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
3화
수련을 시작한 지 석 달.
“허어! 벌써 충검의 경지란 말이냐!”
슬쩍 검에 기운을 흘려 넣었더니 명진의 얼굴에 경악에 가까운 놀람이 떠오른다.
“희한하구나. 수년을 수련해도 충검을 깨닫기는 쉽지 않은 것인데…… 고작 석 달 만에…….”
그것도 구전으로 무공을 익히면서, 라는 말을 생략했겠지.
“몸 안에 주입된 육양신공의 선기 때문인가? 아니면 네가 하나를 가르치면 열, 아니 백을 깨닫는 천고의 기재……일 리는 없는데.”
명진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해가 될 리가 있나.
이래 봬도 몸뚱이는 진무지만 그 속에 든 것은 무림의 절대자 중 한 명이었던 사패천주다. 애초에 깨달음의 깊이가 다르다는 이야기지.
그리고, 무당의 무공이라는 것이 익혀 보니…… 꽤나 재미지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 가는 내공에, 깊어지는 초식의 이해도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를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급진적이고 위험천만한 사파의 무공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안정적이었다.
인정한다. 괜히 명문이 아니었다.
하지만 불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쳇, 이런 쓸 만한 무공에 예의니 형식이니, 대가리에 똥만 찬 도사 놈들 같으니.’
불로초로 인해 새로운 몸을 얻은 이후 시간은 계속 흘렀고, 무당의 일대제자 진무는 점점 더 성장하고 있었다.
“차압!”
검극에서 뻗어 나간 서늘한 예기가 눈앞의 공간을 헤집는다.
뒤로 한 발을 물리며 세로로 그어 낸 검이 다섯으로 나뉘어 허공을 발기발기 찢어 놓았다.
취리릭!
솟구쳐 오른 검기가 한 장으로 늘어나 아름드리나무의 표면에 거친 상처를 만들어 내었다.
하지만 발현된 기운은 여느 무당의 제자와는 완연히 달랐다.
육양신공의 기운이 양의 기운이기는 하되 유려한 선기를 머금어야 함인데 검에서 뻗어 나온 것은 호쾌할 정도로 강맹했다.
“후우, 후우…….”
이제는 일상이 되어 버린 진무의 아침 수련.
낭인으로 뒹굴며 처음 무공을 익히던 그때가 생각나 좀처럼 시간이 흐른 것을 느낄 수가 없다 보니 어느새 검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경지가 되었다.
‘쯧, 벌써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건만…….’
시간 참 빠르다.
수련에 매진하다 보니 벌써 시간이 그리되었다.
진무가 언짢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손에 들린 검을 바라보았다.
무당의 무공.
좋다.
허례허식만 제외하면 그가 이전에 익혀 온 어떤 무공보다 뛰어났다.
그런데 문제는 내공이었다.
이미 한번 가 보았던 길이요, 익히고 있는 무공의 핵심까지 꿰뚫고 있으나 내공은 좀처럼 늘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물론 수련 일 년 만에 능숙하게 검기를 발현할 정도이니 무당의 다른 누군가가 보았다면 기함을 토할 일이었으나, 진무의 마음에는 차지 않았다.
‘젠장, 다 좋은데 뭐 이딴 게 다 있는지…….’
더없이 느려 터졌다.
마음 같아서는 익숙한 사파의 무공으로 단숨에 몇 단계를 뛰어넘고 싶지만 내력이 충돌하는 탓에 그도 어려웠다.
진무는 한숨을 내쉬며 이마에 가득한 땀을 닦아 내었다.
어쨌든 소기의 성취는 이루었다.
아직 제대로 부딪쳐 보지는 못했으나 이쯤이면 무당의 일대제자 정도는 대강 찜 쪄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절대의 경지에 들기 전에는 익히고 있는 내공 심법을 무(無)로 되돌릴 수도 없었다.
‘하지만 대제자가 되면…….’
지난 일 년 동안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주워듣게 된 풍월이 있었다.
무당.
과거 구파의 수좌로 있으며 정무맹에 크나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문파였다.
하지만 십오 년 전 혁련무강의 습격으로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당대 장문인과 장로들이던 무당의 현자 배가 모조리 죽었고, 일대제자들 태반이 죽었다.
그 뒤를 이어받은 게 사패천의 계략에 의해 하산했던 나머지 일대제자, 지금의 명자 배였다.
장문인 명현과 현 오궁일관(五宮一館)의 주인이 된 장로들이 그들이었고.
그리고 진무의 스승이던 명진은 당시 무당의 실질적인 주력이던 일대제자들이 빠져나간 틈을 타 습격한 혁련무강의 은덕(?)으로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어쨌든 그 일로 무당은 급격하게 쇠퇴의 길을 걸었고 지금에 와서는 직계만이 남아 있었다.
더욱이 그동안 줄을 대 오던 상가와 속가제자들의 발길도 뜸해져 재정 상태가 악화되었고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정도까지 이르렀다.
청자 배의 싸가지 없는 제자 놈이 가져오는 식료품의 질이 자꾸만 떨어져 가는 것이 그 증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무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아직 장문인의 적전인 대제자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직 일대제자들의 성취가 그만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장문인의 뒤를 잇는 대제자가 되면 무당의 비전(祕傳)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비전 중.
‘양의심공(兩儀心功).’
진무가 노리는 것은 그것이었다.
식료품을 가지고 오는 놈에게 흘려들은 이야기라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놈은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 * *
보름 전.
“대단하네요. 누가 보면 대제자라도 되려는 줄 알겠습니다.”
“……?”
“하긴 대제자가 되기만 하면야 장문인께 직접 수련을 받는다고 하니.”
누가 약해 빠진 무당 장문인 따위에게 수련을 받고 싶어 한다고.
“하긴 다음 대 장문인의 내정자니 당연한 말이지요. 그러니 사숙들께서도 다들 대제자가 되려 하시는 거고.”
평소라면 식료품만 던져 놓고 가던 놈이 말이 많은 걸 보니 아무래도 심심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진무는 대제자가 되고 싶은 생각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뭐 하러 차기 장문인이 되기 위해 일대제자 놈들과 경쟁까지 해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아, 나도 되고 싶다. 그리만 되면 무당의 최상승 절예인 태극혜검이나 전설의 양의심공 같은 것들을 전수받게 될 텐데…….”
그 순간 진무의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다.
“뭐라 했느냐!”
“예?”
“양의심공이라고?”
“……예.”
진무의 반응에 이대제자가 화들짝 놀라며 눈치를 살폈다.
맙소사, 양의심공이라니?
두 가지 무공을 한 몸에 담아 익힐 수 있는 무당의 비전 중의 비전 아닌가.
진무, 아니 혁련무강이 태어나기도 전에 실전되었다고 들었다.
이후 무당에서 양의심공을 익힌 고수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하지만 사실은 남아 있고, 그것을 진무가 익힌다면?
분명 선기와의 충돌 없이 묵룡혼원공을 익힐 수 있으리라.
“확실한 거냐? 대제자가 되면! 양의심공을 전수받을 수 있다는 게?”
“……예.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모두가 다 아는 내용을 진무만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좀 알아볼 것을.
그 와중에 당황했던 이대제자의 얼굴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궁의 제자도 아니고 충허암의 제자인 진무 사숙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는 몰라도 불가능할 겁니다.”
“뭐?”
“일대제자들 전부가 대제자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하는데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멍청한 새끼.
사람 볼 줄 모르는 새끼.
경쟁자? 그게 뭐?
길이 보였으니 달리기만 하면 된다.
자고로 무인이란 센 놈이 최고다. 일대제자 놈들을 닥치는 대로 쓰러뜨리고 대제자가 되는 것은 이 몸이라, 이거다.
그때가 되면.
‘흐흐흐, 이 지긋지긋한 도량과도 안녕이다!’
* * *
진무는 보름 전의 일을 생각하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런데.
아직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었다.
대제자가 되어 양의심공을 얻는다 해도 무당을 떠날 수가 없는 이유.
바로 스승인 명진의 존재.
아닌 말로 폐공 이후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도 기적에 가까웠다.
진무 몸의 원래 주인이었던 놈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살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았다. 그만큼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걱정에 지금도 발길이 떨어질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게 아닌가.
마음 같아서는 무당의 신물이라는 태청단(太淸丹)이라도 훔쳐 먹이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서서히 해결해 가고 있는 중이었다.
해결책은 다름 아닌 영양 보충.
얼마 전부터 국물이 아니라 직접 고기를 먹이고 있다.
처음에는 한사코 거절하더니 울며불며 경극 배우 뺨치는 연기를 선보인 진무의 간곡한 부탁에 끝내 입에 대기 시작했고, 보란 듯이 조금씩 기력이 돌아오고 있었다.
간악한 도사 놈들.
아무리 문파에서 금하고 있다고 해도 환자에게 풀때기나 처먹이다니.
역시 기력 회복에는 고기만 한 게 없는 것을.
그 덕분에 근래에는 아주 버리고 도망갈 정도는 아니지만, 한동안 자리를 비워도 될 정도로 걱정이 줄었다.
물론 자신의 계획에 관해서는 아직 스승에게 말하지 않았다.
스승이 이것저것 묻는다면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사실대로 고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 껍데기로는 도무지 거짓말을 할 수가 없으니까.
어쨌든 명진의 회복이 끝나고, 대제자가 되어 양의심공만 익히면! 흐흐흐.
진무가 모처럼 기분 좋은 생각에 빠져 넋을 놓고 있는 사이에.
“저기…….”
“어헉! 씨발 깜짝이야!”
너무 놀라 하마터면 들고 있는 칼로 찌를 뻔했다.
무당파 안이라고 너무 마음 놓은 것이 실수였다.
그런데 못 보던 놈이다.
팔이 사람 허벅지만 하고 배가 나오다 못해 살이 옷 밖으로 삐져나온…… 거의 돼지?
“헤헤, 진무 사숙이시죠?”
제가 진무는 맞습니다만 귀돈(貴豚)께선 누구신지?
“원화관에서 나온 이대제자 청우(淸羽)입니다.”
청돈이 아니고? 도대체가 어딜 봐서 깃털(羽)이냐?
“식자재를 가져왔는데요.”
“식자재?”
원래 오던 싸가지 없는 놈이 아니라 웬 돼지 같은 놈이 왔다.
“놓고 가거라.”
“예.”
청돈, 아니 청우가 빵빵한 볼살로 인해 거의 보이지도 않는 눈을 초승달처럼 휘어 웃으며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뭐, 이대제자 따위 바뀌거나 말거나.
무엇보다 아직 식사를 준비할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진무는 잡념을 지우고 계속해서 수련에 매진했다.
그런데.
일 초식에.
“와!”
이 초식에.
“우와!”
“…….”
정신 사나워 죽겠네.
이 돼지가 볼일 다 봤으면 갈 일이지 왜 안 가고 사람을 빤히 쳐다보고 앉았어? 힘 빠지게.
“안 가냐?”
“아, 예. 죄송합니다. 제가 사숙께 방해가 되었네요. 그럼.”
날이 선 진무의 말에도 청우는 붙임성 좋게 웃으며 충허암에서 멀어졌다.
뒤뚱거리며 달리는 모습이.
‘거 잘 구르네.’
고개를 갸웃거리게 할 정도로 뚱뚱한 녀석이었다.
분명 수련을 게을리하는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풀때기와 벽곡단만 처먹고 저렇게 살이 찔 리가 없었다.
뭐, 무당 놈들과 친해질 생각도 없는데…… 굳이 저놈 살찐 것을 걱정해 줄 필요까지야 있겠느냐마는.
진무는 계속해서 수련에 매진했다.
다음 날.
“…….”
수련을 하러 나왔는데 웬 익숙한 돼지 새끼 하나가 어제까지는 자신의 영역이었던 게 분명한 검 자국 가득 남은 아름드리나무를 향해 손발을 놀리고 있었다.
“아! 사숙!”
확실히 어제 본 그 돼지가 맞다.
“너 뭐냐?”
“청웁니다!”
돼지가 눈치까지 없는 건가?
“그러니까 네가 왜 여기서 수련을 하고 있냐고. 원화관 제자면 원화관에서 수련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헤헤, 오늘은 수련이 없어서요.”
아니, 지금 그걸 묻는 게…… 하아.
“사숙, 수련하시게요?”
“…….”
“하세요. 저는 그럼 저쪽에서. 헤헤.”
실없는 놈. 뭐가 좋다고 쪼개는 건지.
여하튼 진무의 수련이 시작되고 검극이 뻗어 나갈 때마다.
“와! 이야! 호오?”
“…….”
빌어먹을, 집중이 안 된다.
도대체 이 새끼는 뭘까?
“야!”
“예. 사숙!”
“안 가냐?”
“보고 있으면 안 될까요?”
“안 돼!”
“수련도 없는데요?”
그러니까, 이 돼지 자식아.
그 빡빡한 수련 일정에 쉬는 날이면 동배들과 어울려 노는 게 정상 아닌가?
“원화관에서 안 찾냐?”
“예.”
“놀 사람 없어?”
“뭐, 다들 바쁜가 봐요.”
“…….”
아, 설마 이 새끼.
“야. 혹시 애들이 너만 가까이 오면 다른 데로 가고 그러냐?”
“어? 어떻게 아셨어요?”
“혹시 막 같이 대련도 안 해 주고?”
“맞아요. 제가 동배들 중에 실력이 제일 모자라서 그런가 봐요.”
“식자재 가져다주는 거…… 원래 오던 놈이 너한테 미안하다면서 바꾸자고 하디?”
“예. 요새 좀 바빠졌다고.”
“그럼 막 네가 실수하면 비웃기도 하고 그래?”
“제가 남들에게 웃음을 좀 주는 편인가 봐요.”
진무의 물음에 청우가 해맑게 웃으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따돌림이네, 따돌림이야.
뭐, 본인은 전혀 모르는 것 같지만.
“휴, 어쨌든 가라. 바빠.”
“그렇군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오지 마. 딴 놈 오라 그래. 내가 직접 가서 받아 와도 되고.”
“네, 헤헤.”
청우가 해맑게 웃으며 또다시 굴러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