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37
337화
진무가 나포박 육동천에 기거하기 시작한 지 열흘째.
한참이나 미뤄 두었던 즉위식이 시작되었다.
“추우웅!”
“…….”
두 줄로 늘어선 육동천의 수뇌들이 진무를 향해 우렁차게 외쳤다.
대전의 정문 앞에 선 진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 안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어찌 이리도 균일한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간격하며, 한 놈이 외치는 것 같은 목소리하며.
마교 녀석들, 이런 의식 행사에 특화가 돼 있는 건가?
의식 행사 수련을 따로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마교주의 권좌에 앉았을 때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만 해도 참으로 장관일 듯했다. 하긴 그러니 다들 그 권좌를 차지하려고 죽자고 달려들었던 거겠지.
진무는 흐뭇하게 웃으면서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저벅, 저벅.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리도록 적막해진 대전 안으로 진무의 걸음 소리만이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고개를 처박은 무인들은 진무가 단상의 끝에 도착할 때까지 그 자세를 유지했다.
펄럭!
단상에 놓인 의자에 도착한 진무가 피풍의를 휘날리며 몸을 돌려 앉았다.
“천세! 천세! 천천세!”
내부의 우렁찬 목소리가 전해지자 대전각 밖에 대기하던 무인들 또한 일제히 엎드리며 외치는 것이 마치 메아리와도 같았다.
크으, 이 맛이구만.
권력의 참맛을 음미하던 진무는 단상 가까이에서 괴충의 부축을 받고 선 괴뢰를 바라보았다.
“몸은 좀 괜찮나?”
“……!”
안부 좀 물은 걸로 놀라기는.
“잘해. 한 번으로 안 끝나.”
진무의 말에 괴뢰가 움찔하더니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다들 일어나.”
진무의 손짓에 마치 한사람인 것처럼 똑같은 속도로 일어나는 육동천의 무인들.
교육이 참 잘 되어 있다.
이런 건 저마다 따로 노는 사패천 녀석들도 좀 배워야 하는데.
근데 왜 다들 먹이를 기다리는 새 새끼처럼 날 뚫어지게 쳐다보는 거지?
아, 뭔가 말을 해 달라는 건가?
“나, 무진이다.”
“…….”
“알다시피 중원인이고…… 으음, 또…….”
가명을 밝히고 나니 딱히 할 말이 없다.
저놈들의 이글거리는 눈빛에 뭔가 화답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구구절절 말을 늘어놓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냥 밋밋하게 ‘잘해 보자.’라고 하기엔 눈빛이 너무…….
그래, 자고로 윗자리에 앉은 사람은 아랫자리에 앉은 이들에게 꿈과 야망을 심어 줘야 하는 법이다.
과거에 사패천주가 되었을 때도 그랬지 않던가?
천중산에 사패천의 성을 짓겠노라고.
짜식들이 어찌나 좋아하던지.
기쁨에 겨워 울 듯하던 사패오왕 녀석들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잠시 흐뭇하게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진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육동천은 지금부터 십이동천을 모조리 흡수할 것이다.”
“……!”
그 말에 가만히 듣고 있던 육동천의 무인들, 심지어 부상으로 다 죽어 가는 척을 하던 괴뢰마저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진무를 쳐다봤다.
모두가 놀란 표정을 한 와중에 한술 더 뜨는 진무.
“나아가 나는 권좌에 도전할 것이다.”
“……!”
이젠 다들 입을 너무 벌려서 턱이 빠질 지경이다.
아닌 밤중의 홍두깨도 아니고.
웬 미친놈이 동천주가 되어 버렸다. 이건 뭐 다 같이 죽자는 소리가 아닌가?
“해서 우리 육동천은…….”
“도, 동천주님. 그건 아니 될 말입니다. 어찌 교주님께 재가도 받지 않으시고.”
“…….”
폭탄 발언에 놀란 무인 하나가 갑자기 끼어들자 진무가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이 자식이 감히 내 말을 잘라먹어?
“이름은?”
“순찰장로 매번입니다.”
“그렇군…….”
이름을 들은 진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각출아.”
쉬이이이!
이름이 불리자마자 득달같이 날아가는 각출.
두두두두! 빠박, 빡!
“……!”
천하무구의 변형, 단 한 마리의 개를 향한 엄청난 구타가 매번의 몸에 첫 선을 보였다.
신분을 감추기 위해 옷도 갈아입었고, 무공 또한 진무의 가르침에 의해 더 난폭하고 잔인하게 변했으니 개방이라 눈치채는 놈은 하나도 없으리라.
녀석, 그래도 하나를 가르치니 하나는 깨닫는구나. 많이 늘었다.
매번 장로가 엄청난 매질을 당하고 혼절하는 모습에 수뇌 무인들이 급히 입을 다문다.
“내가 왜 재가 따위를 받아야 하지?”
“…….”
“말했잖아. 권좌에 도전할 거라고. 그럼 동등한 신분이어야지. 허락을 구한다는 것은 먼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거나 다름없잖아.”
“…….”
“어쨌든 내가 그리 결정했으니까 다들 따라와. 자, 질문?”
질문은 염병…….
청죽봉을 든 각출이 잔뜩 독이 오른 가을 독사처럼 살기등등하게 노려보는 데야 입인들 열 수 있을 리 없었다.
“도, 동천주님?”
한참 만에 개미 기어가듯 작은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수석 장로 목소산.
괴뢰와 처음 만났을 때 그 옆에 있던 놈이다.
일환의 설명에 따르면 비록 무공은 약하지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놈들과 달리 제 생각을 진솔하게 말할 줄 아는 놈이다.
지금의 육동천이 갖은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일견 그의 힘이 컸다고 할 수 있었다.
“뭐지?”
“……허락하신다면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될는지.”
“말해 봐.”
진무의 승낙에 목소산이 각출의 눈치를 연신 살피며 말했다.
“한 무리를 지배하는 자는 응당 높은 뜻을 품어야 하는 바, 신임 동천주님의 포부에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호오, 일단 날 치켜세우시겠다?
제법 말로써 상대를 현혹할 줄 아는 놈이다.
“하지만 세상사란 포부만으로는 되지 않는 법입니다.”
“계속해 봐.”
“저뿐 아니라 호법부의 무인들 모두가 동천주님께서 전임이신 괴뢰 님을 쓰러뜨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권좌에 도전하시려는 그 포부에 충분히 어울릴 만한 무공이었습니다.”
“…….”
“하지만 육동천이 웅비의 때를 맞이하여 칠동천을 병합하였으나, 그 세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
“또한, 그 힘이 원래 가지고 있던 힘에 칠 할밖에 되지 않으니, 다른 동천을 공격하는 것은 시기상조입니다. 하물며 권좌에 도전하다니요? 그 말 한마디로 모든 동천은 물론 천산의 표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놈 보게? 한번 입이 터지니 말이 술술 나오잖아?
가만히 듣다 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언변이다.
진무가 설득되는 것 같자 자신의 말이 먹혔음을 확신한 목소산이 목소리를 조금 높인다.
그가 혹여 맞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나선 이유는 단순했다.
갈 곳이 없다.
다른 놈들이야 다른 동천에 투항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자신은 달랐다.
무공도 약한 자신이 어딜 가서 지금처럼 수석장로가 되어 떵떵거릴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나마 인재가 턱없이 부족한 육동천이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패배한 괴뢰나 육동천 따위를 걱정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망할 신임 동천주란 놈이 자신의 자리를 날려 버리려 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설득해서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육동천이 세력을 뻗어 나가는 데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게 뭐지?”
“재정 부족입니다.”
목소산의 말에 이제껏 맞아 죽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수뇌 무인들이 한마음 한뜻이 담긴 눈빛으로 그를 응원했다.
쯧쯧, 맞을까 봐 무서워 나서서 말 한마디도 못 하는 것들이.
그러다 보니 무공도 약한 목소산이 단연 돋보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괴뢰 놈이 아주 멍청하진 않았구나.
그래도 사람은 가려 쓸 줄 아는 모양이었다.
“높으신 포부야 따르고 싶으나 재정이 바닥이라 전쟁을 준비할 자금이…….”
“그거 내가 해결해 주지.”
“없기…… 때문…… 예? 뭐라 하셨는지?”
확신에 찬 진무의 말에 막소산은 물론 수뇌부의 무인들이 커진 눈을 연신 끔벅거렸다.
방금 뭘 들었던 거지?
“두 번 말해야 하는 거냐? 돈 없는 거 내가 해결해 주겠다고.”
“…….”
제대로 듣긴 한 모양이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뱉은 것인지 모르는 건가?
그리 쉬운 일이면 이미 진작에 했을 터였다.
누구도 해결할 수 없었던 육동천의 문제를 막 신임 천주가 된 자신이 무슨 수로 해결하겠다고.
“이봐, 자네 수석장로라고 했나?”
“예? 예에…….”
“잘됐군. 말하는 것으로 보나 판단하는 것으로 보나 앞으로 중임을 맡겨도 되겠어. 앞으로도 그렇게 직언하는 것을 서슴지 말라고.”
“……?”
“일환!”
목소산의 의아함을 뒤로한 진무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일환을 부른다.
척, 척척척.
때를 맞춰 커다란 궤짝을 들고 대전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마령대의 무인들.
끼이익, 퉁, 퉁, 퉁…….
대전의 중심을 따라 놓인 궤짝이 하나씩 열리고.
“헉!”
“어억!”
“컥!”
휘황찬란한 빛무리가 쏟아져 나올 때마다 수뇌 무인들이 사레들린 듯한 소리를 내었다.
금이며 은이며 보석까지 이제껏 보지 못했던 엄청난 양의 재화며 날이 시퍼렇게 벼려진 각종 무기며…….
저벅, 저벅, 저벅.
일환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온 인물이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키며 대전의 중심으로 걸어왔다.
“산서상회를 이끄는 유장입니다.”
멈춰 선 유장이 진무를 향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인사들 하지. 앞으로 우리 육동천과 거래할 중원의 거상이야.”
“거, 거상!”
“중원!”
곳곳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그래, 많이들 놀라거라.
그 어려운 것을 내가 해냈구나.
“어이, 목소산.”
“……예?”
“이 정도면 앞으로 육동천을 꾸릴 재정은 넉넉하겠지?”
“…….”
넉넉?
무슨 소리!
이 정도 돈이면 육동천의 일 년 치 운영비보다 많아 보인다.
“차, 차고 넘칩니다.”
“그럼 됐네. 앞으로 산서상회의 거래는 자네가 맡는 걸로 하지.”
“……예?”
귀에 이상이라도 생긴 건가?
“니가 맡으라고.”
“…….”
갑자기? 자신을 뭘 믿고?
“왜, 싫은가?”
“아, 아닙니다.”
진무의 말에 목소산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이런 횡재가 있다니.
그동안 괴뢰 밑에서 갖은 잡무를 처리하고 무공이 낮다는 이유로 이놈 저놈에게 무시당한 설움이 얼마이던가?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더니 이건 뭐 황금 돌이 굴러온 꼴이었다.
목소산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자 진무가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할 줄 알았다.
내가 원래 그래. 밀어줄 때는 또 확실하게 밀어주거든.
그러니까 잘해 봐라. 행여나 뒷돈 챙기면 알지?
“자, 목소산 외에 또 다른 것을 말해 볼 사람 있나?”
“…….”
있을 리가 없었다.
이미 권좌 어쩌고, 십이동천 어쩌고 하던 진무의 포부 따위는 까맣게 지워진 지 오래다. 모두의 얼굴에 떠오른 건 오로지 탐욕, 탐욕뿐이었다.
마교의 철혈? 강자존?
그것도 배부른 놈들이나 하는 소리다. 굶어 본 놈들에게 그까짓 거 아무 소용도 없다.
“지금부터 우리 육동천은 십이동천 통일을 이루는 그날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와아아아!”
자고로 뛰어난 영도력은 배부르고 등 따시게 하는 데서부터 나오는 법.
황금에 매료된 십이동천의 수뇌들은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충성심이 순식간에 몇 배로 오른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 육동천에 소속된 마교 무인들은 물론 나포박과 약강에 사는 양민들에게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원체 가난했던 육동천과 칠동천이 그동안 매겨 온 고액의 세금을 비롯한 각종 수탈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더욱이 중원에서 왔다는 상인이 물건을 사들이고 일꾼을 고용하면서 돈이 돌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삶도 조금씩 윤택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거래 과정에서 육동천으로 납부되는 소정의 수수료는 존재했지만, 그게 어딘가.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변화를 기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그 시작점에 신임 육동천주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육동천주 무진.
마치 혜성처럼 나타난 그의 이름이 때로는 취객들의, 때로는 행인들의 방담(放談)을 타고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거대한 장벽처럼 존재해 왔던 사막을 지나 신강의 곳곳으로.
이제껏 신강의 지배자이자 신으로 추앙을 받던 북리도천의 이름 아래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며.
전임 동천주 괴뢰 따위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고 있었다.
십이동천의 통일을 위한 전쟁을 준비하던 어느 날…….
“야! 이거 전에 봤던 거잖아!”
“…….”
“다른 거 없어?”
“…….”
“하여간 꼭두각시극을 한다는 놈이 이렇게 소재가 빈약해서야.”
“…….”
진무의 한바탕 호통에 뚱뚱한 노인 하나가 나무로 만들어진 인형을 열 손가락 은사에 매단 채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망할 놈, 버르장머리 없는 놈.
전관예우(前官禮遇)라는 말도 모르는 놈.
술이나 처먹으면서 어른에게 이딴 짓이나 시키고.
“하압!”
“이얍!”
멀리 황신과 아이들, 그리고 수없이 처맞은 뒤로 가장 막내가 된 아들이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쁜 자식새끼가 그새 무공이 많이도 늘었다.
아깝게 겨우 찌워 놓은 살이 빠져서 너무나 가여워 보이긴 하지만…….
“야! 뭘 쳐다보고 앉았어?”
“옛날, 옛날…… 호랭이 담배 피던 시절에…….”
서슬 퍼런 진무의 호통에 깜짝 놀란 노인은 묵혀 두었던 새로운 이야기로 꼭두각시극을 시작했다.
시팔, 강자존 따위 없어졌으면…….
내가, 내가 그래도 괴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