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4
34화
타닥, 타닥.
청상과 청우가 외유 때 사용했던 물건을 반납하러 간 사이에,
모처럼 돌아와 충허암에서 사부의 식사를 준비하던 진무는 매운 연기가 들어갔는지 눈물을 흘렸다.
씨발, 씨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애먼 놈이 챙겨 간다더니…….
다 뜯겼다.
은자 이백 냥과 포상금까지.
망할 판관 놈이 정확하게도 이야기한 탓이다.
명진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던 진무는 전장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열 냥짜리 전표로 바꿔 온 그 돈을 통째로 명선에게 가져다 바쳐야 했다.
다행히 청우와 청상이 입을 다물어 준 덕분에 전장에 맡겨 둔 황금 열 관은 무사했다.
그래도 소중한 살점이 통으로 뜯겨 나가는 것 같았다.
망할 도사 놈들. 감히 사파의 지존이었던 이 몸에게 삥을 뜯다니.
역시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 없는 놈들이었다.
“하아.”
진무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며 아궁이 속에서 번져 오는 연기에 연신 눈물을 닦아 내었다.
그러다 문득,
‘그 노인네.’
무월루에서 만났던 의문의 노인이 생각났다.
정체가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사파나 일월마교의 인물이 아니다. 정파의 인물은 더더욱 아니었다.
“이런 식이었나?”
진무가 자신의 손을 들어 묘하게 움직여 보았다.
노인이 자신을 향해 뻗어 내었던 일장.
어떠한 준비 동작도 없이 자연스럽게 늘어뜨렸던 팔을 단숨에 뻗으며 비튼다.
휘릭! 팡!
내기가 실리지 않았음이나 대각선으로 당겨졌다 내질러지는 손의 움직임이 꽤 빨랐고,
극점에서 때려 낸 허공이 가죽 북 터지는 소리를 만들었다.
“흠, 이게 아닌데…… 이거였나?”
진무는 연신 같은 듯 다른 방법으로 계속해서 허공으로 뻗었다.
휙, 휙휙휙! 팡! 파파팡!
하지만 횟수가 거듭될수록 진무의 미간은 점점 찌푸려졌다.
“젠장, 왜 똑같이 안 되지?”
분명히 보았다.
아직 이룩한 경지가 낮아 부딪히는 순간 내상을 입기는 했으나, 장력을 펼쳐 내던 움직임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흉내는 낼 수 있었지만 미묘하게 달랐다.
정확히 따라 할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장법이었어. 기본을 깡그리 무시한.’
일반적으로 장법의 기본은 당김으로 기를 모으고 뻗음으로 폭발시키는 것이다.
물론 문파별로 변화를 주거나 비틀어 회오리를 만드는 등으로 발전을 시키기는 하지만, 기본을 깡그리 무시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무공에 다양한 변화를 주는 것이 특기인 진무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노인의 장법은 그 기본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당기고 모으는 동작을 생략하고 곧바로 폭발시킨다. 짧지만 두 가지 동작이 빠져 간결하다. 그럼에도 위력이 넘쳤다.
“흐음.”
한참을 손을 놀리던 진무는 슬슬 짜증이 치밀었다.
“이거 쉽지 않네.”
진무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사파의 무공으로 절대의 위치에 있었던 자신임에도 똑같이 시전해 낼 수 없자 묘한 호승심이 끓어오른다.
무당의 무학을 익힌 지 어느덧 일 년.
제법 재미를 느끼고 수련한 지 꽤 시간이 지났다. 나름의 발전은 이루었으나 탄기의 경지에서 정체되었다.
사파의 무공과 달리 정파 무공의 핵심은 ‘깨달음’.
정파 무인들이 사파 무인에 비해 수련 시간이 길면서도 성취 속도가 낮은 이유였다.
이른바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는 그것 앞에 수많은 이들이 좌절을 한다.
하지만 그 벽을 넘는 순간, 착실하게 다져 온 내공이 그 깨달음을 뒷받침하기 위해 순식간에 확장되어 엄청난 발전을 이룬다.
벽을 넘은 자와 넘지 못한 자.
그것이 정파 무인의 경지를 나누는 기준이 된다.
그렇기에 무작정 내공을 쌓는다 해서 정비례로 성장하지 않는다.
계단식 발전을 느리게 거듭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른바 만류귀종(萬流歸宗)이라 했다.
정사마가 가진 무공의 종류는 수천, 수만 종에 달했으나 그 마지막은 하나로 귀결되는 법이었다.
진무는 그 마지막에 가장 근접해 있었던 이였다. 이미 기공 무학의 종점이라는 ‘강(罡)’의 경지를 이룩했으니까.
그러니 더 이상 깨달음의 벽을 만날 수가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을 깨달았으니 발전도 없다.
그렇기에 무당의 모든 무공을 원형에 가까울 정도로 원숙하게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내공의 확장을 이룰 수가 없었다.
즉, 모을 수 없으니 깨달음을 펼쳐 낼 내공이 부족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늦어!’
자신이 익히고 있는 육양신공.
이 미친 심법은 기껏 개고생을 해서 내공을 모아 놓으면 운기를 할 때마다 연단되어 선기만 남기고 불필요한 내공을 흩어 버린다.
그것도 대부분을.
내공은 갈수록 정순해지지만 쌓이는 속도가 극악할 정도로 느리다.
진무는 한 번도 수련을 게을리해 본 적이 없었다.
근래에 일이 있어 조금 나태해지기는 했으나 언제나 새벽같이 일어나 운기를 하고 점심 먹고 한 번, 자기 전에 한 번 운기를 했다.
하루 세 번.
절대 빼먹지 않은 일상이지만,
모으고, 연단하고, 버리고…….
이게 무슨 짓거리인지.
차라리 익숙한 묵룡혼원공을 익혔다면 과거의 경지까지는 아니어도 무당 장문인쯤은 뼈와 살을 발라 놓을 정도로 성장했어야 했다.
“하아.”
자꾸만 한숨이 나온다.
노인을 만난 이후 진무는 더욱 강해질 필요성을 느꼈다.
오랫동안 무림을 살아오며 진무가 느낀 핵심은 ‘약하면 죽는다.’였다.
시비가 끊이지 않는 곳이 무림이었다.
그런 곳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려면 마땅히 강해야 한다.
무공을 수련하는 목적도 거기에 있었다.
강한 것이 곧 정의(正意).
그것이 진무가 가진 무인으로서의 가치관이었다.
어차피 앞으로 대제자가 되려면 훨씬 더 강해져야 한다. 나아가 정무맹을 손에 넣자면 사패천주 혁련무강, 아니 그보다 더 강해져야 할지도 몰랐다.
뼈마디가 튼튼한 젊은 몸을 얻었으나 내공이 부족했다.
무당의 보물이라는 태청신단(太淸神丹)이라도 훔쳐 먹어야 하나?
그랬다간 좀생이 같은 도사 놈들이 당장에 때려죽인다고 길길이 날뛰겠지.
망할 놈의 도사들.
결국, 답은 양의심공밖에 없다.
그리고 그 전에,
초식?
무당의 무공?
그딴 것에 대한 수련은 진무에게 전혀 필요가 없다. 이미 다 아는 걸 뭘 굳이.
‘이제부턴 모든 수련 시간을 축기(蓄氣)하는 데만 때려 박는다.’
진무가 앞으로의 수련을 다짐하는데,
“진무야.”
방 안에서 명진이 불렀다.
“예. 스승님!”
“식사는 멀었느냐?”
“아닙니다. 들여가겠습니다.”
진무는 서둘러 식사를 준비했다.
진무 일행이 돌아온 지 열흘.
충허암의 일상이 조금 변했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청우와 청상의 우렁찬 기합 소리가 암자가 위치한 산자락 어귀까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들의 수련을 봐주는 것은 진무가 아닌 명진이었다.
돌아온 이후 충허암 인근 암묘에서 내공 수련에만 전념하고 있는 진무를 대신해 수련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병약한 명진이었으나 봄을 지나며 날이 제법 풀리기도 했고, 육식을 시작한 이후 갈수록 기력이 좋아진 터라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막 수련을 끝내고 돌아온 진무가 청우, 청상과 함께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데,
“사숙!”
한참 수련이 이어지는 가운데 진허가 숨이 턱까지 차오른 모습으로 충허암으로 달려왔다.
“오, 진허냐. 한데 어찌 그리 급한 게야?”
“그럴 일이 좀 있습니다.”
진허는 청우와 청상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했다.
“서둘러 채비하셔야겠습니다.”
“채비?”
“예. 장문인께서 속히 사숙과 진무를 데려오라 하셨습니다. 너희들도 어서 채비하거라.”
장문인이?
아놔 이것들이 진짜, 다 뒈질라고.
필요하면 제 놈들이 찾아오지, 어디 귀찮게 사람을 오라 가라야?
하지만 스승도 함께 가야 한다 했고, 일단 대제자가 되려면 명현에게 잘 보여야 했다.
“무슨 일이길래 이리 급히 찾는단 말이냐?”
“그게, 지금 본산에 난리가 났습니다.”
“난리?”
“예. 하여간 진무 이 녀석 때문에. 허참.”
말은 탓하는 어조였지만, 진허는 꽤 즐거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딱히 나쁜 일은 아닌 듯했으나 영문을 모르는 명진이 진무를 보았다가 다시 물었다.
“진무가 왜?”
“일단 가 보시면 압니다. 서두르시죠.”
진허는 이유를 말하지 않고 싱글거리기만 했다.
이 자식이. 스승님 말씀하시는데 싸가지 없이.
하지만 스승도 딱히 말이 없고 가끔 제 편을 들어 주는 진허였다.
아무 일도 아니기만 해 봐라.
* * *
“이 무슨?”
자소궁으로 들어서던 명진이 눈앞에 펼쳐진 모습에 당황하여 눈을 끔벅거렸다.
“하하, 대단하지요?”
진허가 제 허리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젖혀 웃었다.
자소궁의 대연무장.
길게 늘어선 줄.
몇 되지도 않는 무당의 제자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여 있었다.
뭔 잔치라도 하는 건가?
그런데 희한하게 다들 줄을 서서 기대감이 잔뜩 어린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줄의 맨 앞에 있는 도사들이 팔을 벌리고 있었고, 처음 보는 이들이 자를 대어 품을 재고 있었다.
“이게 뭔?”
명진이 대답을 요구하는 사이에 밖에 나와 있던 장문인과 장로들이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어서 오게.”
장문인 명현의 얼굴이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장문인을 뵙습니다. 한데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허헛, 이 사람. 이게 다 진무 때문이 아닌가.”
“예?”
명진이 의아한 표정으로 진무를 바라보았지만, 진무 또한 알 길이 없었다.
“허허, 이 녀석. 모른 체할 참이냐?”
뭘 자꾸 허허거려?
그리고 뭘 모른 체한다는 거지?
진무가 고개를 갸웃거렸고 장문인과 장로들은 흐뭇한 표정이었다.
“허헛, 사형께선 정말 복덩이 제자를 두신 모양입니다.”
원화관주 명선이 웃음을 터트렸다.
“…….”
“저들은 단강구에서 포목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글쎄 저들이 우리 무당 제자들에게 새 도포를 맞춰 준다지 뭡니까? 관모에 신발까지 덤으로요.”
도포?
당연히 새로 맞춰야지.
안 그래도 기워 입다 못해 죄다 해져서 만지기만 해도 부스러질 정도로 낡았는데.
물론 진무와 청우, 청상은 이미 비단 도포를 입었으니 상관없지만.
그런데 돈이 어디서 났지?
설마 지난번에 나한테서 뜯어 간 이백 냥으로?
이 자식들이. 돈 좀 생겼다고 이리 흥청망청이라니! 개고생해서 번 돈을 아껴 쓸 줄 모르고.
진무가 발끈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는데, 명선이 환하게 웃었다.
“글쎄 전부 무상이라 하지 않습니까.”
응? 뭐?
“이게 다 무상이랍니다. 장문인께서 민폐라며 극구 사양을 하셨는데 어차피 진무가 아니었다면 무뢰배들에게 빼앗겼을 돈이라며 되레 사정을 하는 통에.”
뭐, 뭐라고?
그 말을 들은 진무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공사척 그놈의 횡포가 아주 대단하였던 모양입니다.”
“…….”
“진무 덕에 무뢰배들이 소탕되어 더 이상 보호비를 내지 않아도 되었다며 포목점뿐 아니라 단강구 대장간에서 무당의 무기를 전량 만들어 준다고 하지 뭡니까?”
무기까지?
“허허, 지금 것들도 쓸 만한데 모처럼 병기고가 가득 차게 생겼다고 옥허궁의 명원 사형께서도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습니다.”
명선의 칭찬이 계속되고 명진의 얼굴에 흐뭇함이 늘어 갈수록 진무의 얼굴빛은 점점 더 검게 변했다.
“더 놀라운 사실이 뭔 줄 아십니까?”
또 있어?
진무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지난번 청양상단에서 받은 돈을 관에 반납했는데 다시 돌려주더군요. 그 와중에 무당의 재정이 어렵다는 소문을 듣고 단강구에서 상점이며 객점, 주루를 운영하는 이들이 우리 무당을 돕겠다며 모금을 해 오지 않았겠습니까.”
모, 모금이라고?
얼마나?
“놀라지 마십시오.”
진무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귀를 쫑긋하게 세웠다.
“자그마치 오백 냥입니다.”
오, 오백 냥……이라고?
“그뿐입니까? 몇몇 상단에서 다시 무당과 연을 맺었으면 한다고 연락해 왔지 뭡니까? 그 때문에 벌써 진궁이 이대제자들을 이끌고 단강구로 내려갔습니다. 하하, 이게 모두 진무 덕분입니다.”
진허의 흐뭇한 웃음에 진무는 불로초로 빙의되었던 영혼이 도로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실로 금의환향이 아닙니까.”
금의환향(錦衣還鄕).
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온다는 뜻이다.
물론 비단 도포를 입고 돌아오기는 했다. 새로 맞췄으니까. 청우와 청상까지.
“진무야. 정말 수고하였다. 내 기쁘기 한량없구나.”
“예. 사부님.”
명진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대답은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은혜를 입었으면 응당 당사자에게 갚아야지.
왜 쓸데없이 제 놈들 마음대로 무당에 바친단 말인가?
지난번 이백 냥도 뺏겼는데.
내놔라. 이놈들아! 내 돈이다!
하지만, 그사이 그를 바라보는 장문인과 장로들의 눈동자에 담긴 사랑이 더욱 커져만 감을 진무는 알지 못했다.
그저 속만 쓰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