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29
329화
진무 일행이 약강의 중심부로 들어서자 통제된 관도의 양쪽으로 약강지부의 무인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정자세를 취한다.
“약강지부는 지부장, 괴충 님을 배알하라!”
관도의 끝자락에 대기하고 있던 지부장 한진위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추우웅(忠)!”
일제히 무릎을 꿇고 외치는 무인들의 목소리에 약강이 떠나갈 듯이 흔들린다.
짜식들, 제법 손님 맞을 줄 안다. 그래, 자고로 손님은 정성으로 대해야 하는 법이지, 암.
그런데 누구? 괴충?
거짓말을 했거나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면 마부 놈의 이름은 분명 일환이랬는데?
잠시 멈춰 있던 진무가 검집 끝으로 일환을 툭툭 건드렸다.
“어이, 괴충이 누구냐? 너 이름이 두 개냐?”
“…….”
와락 일그러지는 일환의 얼굴.
그 역시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분명 지부장으로 내정된 것은 자신인데 어찌하여 이놈들이 괴충의 이름을 외치는 것일까?
그리고 설마하니 자신을 무진이라고 밝힌 이놈을 괴충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건가?
하긴, 그럴 만도 하다. 괴충에 대해서 이들이 아는 것이라고는 육동천주 괴뢰가 아끼는 외동아들이라는 것밖에 없을 것이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딴 오해나 하고 있다니…….
하지만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약할 대로 약해진 약강지부에 모인 무인들이라고 해 봐야 마령대 일백만으로도 썰어 놓을 정도로 약하다.
그런 마령대를 한 번에 쓸어 버린 괴물이 아니던가?
괜히 성질을 건드려 놓았다가는 육동천이 손에 넣기 위해 오랫동안 공들여온 약강지부가 단번에 피바다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으로서는 대충 씻기고 잘 대접해서 어서 떠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다. 설마하니 눌러앉기야 하겠는가?
쿡쿡.
“야! 묻잖아. 괴충이 누구냐니까?”
머릿속으로 수만 가지 고민을 하고 있던 일환을 진무가 다시금 검집으로 꾹꾹 찔러 대며 짜증을 냈다.
“……그…… 육동천주의 아들이오.”
“아들…… 아!”
일환의 대답에 진무가 잠시 생각하는 듯 말끝을 흐리다가 가벼운 탄성과 함께 조소를 머금는다.
“지가 지부장이라더니 따까리였구만. 어쩐지 더럽게 약하다고 했더니.”
“…….”
이젠 대놓고 약자 취급을 하며 자존심을 건드려 오는 통에 일환은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자신은 약하지 않다고. 니가 너무 괴물인 거라고.
하지만 머릿속에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구타의 기억이 스쳐 지나가자 말은 입 안에서 맴돌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맞고 나서는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도무지 반항을 할 수가 없었다.
“됐다. 빨리 가자, 배고프다.”
“……예.”
한결같이 버르장머리 팔아먹은 진무의 태도에 일환이 무척이나 공손하게 대답했다.
* * *
한진위의 안내에 약강지부의 대전각에 도착한 진무 일행은 비로소 얼굴을 가린 천을 풀었다.
“과연 듣던 대로 미남이십니다! 아버님이신 육동천주님과는 달리…… 날씬하시고…… 그…… 또…… 외탁을 하신 모양이지요? 핫핫! 지부장님의 어머님을 뵙지는 못했으나 참으로 미인이셨던 모양입니다.”
“…….”
한진위는 연신 굽신거리며 진무를 향해 아첨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그가 그럴수록 일환의 얼굴은 더욱 찌푸려졌다.
진무가 괴충으로 오해받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자리에 괴충을 앉혀? 부모 덕에 노력 하나 없이 모든 것을 얻은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을?
“그나저나 마령대주와는 오면서 만나신 모양입니다.”
마령대주?
아까부터 눈짓으로도 인사를 하지 않더니, 이젠 대놓고 하대를 한다.
아마도 괴충에게 잘 보여서 최소한의 자리를 유지할 요량이겠지.
“안 그래도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앞으로 영명하신 지부장님을 잘 모시라구요. 육동천의 고수인 마령대주가 옆에서 보필할 것이라 하니 제가 아주 든든합니다.”
“……!”
한진위의 말에 일환이 쌍심지를 돋우며 눈을 부릅뜬다.
옆에서 보필하라고?
그딴 소식은 들은 바 없었다.
원래 자신의 자리였던 지부장 자리에 괴충이 임명되었다는 사실도 방금 알게 된 것이다.
“여기 육동천주님의 직인이 찍힌 명령서입니다. 수석장로이신 목소산 님께서 직접 발송하셨…….”
진무를 향해 내밀어진 붉은 배첩을 일환이 급히 빼앗아 펼쳤다.
약강 지부장, 괴충.
부지부장, 마령대주 일환.
이런 망할 놈들이.
내용을 확인한 일환의 양 뺨이 붉게 물들더니, 이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능력도 안 되는 제 새끼의 수하 노릇을 하라고? 숱한 전장을 헤치며 육동천을 위해 충성해 온 나에게?
일환의 급변하는 표정 따위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은 한진위가 진무의 일행들에 대해 궁금증을 드러냈다.
“그나저나 이분들은?”
“개인 호위!”
“전령이다!”
“아, 나는…… 음…… 제……자?”
한진위의 시선에 소동보와 황신이 가슴을 내밀며 대답하고, 각출이 한참을 고민하다가 진무의 눈치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제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역시! 지부장님이십니다. 아직 젊으신데 제자까지 들이시다니! 과연 우리 육동천의 대들보이십니다!”
“…….”
무엇이든 척척 아첨으로 포장하며 웃는 한진위를 진무가 물끄러미 바라보다 피식 웃고는 먼지를 털어 내려 소매를 펄럭이자…….
“아이고, 이 뽀얀 살결! 어찌 이리도 고울꼬. 빙기옥골이 따로 없습니다, 핫핫핫!”
“…….”
작게 일 보를 떼어 옮기자…….
“이 균형 잡힌 걸음걸이하며 타고난 위엄……. 이런 광경을 실제로 보다니 감동적이기 그지없습니다.”
이 새끼…… 아첨이 남다르다.
이건 뭐 숨만 쉬어도 칭찬이 이어질 판이다.
어쨌든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마령대주 놈의 이름이 두 개가 아니라, 자신을 괴충이라는 놈으로 오해를 하는 듯싶은데…….
뭐, 내 입으로 말한 것도 아니고 지들이 알아서 오해하는 건데.
“그런데 이분 가족들은?”
한진위가 겁을 잔뜩 집어먹은 채로 옹기종기 모여 선 우등 일가를 보며 묻는다.
“빈방 있나?”
“빈……. 있긴 합니다만…….”
“잠시 기거할 방 좀 내주지.”
“……!”
순간 한진위는 우등 일가를 다시 쳐다봤다.
괴충이 직접 빈방을 주라고 할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여기다.
중요한 지점이 아닐 수 없었다.
저 식솔들만 잘 보살펴도 점수를 딸 수 있다. 고로 자신의 자리도 보전될 것이 틀림없었다.
“지부장님! 중요한 손님들께 빈방이라니요! 빈 전각 하나는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응? 뭘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제 가슴을 탕탕 친 한진위가 휘하를 향해 큰 소리로 명했다.
“장동!”
“예!”
“이분들을 후암전으로 모시거라. 아기씨를 돌볼 유모와 잡일을 맡을 일꾼과 시비들을 최대한으로 보내 드리고!”
“알겠습니다.”
한진위의 명령에 장동과 무인 몇이 나와서 우등에게 공손하게 고개를 숙인다.
“모시겠습니다.”
“……예? 아니, 그.”
졸지에 귀빈 대접을 받게 된 우등 일가가 더욱 겁에 질려 난처해하자 진무가 낮게 웃는다.
하긴, 지금 가라는 것도 웃긴 일이다.
오해가 겹겹이 쌓여서 지금은 대접받고 있지만 진무의 정체가 밝혀지면 우등 일가의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그럴 바에는 가까이 데리고 있는 게 여러모로 나을 터였다.
“뭐, 전각을 내줄 거라면 나중에 우리와 함께 가도록 하지. 괜히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고.”
“예? 무슨 그런 말씀을. 저희가 어찌 감히 지부장님과 인연이 이어진 분들께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르겠습니까?”
“…….”
지랄이 풍년이다.
이제껏 중원에 와서 천인공노할 짓을 누구보다 열심히 서슴지 않고 저질러 온 마교 놈들 주제에 아닌 척은.
“됐어. 시끄럽고.”
“…….”
진무의 칼 같은 말에 헤실거리던 한진위가 입을 다물고 눈치를 살핀다.
“저어, 그나저나 지부장님도 오셨고, 보필할 마령대주도 왔으니 체계를 좀 잡아 주셔야 하는데…… 에, 그동안 또 제가 지부장을 하면서 약강의 내부 사정은 속속들이 아는 터라……. 저는 그저 내총관 자리면…….”
“…….”
역시 능수능란한 아첨꾼답게 틈새를 놓치지 않고 대가를 청해 온다.
그런데 어쩌냐?
난 아첨하는 놈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니가 생각하는 그 인물도 아닌데.
뭐, 어쨌거나 약강은 조금 마음에 들었다. 마교 접수의 첫 번째 교두보로 삼아도 좋을 만큼.
일단 오해를 풀고 나서…….
“이봐, 실은 말이야. 내 이름은 무…….”
진무가 정체를 밝히려던 그때, 성문 쪽에서 타종 소리가 거세게 울려 퍼진다.
땅땅땅땅!
“적입니다! 적이 내습했습니다!”
대전각의 정원으로 뛰어 들어온 수하가 다급히 외치는 말에 한진위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뭣이? 이런, 지부장님께서 오신 첫날이거늘!”
한진위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는 장포를 휘날리며 몸을 돌린다.
“어떤 놈이냐! 칠동천의 잔당이더냐?”
“그, 그것이…….”
“어서 대답하지 못할까?”
한진위의 말에 대답한 것은 다름 아닌 황신이었다.
“이놈들,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내가 바로 신임 지부장 괴충이다!”
“…….”
순간 모두의 고개가 황신을 향해 홱 돌아간다.
지가 괴충이라고?
아깐 전령이라며?
그런데 황신의 태도가 조금 묘하다. 진무를 향해 공손하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들어온 놈이 그리 말하는군요.”
아, 보고하는 거였어?
응? 근데 그리 말한 것을 들었다고? 대전각에서 정문까지의 거리가 삼백 장은 족히 되는데?
“계속해 봐.”
진무의 허락에 황신이 귀를 쫑긋거리고는 다시 말을 이어 간다.
“닥쳐라. 지부장님께서 도착하신 지 오래거늘 어디서 거짓말이냐?”
“이런 미친놈들이! 당장 비켜서지 못해?”
“쳐라, 놈들을 죽여라!”
“오냐! 네놈들 목을 모조리 따 주마! ……이런 말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위치를 바꿔 가며 그럴듯하게 연기까지 하는 황신의 공손한 보고에 진무는 고개를 끄덕였고, 보는 이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 밝힐 필요도 없겠네. 진짜가 온 것 같으니까.”
“…….”
진짜? 무슨 말이지?
순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한진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이, 괜히 사람 다치게 하지 말고 문 열지. 어차피 이곳으로 정한 이상 얼굴은 봐야 할 것 같으니까.”
“……예? 그게 무슨?”
“문 열라고.”
진무가 눈살을 살짝 찌푸리자 한진위가 흠칫하며 다급히 명을 내렸다.
“무, 문을 열어 주라 해라.”
“……아, 예에.”
보고를 하러 왔던 수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 * *
잠시 후.
열 명의 인물이 대전각으로 들이쳤다.
그 선두에 선 뚱뚱한 인물이 뱁새처럼 찢어진 눈으로 대전각 안의 인물들을 노려보다 일환에게서 시선을 멈춘다.
“이것 봐라? 마령대주가 먼저 와 있었네?”
“…….”
“그런데 네놈이 미치지 않고서야 미리 도착한 주제에 나의 행차를 막아?”
막 나타난 사내, 괴충의 욕설에 일환의 눈매가 사납게 올라갔다.
“하?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인사를 못 할망정 째려봐? 이게 진짜 미쳤네.”
괴충이 이죽거리며 다가오자 마령대의 무인들이 싸늘한 표정으로 그 앞을 막아섰다.
“어쭈, 막아?”
“…….”
“이런 버러지 같은 것들이……. 모가지를 전부 베어 버려야 하나?”
괴충이 자신을 막은 무인들의 따귀를 후려친다.
하지만 마령대의 무인들은 비켜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이, 일환. 우리 아버지 명령서 못 받았어? 너보고 내 밑에서 기라고 하라셨던 거 같은데?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지?”
“…….”
“아주 처돌았네, 처돌았어.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모양이지? 육동천의 주인이신 우리 아버지 명령을 무시하는 걸 보면 말이야.”
막아선 무인들 너머로 보이는 일환을 향해 괴충이 쉼 없이 이죽거린다.
“안 비켜, 이 새끼들아? 뒈지고 싶어?”
급기야 시퍼렇게 날 선 칼까지 빼 드는 모습에 진무가 한숨을 내쉬며 일환에게 물었다.
“쟤가 괴충이냐?”
“……예.”
“너는 저 새끼 수하고?”
“…….”
“사패천만 개판이 된 줄 알았더니 마교도 개판이네.”
대전각 대청 아래 디딤돌에 앉아 있던 진무가 천천히 일어난다.
약강. 딱 봐도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이고, 북리도천이 있는 신강의 북쪽 끝자락 천산과 마주 보는 남쪽이다.
마교의 가장 윗자리에 서기 위한 도전을 이곳 약강에서부터 시작할 것이다.
일단은 부모를 잘 만난 탓에 예를 못 배워 처먹은 시끄러운 개새끼를 좀 조용히 시킨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