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07
307화
쿠아앙!
거대한 바위처럼 떨어진 주먹이 바닥을 으깨 놓는다.
거친 폭발이 일어나고 사방으로 흙더미가 솟구쳐 오르자 호법부의 무인들이 재빨리 물러나 거리를 벌렸지만, 정작 그 자리에 진무는 없었다.
살포시 뒤로 피했다가 빠르게 다가선 진무의 신형이 절묘하게 유월청의 사각을 파고든다.
“이런 잡스러운 놈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 진무의 움직임에 이성을 잃은 유월청이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두르자, 단번에 수백 개의 권영이 만들어져 주변의 건물을 모조리 때려 부쉈다.
쾅! 우지끈! 콰쾅!
담벼락이 무너지고 건물이 주저앉는다.
그만해라, 이 새끼야.
아깝게…… 다시 지으려면 돈이 얼만 줄은 아냐?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은 진무가 유월청의 주위를 돌며 빈틈을 살핀다.
천우명을 처음 만났을 때 비하면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과거의 힘을 되찾은 진무는 그때보다 배는 강해져 있었고, 와중에 유월청은 지나치게 흥분해 있었다.
천우명의 붕권은 무지막지한 권력으로 펼치는 연환 공격이 장점이었고, 유월청의 현명신공은 강기를 운용한 기공술이다.
진무가 보기에 분노에 휩싸인 유월청은 그 이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쯧쯧, 수련을 꾸준히 해 왔다면 지금쯤 훨씬 더 정교해졌을 것을.
그동안 놀고만 있었구나. 하나도 늘지 않았어.
“하합!”
별안간 뒤로 물러난 유월청이 양손을 번쩍 들어 올리자 솟구친 강기가 얽히고설켜 거대한 그물을 만든다.
세상을 뒤덮기라도 할 기세로 뻗어 나가는 강기의 그물.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만 나온다.
다른 이들에게는 무지막지한 강기 세례로 보일 것이나…… 저렇게 성글게 해서야 빈틈투성이일 뿐이지.
“죽어라!”
유월청의 손을 따라 강기의 그물이 주위의 건물들을 갈가리 찢어 놓으며 진무를 향해 세차게 떨어진다.
그걸로 죽겠냐? 참새도 못 잡겠다, 이놈아.
슈슉!
바닥을 가볍게 찬 진무의 신형이 지면을 스치듯이 날아갔다.
목표를 잃은 유월청이 재빨리 진무의 머리를 향해 발을 차올린다.
후웅!
허공을 가르며 솟구친 발.
목표를 놓쳐 버린 유월청이 진무의 기운을 찾으려는 순간.
쩌어억!
“크어억!”
진한 고통과 함께 유월청의 입에서 짐승 같은 비명이 터졌다.
보, 볼기?
뒤쪽 허리 아래, 허벅다리 위의 살점, 엉덩이와 궁둥이를 합해 말하는 그곳.
졸지에 배가 앞으로 튀어나오며 몸이 크게 휜 유월청이 잽싸게 자세를 바로잡으려는데.
쩌어억!
두 번째 타격.
자로 잰 듯 같은 자리를 가격하는 공격에 유월청이 얼굴을 고통으로 일그러뜨리며 손을 뻗었다.
“뼈 부러진다. 손 치워!”
“……!”
왜 그랬을까?
유월청은 자신도 모르게 멈칫하고 말았다.
짜아아악!
두 번째까지는 그나마 기운을 둘렀기 때문인지 둔탁한 고통이었는데, 세 번째는 아예 살갗에 찰싹 달라붙는 듯한 느낌이었다.
“크학!”
짜아악!
“크악!”
진무가 온 힘을 다해 휘두른 일휘가 커다란 원을 그리며 연신 유월청의 볼기를 때려 댄다.
그 아픔도 아픔이지만 속도가 무지막지하게 빠른 탓에 유월청은 제대로 막지도 피하지도 못하고 선 채로 맞아야만 했다.
“어허, 이 새끼야! 가만 안 있어? 척추 나가!”
짜아악!
“크어어어!”
일부러 약속이나 한 것처럼 격타음과 비명이 번갈아 터져 나온다.
“…….”
호법원의 고수들은 그저 입을 떡 벌리고 멍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흡사 큰 죄를 저지른 이가 선 채로 곤장을 맞는 듯한 모습이 아닌가?
저, 저런 희한한 싸움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육십 넘은 노인이 약관의 청년에게 맞아 허리를 쭉 내밀었다가 몸을 바로 세우려고 발을 디뎌 앞으로 나서는 꼴이, 그러니까…… 꼭 뒷간 급한 이가 엉거주춤 걷는 것 같지 않은가.
때리고, 맞고, 비명 지르고, 걷고…….
일련의 과정이 엄청난 속도로 반복된다.
빠가각!
이전과 다른 소음.
“끄아아악!”
몇 대를 맞았는지도 모를 유월청이 꼬꾸라지듯이 땅바닥에 처박히며 자신의 손을 움켜쥔다.
검집으로 신나게 볼기짝을 후려 패던 진무가 씩씩거리며 멈췄다.
“……아, 이 새끼 그렇게 말했건만. 손 치우라고 했지!”
“끄으으…….”
억눌린 신음을 내는 유월청이 손을 마주 감싸 쥔 채 원독에 찬 눈빛으로 진무를 노려본다.
“일어나. 그따위로는 절대로 나를 설득하지 못해.”
“……다, 닥쳐라, 이놈.”
“닥쳐? 이 새끼가 대가리에 똥만 차서는…… 쯧, 자신만만해하길래 뭐라도 할 줄 알았더니, 변한 게 하나도 없잖아?”
“…….”
“현명신공을 누가 그따위로 사용하래? 이건 뭐 돼지 목에 진주도 아니고…… 최대한 얇게 가공해서 정교하게 펼치라고 했냐, 안 했냐!”
“……!”
순간 유월청의 눈동자가 고통 대신 경악으로 물든다.
진무의 말이 맞다. 만약 자신이 화가 난 채로 싸우지 않았다면 그렇게 펼쳤을 것이다.
그는 강기를 바늘처럼 얇게 가공할 수 있을 정도로 기를 운용하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무공을 오모강(烏毛罡)이라 부르기도 했다.
물론 그 역시 혁련무강이 가르친 것이지만.
강기를 바늘 크기로 가공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죽도록 맞았던 그때가 그의 뇌리를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걸 어찌…… 이놈이 알고 있지?
“이런 멍청한 자식이. 그래 놓고는 뭐가 어째? 천주의 자리가 어쩌고 저째?”
“…….”
뭐지? 지금의 저 눈빛, 저 표정.
사황……. 어째서 이놈에게 그의 얼굴이 겹쳐지는 거지?
“씨발, 넌 아직 멀었어. 이리 와, 오늘 아주 살 터지게 때려 볼라니까!”
“……!”
더욱이 화를 내는 와중에도 분노가 쌓인다는 듯 이를 북북 갈더니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는 저 재수 없는 표정.
“이리 안 와? 내가 갈까?”
순간 유월청의 귓가에 진무의 목소리가 혁련무강의 그것처럼 들린다.
그리고 선택지를 내미는 듯한 저 말버릇.
똑같다. 어차피 올 거면서, 어차피 팰 거면서…….
근데 어떻게?
“어? 그래, 안 오지? 그럼 내가 가지 뭐!”
파아앙!
진무의 신형이 쏘아져 나온다.
그 모습에 유월청이 기겁하는 표정을 짓는다.
진무와 혁련무강의 얼굴이 겹쳐질 때부터 뼛속까지 새겨진 두려움에 대항할 의지 자체를 잃어버렸다. 오금이 저려 오는 것은 물론 이어질 상황이 머릿속에 그림처럼 그려졌다.
“으…… 으아아!”
유월청이 귀신이라도 본 듯한 심정으로 미친 듯이 도망을 치려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확 하고 잡아당기는 느낌과 함께 뒤로 꺾인 시야에 악귀 같은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는 진무가 들어왔다.
“오라고 했지.”
“…….”
“설득을 해 보랬잖아, 이 새끼야.”
“…….”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안 해? 그럼 어쩔 수 없지. 일단…… 좀 더 맞아야겠다. 월청아.”
진무가 웃는다.
역시나 혁련무강이 겹쳐지는 그 얼굴에 유월청의 낯빛이 시커멓게 죽었다.
천주……? 이런 씨발…….
* * *
치열하게 이어졌던 전쟁은 끝났다.
아니, 성문이 활짝 열리고 사패오왕이 난입하는 순간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
차츰 정리되어 가는 상황에 진무를 찾기 위해 천중전 쪽으로 달려왔던 사패오왕은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쩍, 쩌적! 쩍!
씩씩거리며 쉼 없이 움직이는 진무의 주먹은 바람 같았고, 머리카락을 휘어잡힌 유월청은 바람에 속절없이 나부끼는 깃발 같았다.
“애들은 왜 납치했어! 앞길이 구만리 같은 애들을!”
“민가에 피해를 입혀?”
“녹림? 야금당? 수채? 흑사방? 망할 자식이, 누가 그런 놈들하고 어울리래!”
“군림해도 모자랄 판에 상단의 따까리 노릇이나 하고 있어?!”
“뭐? 출신? 무공이 어쩌고 어째? 그리고 간악해? 이런 쌍놈의 새끼, 키워 준 은혜도 모르는 새끼!”
“영약이고 무공이고! 너한테 들어간 돈이 얼만데!”
“말을 하라고! 말을!”
진무가 대답한 틈도 없이 자신의 말을 쏟아부으며 바닥에 널브러진 유월청을 마구잡이로 짓밟기 시작했다.
참으로 용한 것은 그리 맞고도 유월청이 정신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꾸에엑! 꾸에에엑!”
“이런 쌍놈 새끼! 멱따는 소리 그만 내고 나를 설득하란 말이야!”
비명을 질렀다는 이유로 다시 짓밟힌다.
뒤늦게 달려와 사패오왕의 곁에 멈춘 적생이 구타의 현장을 목격하고 학을 떼는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사패…… 아니, 유월청의 맷집이 엄청나군요. 저리 맞으면서도 버티다니…….”
그 말에 천우명을 비롯한 사패오왕은 물론 황신과 소동보까지 고개를 홱 돌려서 그를 째려본다.
무언가 동병상련을 느끼는 자들의 눈빛이랄까?
“……제,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찔끔한 적생이 눈치를 보며 말하자 명세찬이 나지막이 말하며 고개를 젓는다.
“저건…… 잘 때리는 겁니다.”
“예술적으로…….”
“무자비하게.”
“쉬지 않고.”
“이상하게 정신이 말똥말똥해지지요.”
“그래서 더 고통스럽고요.”
명세찬의 말에 째려봤던 모두가 한마디씩 흘리며 진심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저, 근데…… 그만 말려야 하지 않을까요?”
“……어떻게요?”
“예?”
원공후의 말에 적생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말리면 더 화내실걸요? 아마 같이 맞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저대로 두면.”
“뭐, 총사께서 정히 말려 보고 싶으시다면 막지는 않겠습니다. 멀리서 응원 정도는 해 드리지요.”
“…….”
순간 적생이 눈을 끔벅거리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손바닥을 치며 급히 몸을 돌렸다.
“아! 이런 내 정신 좀 보게. 전쟁이 끝나면 응당 전장 정리부터 해야 하는 것인데.”
……역시 총사는 괜히 되는 것이 아닌가 보다.
모두가 그의 태세 전환에 감탄하며 뒤를 따른다.
“제가 돕지요.”
“저도…….”
“저 역시.”
“저는 각지에 종전을 알리는 전서구를.”
사패오왕들이 저마다 이유를 대며 재빨리 적생의 뒤를 따르자 황신과 소동보도 못 이기는 척 몸을 돌린다.
“너희들은 있어야지.”
“……예?”
원공후의 말에 황신과 소동보가 멈칫하며 그를 쳐다본다.
“개인 호위잖아.”
“…….”
“전령이고.”
“…….”
“응당 천주님을 말려야지. 저러다가 유월청이 진짜로 죽어.”
그 말을 끝으로 원공후가 재빠르게 몸을 빼고 적생 쪽으로 잰걸음을 걷는다.
“크아아악!”
짐승같이 포효하며 유월청을 짓밟아 대는 진무의 모습을 힐끗거린 소동보가 도움을 청하기 위해 급히 소약벽을 불렀다.
“……할머……니?”
조금 전까지 적생의 뒤를 따라 걷던 소약벽의 모습이 연기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손까지 살랑살랑 흔들면서.
“…….”
황신과 소동보는 서로를 마주하다 천천히 진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말을 하라고 이 새끼야! 입을 가지고 왜 말을 못 해!”
“…….”
무섭다.
말릴 수 있을까?
“또 씨불여 봐! 어! 니가 사패천주라며? 잘났다고 한번 씨불여 보라고! 설득을 해 보라니까!”
“…….”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면서도 유월청을 마구 밟아 대는 모습에 황신과 소동보가 깊은 한숨을 내쉰다.
저거…… 밤새 이어질 것 같은데 어떻게 하지?
죽든가 말든가 그냥 끝날 때까지 한숨 자고 올까?
아, 정말 싫다. 개인 호위…… 전령…….
사파를 대표하는 최강의 고수들을 일컬어 사패오왕은 개뿔이.
책임감은 약에 쓸래도 없는 망할 노인네들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