다고.”
“…….”
천 단주나 하오문주도 꼼짝하지 못하는 살막주가?
적생이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대는 진무를 멀뚱히 쳐다본다.
“그리고, 사패천 본성의 성문에 깔려 있는 기관은 내가 제일 잘 알아.”
“…….”
그건 좀 이유가 될 만한데.
“마지막으로 이 전투는 유월청을 잡으면 끝난다. 최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그 방법이 제일 빨라.”
유월청을…… 잡겠다고?
불안감이 스친 적생이 세차게 고개까지 내저으며 반대했다.
“아, 안 됩니다. 돌격대의 목적은 적의 시선을 끄는 것이지 적을 괴멸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유월청을 찾으려 하시면 모든 공격이 천주님께 집중될 겁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시끄러워. 내가 한다면 하는 거야.”
“…….”
아, 젠장, 망했다.
천주의 호기심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나머지 전투에 대해서는 너에게 전권을 일임한다.”
진무가 적생의 어깨를 힘주어 잡았다.
“할 수 있겠지?”
어차피 이렇게 될 것임을 안다.
어찌 모르겠는가?
이미 몇 번이나 경험했다.
화가 치밀면 전술 따위는 개무시하고 일단 들이받는 성격이 아니던가.
“그만 나가 봐. 전투가 멀지 않았다. 나가서 사패오왕에게 네가 세운 전략을 설명하고 각자의 임무를 알려 줘.”
“…….”
“나가라니까?”
“……예에.”
진무의 축객령에 힘이 빠져 버린 적생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천막을 빠져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진무가 기가 찬다는 듯 웃는다.
연에 비석서라니.
정말이지 생각도 못 한 침투 방법이 아닌가.
유월청 이놈, 어디 한번 당해 봐라. 하늘에서 떨어질 줄은 생각도 못 할 것이다.
그리고, 별개로 꽤 재미있을지도.
새처럼 하늘을 나는 것. 인간의 오랜 소망이 아니던가?
* * *
첫 번째 공격이 시작된 이후부터 사패천 본성에 대한 공격이 북쪽과 남쪽에서 쉬지도 않고 이어졌다.
날이 밝았음에도 공격은 멈추지 않았고, 적생은 공격 내내 참가해 적의 움직임을 살피며 자신의 계획을 수차례 수정했다.
“천주님.”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끝낸 진무의 거처에 명세찬이 찾아왔다.
“왜?”
“동관의 정체를 알아내었습니다.”
동관이라면 지난밤 몰래 야영지로 숨어들었던 은신자 중 하나였다.
유월청이 임명했다는 사패천의 장로.
“실로 교묘한 역용술을 익히고 있더군요.”
“…….”
“사람 거죽입니다.”
명세찬의 말에 진무가 눈살을 찌푸렸다.
망할 놈들. 사람 거죽까지 뒤집어쓰고 남의 행세를 했다는 말이 아닌가?
“독한 놈이더군요. 치밀한 훈련을 거친 모양입니다. 그래도 하나는 알아내었습니다.”
“그게 뭐야?”
“산서상회주와 아는 사이더군요.”
“뭐?”
“동관이라는 놈은 끝까지 버텼는데 옆에 있던 놈이 범정을 알아보았습니다.”
“그 말은 산서상회가 사패천에 세작을 심었다는 말이냐?”
“예. 확실합니다. 세 놈을 따로 심문해 봤을 때, 꽤 많은 놈이 숨어 있는 모양입니다.”
“……허.”
정말이지 기가 찰 노릇이다.
유월청아, 유월청아. 이 멍청한 자식아. 상단에 휘둘린 것도 모자라서 아예 꼭두각시 노릇을 하였구나.
대체 내가 죽은 시간 동안 너는 무슨 짓을 한 것이란 말이냐.
“그리고, 범정이란 여인이 묘한 말을 하더군요.”
“묘한 말?”
“예. 칠음은맥을 확보하는 일을 방해했으니 소궁주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소궁주?”
“예.”
명세찬의 말에 진무가 얼굴을 찡그린다.
일궁, 이궁, 삼궁.
진무가 아는 것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이제는 소궁주라는 인물이 등장했다.
그리고 칠음은맥.
분명 무언가 관계가 있다.
“음, 송여방이 죽어 버린 게 아쉽군.”
“이미 반쯤 시체였습니다. 천주님께 얻어터져서.”
“…….”
진무가 명세찬을 슬쩍 째려보고는 웃었다.
웃기네. 걔가 죽은 건 지난 열흘간 너한테 모질게 고문을 받아서겠지.
하나 따져서 무엇할까?
“세찬.”
“예.”
“일단 범정과 그 세작 놈들에 대한 심문을 보류한다. 전투가 끝날 때까지 무조건 살려 둬.”
“알겠습니다.”
지금은 사패천을 되찾는 것이 먼저였다.
궁에 대한 것은 모든 일이 끝난 다음 찬찬히 생각해 볼 일이다.
찬찬히, 놈들의 행적을 다시 되짚어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