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13
313화
꽈득, 꽈드드득.
“끄어어…….”
숨이 섞이지 못하고 새어 나오는 신음. 회백색으로 변한 눈동자와 함께 피부가 푸석푸석하게 거칠어진다.
“소, 소궁주님!”
“…….”
겁에 질려 주저앉은 무인이 생기를 잃어 가는 동료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하지만 소궁주 한승의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툭, 투두둑.
결국 한승의 손에 머리를 붙잡힌 무인은 목내이처럼 완전히 쪼그라들더니, 이내 가루가 되어 땅바닥에 흩어졌다.
“크으…….”
지그시 눈을 감고 수하로부터 빨아들인 내기를 음미하던 한승의 얼굴이 별안간 와락 찌푸려진다.
“아무짝에 쓸모없는…….”
“……!”
한승의 시선이 천천히 남은 무인을 향한다.
“너는 어떨지 모르겠구나.”
잔인한 미소, 새파란 안광을 뿜어내는 눈동자에서는 귀기(鬼氣)마저 느껴졌다.
“으으…… 으아악!”
자신의 미래가 순식간에 그려진 무인이 살기 위해 곧바로 몸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지금의 소궁주는 짐승이다.
허기로 눈이 돌아가 먹잇감만 보면 달려드는 잔인한 짐승.
벗어나야 했다.
저 손아귀에 잡히면……. 하지만 열심히 발을 움직였음에도 몸은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쭉 뻗어 낸 한승의 손에 잡혀 그대로 허공에 떠 버린 것이다.
“크큭.”
등 뒤로 한승의 잔인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기를 잠시, 일순 한승의 흡입력을 이기지 못한 무인의 몸이 뒤로 훅 당겨졌다.
콱!
발버둥조차 쳐 보지 못하고 그대로 내력을 빨리기 시작한 무인은 마치 거미줄에 걸려 버둥거리는 파리처럼 무기력했다.
이전과 다름없이 부서져 버리는 무인의 잔해를 바라보는 한승의 눈동자에 언짢은 빛이 떠올랐다.
“……제길. 더 필요해, 더.”
씹어뱉듯 중얼거린 한승은 자신의 거처인 공동 밖으로 걸음을 옮기며 주위를 호위하던 무인들이 눈에 띄는 족족 손을 뻗었다.
“크아악!”
“으악!”
더러 도망치는 자도 있었으나 무의미한 반항에 불과했다.
그들 중 누구도 이미 완숙한 강의 경지에 올라 있는 그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었다.
“소, 소궁주…… 살려…… 으아악!”
공포에 질린 무인들이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 댔지만, 한승은 조금의 동요조차 없이 손을 뻗었다.
소궁주 한승.
그가 익히고 있는 무공은 타인의 기운을 흡수하는 금지된 마공이었다.
마교에서조차 그 위험성 때문에 봉인되었고, 세월이 흘러 이제는 절전되기에 이른 흡정공(吸精功).
타인의 내공을 흡수하면서 발생하는 마기로 인해 마성이 깃드는 부작용이 있어 익히기가 쉽지 않았으나, 내궁주 종려군이 한승을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해결책을 만들었다.
불순함을 머금은 무인의 것이 아닌 동남동녀의 생기로 내공을 축적하게 한 것이다.
한승은 그로 인해 흡정공의 마성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마성에서는 벗어났으나 몸 안에 쌓인 생기가 내공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서로 충돌하며 엄청난 열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열기는 피와 살이 타 버릴 정도의 고통을 수반했고, 한승은 몇 번이고 죽음의 고통을 견뎌야만 했다.
그때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의 무지막지한 내력에 주변이 폐허로 변했다.
분노한 대궁주는 그의 행동에 제약을 가할 것을 명했다. 지정된 곳을 벗어나지 못하게 금제(禁制)를 내린 것이다.
그곳이 바로 지금 그가 위치한 북해의 냉기를 머금고 쏟아지는 한수폭(寒水瀑)의 공동이었다.
하지만 한수폭의 냉기조차 일시적으로 열기를 식혀 줄 뿐 열기의 대안이 되지 못했다.
“칠음은맥…….”
무인들의 생기를 모조리 흡수한 한승이 자신의 손에서 피어오르는 열기를 느끼며 중얼거린다.
상관평이 다시금 찾아낸 해결책은 칠음은맥의 체질을 가지고 태어난 여아의 음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로 인해 한승은 순식간에 벽을 뛰어넘고 막대한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중원에 숨어든 일궁과 삼궁은 한승에게 필요한 동남동녀를 납치해서 보내 왔고, 간간이 칠음은맥의 아이를 확보했다.
그런데 근래 상관평이 확보하려 했던 형주 홍가장의 여식과 송여방이 찾아낸 산서 추가장의 여식 둘을 뺏긴 것도 모자라 삼궁과 일궁이 모두 무너지면서 닷새에 한 번, 흡정공 수련에 필요한 동남동녀의 수급마저 끊어져 버렸다.
흡정공이 주는 급격한 성취의 달콤함에 취해 버린 한승은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휘하의 무인들까지 모조리 잡아먹었다.
하지만 결과는 부작용의 재발뿐이었다.
“무당지검…… 사황의 전인…….”
자신을 방해한 두 놈.
뿌드득.
한승이 어금니를 세차게 갈았다.
한 시대에 두 명의 영웅이 나타나지 않는다던 상관평의 말은 틀렸다.
하지만 한승이 화가 나는 것은 그 두 마리의 미꾸라지에 의해 삼궁과 일궁이 무너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힘을 얻기만 한다면 그따위 세력은 언제든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크윽!”
은은하게 차오른 분노가 심마를 동반했기 때문일까?
수하들에게서 흡수한 내공이 단전에 섞여 들며 거칠게 일어난 열기가 그의 혈맥을 헤집기 시작했다.
핏줄 안에서 수백 마리의 개미가 깨무는 듯한 고통이 느껴져 왔다.
“끄으으…….”
그의 몸에서 피어오른 열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자 주변에 있던 수목들이 누렇게 말라비틀어진다.
첨벙.
재빨리 한수폭의 소에 뛰어들었으나 열기가 가라앉기는커녕, 되레 소의 물이 온천수라도 되는 양 부글거리며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젠장, 버려야 하는가?
우르릉!
한승은 결국 무인들에게서 빼앗은 내공을 모조리 토해 내듯 쌍장을 뻗었다.
우드드, 콰쾅.
시커먼 마기와 함께 휘몰아쳐 나온 장력이 폭포의 한쪽 절벽에 닿아 폭발하며 허물어졌다.
“제길…….”
합쳐지지 못한 내공을 모조리 뿜어내고 나자 고통은 반감되었지만, 그 이상으로 몰려드는 지독한 공허감에 한승이 입술을 깨물었다.
강의 경지를 초월할 날이 머지않았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대궁주 휘하의 세력들은 자신을 돕지 않는다.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내궁을 손에 넣은 상관평, 그리고 마교의 이궁뿐이다.
그래. 시대에 뒤떨어진 늙은이들에게 의지해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가 없다. 직접 나서자.
한수폭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이궁, 그리고 마교…….
“대궁주의 금제(禁制) 따위…….”
자신이 정한 영역에서 벗어나지 말라고? 힘을 얻고 나면 그까짓 게 무슨 대수일까?
직접 중원으로 나가 벽에 막힌 경지를 뛰어넘어 누구도 갖지 못했던 힘을 손에 쥐는 것이다.
그리되면 대궁주이자 자신의 아비가 가진 모든 것을 손안에 넣을 수도 있을 터.
“크크크…….”
탐욕에 취해 시뻘겋게 물든 한승의 두 눈에는 옅은 마기가 감돌고 있었다.
* * *
“이런 젠장…… 뭐가 이렇게 추워?”
갑작스럽게 분 바람의 한기에 진무가 피풍의로 몸을 감쌌다.
망할, 저 거지 놈들은 춥지도 않은가?
진무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에서 두런두런 무공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양소방과 각출을 쳐다보았다.
다 해진 누더기를 입고 있으면서 춥지도 않은 모양이다.
어쩌면 하도 안 씻어서 때가 굳어서 내의처럼 변했을지도 모른다.
더러운 놈들 같으니…….
“천주님.”
“왜?”
소동보의 부름에 진무가 신경질적으로 눈을 돌렸다.
이젠 딱히 천주라 부를 때 주위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이 한다고 한 게 아니라 저들이 하라고 등을 떠밀었으니 이제 아무런 문제도 없다.
“저기…….”
소동보가 가리킨 곳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불빛.
“황신.”
진무의 나지막한 부름에 황신이 귀를 쫑긋 세우고 살핀다.
“인근에 마을이 있는 모양입니다.”
“마을?”
“예. 들려오는 소리가 많습니다.”
사패천을 떠나온 지 이틀째 되는 밤.
일행은 빨리 무당으로 가야 한다고 재촉하는 양소방 때문에 쉬지 않고 말을 달려야 했고, 이미 두 개의 마을을 건너뛴 참이었다.
“잘됐네. 안 그래도 추웠는데.”
진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양소방을 쳐다본다.
“마을이랍니다.”
“……응? 들어가려고? 좀 더 달리다가 어제처럼 야숙하는 게 아니고?”
야숙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추워 죽겠구만.
무슨 잠자는 시간을 빼고 달리기만 할 셈인가?
“객점을 잡고 쉬어야지요. 모처럼 뜨끈하게 술도 한잔하구요.”
“그, 그럴까?”
술이라는 말에 양소방이 목젖이 움직이는 게 다 보이도록 침을 삼키며 입맛을 다신다.
“잘됐구만. 모처럼 사패천주의 덕 좀 보세.”
“…….”
양소방의 말에 진무가 물끄러미 그를 쳐다본다.
“왜?”
“덕……이라니요?”
“응?”
“각자 내셔야지요.”
“……에이 이 사람, 농담도.”
“농담이라니요? 무슨 그런 말씀을.”
“…….”
진무가 자세까지 고쳐 잡으며 정색하자 양소방이 조금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네 돈 많지 않은가? 사패천에서 묵직한 전낭을 받아 오는 것을 내가 다 봤는…….”
“어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뭐?”
“무당의 허락을 받지도 않았는데 뭔 사패천주란 말입니까. 그러니 그들이 준 돈은 절대로 쓸 수 없습니다.”
“아니 이 사람, 무슨 그런 융통성 없는 소리를? 자네 그런 도사가 아니지 않은가?”
“그런 도사 맞습니다.”
“…….”
진무가 단호하기 그지없는 어조로 딱 잘라서 말하자 양소방이 섭섭하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진무를 빤히 쳐다보았다.
“어르신과 어르신 제자를 염두에 두지 않았기에 지금 제 수중에는 딱 저와 제 일행이 쓸 만큼의 돈밖에 없습니다. 각자 해결하시지요.”
“가, 각자……. 이 사람, 이보게. 우리 사이가 그렇지가 않은데.”
“무슨 그런 말씀을.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습니다. 아무리 친해도 금전 관계는 깨끗해야지요.”
“아니, 나의 내공이…….”
양소방이 자신도 모르게 말을 꺼냈다가 각출의 눈치를 보고는 입을 다문다.
물론 눈빛을 보니 무슨 내공을 함께 나눈 영혼의 동반자, 뭐 이딴 소리를 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말이야.
언제 일을 가지고, 지금. 보아하니 내공도 다 회복했구만.
“어쨌든 사패천의 돈은 절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럼 나중에 뵙죠.”
매몰차게 말한 진무가 고개를 홱 돌렸다.
사실 양소방에게 돈을 쓰는 것이야 새삼 뭐가 아깝겠는가? 다만 양소방에게 쓰는 순간 각출이라는 놈까지 엉겨 붙을 것이 틀림없었다.
잡아먹을 듯이 야리던 그 눈빛을 진무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줘 패고 싶었지만 양소방의 제자라고 하니 이유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이놈 새끼, 싸가지 없는 새끼. 고생 좀 해 봐라, 날도 추운데.
거지 후개까지 한 놈이니, 제 스승을 위해 어디 마구간 하나 빌릴 정도의 수완은 있겠지.
“먼저 가겠습니다!”
말을 마친 진무가 힘차게 채찍을 때리고 앞서 달려 나갔다.
“허, 저리도 매몰찰 수가. 내 그리 보지 않았건만……. 하필이면 돈도 한 푼 없는데…….”
양소방이 순식간에 점처럼 멀어져 버린 진무 일행을 망연자실하게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사부님.”
“……왜 그러느냐?”
“객점을 잡으실 거면 제가 준비를 할까요?”
“……응? 돈이 있었더냐?”
양소방이 반색하며 묻자 각출이 고개를 젓고는 웃는다.
“없지만, 마련은 할 수 있습니다.”
“…….”
어떻게, 말이라도 팔려고?
하긴, 한혈마니 비싸기야 하겠다만…….
그래, 차라리 그렇게 해라. 개방 거지가 언제부터 말을 탔다고……. 내일부턴 뛰면 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