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22
322화
“…….”
상관평은 눈 앞에 펼쳐진 전경에 할 말을 잃었다.
대궁주의 명으로 금역으로 지정된 한수폭.
소궁주 한승이 머물던, 아니 반드시 머물고 있어야만 했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 상황은 뭐란 말인가?
한기를 머금고 거칠게 쏟아져 내리던 폭포가 흉물스럽게 무너진 것도 기가 막힐 노릇인데, 심지어 입구를 지키고 있어야 할 무인들은 모조리 목내이처럼 말라 푸석거리며 바람에 흩날리는 시신이 되어 있다.
“설마…….”
상관평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다.
대궁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잠시 한수폭을 비웠다가 일궁과 사패천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온 걸음이었다.
“젠장!”
상관평이 지면을 박차고 섬전처럼 몸을 날려 폭포를 통과했다.
확인해야 한다.
한승이 정말로 한수폭을 벗어났다면 이는 큰 문제가 된다.
대궁주는 절대로 자신이 정한 금지를 벗어난 소궁주를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또한 그렇게 되면 자신이 은밀히 세운 계획도 무산될 수 있었으니까.
* * *
쿵!
한수폭 뒤의 공동을 확인한 상관평이 거칠게 벽을 때렸다.
입구의 시신들과 동일한 모양새의 시신들이 널려 있을 뿐, 그곳에도 한승은 없었다.
“망할…… 미리 연락을 취했어야 했거늘…….”
일궁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된 것은 사패천이 무너진 다음이었다.
하오문 측에서 정보를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태의 전말을 파악하고 난 뒤, 그의 불안감을 키운 것은 한승이었다.
그는 아직 완성을 이루지 못했다.
지금도 본신의 경지가 낮은 것은 아니나 그가 익히는 것은 흡정마공.
특정 단계에 오르기 전까지는 동남동녀의 생기가 필히 동반되어야 함인데, 일궁이 무너졌다면 당장 아이들의 수급에 차질이 생겼을 것이 아닌가.
흡정을 할 수 없으니 타는 듯한 갈증을 느꼈을 것이고, 내공 융합 과정에서 일어나는 열기를 잠재울 칠음은맥의 공급조차 끊겼으니 강렬한 허기까지 느꼈을 터. 그래서 허겁지겁 돌아온 것인데…….
상관평의 불안한 예감은 완벽히 적중했다.
한수폭 곳곳에 널린 목내이들, 그리고 사라진 한승.
본시 짐승이라는 것은 먹이를 충분히 공급받고 있을 때야 얌전히 우리에 갇혀 있을지 몰라도 허기가 지면 포악해지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이곳을 지키고 있던 무인들의 수로는 그의 허기를 채우기에 턱없이 부족했을 테니, 먹잇감을 찾아 뛰쳐나간 것도 무리는 아니다.
명을 어기고 금지(禁地)를 벗어난 것도 중죄이지만, 만에 하나 그가 죽어 버리게 되면?
대궁주의 진노는 곧바로 중원을 향한다.
그것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했다.
삼궁과 일궁이 무너져 버린 이상, 남은 것은 대궁의 본전력과 내궁, 그리고 이궁뿐.
중원 전체를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전력이었다.
대궁주가 아무리 인간을 초월한 무위를 가졌다고 해도 홀로 세상을 상대할 수는 없는 법이다.
더군다나 그들의 대계는 중원 무림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너머에 자리 잡은 놈들.
배덕함으로 자신들을 아비와 할아비를 잔인하게 숙청했던 주씨 놈들의 나라를 무너뜨리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었다.
그것을 위해 백 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 왔다.
“망할 도사 놈…….”
상관평의 머릿속에 한 인물이 떠오른다.
스스로를 무당지검이며 이제는 사패천주라고 밝힌 놈.
그놈이 원흉이다.
대랑, 종려군에 이어 송여방까지.
어찌하여 미리 쳐 내지 못했단 말인가? 놈이 양의심공을 찾아다닐 때 위험을 느끼고 반드시 죽였어야 했는데.
하지만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정사의 구심점이 된 놈은 이제 쳐 내기조차 힘들 정도로 거목으로 성장했다.
그러고 보니 과거에도 비슷한 놈이 있었다고 했다.
자신의 아비가 죽어 가며 ‘모든 것이 그놈 때문이다.’라며 원통해했던, 백 년 전 주씨 놈과 함께 자신들을 숙청하는 데 앞장섰던 도사 놈.
놈은 영웅이 되었고, 궁은 어둠에 숨어야만 했다.
그놈에게 톡톡히 당했던 궁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가장 먼저 무림을 정벌해 위험을 줄이는 계획을 세웠다.
“그래, 그놈도 무당이었지.”
상관평이 턱에 근육이 잡히도록 힘껏 입을 다물고 눈을 매섭게 빛낸다.
무당, 무당 이놈들, 어찌하여 자꾸만 우리의 앞길을 막는단 말이더냐.
두고 보거라.
이번 위기가 지나가고 나면 반드시 찾아가 주춧돌을 뽑아낼 터이다.
해검지를 너희들의 피로 채우고 산문에 잘라 낸 머리를 걸어 두리라.
하지만 지금 무당보다 급한 것은 한승을 찾는 것이다.
“평백!”
“예. 내궁주님!”
상관평의 부름에 뒤에서 무인 하나가 급히 대답해 왔다.
“내궁의 무인들을 전부 투입하여 소궁주의 위치를 조속히 찾아라.”
“알겠습니다.”
“묘하!”
“예!”
“이궁주를 만나야겠다. 삼궁과 일궁이 무너진 이상, 남은 것은 마교밖에 없다.”
“예! 모두에게 천산의 북쪽 줄기에 집결하라 연락을 보내겠습니다.”
상관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교가 위치한 신강을 향해…….
* * *
“이런 망할 놈의 자식이!”
“꾸에엑!”
각출이 또 짓밟힌다.
황신과 소동보는 휘말리지 않으려 멀찍이 떨어져 모닥불을 피우며 연신 힐끔거렸다.
성난 진무의 발은 각출의 몸이 땅바닥에 반쯤 파묻힐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각출, 그는 사실 좀 억울하다.
무당산을 떠나온 지 달포, 청해성의 거대한 호수 청해호를 지나던 와중이었다.
호수 근처에 번화한 도시가 있음에도 거대한 인근 산자락에 야숙할 자리를 잡은 진무가 여행비를 마련해 오라 하였기에 관도로 내려가 거적을 깔았을 뿐이다.
앞으로의 배움을 위해서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열심히 구걸신공을 발휘해 철전이며 은전으로 전낭을 가득 채우고, 간간이 통째로 얻게 된 전낭까지 모두 바쳤더니…….
“이 새끼야! 누가 불쌍한 사람들 돈까지 걷어 오래! 어!”
“꾸에엑!”
“돈 있는 놈들! 돈이 썩어서 버리는 놈들! 그런 놈들 것만 구걸해 와야 할 거 아냐! 거지 놈이 감히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힘든 사람들 걸 구걸해 와?”
“꾸엑, 꾸에엑!”
진무의 구타에 각출은 비명으로 답했다.
제기랄, 그럼 진작 좀 말해 주든가!
각출은 어떻게든 구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외쳤다.
“자, 잘못 아신 겁니다. 불쌍한 사람들의 돈은 결단코!”
“…….”
갑자기 뚝 멈추는 진무의 구타.
기회를 잡았다 여긴 각출이 납작 엎드리곤 딱 잡아떼기 시작했다.
“정말입니다. 서민으로 보이는 이들의 돈은 절대로 구걸치 않았습니다.”
“…….”
각출의 말에 진무가 눈을 내리깔고 서늘하게 그를 바라본다.
“그으래?”
“예!”
“그렇단 말이지?”
“…….”
뭔가 목소리에 스산함이 잔뜩 느껴졌지만, 각출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돈에 표식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닌데 서민의 쌈짓돈인지 아니면 부자 놈의 유흥비인지 어찌 알겠는가?
“여기 이거.”
갑자기 진무가 각출이 바친 전낭 앞에 쪼그려 앉고는 은전 하나를 주워 든다.
“그게 왜……?”
“비럭질한다는 놈이 지가 동냥한 돈의 특징도 몰라?”
“……?”
돈에 특징이 있었어?
“잘 봐. 여기 손때 묻은 거 보이지?”
뭐, 거기 약간 반질반질 매끄러운 거? 그게 왜?
“점소이의 돈이야.”
……대체 뭘 보고?
“점소이들은 말이야. 대부분 이레에 한 번씩 새경을 받지.”
“…….”
“근데 가끔 손님들이 고맙다며 몰래 봉사료를 주는 경우가 있어. 때론 그 봉사료가 자신이 버는 돈보다 많기도 하거든. 이 은전이 그래.”
“…….”
“소중하겠지? 그래서 남들이 혹시나 훔쳐 갈까,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을까 해서 항시 품에 넣고 소중하게 확인을 한단 말이야. 그렇게 계속 주물럭거리다 보면 은전이 약간 반질반질하게 되지.”
“그, 그런…….”
그딴 게 보인다고?
내 눈엔 하나도 안 보이는데?
각출의 눈이 점점 동그래지고 입은 자꾸 벌어진다.
“이건 푸줏간 주인일 테고, 이건 비단보에 싸여 있던 철전…… 규방의 아낙이 가지고 있었던 거야.”
“……!”
진무가 보자기 내부와 전낭을 하나씩 구분해 가면서 줄줄이 짚자 각출의 얼굴이 시커멓게 변한다.
아…… 돈에도 표식이 있었구나.
그런데 무당의 도사가 어찌 저런 걸 알고 있지?
“돈이란 건 말이야. 사람 얼굴처럼 가진 사람에 따라 특징이 달라져. 알겠어?”
“……예.”
각출이 더는 잡아떼지 못하고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린다.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이제 알겠냐고.”
“불쌍한 사람들의 처지를 긍휼히 여기지 않고…….”
“아니!”
“……?”
칼 같은 진무의 부정에 각출이 고개를 든다.
싸늘함을 머금은 눈빛. 음산한 미소.
“나한테 거짓말을 했다는 것!”
“……!”
“니가 미치지 않고서야 감히 나를 속여 먹으려고 해?”
진무가 벌떡 일어나더니 팔을 둘둘 걷어붙인다.
“지, 진무 도…… 꾸에엑!”
다시 짓밟힌다.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망할 무당 도사 놈, 사파의 지독스러운 악당 놈들보다…… 아, 명예 사패천주였지? 이런 제기랄.
한참을 그렇게 구타당한 각출은 다시 돌려주고 오라는 진무의 명령에 쏜살같이 마을로 달려가야 했다.
멀어진 각출에게서 눈을 뗀 소동보가 모닥불에 구워 놓던 고기를 뜯어 진무에게 다가온다.
잠시 눈치를 살피던 소동보가 감탄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단하십니다, 천주님.”
“……?”
“돈에도 그 사람의 특징이 남는다니……. 그것만으로도 누군가를 추적하는 단서가 될 수 있겠군요. 명심하겠습니다.”
소동보의 말에 슬금슬금 그 옆으로 다가온 황신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는 거야, 이 미친놈들이.
“그냥 찔러 본 거야.”
“……그냥…… 예?”
“돈에 무슨 흔적이 남아?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진무의 대답에 소동보와 황신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분명 자신들의 귀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아니 아까 각출이한테는 분명히?”
“그냥 찔러 본 거라니까.”
“…….”
“제 놈이 어떻게 적선한 사람들을 전부 기억하고 있겠어? 그래서 그냥 한번 찔러 본 거야. 나를 속이나, 안 속이나. 뭐, 이번에 처맞았으니 이제 다신 속일 생각을 못 하겠지. 불쌍한 이들에게 동냥질도 안 할 테고.”
“…….”
아……. 각출이는 그냥 천주의 낚시질에 걸린 것이구나.
역시 비열하고 음흉한 미친 개천주.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자신들에게도 천주가 낚싯바늘을 드리우고 있을지 모르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들 말고 각출이 술 사 올 때까지 수련들 해. 신강에 도착하면 수련할 시간이 없을 거니까.”
“…….”
“뭣들 해? 수련하라니까?”
“예!”
진무가 눈을 부라리자 모닥불 근처로 이동한 황신과 소동보가 수련을 가장한 서열 정하기를 시작했다.
숨고 나타나고…….
진무는 가늘게 뜬 눈으로 그들의 비무를 지켜보며 생각했다.
오랫동안 신강이라는 대지를 지배해 온 마교. 먼저 쳐들어온 적은 있어도 중원이 그들의 영역을 침범한 경우는 없었다.
중원이 평화를 표방하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소리.
무림인 중 평화적인 인간은 없다.
저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던 이유는 마교가 너무나 강하기 때문이다.
괜히 최강의 단일 세력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다. 정면으로 맞부딪혔다가는 수많은 문파가 몰살을 각오해야 한다.
다시 말해 마교를 공격한다는 것은 실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손해.
그렇기에 신강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가진 게 많고, 지킬 게 많으니까.
하지만 진무는 다르다.
진무는 마교를 정벌하려는 것이 아니라 집어삼킬 계획이다.
그들이 오랫동안 지켜 온 피의 율법, 강자존에 따라 밑바닥부터 시작해 북리도천을 때려눕히고 정상에 서야만 전 마도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
철혈의 삶을 살아온 그들이기에 진무의 신분 따위는 고려치 않는다.
홀로 찾아온 진무는 중원을 대변하는 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무인일 뿐이다. 그저 마도에 도전하는 한 사람의 무인.
그렇기에 황신과 소동보는 더욱 강해져야만 한다. 지금부터 언제 죽을지 모를 사지로 걸어 들어가야 하니까.
진무가 가고자 했던 정사마의 가장 높은 자리로 향하는 마지막 여정.
기다려라, 마교. 곧 가마.
스산한 바람과 함께, 밤이 조금씩 깊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