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19
319화
무당에 머물게 된 진무는 오룡궁이 아닌 충허암에 거처를 잡았다. 화려하게 지어진 오룡궁이었으나 진무는 충허암의 암자가 편했다.
방 두 칸짜리 초옥.
그 앞으로 펼쳐진 마당에 우뚝 솟은 나무에 상처가 그득하다.
저기서 검공을 수련했었지.
마당 한쪽에 자리 잡은 솥과 간이로 만들었던 아궁이는 여전히 그을음이 묻어 있었고, 싸릿대 엮은 울타리는 든든히 보수가 되어 있었다.
스승과 대작할 술을 구하러 하산한 소동보를 빼고 황신과 각출이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데운 물에 담근 닭의 털을 뽑고, 끓는 물에 썰어 놓은 채소를 넣고…….
“아, 왜 이쪽으로 불고 지랄이야!”
“아니, 바람이 그쪽으로 가는 걸 나보고 어쩌란 말이오?”
“뭐? 이런 빌어먹을 놈이!”
“빌어먹어? 나이도 어린 게 꼬박꼬박 반말을!”
티격태격 언성을 높이던 황신과 각출은 진무의 눈치를 살피고는 말없이 눈을 부라리며 서로에게 나지막하게 욕설을 날렸다.
“너 나중에 천주님 안 계실 때 두고 보자.”
“누가 할 소리를!”
연기를 가지고 투덕거리는 둘의 모습에 지나간 기억이 떠오른 진무의 입가가 희미하게 호선을 그렸다.
나도 스승님을 위해 매일 저렇게 밥을 지었는데.
그러고 보니 초옥이며 마당이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잡풀 하나 길게 자라지 않았네요.”
“내가 이곳에 기거하니 오룡궁의 제자들이 알아서 관리해 준다.”
“혼자 계시면 심심해요.”
“괜찮다. 장로들이나 진허를 비롯한 일대들이 종종 와서 말동무를 해 주거든.”
“오룡궁에 마련된 궁주의 거처가 화려하던데요?”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은 듯이 불편하기도 하고, 초옥에 너의 손때가 묻어 쉬이 옮길 수가 없더구나.”
그 말에 진무가 피식 웃고 만다.
쓸데없이 감상적이긴.
하지만 진무 또한 같은 심정으로 암자에 머무는 것을 택했기에 딱히 싫은 티를 내지 않았다.
“건강도 생각하셔야지요?”
“네 덕에 많이 나아져 요새는 간간이 검기도 쓸 줄 아느니.”
“…….”
검기라…….
그래도 제법 노력을 한 모양이다. 처음 만났을 때는 범부보다 못한 체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지만 괜찮다.
진무가 무당에 찾아온 다른 목적이 여기에 있었으니까.
“얼마나 머물 생각이냐?”
“한 사나흘 있을까 하고요.”
“녀석, 돌아왔으면 한 달, 아니 두어 달 머물지 않고……. 오룡궁의 제자들이 네가 돌아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거늘. 진득하게 머물며 아이들에게 가르침이라도 주면 얼마나 좋을까.”
“스스로 익혀 나가는 놈이 있어야지, 우러러보기만 하는 녀석들은 발전하지 않습니다. 가르쳐 봐야 아무 소용도 없지요.”
“허허, 너처럼 깽판이라도 치는 놈이 있길 바라는 것이냐?”
“예?”
스승의 말에 진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깽……판이라고? 명진이 그런 단어도 쓸 줄 알았나?
“왜? 아니더냐?”
“……아니, 그게 아니라……. 스승님께서 저속한 단어를 쓰시어.”
“저속은, 자연스러운 것이 좋은 법이다. 너도 그렇지 않더냐?”
“그야…….”
진무가 멋쩍음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틀린 말도 아니지. 네가 친 깽판이 한둘이더냐? 사형들을 쥐어 패질 않나, 순진한 애들 꼬드겨서 십계를 어기고…….”
“스, 스승님…….”
“헛헛, 농이다, 이 녀석아.”
“…….”
장난스럽게 웃으며 하는 말에 진무가 어색하게 마주 웃었다.
스승의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좀 밝아졌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익살스러워졌다고 해야 하나?
“모두 네 덕이다, 무당이 이리된 것은……. 다들 감사하고 있단다.”
“…….”
스승과 제자는 한동안 말없이 과거를 회상하며 싸릿대 울타리를 바라보았다.
“그래, 네 성격에 오래 머물지는 않을 것이고, 이젠 어디로 갈 참이더냐?”
스승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진무가 담담히 대답한다.
“일단은 신강으로 가 볼까 합니다.”
“뭣이? 마교를 말함이냐?”
“예.”
‘예.’라고?
명진은 상상도 못 한 대답에 눈을 크게 뜨고 진무를 바라보았다.
“설마? 적염제를 생각하는 것이냐?”
“한번 붙어 보고 싶어서요.”
꾸미지 않은 진솔한 대답에 명진의 낯빛이 시커멓게 변한다.
적염제.
사황이 죽은 이후 명실공히 중원 최강의 자리에 오른 일월마교의 교주 북리도천을 칭함이었다.
“지, 진무야. 너는 이제 사패천주임과 동시에 정파의 최고수다. 네가 찾아가는 것을 그들이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예.”
“잔인하고 포악하다 손가락질받는 단체지만 마교는 강하다. 지금껏 누구도, 그 어떤 세력도 그들을 무너뜨리지 못했어.”
“압니다.”
“알면서도 가려 한단 말이냐? 안 된다. 절대로 안 돼!”
명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함치듯이 외치자 각출과 황신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진무야. 네가 아무리 사황의 무공을 이어받았다고 해도 나는 절대로 허락할 수가 없다.”
“…….”
진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라. 이 스승이 언제 너의 앞길을 막았던 적이 있었더냐? 나는 너를 잃고 싶지 않구나.”
“잃긴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제가 마교주를 때려눕혔다는 소식을 듣게 되실 겁니다.”
“떽!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말거라!”
히죽 웃으며 장담하는 진무를 명진이 무섭게 노려보았다.
“신강행은 나는 물론 장문인과 장로들도 절대 용인치 않을 것이다.”
“……설령 그런다고 해서 제가 가지 않을 것 같습니까?”
“뭐?”
“이미 결정을 내렸으니 허락해 주십시오. 제자 마음 편히 다녀오겠습니다.”
“허!”
막무가내도 이런 막무가내가 없다.
제자라는 놈이 허락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이미 결정해 두고 통보를 하러 온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하지만 화를 내기보다는 설득을 해야만 했다.
“진무야. 일단은 논의를 해 보자. 네가 만약 마교를 정벌하고자 한다면 정사의 힘을 모아…….”
“홀로 갈 것입니다.”
“……홀로 간다고?”
“예. 저는 쓸데없이 피를 흘리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세력을 이끌고 가면 전쟁이지만 홀로 가면 도전입니다.”
“…….”
“마교를 오랫동안 지배해 온 하나의 원칙, 강자존(强者存). 저는 그 아래에서부터 차근히 도전해 보고자 합니다.”
명진은 그제야 진무가 신강으로 가려는 이유를 깨달았다.
정벌이 아니라 입증하려는 것이다. 자신이 최강의 무인이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보여 주려는 것이다.
“……쉽지 않은 길이다.”
“그래서 한번 가 보려고요.”
“너는 모른다. 적염제는 무서운 사람이다.”
“뒤진다 생각지 않습니다.”
“…….”
할 말을 잃어버린 명진이 담담한 진무의 얼굴을 바라본다.
치기인가?
아니다. 진무의 눈빛과 얼굴에 서려 있는 것은 확고한 자신감이다.
그러나 명진은 불안과 걱정스러움을 좀처럼 지울 수가 없었다.
마교로 가는 것을 감출 수 있음에도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분명 자신이 막을 것이라 생각했을 터인데…….
평소라면 그 마음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했겠으나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받아 주고 싶지 않았다.
사지로 가겠다는 제자를 두고 볼 스승이 어디에 있겠는가?
말리고 싶다. 아니, 말려야 한다. 항상 가시밭길만 택해 걷는 자신의 제자를.
“후우…… 나는 도무지 너를 가늠할 수가 없구나.”
“그래도 저를 가장 많이 아는 분은 스승님입니다.”
“……글쎄다. 안다 생각하면 너는 언제나 내 생각보다 한참은 멀리 가 있다 느껴지니.”
“…….”
“하지 말라면 안 할 것이냐?”
“고려는 해 보겠죠.”
“달라지는 것은 없단 말이구나?”
사실이었다.
스승이 하지 말라면…… 아주 조금 고민은 해 볼 참이다.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떠올라 있는 듯한 명진의 눈동자를 보며 잠시 고민하던 진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락하지 않아도 떠날 테지만 걱정과 불안 정도는 좀 덜어 줘도 나쁘지 않을 터였다.
“스승님, 제자는 그리 약하지 않습니다.”
“뭐?”
“…….”
엉거주춤 따라 일어나는 명진을 뒤로한 진무가 충허암의 마당 중앙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보여 드리겠습니다. 스승님의 제자가 적염제를 꺾고 무림 최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음을…….”
“너, 지금 무슨?”
명진의 말이 이어지기도 전에 진무가 일휘를 허리춤에 붙여 잡고 자세를 낮춘다.
오른발을 일 보 앞으로 뻗으며 허리를 슬쩍 굽힌 진무가 충허암에서 멀리 떨어진 이름 없는 산봉우리에 솟은 바위를 바라본다.
꽤 떨어진 거리.
양의에 나누어 담은 서로 다른 무공 중 무당의 선기는 아직 부족해 닿지 않는다.
하지만 묵룡이면 어떠하랴?
이미 모두가 진무가 그것을 익혔음을 알고 있음인데.
“후우…….”
낮게 내쉰 숨에 대기가 소스라치게 놀라 진무의 곁에서 물러나고, 내디딘 앞발에 묵직함이 담긴다.
앞선 발끝을 살짝 비틀며 몸을 돌려 묵룡의 기운을 운용하자 막대한 기세가 일어나 사방을 거칠게 짓눌렀다.
“우욱!”
진무를 향해 다가섰던 명진이 진한 압박감에 얼굴을 찡그렸다.
진무의 몸에 어린 기운.
“사, 사황…….”
북진에 참가하지 못했던 명진은 말로만 들었을 뿐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과거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명진은 진무의 몸에서 진득하게 퍼져 나온 사기에 두려움을 느꼈다.
몸이 떨려 오고 마른침이 쉴 새 없이 넘어가는 사이, 진무의 기운은 점점 더 강해져 충허암의 모든 곳을 잠식해 나간다.
파락, 파라라락!
휘몰아 감싸듯이 솟구친 검은 사기가 진무의 몸에서 피어오르고, 백룡의가 찢어질 듯이 펄럭인다.
강기의 경지는 일반적인 무공과는 달리 충현탄의(充現彈意)라는 단계를 따르지 않는다.
애초에 궤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그 기본적인 경지를 성강(成罡)이라 한다.
손 혹은 특정 무구에 한정되어 강기를 뿜어낼 수 있는 경지였다.
하지만 이를 절대라 부르지 않는다.
흔히들 절대라 부르는 정무칠성, 사패오왕, 마도육제는 성강을 넘어 다음 단계에 도달해 있다.
강기 자체를 깨우쳤다 하여 유강(喩罡)이라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무구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모든 곳에서 강기를 만들고, 응축을 통해 강사(罡絲)나 강환처럼 가공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과거의 무공을 되찾은 진무는 그다음 단계에 올라 있었다.
동시대의 무인들 중 가장 높은 경지를 이룩했던 북리도천과 사황 혁련무강이 올랐던 곳.
그 위에 무엇이 더 있는지는 모르나 지금으로서는 현존하는 최강의 단계였다.
꾸우우우…….
대지가 짓밟힌다.
오른발이 모습을 감추듯 깊이 박히고 밀어 낸 왼발이 만년거석처럼 대지를 밀어 고랑을 만든다.
우우웅!
진무가 그의 손에 잡혀 거친 울음을 토하는 일휘를 천천히 뽑는다.
대지에 뿌리박은 거목을 잡아당기듯 하나 손짓은 풀뿌리를 휘두르는 듯이 가벼웠다.
그리고 뽑혀 나온 검신이 사라지고 한 줄기 검은빛이 세상을 반으로 가른다.
스아아아.
거친 바람 소리와 함께 쏘아진 검은 기운이 묵룡으로 변해 포악한 괴성을 지르며 세상을 향해 모습을 드러낸다.
콰우우우!
검은 아가리를 잔혹하게 벌리고 세상을 찢어 놓을 듯 어금니를 세운 채 진무가 바라보던 봉우리의 거대한 바위를 집어삼키는 묵룡.
콰아아아앙!
거친 폭발음과 함께 몰아친 바람과 대지를 타고 전해진 진동이 무당산을 뒤흔들어 놓는다.
하늘이 놀라고 대지가 진동하니 경천동지(驚天動地)라.
일휘에 쓰인 그것처럼, 한 번의 휘두름으로 쓸어 산과 강을 피로 물들인다.
“후우…….”
자신의 모든 기운을 끌어 올려 내뿜은 진무가 천천히 호흡을 고른다.
이제껏 상대가 없었기에 굳이 사용하지 않았던 유강 이후의 경지.
딱히 정해진 이름은 없으나 보았던 이들은 자신의 독특한 기운을 담는다 하여 이를 함강(椷罡)이라 했다.
혁련무강은 묵룡을 담았고, 북리도천은 붉은 화염을 담았던 그것이었다.
아까의 폭풍이 걷힌 충허암에 깊은 고요가 찾아왔다.
“…….”
명진은 서다 만 듯한 자세로 멈춰 버렸고, 각출과 황신의 눈은 찢어질 듯이 크게 뜨여 있었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산 정상이 거칠게 물어뜯긴 듯한 형상으로 변해 있었다.
보고 있으나 믿지 못할 상황이었다.
그리고, 막 양소방과 함께 충허암으로 들어서던 운공이 감격을 주체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주저앉아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처, 청무……. 아…… 정녕 무당에 숲이 다시 우거진단 말인가.”
그의 볼을 타고 흐른 눈물이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