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21
321화
양소방이 서둘러 자리를 파하고 떠난 뒤.
“청무…….”
“…….”
운공이 아직도 진무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아직도 그리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당연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직접 청무의 목을 베었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그 때문에 기사멸조의 업을 지고 평생을 장서각에 갇혀서 살았던 사람이니까.
그래도 이건 좀 위험하다.
진무가 보인 무위를 청무로 착각하고 있다.
저 정도 나이가 되면 작은 정신적 충격에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무공조차 가지지 못한 운공이라면……?
“황신!”
“예?”
“운공 어른을 정동궁으로 모셔다드리고 와라.”
“…….”
“가서 진소 사형에게 내가 부탁했다고 하고 운공 어르신을 좀 살펴 달라고 해.”
“알겠습니다.”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운공을 업고 정동궁을 향해 몸을 날린 황신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시끌벅적하던 분위기가 다시금 잠잠해졌다.
진무는 명진을 고요히 응시했다. 앞서 양소방에게 말한 ‘해야 할 일’ 때문이었다.
그래, 서두르자.
떠남에 주저함이 있어서는 안 되니까. 언제 다시 무당으로 돌아올지도 모르고.
“스승님, 절 믿으십니까?”
“……응?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 내가 너를 믿지 않으면 누굴 믿는다고.”
명진의 말에 진무가 빙그레 웃었다.
하긴…… 언제나 그랬지.
“끝까지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
명진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진무가 가볍게 손을 튕겼다.
“……!”
순간 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린 명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진무를 바라본다.
마혈은 물론 아혈까지 제압해 버렸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어쩌면 그때보다도 고통스러울 겁니다.”
“……!”
영문을 알지 못하는 명진의 동공이 잘게 떨린다.
진무는 명진을 방 안으로 안고 들어가 좌정시킨 후, 그 뒤에 앉아 명문혈에 손을 뻗었다.
스승, 명진.
자신으로 인해 폐인이 되고, 자신으로 인해 회복된 무인.
얄궂게 이어진 인연 때문인지 그를 대할 때면 언제나 빚진 기분이 들었다.
과거에는 의기 넘치는 무당의 도사였고, 다시 살아난 뒤에는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는 금고아였던 그.
하지만 늘상 자신을 믿어 주고 나서서 싸워 주는 한결같은 모습에 언젠가부터 진심을 다해 모시는 스승으로 자리하게 된 사람.
우우우웅.
진무의 손에서 일어난 은은한 기운이 명진의 몸 안으로 스며든다.
임독맥의 굵은 줄기를 따라 흐른 기운이 단전에 이르러 살피고 전신의 세맥으로 퍼져 나간다.
명진이 회복된 기운은 현기.
그 정도만 해도 십오 년 가까이 누워 있던 인물이 삼 년 만에 회복했다고 하기에는 대단한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더 이상의 진전을 이루기는 어려울 터.
다행히 대맥은 손상되지 않았으나 세맥에 응어리져 쌓인 사기가 기운의 흐름을 막고 있었다.
더욱이 부러진 뼈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근육과 함께 굳어 버렸으니…….
진무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떠오른다.
망할 놈. 아무리 당시에 죽일 생각으로 팼다고는 하지만 사람을 봐 가면서 팼어야지. 어찌 이 지경을 만들어 놨단 말이냐.
스승의 몸 안을 세세히 살핀 진무는 처음으로 과거를 후회하며 자신을 책망했다.
하지만 그 또한 지나간 일. 이제라도 그를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을 것이다.
일단 뼈부터…….
뿌득, 뿌드드득!
힘차게 치고 들어간 진무의 기운이 굳어 버린 뼈를 뒤틀어 제자리로 옮기기 시작했다.
“끄으으……!”
아혈이 막힌 탓에 비명을 지르지는 못했으나 몸 곳곳에서 툭툭 불거져 오른 힘줄이나 찢어질 듯 부릅뜬 핏발 선 눈이 그 고통을 대변하고도 남음이었다.
이제 시작입니다, 스승님.
여기서 정신을 잃으시면 안 됩니다.
온몸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스승의 모습에 잠시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지는 것을 느끼던 진무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 집중했다.
섣부른 동정은 금물이다. 자신의 정신이 흐트러지면 되레 명진이 위험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뿌드득. 투툭!
“끄……으……으으.”
아혈을 제압했음에도 점점 더 강해지는 명진의 신음과 함께 둘의 몸이 나란히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갔다.
허리에서 시작한 접골이 몸을 지나 팔과 다리에 이르를 즈음이 되자 게거품을 뿜어내며 눈을 허옇게 까뒤집는 명진.
진무는 스승이 정신을 잃게 하지 않기 위해서 혈도를 내부에서 찢어 상처를 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뿌득! 턱!
아프리라. 고통스러우리라.
하나 혈도는 시간이 지나면 회복할 수 있다.
지금을 감내하고 이겨 내기만 하면 명진은 더욱 강건해질 것이다.
“끄으…….”
사력을 다한 진무의 노력에 명진의 신음이 잦아들고 호흡이 조금씩 안정되어 갔다.
“후우…… 후우…….”
땀으로 흠뻑 젖어 버린 진무가 이윽고 명진의 명문혈에서 손을 떼었다.
너무 집중했기 때문일까? 편안해진 명진보다 진무가 더욱 지쳐 보였다.
“다음은…….”
잠시간 호흡을 고른 진무는 바로 두 번째 과정을 시작했다.
몸 안에 응어리진 채 흐름을 막고 있는 사기를 하나하나 찾아 뽑아내는 것.
오랜 세월 굳어 있었던 것이니 제법 시간이 걸릴 터였다.
진무의 손이 다시 명진의 명문혈에 닿는다.
뼈 맞추는 것이 힘 싸움이라면 사기를 빼내는 것은 무척이나 섬세한 일이다.
잘못하다가는 사기가 내부에서 터져 내상을 입히고, 심한 경우 주화입마에 빠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무는 묵룡혼원공을 일으켜 명진의 몸 안으로 흘려보내며 눈을 감았다.
조금씩 흘려보낸 기운에 잡히는 돌덩이처럼 딱딱한 응어리.
부드럽게 외부를 감싸고 안쪽에 열기를 더해 녹여 내야 한다.
한순간만 삐끗해도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니 긴장감에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컥! 우웩!”
“……!”
진무가 필요한 혈도 몇 곳을 해하여 움직일 수 있게 하자 일순간 명진이 입에서 울컥 터져 나온 검은 울혈이 그의 앞섶을 물들이고 바닥을 적신다.
되었다.
지금의 울혈은 죽은 피다. 몸 안에 쌓이면 독이 될 것이나 토해 내었다면 온전히 녹여 내었다는 뜻.
하지만 아직 멀었다.
이제 겨우 하나, 시작일 뿐이다.
진무가 모든 신경을 스승의 혈맥에 집중하는 사이 밤은 점점 더 깊어만 갔다.
* * *
“허억, 허억…….”
지쳐 버린 진무의 가쁜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후께 시작된 치료는 밤을 지나고 새벽 여명이 밝아 올 때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심력이 완전히 소모될 정도로 정신을 집중한 진무는 하룻밤 사이 목내이처럼 퀭해 보였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더없이 흐뭇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시뻘겋게 물든 바닥.
혈맥에 쌓여 있던 사기는 모조리 녹여 내었고, 명진은 울혈을 열두 번에 걸쳐 토해 내었다.
회복될 것이다.
이제 선기로 그의 기운을 유도하고 혈맥을 보듬어 주기만 하면 된다.
그 이후는 명진의 몫이다.
잘 해낼 것이다. 강건한 사람이니까.
자신의 선기로 수차례 대주천을 유도해 준 뒤에서야 비로소 진무는 명문혈에서 완전히 손을 떼었다.
팔다리가 천 근보다 무겁게 느껴지고 손이 바들바들 떨려 왔지만, 마음만은 상쾌했다.
오랫동안 메고 있었던 짐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챙겨 온 보따리가 눈에 들어왔다.
자신을 위해, 그리고 청상과 청우 등등을 위해 가져왔던…….
“영단…….”
진무는 고민조차 없이 보자기를 펼쳤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이 소환단.
명진이 먹어야 할 물건치곤 너무 싸구려다. 이딴 건 청상에게나 어울릴 물건이다.
진무는 미련 없이 소환단을 밀어 놓고 다른 것들에 시선을 주었다.
그러다 문득 둥근 철구를 바라본다. 남궁무휴에게서 뺏었던 대연단(大衍丹).
이걸 먹고 태극을 이루려 했었는데…….
그래, 고민하지 말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스승님이 아니던가?
일단 살려 놓고 보자.
나야 뭐, 아직 젊기도 하고.
또 혹시 아는가? 가는 길에 선기 꽉 찬 영물 놈이라도 만날지.
고민 없이 비틀어 연 철구 안에서 나온 둥근 환약의 향긋한 내음이 순식간에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스승님. 영단입니다. 드시고 기운을 보하십시오.”
“…….”
그 말에 진무와 함께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던 명진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하지만 의중을 알 수 없는 눈길로 진무를 쳐다만 볼 뿐,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않는 명진.
거부하려는 건가?
진무는 잠시 고민하다 결례를 무릅쓰고 명진의 턱을 움켜잡아 입을 강제로 벌리게 한 뒤 대연단을 밀어 넣었다.
막대한 열기가 피어올랐기 때문이었을까? 명진의 몸이 한차례 부르르 떨려 왔다.
“머뭇거릴 틈이 없습니다. 영단은 제때 흡수하지 않으면 영기가 흩어집니다. 넘치는 기운은 제가 제어할 테니 운공을 하십시오.”
“……!”
진무의 말에 명진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했다.
아니, 이 스승님아. 운공을 하라니까.
진무는 머뭇거리는 명진을 대신해 강제로 영기를 유도해 명진의 혈맥으로 흐르게 했다.
일단 방향이 잡히자 그의 몸 안을 천천히 흐르기 시작하는 막대한 내공.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 감각이 반가웠음인지 명진의 얼굴이 점차 희열로 물들었다.
진무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수차례의 운기조식.
다행히 몸 안에 대연단의 영기가 오롯이 자리를 잡는다.
이제 앞으로 운기를 통해 몸 안에 가득 들어찬 영기를 녹여 내기만 하면 될 것이다.
애초에 의기까지 넘었던 사람이다. 영단의 도움까지 받았으니 그 위를 바라보는 것도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됐네요. 이제…….”
모든 일을 끝낸 진무가 명진을 마주하고 밝게 웃는다.
고마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다시 이전의 힘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까?
명진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고생하셨어요. 한숨 주무세요.”
진무는 명진의 수혈을 짚고는, 풀썩 쓰러지는 명진을 안아 가지런히 눕히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자고로 아이를 낳은 산모도…… 어쨌든 찬바람 들면 안 좋으니까.
벌컥, 탁!
명진이 편안하게 잠든 모습을 일별한 진무가 소리 없이 방을 빠져나왔다.
“천주님!”
“스…… 진무 도장님!”
“…….”
황신과 소동보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진무를 바라보고, 각출이 제멋대로 호칭에 님 자까지 붙이며 돌아본다.
근데 이 새끼들?
어째 삼각 편대를 유지하면서 초옥을 지키고 있는 것이…… 설마 밤새 호법을 선 건가?
“괜찮으십니까?”
가까이 다가온 소동보의 질문에 진무가 얼굴을 찌푸린다.
“작게 말해라. 골 울린다.”
“죄송합니다.”
“동보야.”
“예?”
“아궁이에 불 좀 때라. 스승님 추우시면 안 되니까.”
“……알겠습니다.”
“신이는 가서 장문인 좀 모셔 오고.”
“예!”
진무의 명령에 소동보는 부엌으로, 황신은 자소궁으로 각각 몸을 날렸다.
“…….”
“……뭐, 왜.”
한참이 지나도 말이 없자 각출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몸을 배배 꼰다.
저 눈빛은 분명…… 제발 뭔가를 시켜 달라는 그런?
“각출이 너는…….”
진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름을 부르자 각출이 그제야 꽃이…… 아니, 주인에게 불린 강아지가 꼬리를 흔드는 양 기쁜 표정을 짓는다.
역시나 뭘 시켜 주길 기대했나 보다.
“……주물러. 밤새 고생했더니 삭신이 쑤신다.”
“예!”
각출은 최선을 다해 안마를 시작했다.
몽둥이질을 배워서 그런가? 거 손아귀 힘이 좋은 것이 제법 시원하네. 자주 써먹을 수 있겠어.
* * *
“으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바닥의 후끈함을 느낀 명진이 천천히 눈을 떠서 자신의 곁에 앉아 웃고 있는 명현을 발견했다.
“……장문인?”
“이제 일어났는가?”
“……진무는?”
“떠났다네. 대신 인사를 전해 주라 하였네. 자네가 잡을지도 모른다 하면서.”
“…….”
“허허, 자네는 참 제자 하나는 잘 두었네그려. 절벽에서 떨어져 가며 제 스승의 약초를 구하더니 금기마저 어기고 자네를 회복시킨 것도 모자라 이젠 원래의 내공마저 되찾아 주었구먼그래.”
“…….”
이불을 걷으며 일어난 명진이 슬쩍 내력을 움직여 자신의 몸을 살핀다.
단전에 쌓여 있던 내공이 대해처럼 움직이니 선연한 기운이 일어나 그의 혈도를 타고 흘렀다.
“자네를 살펴 달라더군. 한동안 찬바람 쐬지 못하게 말일세.”
“…….”
“좋겠네. 정말 제자 하나는 잘 뒀어.”
장난스러운 명현의 말에 명진이 벅찬 감동을 담아 미소를 지었다.
“암요. 참으로 잘 두었지요. 참으로…….”
“허허, 그래. 그런데 어디로 간다던가? 바삐 가던데.”
“…….”
명현의 물음에 명진이 입을 다문다.
차마 사지로 갔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알게 된다면 아마도 노발대발하며 당장에 제자들을 파견할지도……. 그건 진무가 원하지 않을 것인데.
“응? 모르는 겐가?”
“……무, 무량수불.”
“저런, 스승에게 행선지도 알리지 않다니……. 하여간에 무심한 녀석이로세, 허허허.”
명현의 웃음에 명진은 답답한 마음에 도호만 뇌까릴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또한, 그는 진무를 믿고 있었다.
늘 그랬듯 이번에도 마교의 가장 윗자리에 선 뒤 웃으며 찾아와 말할 것이다.
쉬러 돌아왔노라고…….
“무량수불…….”
연신 되풀이하는 도호에는 자신의 제자가 무탈하게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스승의 마음이 절절히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