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38
338화
콰드득.
손안에 잡혀 버둥거리던 무인이 뼈마디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이내 힘을 잃고 축 늘어진다.
“괴, 괴물…….”
순식간에 본래의 형체를 잃고 말라비틀어진 동료의 모습에 칼을 들고 서 있던 무인들이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괴물이라 불린 사내가 고개를 돌리고 눈을 번들거렸다.
사락.
혀로 입술을 느리게 핥는 그 모습마저 공포를 자아내는 사내는 밤의 어둠과 함께 찾아왔다.
십이동천의 북동방 끝, 염곡화가 다스리는 이동천의 영역.
풍부한 수자원을 보유한 덕분에 인구가 밀집된 그곳은 십이동천 중에서도 가장 강성한 곳으로 손꼽혔다.
어느 날, 그곳에서 사는 아이들이 납치되기 시작했다.
대략 십이삼 세의 아이들.
마치 증발한 것처럼 하나둘 사라져 버리는 아이들이 있어 염곡화는 조사를 명했고, 이동천의 주력 무인대 중 하나인 혈랑대는 오랜 추적 끝에 드디어 흉수를 만나게 되었다.
결과는 처참한 패배.
홀로 혈랑대를 괴멸시키는 적의 모습에 혈랑대주 곽범은 떨리는 다리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전투가 이루어진 이후 일백이 넘던 혈랑대의 무인 중 살아남은 것은 자신을 비롯한 다섯뿐이었다.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시산혈해(屍山血海).
온통 붉은 피로 물든 그의 주위는 사지 육신을 잃은 시체로 빼곡했고, 일부는 생기를 빼앗기고 목내이처럼 변해 죽어 갔다.
“흐, 흡정…… 그 저주받은 무공을…….”
알려야만 했다.
마교에서조차 금지된 마공의 출현을.
“네놈이 대장인가? 꽤나 먹음직스러운 기운을 가지고 있군.”
배부른 사자처럼 느긋한 표정으로 말을 걸어오는 사내, 소궁주 한승이었다.
곽범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온몸을 짓눌러 오는 그의 잔혹한 기세에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이곳은 무척이나 풍족하더군.”
“…….”
무엇이 풍족하다는 말이지?
곽범은 한승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차가운 대지와는 달리 따뜻하고…… 무엇보다 나의 허기를 달래 줄 먹잇감이 넘쳐 나.”
“……!”
먹잇감.
그가 표현하는 바를 순식간에 깨달은 곽범이 눈을 치떴다.
놈이 잡아먹은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아이들, 그리고 자신의 수하들.
“큭큭큭, 운 좋게 칠음은맥까지 만나게 될 줄이야. 좋아, 아주 좋은 곳이야.”
“…….”
기분 좋은 얼굴로 자신이 만들어 낸 지옥도를 음미하던 한승이 곽범을 지그시 바라본다.
“이봐, 마교인. 어떤가?”
“…….”
“기회를 줄 테니 내 길잡이가 되어 보는 게.”
길잡이가 되라고?
지금 자신에게 마교인들을 살육하는 것을 도우란 말인가?
한승의 말에 곽범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진다.
“……개소리. 너 같은 놈의 수족으로 사느니, 자랑스러운 마교인으로 죽음을 택할 것이다!”
겨우 떨림을 멈추고 비통하게 외치는 곽범의 말에 한승이 무덤덤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이상하군. 마교는 강자존의 율법에 따라 다스려진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거부하는 거지?”
곽범은 입가에 조소를 머금었다.
“미친 자식. 그저 강하다고만 해서 우리가 고개를 숙인다 생각했나?”
“…….”
“네놈은 그저 살육귀일 뿐이다. 힘에 굴복할지언정 마음을 얻지 못하는 놈에게 충성할 성싶으냐!”
곽범이 독기 어린 눈으로 자신의 검을 힘껏 움켜쥐고 한승을 겨누었다.
“저런, 그런 거였나? 안타깝구만.”
잠시 고민하던 한승이 곽범을 향해 빙그레 웃었다.
“허나 상대가 안 될 것을 알 것인데? 차라리 도망치는 게 좋지 않겠나?”
“닥쳐라! 나는 이동천의 혈랑대주 곽범이다. 죽을지언정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개가 되진 않는다.”
“흐음, 그래. 굳이 죽겠다면 말리진 않겠다.”
한승이 가볍게 손을 뻗어 올리자 잔잔히 가라앉아 있던 기운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온다.
휘몰아치는 사악함을 담은, 죽음의 기운.
곽범 또한 자신이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함을 안다. 어쩌면 일 초도 제대로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가휘.”
“예, 대주.”
“너는 지금 즉시 돌아가 놈에 대해 동천주님께 알려라.”
“대주! 저도 함께 싸우겠습니다. 혈랑대의 형제들을 죽인 놈들입니다!”
가휘가 고개를 내젓자 곽범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가휘, 쓸데없는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다. 시급을 요하는 일이다. 금지된 마공이 나타났음을 반드시 알려야 한다.”
“대주!”
“가거라. 놈은 우리가 어떻게든 막아 보겠다.”
가휘는 곽범과 그 옆에 선 자신의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웃고 있다.
죽을 것이 뻔한 상황임에도 자신에게 떠나라 눈빛을 보낸다.
“……알겠습니다.”
모두가 죽을 것이다.
그렇기에 다시 만나자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대주님의 원수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우리끼리 복수는. 먼저 저승에 가서 기다리마. 가거라!”
가휘는 한승에게 검을 겨눈 채 저를 돌아보지 않는 곽범에게 고개를 깊이 숙인 뒤, 곧장 이동천이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저런…… 말하지 않았군. 이곳은 내 허락 없이 아무도 빠져나갈 수가 없어.”
“뭐?”
한승의 비웃음.
순간 엄습하는 불안감에 곽범이 부릅뜬 눈으로 가휘의 뒷모습을 쫓는다.
한승의 목덜미를 스쳐 가는 빛무리.
일순간에 내리친 벼락처럼 세상을 한순간 밝혔던 빛이 자취를 감추는 것과 동시에 가휘의 머리가 떠오른다.
털썩.
달리던 가휘의 몸이 땅바닥에 거칠게 처박혔다.
“……가, 가휘!”
피를 토하는 듯한 곽범의 외침에 화답하듯이 검은 형체가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다.
잘린 머리를 움켜쥐고 다가오는 그들을 본 곽범의 눈가에 피눈물이 차올랐다.
“이런 개자식! 죽여 버리겠다!”
끓어오른 분노는 곧장 유형화되어 한승을 향해 뿜어졌다.
지면을 밟음과 동시에 온 힘이 담긴 그의 검이 커다란 횡격을 그리고, 뒤이어 혈랑대의 마지막 생존자들이 몸을 날려 왔다.
“쯧쯧…… 살려 준다 했더니.”
혀를 찬 한승이 가볍게 발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저 지면에 내려놓았다.
쿠구구구! 쿠아아앙!
족적조차 남지 않은 가벼운 발짓에 대지가 괴성을 지르며 부채꼴처럼 터져 올라 한승의 앞쪽 공간을 집어삼켰다.
후두두둑.
힘을 잃고 떨어져 다시 시야를 열어 주는 흙더미.
그곳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곽범도, 혈랑대의 생존자들도.
그저 진한 핏물과 육편만이 대지에 가득했다.
“쯧, 아깝군. 옆에 두었다면 후에 좋은 먹잇감이 되었을 것인데.”
한승이 입맛을 다시는 와중에 가휘의 머리를 들고 온 검은 인영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는다.
“이궁주는?”
“전임 삼궁주이자 현 내궁주이신 상관평님과 만나고 계십니다.”
한승의 질문에 검은 인영들의 수장인 사마도가 공손히 대답했다.
“상관평이 도착했나 보군.”
“예! 현재 천산 북쪽에 계십니다.”
“흐음, 천산에 있다면 나를 뒤쫓아 온 것만은 아니란 뜻이군. 항상 바쁘게 움직인단 말이야.”
“…….”
“어쨌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
한승이 물끄러미 멀리 남쪽을 바라본다.
“좋은 곳이야. 사방에 먹잇감이 넘쳐 나. 진작에 직접 나설 것을……. 크크크, 대성을 이룰 날이 앞당겨지겠어.”
한승의 말에 가휘의 머리를 휘어잡은 중년의 무인이 얼굴을 찌푸렸다.
어느 날 갑자기 이궁의 본거지가 자리 잡은 마교에 나타난 한승.
그의 등장으로 인해 이궁에 비상이 걸렸다.
소궁주 한승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중년 무인, 묵검(墨劍) 사마도.
이궁주의 명에 따라 휘하에서 가장 뛰어난 고수인 그가 묵검대를 이끌고 한승을 호위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이 받은 명은 한승이 일정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허기를 달랠 아이들을 공급해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미 직접 사냥하는 것에 맛을 들인 한승은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마도는 그를 제지하며 설득하려 하였으나 처참하게 짓밟히고 말았다.
일궁의 마군, 삼궁의 대랑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그가 자신의 모든 실력을 보였음에도 한승에게 십 초도 버티지 못했다.
지금은 어떻게든 소궁주의 추가 행동을 막아야만 했다.
유일하게 그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을 들먹여서라도.
“소궁주님. 일단 잠시 물러나 흡정하신 내공을 가다듬는 것이 어떠실지요?”
“…….”
“이미 금역을 벗어나신 지 오래되었습니다. 저들의 관심이 집중된 이상 소란이 과하여 대궁주님의 귀에 들어가는 날에는…….”
“…….”
그제야 한승이 한풀 꺾인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린다.
“좋아. 급할 것 없겠지. 이궁주에게 전해라. 칠음은맥이 필요하다고.”
“이미 찾고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좋아.”
한승이 몸을 돌리고 나서야 사마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아직은 이동천에 국한된 문제이니 소문이 퍼지는 것은 막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사마도는 분명히 보았다.
한승의 눈동자에 조금씩 늘어 가는 마성의 흔적.
위험하다.
내공이 너무 빠르게 늘고 있기에 완성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인성을 잃어 가고 있다.
이미 힘에 도취된 한승의 귀에는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 고삐를 풀어 버린 살육의 짐승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그가 계속해서 강해진다면?
그때는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게 된다.
상관평이 천산에 온 이유는 북리도천을 만나 모종의 협약을 맺기 위함임을 안다.
그런 와중에 한승이 제 배를 불리기 위해 마구잡이로 살육을 자행한다면?
지상 최강의 무인이라 불리는 북리도천이 두고만 보지는 않을 터였다.
망할,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 * *
보이는 곳마다 만년설로 뒤덮인 곳.
사람들이 세상의 끝자락이라 생각한 천산의 북쪽 평야에 언젠가부터 수백에 달하는 천막이 세워졌다.
마치 전쟁을 나선 군인처럼 야영지를 세운 그곳에 두 명의 노인이 두툼한 외투를 걸친 채 눈보라에 가려진 천산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직 연락은 없는 것인가?”
“예, 내궁주님.”
“…….”
물음에 대한 답을 들은 청수한 인상의 노인, 상관평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천산에 연락을 보낸 지 벌써 여러 날이 흘렀건만 답신이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언제까지 이 매서운 추위를 견디며 마냥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이보게, 평. 이쯤 되면 마교에서 우리의 협상안을 거절했다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쯤 하고 물러나는 게 어떤가?”
“…….”
왜소한 노인, 이궁주 노국태의 말에 상관평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기다려야 해. 삼궁과 일궁이 무너져 중원에 대한 영향력을 잃은 이상 다른 방법은 없어. 궁을 위해서는 반드시 북리도천을 움직여야만 한단 말일세.”
휘몰아치는 눈보라에도 상관평의 시선은 천산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더 이상의 설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노국태가 한숨을 내쉬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자넨 북리도천을 몰라.”
“…….”
“그는 여전히 강해. 잔인하고…….”
노국태의 한숨 어린 말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들의 나이가 벌써 일흔이 넘었다.
백 년 전 그들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새로운 세상을 열었을 때, 권력에 맛을 들인 주씨 놈의 배신으로 왕을 잃었다.
복수의 칼을 빼 들고 주씨 놈의 세력을 괴멸까지 몰고 갔으나, 그 과정에서 파탄에 이른 민생을 구하려는 도사 놈으로 인해 목표를 앞에 놓고 패배해 멀리 북쪽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도사는 떠났으나 자신들을 두려워했던 주씨 놈은 국경을 확장하고 다른 나라를 정벌한다는 명목하에 끈질기게 자신들의 뒤를 쫓았다.
결국 중원을 떠나야 했고, 흉노의 역사를 이은 야만인 놈들의 대지를 지나 얼음으로 가득한 동토에 자리를 잡았다.
함께했던 이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남은 이들은 대부분 고된 여정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
모두가 힘을 잃고 지쳐갈 즈음 동토의 대지에 희망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했다.
잊혀 가던 그들의 왕, 한씨의 핏줄에 천재가 태어난 것이다.
상관평, 송여방, 노국태.
세 사람은 각자의 할아버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하나의 뜻으로 그를 옹립해 세력을 결집해 나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궁(宮)이었다.
그들은 지금도 동토의 세계에서 추위에 떨고 배고픔에 허덕이는 자신들의 백성을 위해 중원을 향한 잔인한 복수의 칼날을 갈아 왔다.
배덕자들에게서 나라를 빼앗고, 호의호식하던 중원인들을 몰아내겠다는 원독 어린 희망을 품은 채 백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평생을 바쳐 온 계획에 따라 중원의 무림계를 손에 넣는 계획이 완성 단계에 이르러 가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무당지검이자 사패천주라는 놈.
어느 순간 그들이 세워 온 모든 틀을 무너뜨리고 단숨에 정사의 구심점이 되어 버린 놈.
정말이지 얄궂은 일이다.
사황에 의해 무너져 애초에 고려 대상에서 제외했던 무당에서 또다시 자신들을 방해하는 놈이 나타날 줄이야.
더욱이 대궁주의 뒤를 이어 백년대계를 이어 가야 할 소궁주는 망할 종려군으로 인해 총기를 잃고 힘에만 취해 점점 더 짐승처럼 변하고 있었다.
“소궁주는 어찌하고 있는가?”
“……사마도가 옆에 있으나 그가 제어하기에는 너무 커 버렸어. 지금은 대궁주의 이름을 들먹여 제어하는 것이 고작일세.”
“후우…….”
상관평이 깊은 한숨을 내쉰다.
대궁주는 늙었다.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다음 대를 이끌어야 할 한승에게 기대를 걸지 못하는 이상 그들의 대에서 마지막 승부수를 던져야만 했다.
남은 방법은 마교를 이용해 중원을 공격하게 만들고, 둘 다 힘이 약해진 틈을 타 대궁주가 병력을 이끌고 들어와야 한다.
대궁주가 그 전에 나선다면 황도의 주씨 놈이 절대로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상관평은 북리도천을 반드시 설득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틀만 더 기다리세. 그래도 답이 오지 않으면 직접 찾아가 볼 밖에…….”
“…….”
상관평의 말에 노국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역시 더 이상 방법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의 선택으로 백 년간 이어 온 그들의 뜻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가슴속에 진하게 자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