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18
318화
객점의 사람들은 입을 벌린 채 눈앞의 광경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살아서 날아오를 듯 생생한 용을 수놓은, 무당지검을 상징하는 백색 도포. 단정하게 빗어 올린 머리를 말아 고정한 상투관.
거기다 금박 장식에 검은빛이 도는 일휘까지 허리춤에 맨 진무는 인세에 막 내려온 천인(天人)처럼 기품이 흘렀다.
더욱이 뒤를 따르는 황신과 소동보가 묵빛의 피풍의를 걸친 탓에 백색 도포를 입은 진무가 더욱 돋보였다.
“저희는 준비 끝났습니다.”
“…….”
진무의 말에 양소방과 각출은 말없이 시선을 내려 자신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우리 건?”
“……?”
양소방의 말에 진무는 가만히 그를 쳐다보다 픽 웃었다.
“거지가 무슨 새 옷을 입습니까?”
“그, 그래도…….”
진무 일행에 비해 너무 심각하게 후줄근해 보였기에 자기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거지가 무슨 옷을 갈아입는단 말인가? 덧대어 기워 붙이고 손만 대도 삭아 부스러질 듯한 옷이 곧 자부심인 놈들이.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서 출발하시죠.”
“에휴……. 그러세.”
나중에 개방의 옷도 좀 바꿔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푹푹 내쉰 양소방이 진무를 뒤따른다.
진무가 막 앞서 걸으려는데 해월각의 문이 활짝 열리고 도포 차림을 한 한 떼의 도사들이 안으로 들어서더니, 그중 고개를 휘휘 젓던 젊은 도사가 진무를 발견하고는 활짝 웃는다.
“사제!”
“……어?”
진궁?
저놈이 왜 왔지?
진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진궁이 양소방을 향해 다가가 공손하게 인사를 올린다.
“무당의 진궁이 무풍개 어른을 뵙습니다.”
“……아, 자넨가? 눈썰미가 참으로 좋구만그래. 한참 있다 나를 발견하다니.”
한참까지는 아니었으나 양소방이 눈을 샐쭉하게 뜨고 짓궂게 노려보자 진궁이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뭘 그깟 일로 핀잔을 줘요?”
“……어? 아니 그냥 농 좀 친 건데.”
“하여간에 쫌생이처럼.”
“쪼, 쫌생……!”
“지, 진무야. 말조심 좀 하거라. 누차 말하지 않았더냐.”
진궁이 눈살을 찌푸리며 잔소리를 했다.
하여간, 저 고지식한 성격은 조금도 안 변했네.
진무는 옆에서 서운하다는 듯 구시렁거리는 양소방을 싹 무시하고 진궁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어쩐 일입니까?”
“……너를 마중 나왔다.”
“마중요? 소식도 안 보냈는데?”
“응? 몰랐더냐?”
“예? 뭘요?”
“허허, 너로 인하여 단강구 대부분이 무당의 영역이 된 것이 언제인데.”
“……무당의?”
“진짜 몰랐구나. 하여간 너는 정말 못 말리겠다.”
진무의 의아한 표정에 진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그간의 일을 짧게 설명했다.
과거 공사척 패거리를 몰아내면서 단강구 상인들의 은인으로 떠오른 진무였다.
제갈분가와의 마찰에서도 승리를 거둔 데다 진무가 중원을 돌며 공적을 쌓게 되자 상인들이 줄을 지어 찾아왔고, 자연스럽게 무당의 영향력이 거대해지게 되었다.
“진혜 사제의 본가인 우가장이 후원해 줘서 단강구에 우진궁 지부가 생겼다. 나도 대부분 그곳에서 기거하고 있고.”
“아……!”
진무가 고개를 끄덕인다.
무당의 영역이 확장되었다면 대외 업무를 주로 하는 우진궁이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그나저나 우가장이 후원을 하다니. 생존 능력 하나만큼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얍삽한 새끼들.
진무가 없는 사이 후원 세력으로서 입지를 넓히고 있을 줄이야.
뭐, 상관없겠지.
진명이 차기 장문인으로 내정된 이상 겨우 장로 자리나 노릴 테니까.
진혜라면 나쁘지 않다.
고리타분한 일대제자 놈들보다야 실리에 빠른 놈이니 장로가 되면 득이 되지, 해가 되진 않을 것이다.
“어쨌든 네가 돌아온다는 소식이 전해져 다들 기다리고 있다. 이미 내가 본산에 소식을 넣었으니 모두가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가요?”
“당연하지 않느냐. 너는 무당지검이다. 무당을 재건한 핵심이기도 하고.”
“…….”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말하는 진궁의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낀 진무는 작게 웃었다.
이런 걸 금의환향(錦衣還鄕)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쟤들은 누굽니까?”
진무가 진궁의 뒤를 따라온 새파랗게 어린 도사들에게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대략 십오 세 전후의 소년 도사들이 정자세로 열을 지어 서 있으면서 몰래몰래 진무를 힐끗거리고 있었다.
“아, 너는 처음 보지?”
“…….”
“네 추종자들이다.”
진궁이 힐끗 쳐다보고는 진무를 향해 눈을 찡긋거린다.
이 고지식한 놈이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알았나? 근데 내 추종자들?
“모르겠느냐? 전부 너의 위명을 듣고 무당산에 오른 아이들이다. 수많은 경쟁을 뚫고 오룡궁에 소속된 운자 배의 삼대제자니라.”
“…….”
진무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대가 아니고 삼대?
“쯧쯧, 이렇게 소식이 어두워서야. 자주 연락을 보냈으면 이미 다 알았을 것을……. 너는 너무 무심한 것이 문제야.”
무심했던 것은 사실이긴 한데…….
“자, 다들 인사하거라. 무당의 일대제자이자 너희들의 사숙조이며 당대 무당의 검, 진무다.”
진궁의 명령에 소년 도사들이 일제히 포권을 하며 객점이 떠나갈 듯이 우렁차게 외쳤다.
“오룡궁의 제자가 사숙조님을 뵙습니다.”
“…….”
뭔가 기분이 묘하다. 사손(師孫)이라…….
무당, 제법 많이 컸다.
진무가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여 화답했다.
“진무다. 잘 부탁하지.”
“예! 사숙조님!”
* * *
“와!”
진심으로 놀랐다.
단강구를 관리해야 하는 진궁과 헤어져 오룡궁 제자들의 안내를 받고 도착한 무당산의 중턱의 해검지.
“사숙!”
“……아.”
진무가 도착하자 반갑게 다가와 인사를 하는 도사, 이름이…… 청료였던가?
충허암에 매일 식료품을 가져다주며 귀찮아하던 그놈이다.
충허암의 도동 출신 일대제자 따위가 대제자가 가당키나 한 일이냐며 무시하더니 이제 와 헤실거리면서 친한 척을 하다니.
근데 그놈이야 그렇다 치고. 해검지가 언제 이렇게 바뀌었지?
진무의 몸으로 들어와 해검지에 말뚝을 박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말뚝은 물론 객사에다 휘황찬란하게 지어진 산문까지 있었다.
과거 혁련무강 시절에 부숴 버렸던 그때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웅장했다.
이놈들이…… 돈을 많이 썼구나.
열심히 벌어다 줬더니 아까운 줄도 모르고 마구 썼어.
그래도 무당이 번듯하게 재건된 모습을 보니 조금 뿌듯하긴 하다.
“오르시지요. 장문인과 장로님들께서 사숙께서 오시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 그래.”
고개를 끄덕이던 진무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청료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시는지?”
“…….”
몰라서 묻냐?
진무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자 청료가 눈을 끔벅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쯧쯧, 예쁘게 지어 놓기만 하면 뭐 하나.
“청료.”
“예?”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예?”
“여기가 어디냐?”
“……그야 당연히 해검……지.”
“잘 아네.”
“…….”
“그걸 아는 놈이 본산에 외인이 왔는데 해검(解劍)을 청하지도 않고 들여보내려는 거냐?”
“……!”
살짝 높아진 언성에 청료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떠듬떠듬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니, 그, 그건 사숙의 손님인지라……. 무풍개 어르신도 함께고…….”
“이런 망할 놈이!”
“…….”
별안간 진무가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청료를 쏘아보았다.
“장문인께서 그리하라 명하시기라도 했느냐!”
“…….”
진무의 추상같은 호통에 청료가 기겁한 표정으로 납작 엎드렸다.
“그, 그것이…….”
“닥쳐라, 이놈!”
노기를 숨기지 않고 소리를 지르자 청료가 고개를 처박고 바들바들 떨었다.
“청료, 해검지는 무당의 자긍심이다. 설사 정무맹주께서 오신다 하여도 장문인께서 명하지 않는 이상 예외를 두지 말아야 할 터! 그런데 감히 네놈의 알량한 판단력으로 무당의 자긍심을 꺾어?”
진무의 말에 청료가 움찔하며 크게 외쳤다.
“죄송합니다. 사숙! 제가 큰 실수를 범하였습니다.”
“실수란 말로 끝날 일인 줄 아느냐!”
“…….”
진무의 호통에 청료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았다.
“쯧, 너의 죄는 후에 별도의 징벌로 묻겠다. 손님들께서 입산하셔야 하니 일어나 무당의 자긍심을 바로잡으라.”
“예!”
벌떡 일어난 청료가 진무의 일행들에게 정중히 말했다.
“해검을 부탁드립니다.”
불호령을 내리는 진무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까?
황신과 소동보는 당연하고, 각출마저도 잽싸게 자신의 청죽봉을 꺼내 내밀었다.
“소중히 보관하였다 하산하실 때 돌려드리겠습니다.”
청료가 물러났음에도 진무의 표정은 좀처럼 펴질 줄 몰랐다.
“해검지의 삼대들은 듣거라!”
“예!”
진무의 음성에 잔뜩 쫄아 있던 삼대들이 부동자세를 취하며 힘차게 답했다.
“말했듯이 해검지는 무당의 자존심이다. 손님이든 귀인이든 찾아온 이가 검을 풀어 건네기 전에는 절대로 검진을 풀어서는 안 될 것이다! 너희가 무당의 얼굴이며, 자긍심을 지키는 관문임을 명심하라!”
“예, 사숙조님!”
우렁찬 대답에 진무가 고개를 끄덕인다.
“청료!”
“예.”
“우리가 도착했음을 알리고 입산의 허락을 구하라!”
“예!”
청료가 급히 뛰어가 전서구를 높이 날려 보낸다.
“허허, 자네에게 이런 고지식한 모습도 있는 줄은 몰랐네. 누가 보면 영락없이 무당 도산 줄 알겠네그려.”
“저 무당 도사 맞습니다.”
“누가 뭐라던가? 그저 자네와 조금 어울리지가…… 말투가 오글거리기도 했고…….”
“…….”
이 노인네가 진짜.
양소방이 눈을 가늘게 뜨고 웃자 진무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하지만 양소방은 그 모습조차 다행스러웠다.
변하지 않았다.
무당지검으로서 사패천주의 무공을 익히고, 이젠 사패천의 주인 자리에 오를 상황이었다.
심지어 본신의 무위가 천하제일인이라고 해도 부정하지 못할 경지에 올라 있으니, 능히 중원을 노려볼 만한 정도가 아니던가?
아무리 바른 자라 할지라도 감투를 쓰고 나면 달라지는 법이다.
강한 힘을 얻으면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이 정상이고, 천하를 제패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양소방이 바라보는 진무는 여전히 싸가지 없고 소탈했으며, 올곧은 무당 도사였다.
“사숙, 연락이 왔습니다. 손님들을 모시고 자소궁으로 오르라는 전갈입니다.”
“알겠다. 너의 죄는 장로 회의를 거쳐 따로 하달토록 할 터이니, 해검지를 수호함에 만전을 기하라.”
“예! 사숙!”
청료가 뻣뻣할 정도로 굳어 고개를 숙인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한 것 아닌가? 그만치 훈계했으면 용서해 줘도 될 일이네. 이 정도 일로 징벌이라니.”
“무당의 일입니다.”
“…….”
“변해야 할 규율도 있으나 반드시 지켜져야 할 규율도 있는 법입니다.”
진무의 칼 같은 말에 양소방은 더 보태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래, 이건 규율 때문이다. 무당의 자긍심 문제다.
과거 청료가 충허암에 질 낮은 식료품을 던져 놓고 가서도 아니고, 진무가 대제자 운운했을 때 비웃었기 때문도 아니…… 뭐, 조금 정돈 영향이…….
고개를 휘휘 젓는 것으로 속 좁은 생각을 떨친 진무는 단숨에 산문을 넘어 무당산의 정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무당의 진무가 외유를 끝내고 돌아와 장문인과 장로들을 뵙습니다.”
자소궁의 대전.
장문인을 중심으로 두 줄로 늘어앉은 장로들을 향해 공손히 절을 올리는 진무의 모습에 모두가 만면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무당지검은 예를 거두고 그만 자리에 앉으라.”
“예!”
장문인 명현의 허락이 떨어지고 나서야 진무가 밝은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그래, 그간 잘 지냈느냐?”
“예, 장문인.”
“북진을 떠난 이후의 소식은 이미 들었다. 유월청을 폐하고 사패천을 무너뜨렸다지?”
“무너뜨린 것은 아니옵고, 옳은 뜻을 가진 자들에게 돌려주었습니다.”
“허허, 옳은 뜻이라.”
진무의 모범적인 대답에 명현이 흡족하게 웃고, 장로들 또한 마찬가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기쁘지 않을까?
무너져 가던 무당을 재건하고 중원에 그 이름을 널리 알린 진무는 그 자체로 하늘의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미리 소식을 전해 듣자니 사패천주로 추대되었다고?”
“예. 난감하게도 그리되었습니다.”
진무가 무안한 표정을 짓자 명현이 손사래를 치며 웃는다.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이냐? 네 뜻이 그러하다면 행하면 될 일이니라.”
“…….”
응?
“필요하다면 사패천주의 위에 앉도록 하여라.”
“……예?”
뭐야? 허락한 거야? 이렇게 쉽게?
“하, 하지만 사황은 불공대천의…….”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과거의 무당은 죽었고, 현재의 무당은 발전하고 있음이다.”
“…….”
이거 뭐지? 뭐가 이렇게 후해졌어? 십계 좀 어겼다고 순서대로 충허암에 찾아와서 길길이 날뛸 때는 언제고?
“북진에서 네가 말하지 않았더냐? 무당은 해묵은 원한에 사로잡혀 편견으로 바라보라는 가르침을 주지 않는다고. 또한 과거에 발목이 잡히면 나아갈 수 없다고.”
“…….”
“이미 장로들과 회의가 끝났다. 우린 다신 짓밟히지 않도록 힘을 기르고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발전하기로 하였다.”
“……아, 뭐…… 예.”
허락이 너무도 쉽게 떨어지자 양소방도 진무도 얼떨떨하기만 했다.
“진무야.”
“예?”
“너의 모습이 무엇이건 간에 하나만 잊지 않으면 되느니.”
“…….”
“네가 무당을 떠나 있다 한들, 무당의 제자임에 변함이 없음이니라. 무당지검으로서 너의 길을 가거라. 무당은 끝까지 너를 지지할 것이다.”
장문인의 말에 멍하니 있던 진무가 천천히 절을 올렸다.
“제자 명심하겠습니다.”
“오냐.”
모두가 흐뭇한 자리.
진무가 오룡궁주이자 제 스승인 명진과 눈을 마주친다.
눈을 완만하게 휘어 흐뭇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 진무가 마주 미소를 지었다.
스승님, 말씀대로 쉬러 돌아왔습니다. 아주 잠시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