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33
333화
두두두두.
사막을 달리는 열 기의 인마 선두에서 세차게 펄럭이는 검은 깃발.
검은 바탕에 육(六)이라는 글자를 금실로 수놓은 세모꼴의 기는 육동천주 괴뢰의 아들이자 약강지부장인 괴충의 신분을 드러내는 깃발이었다.
와중에 육동천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볼 만큼 유명한 마령대주 일환이 다른 인물과는 달리 얼굴을 버젓이 드러내 놓고 있다.
“비켜라! 약강지부장님께서 나포박으로 귀환하시는 길이다!”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각 길목을 지키고 있던 육동천의 지부는 곧바로 문을 열고 물러나 주었다.
진무의 말대로 작은 다툼도 없었고 피 한 방울조차 흘리지 않고 나포박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 * *
타닥, 타닥.
나포박 인근의 마지막 사막.
괴충으로 위장하고 약강을 떠나온 진무 일행이 야영지를 꾸렸다.
괜한 의심을 피하고자 일부러 사막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슥, 슥슥.
깊은 밤의 어둠을 걷어 낸 모닥불 주위, 일환이 나뭇가지로 모랫바닥에 그림을 그린다.
“이것이 대략적인 육동천 본가의 구조입니다.”
“나선형이라. 희한한 배치로군.”
“혹여 모를 적의 내습에 대비한 진법입니다.”
“그래?”
“예.”
“제법이군. 건물을 지을 때도 이런 걸 신경을 썼다니.”
“괴뢰의 생각입니다. 그는 육동천주의 자리에 앉자마자 나포박에 방어선을 구축했습니다.”
“……어째서?”
“육동천은 다른 동천에 비해 전력이 약한 곳이었습니다. 재정이 풍족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흠, 다른 동천에게 언제나 위협을 받고 있었기에 살아남으려고 건물을 이용해 방어막을 구축했다?”
“예.”
“제법이군. 그 괴뢰라는 녀석에 대해서 말해 봐. 어떤 놈이지?”
“그는 치밀하고 강하지요.”
“강해?”
“예. 마교 서열 십팔 위에 해당하는 강의 고수입니다.”
“호, 이강백보다 강한 모양이지?”
진무가 잔혼마도 이강백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육지마동 그 꼬맹이에게 구출되어 죽다 살아난 녀석.
뭐, 일환에게 들어보니 가짜 구야자 사건 이후로 북리도천의 진노를 사서 죽었다고 한다.
하여간 북리도천은 늙어도 변함이 없는 모양이다.
도통 봐주는 법이 없는 놈 같으니.
진무가 지난 일을 회상하는 사이 일환이 무거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괴뢰의 무공도 무공이지만, 그 괴이함 때문에 모두가 그를 껄끄러워합니다.”
“어째서?”
“괴뢰(傀儡). 이름인 동시에 그의 무공이지요.”
“꼭두각시를 말하는 건가?”
“그뿐 아니라…… 타인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남을 이용하는 무공이라니 정말 시답잖은 녀석이네.”
“글쎄요. 하지만 그를 만나게 되면 제가 주군을 공격할지도 모릅니다.”
“…….”
아직 괴뢰의 무공을 확인하지 못했기에 일환의 심각한 표정과 말이 잘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그게 뭐가 그리 대수랴?
그깟 잔재주 따위를 두려워할 진무가 아니었다.
“그런데, 치밀한 성격이라면 우리를 의심할지도 모르겠군.”
“그건 아닐 겁니다.”
일환이 슬쩍 시선을 돌린 곳에는 점혈을 당해 강제로 좌정한 채 눈을 시퍼렇게 뜨고 이쪽을 노려보는 괴충이 있었다.
“주군께서 저놈을 이용하실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실로 절묘한 계책입니다.”
“꽤 아끼나 보지?”
“예. 괴뢰가 유일하게 금쪽처럼 여기는 아들이니까요. 육동천의 무인들이 모두 그 사실을 아는 이상 나선형 방어막의 중심까지는 어렵지 않게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잘됐군.”
진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술을 따라서 괴충에게 다가간다.
“조만간 한 식구가 될지도 모르는데 그만 눈 풀고 술이나 한잔하지.”
“…….”
하지만 핏발이 돋은 눈으로 노려볼 뿐 말을 하지 않는다.
“아! 아혈을 점했었지?”
퓻!
“이런 육시럴 놈들! 감히 일환 네놈이 중원 놈들과 결탁해서 아버님을 배신해?”
“…….”
“흥, 네놈들이 아버님을 어찌해 볼 수 있을 성싶더냐!”
아혈이 풀리자마자 목에 핏대를 세우며 악을 쓰는 그를 진무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야, 너 그러다 목 나간다. 화가 나는 건 알겠는데 곧 한 식구가 될 사이라니까?”
“닥쳐라, 이 재수 없게 웃는 놈! 감히 더러운 중원의 개 따위가 나와 겸상을 하려 해? 에이, 퉤!”
“…….”
미간을 잠시 찌푸린 진무의 시선이 괴충을 향한다.
아직 매가 부족했던 모양이다.
“……각출아.”
쉬이익!
나지막한 부름에 황신, 소동보와 함께 앉아 있던 각출이 섬전처럼 날아와 청죽봉을 휘둘렀다.
빠각!
“크에엑!”
두두두두! 퍼억!
신들린 청죽봉에 괴충의 비명이 사막에 울려 퍼진다.
“그만.”
종료를 알리는 명령과 함께 각출이 시원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원래의 자리로 물러났다.
“쯧쯧, 마시기 싫으면 그만이지 왜 침을 뱉고 난리인지.”
한참 개처럼 두들겨 맞고 땅바닥에 처박혀 푸들푸들 떨어 대는 괴충을 응시하던 진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 그래도 기껏 준비한 것이니까 한잔해라.”
쪼르륵.
진무가 괴충의 얼굴에 술을 부어 주었다.
“차차 익숙해지자고, 서로에 대해서 말이지.”
그 말과 함께 다시 아혈을 점한 진무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너무 언짢아하지 마십시오. 괴뢰가 너무 오냐오냐 키워 놔서…….”
“무슨 소리. 난 오히려 꽤 마음에 드는걸?”
“예?”
진무가 불쾌해하기는커녕 흐뭇해하는 모습에 일환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자주 느끼는 거지만 도무지 속을 모를 사람이었다.
그래, 알 리가 없지.
괴충이라는 놈, 버르장머리는 좀 없어도 근성이 있다.
저렇게 처맞고도 눈빛에 독기가 가시질 않는 사람은 거의 없는 법인데.
세상 경험이 일천한 거야 살다 보면 느는 것이고, 버르장머리가 없는 것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무야말로 갱생의 달인이 아니던가?
아직 덜 맞아 봐서 그렇다.
언젠가 뒈지게 맞아 볼 날이 있겠지.
“자, 대충들 쉬라고. 내일은 꽤 격렬할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알겠습니다. 주군께서 쉬실 잠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아니, 신경 쓰지 마. 그 정돈 혼자 해도 되고, 따로 할 일도 있고.”
따로 할 일이라는 말과 함께 멀찍이 떨어져 앉은 우양진을 바라보는 진무에게 일환이 물었다.
“혹, 이 늦은 시간에 수련을 시킬 생각이십니까?”
“늦기는. 무인의 수련에 시간이 어디 있어? 쉬면 뭘 해, 부지런히 가르쳐 놔야 나중에 한몫을 단단히 하지.”
“……알겠습니다. 하면 저희는 먼저 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일환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함께 온 마령대의 무인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양진.”
“예. 사부님.”
“마보, 철구.”
며칠간 익숙해진 탓인지 그 두 마디와 동시에 우양진이 손목에 철구를 달고 마보를 취한다.
과연 강골.
이젠 자세가 제법 안정되었다.
조만간 제대로 무공을 가르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진무가 흐뭇하게 웃는다.
“……저어, 천주님?”
우양진을 수련시키던 진무에게 황신과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왜?”
“그게, 우양진…… 소공자께선 위치가 어떻게 되는지.”
뭘 그딴 걸 묻고 있지?
당연히 내 제자니까…… 아! 이놈들 지금 서열이 궁금한 거구나?
이 새끼들, 셋이서 뭔가 수군거리더니 지금까지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건가?
“부하랑 제자랑 누가 더 높겠냐?”
“그야 당연히…… 아!”
단번에 이해한 황신과 소동보가 고개를 끄덕이고, 각출이 갑자기 깨달음을 얻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처, 천주님, 그럼 저도 얘들보다 높은 거였나요?”
“…….”
“저도 제자……지 않습니까?”
이건 또 뭔 개소리야. 제자? 누가? 니가?
가르침을 적선 받는 주제에 어디서 제자 타령이지?
진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는데 각출이 황신과 소동보를 향해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턱을 치켜든다.
“니들…… 이제껏 나를 동생 취급하며 부려 먹어? 이놈의 자식들, 내 오늘 단매로 너희를 다스릴 것이다!”
으르렁거리기까지 하는 각출의 모습에 진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황신을 불렀다.
“휴…… 황신아.”
“예?”
“니들 아직 서열 정리 안 됐냐?”
“그게…… 각출…… 공자도 제자라면…….”
“부하 칠 호.”
“……?”
“각출이는 그냥 칠 호야. 너 오 호, 소동보 육 호.”
“…….”
한동안 멍한 표정을 짓던 각출이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한다.
“……처, 천주님! 아니, 내기의 대가로 저를 가르치시겠다고 약조를…… 읍! 읍읍!”
하지만 이내 황신과 소동보에게 입이 막혀 끌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합공을 받은 각출이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꾸에에에엑!!”
* * *
“뭣이! 충이가 돌아왔어?”
“예. 동천주님!”
수하의 보고에 집무를 보고 있던 괴뢰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엉덩이를 들썩거린다.
“핫핫, 이놈이 그간 소식 하나 전하지 않더니 벌써 돌아왔구나. 약강지부가 완벽히 마무리된 게야. 안 그런가, 수석장로?”
“…….”
괴뢰의 들뜬 모습에 수석장로 막소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어찌 된 일이지?
그는 지금쯤 한창 칠동천의 잔당들을 색출하고 인근 지역의 안정화에 힘쓰고 있어야 했다.
아무리 마령대주 일환이 도왔다고 해도 시일이 너무 빠르지 않은가?
더욱이 소식 한번 전하지 않았던 그가…….
“동천주님, 무언가 이상합니다.”
“……뭐?”
“아무래도 그들의 걸음을 멈춰 세우고 확인 절차를…….”
“어허! 아직도 충이를 믿지 못하는 게야?”
“그게 아니라.”
“됐네, 이 사람. 쯧쯧, 사람이 일을 잘했으면 그동안의 평이 어찌 되었건 칭찬을 해 줄 줄도 알아야지.”
“…….”
“어서 진을 해제하고 길을 열어 주게.”
“동천주님! 하지만 만에 하나 칠동천의 잔당이 음모를 꾸민 것이라면…….”
“어허! 그만두래도?”
“…….”
“듣지 못했는가? 충이도 충인데 마령대주가 직접 보필해서 오고 있다지 않은가?”
그게 제일 이상한 점이다.
마령대주는 뛰어난 마교의 무인이다.
강자가 아니면 함부로 고개를 숙이지도 않는 그의 평소 성격으로 미루어 봤을 때 동천주의 말에 복종은 하겠지만, 실력이 모자라고 예의가 없는 괴충과 관계가 좋을 리가 없었다.
“동천주님, 제 말을…….”
“시끄럽다!”
“…….”
제 아들이 걸린 일이라 그런지 괴뢰가 매서운 눈초리로 막소산을 째려본다.
“더는 말하지 마라.”
“……알겠습니다.”
실컷 막소산을 꾸짖은 괴뢰는 온화한 표정으로 돌아와 괴충이 돌아왔음을 알린 수하에게 명했다.
“너는 어서 가서 문을 열어 충이를 곧장 안으로 들이라 전하거라.”
“예!”
명을 받은 수하가 급히 뛰어나가자 괴뢰가 흐뭇한 표정으로 자신의 겉옷을 챙겨 입는다.
“흐흐, 이거 직접 나가 봐야지. 아비의 명을 잘 완수하였으니 어떤 선물을 줘야 하나?”
“…….”
기분 좋은 생각에 흥얼거리기까지 하는 괴뢰가 서둘러 밖으로 나가고, 막소산이 굳은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뒤따랐다.
* * *
두두두두.
열기의 말이 나선형의 건물을 빠르게 휘돌아 달렸다.
거리는 꽤 되었으나 막아서는 자가 없으니 순식간에 육동천의 중심부에 다다랐다.
다가각, 히이잉!
당겨진 말고삐에 열 기의 말들이 일제히 앞발을 들며 거칠게 투레질을 했다.
“오! 어서 오너라!”
미리 전각의 앞으로 나와 기다리고 있던 괴뢰가 얼굴 가득히 웃음을 머금고 맞이했다.
“일환, 충이를 보좌해 임무를 수행하느라 수고하였다.”
“…….”
괴뢰의 치하가 있었으나 말에서 내리는 일환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저 주위를 살핀다.
경계는 없다.
하긴 아들을 맞이하는 자리에 칼 든 무인이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해야 할까?
수석장로 막소산이 함께 있기는 했으나 그의 무공은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방어진을 너무도 수월하게 뚫었으니 남은 것은 괴뢰 하나뿐이었다.
“허허, 이놈아, 어찌 아비를 보고도 천을 걷지 않느냐? 이리 오너라. 이 아비가 장한 네 얼굴을 보고 싶으니라.”
괴뢰가 투실한 체구로 인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괴충을 향해 다가간다.
“니가 괴뢰냐?”
“……?”
순간 주변을 싸늘하게 얼리는 한마디.
괴충의 옆에서 앞으로 나선 인물이 얼굴에 두른 천을 천천히 벗겨 낸다.
뿐만 아니라 그 옆, 또 그 옆…….
괴충을 제외한 모두가 천을 걷어 내고 얼굴을 드러내었다.
일환과 마령대의 무인들은 알겠다.
그런데 나머지 젊은 놈들은 대체 누구지?
“하, 이 새끼. 뭘 처먹었길래 그렇게 뚱뚱하냐?”
“…….”
특히 재수 없는 표정으로 이죽거리는 젊은 놈.
“누구?”
“나? 이제부터 네놈에게서 육동천을 뺏을 사람.”
말할 것도 없이, 진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