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16
316화
황신과 소동보는 한없이 즐겁게 웃는 진무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각출의 미래가 선명하게 보이는 느낌이었다.
저 모습을 보일 때의 천주에게는 절대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천주는 지금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다. 저 불길에 휘말렸다가는 흔적도 없이 타서 재가 되고 말 터다.
하긴 저 자린고비 같은 천주가 돈을 그렇게 뜯기고 참을 리가 없다.
더욱이 다른 것도 아니고 내기에서 졌으니…….
황신은 과거 도박장에서 돈을 잃고 무참하게 짓밟혔던 기억이 떠올라 안타까움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각출을 바라봤다.
미련한 녀석, 어쩌자고 저 개천주의 심기를 건드렸단 말이냐?
진작에 개평이라도 좀 주지 그랬니? 그럼 송곳니까지 드러내면서 웃지는 않았을 것인데.
그리고 소동보의 시선은 흥분으로 가득 차 있는 양소방을 향한다.
늙은 거지, 평소에 각출이라는 놈을 마음에 안 들어 한 건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자를 사지로 몰아넣고 저리도 좋아하는 모습이라니.
정파의 명숙이라는 자가 어찌 저리도 잔인하단 말인가?
그러다 불쑥 자신의 조모 소약벽을 떠올린 소동보의 미간이 슬며시 찌푸려졌다.
무조건 개기라고 했던……. 개겨서 될 일이었나 싶다. 그간 안 죽은 게 다행이지…….
둘이 각자의 감회에 젖어 드는 사이 양소방이 희희낙락한 얼굴로 각출을 격려한다.
“각출아, 상대는 무당의 최고수이자 사패천주이다. 네가 가진 모든 무공을 선보여야 한다.”
“예! 스승님, 개방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황신과 소동보가 듣기에는 가서 죽으라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데 각출은 그걸 또 공손하게 받아먹으며 진무의 앞으로 나선다.
“개방의 각출이 무당지검께 가르침을 청하오!”
“어, 그래.”
가르침. 그래, 이건 가르침이지.
전낭 때문도 아니고, 내기에 져서도 아니다.
자고로 매는 사랑으로 들라고 했다. 그러니까 나중에 딴소리하지 마라, 거지 노예 이 호야.
허리춤에서 청죽봉을 꺼내 들고 자세를 취하는 각출을 바라보는 진무의 입가에 어린 미소가 더욱 짙어진다.
가르침을 머리, 아니 뼛속 깊이 새겨 주려는 진무의 거친 생각과 황신과 소동보의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양소방의 시선 속에서 대망의 지도 대련이 시작되었다.
“타구봉법이냐?”
진무의 심드렁한 말에 각출이 고개를 끄덕인다.
“쯧쯧, 하여간에 불쌍한 개를 패려고 무공까지 만들다니.”
“…….”
대놓고 빈정거리는 말에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청죽봉을 든 채 매섭게 진무를 바라보는 각출.
그래도 제법 자세가 잘 잡혀 있다. 후개였다더니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저 정도면 양소방의 제자가 될 만…… 어?
잠깐만!
순간적으로 기가 막힌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래, 이걸 왜 미처 깨닫지 못했지?
진무는 목구멍에 꽉 막혀 있던 무언가가 쑥 내려가는 것을 느끼며 씨익 웃었다.
“저를 무시하시는 겁니까? 어서 자세를 잡으시죠.”
단단히 자세를 취하고 노려봄에도 진무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자 각출이 미간을 찌푸리며 먼저 신호를 보낸다.
쯧, 한주먹 거리도 안 될 것이 보채기는…….
기다려 봐라. 내가 지금 아주 끝내주는 생각이 하나 떠올랐거든?
손을 번쩍 들어서 각출을 세운 진무가 양소방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무풍개 어른.”
“……응?”
“내기의 조건이 제가 저 녀석을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침을 주라는 것이었나요?”
“맞네.”
“그럼, 어르신께서 저 녀석의 스승이시니, 저는 스승 이(二)쯤 되는 건가요?”
“이…… 번이라니, 이 사람아. 내 자네가 각출이를 맡아 준다면 감사해 절을 올릴 수도 있다네.”
“뭐 그렇게까지야. 어쨌든 한동안 제가 데리고 다녀도 된다는 말씀이네요.”
“그래 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네.”
“그동안 제가 어떻게 가르치든지 무얼 지시하든지 상관없고요?”
“물론!”
“예…… 아주, 아주 좋습니다. 지금의 약속을 절대로 잊지 마시길.”
“자네야말로!”
양소방의 확답에 진무의 미소가 끝도 없이 음흉하게 변한다.
이로써 각출에 대한 장기 임대권과 자신 마음대로 사용해도 되는 자유 이용권을 받아 내었다.
잘 생각해 보면 이건 매우 큰 호박이다.
저 볼품없어 보이는 각출이 녀석은 무려 개방의 후개였다가 양소방의 제자씩이나 된 놈이다.
즉, 개방에서 가지는 영향력이 엄청나다는 뜻.
협전? 팔결?
그딴 건 이제 아무 필요도 없다.
각출이 녀석을 옆에 끼고 있으면 언제든 원할 때 개방을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옆에 두면 개방과의 연통을 주고받기도 편하다.
잘만 하면 중원 최고의 정보 조직 중 하나인 개방을 손안에 넣고 주무를 수 있는 것이다.
덤으로 저 말도 안 되는 구걸 능력이면 중원 어디를 가도 돈 한 푼 안 쓰고 생활할 수 있었다.
그동안 홀로 돈을 써서 사람들을 먹여 살려 온 진무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이 없었다.
안 그래도 월청이 놈을 살려 둔 것이 마음이 찝찝하던 참이다.
자신이 그런 결정을 내렸으니 응당 책임을 져야만 한다.
녀석이 팔아먹은 아이를 전부 되찾아 집으로 돌려보내야만 자신이 잘못 가르친 것에 대한 죄가 조금이나마 해소될 터였다.
하오문에 이어 개방까지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으니 아이들을 찾는 것은 시간문제다.
합격! 무조건 합격이다.
거지 노예, 너를 황신에 이어서 부하 육 호로 승격시켜 주마.
아, 소동보도 있으니까 칠 호인가? 그래, 소동보를 육 호로 하고 너를 칠 호로 하자.
안 그래도 부하의 수를 점점 더 늘려 갈 생각이었다.
어디 가서 자랑해도 좋다.
앞으로 정사마에 이어서 황궁까지 집어삼킬 이 몸의 부하이니라.
“자,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 가르침.”
“그러시죠.”
짝다리를 짚고 슬쩍 손을 내밀며 무당의 선기를 끌어 올리는 진무의 거만한 자세에 각출이 눈에 불을 피워 올린다.
자, 오너라. 타구봉법이여.
그동안 개를 잘 패기 위해 고민해 왔다면 아주 잘 찾아온 것이다.
지난 팔십여 년의 세월.
오직 패는 것 하나에 매달려 여기까지 온 나다.
구타의 경지를 예술로 끌어올린 나의 도움을 받으면 맞은 개도 미소를 지으며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들게 될 것이니.
“타앗!”
진무의 주위를 느릿하게 배회하며 허점을 찾던 각출이 청죽봉을 매섭게 휘두르며 좌측으로 파고든다.
타구봉법의 첫 초식이 길 막은 개 때리는 것부터였나?
갈지(之)자로 움직이며 거리를 좁힌 각출의 타구봉이 좌에서 우로 힘차게 움직이며 진무의 머리를 노린다.
후웅!
반보를 물리며 허리를 뒤로 젖히는 움직임에 청죽봉이 허공을 가르고.
“하압!”
기합과 함께 각출이 몸을 비틀자 끝점에서 사선으로 떨어지는 청죽봉이 집요하게 진무의 머리를 쫓아왔다.
다 보인다, 이 새끼야.
뒤로 뺀 발을 비틀자 진무의 몸이 자연스럽게 공격의 반대편으로 돌아가고, 목표를 잃은 각출의 청죽봉은 땅바닥을 때린다.
“헛!”
졸지에 측면이 비어 버린 각출이 급히 청죽봉을 끌어당겨 휘두르며 몸을 팽이처럼 회전시켰다.
파파파!
“…….”
지면을 가볍게 찬 진무가 거리를 벌리자 회전을 멈춘 각출이 곧바로 따라 뛰어들며 청죽봉을 수직으로 내리쳤다.
후개라더니 그 이름에 걸맞을 정도로 초식 전환이 빠르다.
“헛!”
지켜보던 황신과 소동보는 물론 양소방마저도 각출의 움직임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각출의 타구봉법은 거칠지만 무척이나 변화가 빠르다.
와중에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초식이 너무도 매끄럽게 이어지니 절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문제는 상대가 진무라는 것.
다른 이들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진무의 눈에는 각출의 타구봉법은 골목대장쯤 되는 아이의 몽둥이질에 지나지 않았다.
저렇게 휘둘러서야 사방에 허점밖에 없다.
멍청한 놈, 개를 잡으려면 개의 움직임부터 파악해야지.
개마다 특성이 있고, 몸집이 다른 법이다.
그런데 개는 생각하지 않고 제 몽둥이질만 신경 쓰고 있는 꼴이 아닌가?
구타라는 것이 마구잡이로 때리는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 순서에도 오묘한 진리가 숨어 있는 법이다.
진무는 일단 각출이 펼치는 타구봉법의 흐름부터 파악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아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니까.
“으아아아!”
타구봉법의 초식을 모조리 쏟아부었음에도 진무의 옷깃 하나 스치지 못했던 각출은 신경질적으로 고함을 질러 대었다.
어째서 맞추지 못하는지 모를 테지. 당연한 것을…….
어느 부위부터 때려야 고기 맛이 좋…… 아니 어떤 부분부터 부족함을 가르쳐야 할까?
보법? 아니면 몽둥이질?
너무 허접해서 어딜 먼저 가르쳐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진무가 즐거운 고민에 빠진 사이 허공으로 솟구친 각출이 안광을 줄기줄기 토하며 미친 듯이 몽둥이를 휘두른다.
하나에서 시작된 변화가 더해지고 더해지니 끝내는 수백이 되어 하늘을 뒤덮는 몽둥이의 잔영.
세상 모든 개를 때려잡는다는 천하무구(天下無狗)의 초식이다.
하늘 아래 개가 없다니.
거지새끼들, 초식 이름을 지어도 참 거지스럽다.
그래, 뭘 가르치든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격의 차이를 보여 주는 것.
아, 이 사람은 내가 어찌해 볼 사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끔 절대적인 존경심을 가지게 해야 하는 법.
그 방법은 하나뿐이다.
자근자근 짓밟아 뼛속에 새겨진 고통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눈빛만 마주쳐도 오줌이 찔끔 나오게 하는 공포.
자신에게 덮쳐 오는 수백 개의 몽둥이를 바라보던 진무가 별안간 손을 쑥 뻗어 휘젓는다.
천하무구?
그래 봐야 몽둥이질이지.
“허억!”
각출의 눈동자에 경악이 떠오른다.
그저 쭉 뻗어 펼친 진무의 손이 잘게 흔들리는가 싶더니 천하무구가 만들어 낸 몽둥이를 모조리 잡아채 버린 것이다.
만변의 움직임을 흩어 버리는 무당의 태청산수.
그리고 진무의 손이 실체를 잡아채며 빠르게 당겼다.
쑤욱!
놀란 각출이 청죽봉과 함께 세차게 끌려 내려온다.
“젠장!”
당혹성을 토한 각출이 재빨리 초식을 바꾼다.
타구봉법에 개를 패는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에게 무기를 제압당했을 때. 즉, 개가 몽둥이를 물었을 때 빠져나오는 방법.
치졸하지만 가장 확실한 초식.
슈아악!
각출이 떨어지는 속도에 자신의 힘을 더해 가속하며 빠르게 손가락을 세워 진무를 향해 뻗는다.
노린 곳은 자신을 바라보는 진무의 눈이었다.
타구봉법의 절초 오목충탈(獒目衝奪), 일명 개 눈깔 찌르고 도망치기.
턱!
“……!”
수직으로 세워진 진무의 손이 각출의 손가락 두 개 사이를 가로막는다.
멍청한 놈.
그 정도 비열한 수법에 당할까?
치졸과 비열로 살아온 한평생이다. 이 새끼야.
진무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떠오른다.
콱.
“아악!”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진무의 손에 각출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는 순간.
콰직!
진무의 주먹이 현란하다 못해 섬전처럼 움직이고…….
쩍! 퍼억! 퍼퍽!
“쿠엑! 켁! 크억!”
각출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보이지도 않는 진무의 주먹에 전신 얻어맞으랴, 그야말로 뼛속까지 파고드는 고통에 절로 터져 나오는 비명으로 고막 얻어맞으랴.
하지만 어쩌겠는가. 진무는 가르침에 충실했을 뿐이다.
알겠느냐, 각출아.
개는 이렇게 패는 거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