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1
31화
빠악!
주먹이 휘둘러지자 비대한 금적산의 몸이 허공을 날아올랐다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크어어. 그, 그만.”
땅바닥에 처박혔던 금적산이 손을 뻗어 다가오는 진무를 제지하려 했다.
퍼억!
하지만 곧바로 발길질이 살집이 가득한 복부를 파고든다.
“커억!”
콱! 콰콱! 콱!
이어지는 것은 사정없는 짓밟음.
요 새끼! 요 돼지 같은 새끼! 감히 날 사지로 몰아넣은 새끼! 밀수꾼 새끼!
“꾸에엑!”
금적산의 비명이 갈대밭을 가득 채웠지만, 진무의 구타는 멈추지 않았다.
딱히 무슨 절세의 무공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짓밟는다.
그저 때리고 찬다.
하지만 무공이라고는 고작 삼류들이나 하는 손, 발짓밖에 익혀 보지 못한 금적산으로서는 고스란히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진무의 구타는 매우 집요하고 고통을 주는 것에 특화되어 있었다.
분명히 전신을 가리지 않고 패는 것 같은데, 맞고 보면 아까 그 자리다. 맞은 곳의 고통이 가시기 무섭게 같은 자리를 패고, 또 패고, 팰 만큼 팼다 싶으면 그제야 옮겨 패고…….
“크허허허. 제발, 제발 살려 주시오. 제발.”
눈물이며 콧물로 온통 범벅이 된 금적산이 진무의 바짓단을 부여잡고 애원하고 또 애원했다.
꽈악.
진무는 그가 잡은 바짓단을 내려다보았다.
“놔.”
“살려…… 주세요.”
그리고 천천히 쪼그려 앉아 바짓단을 꼬옥 잡은 금적산의 손가락을 쥐었다.
“누가 죽인대?”
우드득.
“아악!”
손가락이 꺾이지 말아야 할 방향으로 접혔다.
콰직!
그리곤 주먹으로 손뼈를 으깨 버렸다.
“끄어어!”
부러진 손가락의 아픔보다 더욱 심한 고통이 찾아들었다.
아팠다.
몸서리치도록 아픈데, 딱 그만큼이었다.
극심한 고통이라면 혼절이라도 할 것인데 진무는 딱 정신을 잃지 않을 정도의 고통만 주었다.
“저, 그, 그만 말려야.”
보다 못한 관군의 수장이 청상에게 소곤거렸다.
누가? 누굴? 왜?
청상은 전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지옥에 가고 싶으면 혼자 갈 일이지, 어째서 자신을 끌어들인단 말인가?
진무의 눈동자.
소름 끼치도록 차갑고 무서웠다.
진무와 함께하는 동안 저런 눈빛은 처음 보았다.
분명 말렸다가는 자신에게까지 불똥이 튈 것이 분명했다. 그 때문에 청우가 보이지 않았음에도 묻지 못했다.
“무량수불.”
청상은 관인을 애써 외면하며 도호를 외웠다.
“후우, 후우…….”
얼마나 지났을까?
단 한시도 쉬지 않고 금적산을 두들겨 패던 진무가 손을 털며 일어났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금적산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땅바닥에 패대기쳐지고 행인들의 발에 수도 없이 짓밟힌 개구리 같은 모습이었다.
누군가 ‘사실은 사람일세.’라고 하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일 만큼 처참했다.
진무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청상이 급히 말했다.
“사, 사숙! 수고하셨습니다.”
뭘? 사람 팬 걸?
그냥 갑자기 그런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살기로 가득한 진무의 눈빛에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수, 수고하셨습니다.”
옆에 있던 관인의 수장도 덩달아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청상과 마찬가지였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진무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청양상단의 호위 무인들은 백여 명이나 되는 관군에 의해 무기를 빼앗긴 채 모두 제압되어 있었다.
진무 일행을 도왔던 무뢰배들 또한 같은 모습이었다.
관군이 나타나는 순간 공사척이 박도를 버리고 투항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대혀(대협)!”
공사척은 잡혀서 발음 새는 소리를 내면서도 표정이 밝았다.
무당의 도사를 도와 화약 밀수꾼을 소탕했다.
투항해서 무공이 제압당하고 손목에 추(杻: 나무로 된 수갑)가 채워졌으나 세상에는 정상 참작이라는 것이 있다.
진무가 변호를 해 주면 필시 방면될 것이라 생각했다.
희망 가득한 공사척의 눈빛에 진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관군의 수장에게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
“얼마요?”
“예?”
진무의 소곤거림에 무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사척. 현상금.”
“아, 은 백 냥입니다.”
백 냥, 백 냥이란다.
사파의 무인들은 정파의 무인들과는 달리 관무불침의 전통과는 관계가 없었다.
녹림은 산적이고, 장강은 수적이며, 흑사방은 각종 불법의 온상이었다.
공사척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단강구의 뒷골목을 주름잡아 온 무뢰배의 두목으로 상인들의 고혈을 빨고 사람들을 수도 없이 괴롭혔다.
즉, 그들은 민생을 어지럽힌다.
다만 섣불리 잡아들이려 했다가는 도리어 관인들이 상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들이 뿌려 놓은 뇌물이 워낙 막대했기에 잡을 수 있는 경우에도 모르는 척 넘어간 것이다.
하지만 어쩌다 잡히기라도 하면 예외 없이 감옥행이었다.
실적을 쉽게 올릴 수 있는 일인데 관군이 놓아줄 리 없었다.
외통수에 걸린 이상 뇌물을 쓴다고 해도 어림없었다.
물론 진무로서는 같은 사파의 쓸 만한 무인을 관군에게 넘긴다는 사실이 껄끄러울 수도 있었으나,
애초에 감히 자신의 목숨을 노린 놈 아닌가. 굳이 선처를 베풀고 싶지 않았다.
“데려가쇼. 나머지까지 엮어서.”
“알겠습니다. 어쨌든 덕분에 사척파를 일망타진하고 국가적으로 금하고 있는 화약 밀거래까지 잡았습니다. 지현대인을 대신해 감사드립니다.”
관군의 수장의 말에 공사척이 진무를 바라보며 눈을 끔벅거렸다.
“자, 자까마 대혀(잠깐만 대협)?”
분명 목숨을 노린 건 불문에 부친다고?
물론 그랬다.
그래도 어쩌랴.
진무는 굳이 약속 따위에 구애받지 않을 만큼 비열했다.
은이 백 냥인데…… 그것도 부수입으로.
“끌고 가라.”
관군의 수장의 말에 공사척이 눈이 동그래져서 진무를 쳐다보았다.
“대혀(대협)!”
그리고,
관군의 수장이 진무에게 현상금을 내어 주겠다는 확인증을 건네는 모습이 보였다.
공사척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야이! 비열한 개쉐끼야!”
공사척은 이때만큼은 무척이나 정확한 발음으로 소리를 질렀다.
“흠, 재갈을 물리는 게 좋겠소. 빠져나가려고 무슨 말을 꾸며 댈지 모르는 놈이니.”
“아, 그럴까요?”
진무의 의견에 관군의 수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역시 바라던 바였다.
공사척이 뿌린 뇌물이 대단하여 입을 연다면 관인들도 곤경에 처할 테니까.
누이랑 매부가 나란히 좋은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관인은 즉시 공사척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그 뒤를 따라 관군들이 피떡이 되어 사람 형체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금적산과 무뢰배, 상단의 호위 무인들까지 포승줄로 묶어서 압송했다.
마음 같아서는 공사척이고 금적산이고 모조리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어디까지나 명망 높은 무당의 도사가 아니던가?
사건은 끝났다.
배를 타고 도망친 복면인들은 관군의 순시선이 뒤쫓고 있으니 굳이 진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범죄자는 관군이 잡고,
나쁜 놈은 나쁜 놈이 잡았으니,
진무는 돈만 챙기면 된다.
궤짝은 청우가 들고 날랐고, 현상금도 받았으니 이제 충분…….
“저어.”
“……예?”
갑자기 진무가 부르자 관군의 수장이 고개를 돌렸다.
“혹시, 밀거래 포상금 같은 건?”
“…….”
“……없습니까?”
초롱초롱한 눈망울.
안 주면 무척이나 실망할 것 같은 진무의 표정에 관군의 수장이 어색하게 웃었다.
“아, 그…… 후에 현청으로 와 주십시오. 제가 지현대인께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아, 그래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그동안 의심하고 있던 금적산을 잡았으니 청양상단의 재산이 몰수당할 겁니다. 막대한 재물일 테니 포상금 정도야.”
뭐?
청양상단이 몰수를 당한다고?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 청양상단을 습격했을 때 좀 빼돌리는 건데…….
아쉽다.
원래 돈에 대한 욕심이란 게 황금으로 산을 쌓아 두고도 땅에 떨어진 철전이 탐나는 법이 아니던가.
하지만,
진무는 무당의 도사였다.
더 이상의 속된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었다.
“그럼 막대한! 포상금을 기다리겠습니다.”
“아, 아. 예.”
특정 단어에 힘을 주는 진무의 모습에 관군의 수장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럼 나중에 봅시다. 꼭이오!”
진무는 죄인들을 이끌고 돌아가는 관군의 수장이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청상아.”
“예, 사숙.”
“청우 찾자.”
“…….”
“멀리 못 갔을 거야.”
청상은 그저 두 눈만 끔벅거렸다.
그러고 보니 청우는 어디 간 거지?
* * *
탕, 탕!
“누구요!”
동림전장의 단강지부장 황전은 아침부터 문을 두들겨 대는 소리에 짜증스럽게 잠에서 깨었다.
탕탕탕!
하지만 찾아온 이는 대답도 하지 않고 문만 두들겨 대었다.
“그만 두들기시오! 거, 부서지겠소!”
잠에서 막 깬 터라 신경질이 가득 묻은 황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에 붙은 외창으로 빼꼼히 밖을 살폈다.
도사, 그것도 셋.
희한하다.
원래 도사들은 딱히 전장과 거래할 일이 없었다.
돈에 초연한 이들이니.
그런데 앞섶에 태극 문양이 선명한 것을 보면 분명히 도사, 그것도 무당의 도사들이 분명한데,
‘아침부터 빈털터리 도사들이 재수 없게시리…….’
더욱 짜증이 났다.
자고로 첫 손님이 중요한 법인데 하필이면 도사란 말인가?
더욱이 저 꾀죄죄한 옷차림 하며.
쫓아내야 했다.
저것들을 받았다가는 오던 재신도 돌아갈 것만 같았다.
“문 열 시간이 멀었소. 볼일이 있으면 오후에나 오시오.”
“…….”
말귀를 못 알아먹는 것인지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황전은 눈을 찡그리며 몸을 돌렸다.
쾅! 쾅쾅!
“…….”
더욱 세게 두들기기 시작한다.
이 도사들이 진짜!
정말로 문을 부술 듯한 기세였다.
황전은 몇 걸음도 가지 못하고 결국 몸을 돌렸다.
“이보쇼! 문 열 시간이.”
슬쩍 빗장을 푸는 순간,
도사들이 황전을 밀어젖히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진무 일행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예치금 백 냥 이상의 귀한 손님들을 상담하기 위해서 마련된 호피 의자에 앉는다.
그 가죽이 얼마짜린 줄 알고!
옷에 묻은 지푸라기는 물론 흙조차 떨지 않고!
“이보시오!”
황전이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손가락질을 하려는데,
“여기 용정차 한, 아니 세 잔!”
차 마시는 다루(茶樓)도 아닌데 다짜고짜 차 심부름을 시킨다.
황전의 나이 올해 쉰을 넘었다.
어린 도사 놈들이 뭐 이렇게 싸가지가 없지?
하지만 손님 접대에 오랫동안 단련되어 온 황전은 가까스로 화를 삭이며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
“이보시오. 도사님들, 당장 나가지 않으면 경비 무인을…….”
황전이 여차하면 강제로 쫓아낼 생각으로 말하려는데 진무가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청우!”
“예, 사숙!”
“올려.”
텅!
들고 온 궤짝이 탁자 위에 올려졌다.
“열어!”
덜컥!
궤짝의 뚜껑이 열리고,
“…….”
황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누렇다.
복되고 찬란한 황금빛 물결이 온 방 안을 채운다.
꿀꺽.
절로 침이 목울대를 넘어갔다.
‘재, 재신이다. 재신이야!’
황전은 번개 같은 움직임으로 전장의 벽면에 설치된 손잡이를 잡고 미친 듯이 당겨 대었다.
짜라라라라!
분명 종소리라 함은 ‘짤랑’일 텐데.
얼마나 열심히 당긴 것인지 소리가 끝을 맺지 못했고,
어느새 일어난 전장의 직원들이 진무 일행이 앉은 탁자로 차와 음식을 날라 왔다.
“이놈들이! 감히 재신님께 이따위 차를 가져와? 서둘러 서호용정(西湖龍井)으로 바꿔 오지 못해!”
“이놈들! 다과가 이게 뭐냐! 최고급이다! 최고급으로 가져와!”
“네 이년! 어서 귀인분들의 어깨를 주무르거라! 얼굴에 저리 피곤이 묻어나시거늘!”
황전은 일인 삼 역을 하듯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경건한 모습으로 진무 일행이 앉은 탁자로 다가왔다.
털썩.
쉰이 넘은 나이였지만 그는 여전히 일선에서 뛰고 있는 전장의 지부장이었다.
나이? 그딴 건 중요하지 않다.
전장에서는 돈이 곧 어른이고 신분인 법이다.
더욱이 무당이 아닌가.
이보다 확실한 신분도 없었다.
또 좀 불확실하면 어떤가? 진무 일행이 들고 온 궤짝의 누렁이라면 무려 일 년 치 거래금에 달했다.
“귀인!”
황전이 무릎을 꿇고 진무를 향해 공손하게 말했다.
“동림전장, 단강지부장 황전이 인사 올립니다.”
동림전장 단강지부는 개점 이래 처음으로 이른 새벽 영업을 시작했고, 진무는 동림전장 단강지부에 처음 구좌를 텄다.
청상과 청우에게도 한 구좌씩.
다른 이유는 없었다. 입을 막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