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41
341화
마교 사동천은 그동안 칠동천과 육동천이 그러했듯 중원과 접하는 관문을 담당하는 격전지였다.
그곳 역시 육동천과 칠동천처럼 사막이 칠 할이었으나, 대신 서북쪽의 산지 아래로 너른 목초지가 발달해 꽤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사동천주 능서현은 대도시 합밀(哈密)을 중심으로 서남쪽을 호천(昊天), 동남쪽을 양천(陽天), 북방을 현천(玄天)지부로 나누어 관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감숙의 옥문관은 곤륜과 맞닿은 청해성만큼 전투가 빈번하게 일어나지는 않았다.
옥문관 자체가 국경이나 다름없는 곳이라 군부, 즉 관에서 직접 통제를 하고 있었기에 마교로서도 껄끄러웠거니와, 인접한 감숙이 길게 늘어져 공세를 집중하기 어려운 형세였으며, 그곳을 지배하는 천웅방의 세력이 남쪽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 *
“뭣이?”
호목의 사내가 수하의 보고에 눈살을 찌푸렸다.
우람한 체구에 장비 수염을 가진 그는 양천지부의 이오현 관문을 담당하는 멸절부(滅絶斧) 왕곤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가롭게 차를 홀짝이며 일과를 시작하려던 그에게 날아온 청천벽력 같은 소식.
“천웅방 놈들이 나타나?”
“예. 지금 관문 입구를 포위하고 있습니다.”
“그놈들이 왜?”
“아직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한데 수가 너무 많습니다.”
“이런 미친놈들이……. 그동안 북쪽에는 얼씬도 하지 않더니?”
“어쨌든 나가 보셔야겠습니다.”
“젠장.”
왕곤은 아직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차를 내팽개치고 서둘러 자신의 애병인 흑부월(黑斧鉞)을 챙겨 들고 집무실을 뛰쳐나갔다.
“이게 대체?”
집무실을 나와 관문이라 불리는 협곡 아래를 바라본 왕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새카맣다.
관문을 포위한 천웅방의 무인들이 맨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득 몰려와 있었다.
와도 너무 많이 왔다.
왕곤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흑부월을 어깨에 걸친 채 협곡 끝자락 절벽에 나섰다.
“나는 마교의 사동천 멸절부 왕곤이다!”
한껏 가슴을 부풀렸다가 내뱉은 그의 외침이 협곡을 메아리치며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러자 관문을 포위한 천웅방 무리 중 젊은 무인 하나가 말을 몰아 앞으로 나섰다.
“나는 천웅방주 원천호요!”
원천호라면……. 감숙오호의 수좌인 원천호?
그의 무공이야 감숙을 넘어 인접한 자신들에게까지 알려져 있으니 어찌 모를까.
그런데 천웅방주라고? 관월 원공후가 그새 뒈졌나? 언제 아들놈이 방주가 됐지?
어찌 되었건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천웅방이 어쩐 일인가?”
“우리는 지금 본방의 탈주범을 뒤쫓고 있는 중이오!”
“그쪽 탈주범을 어찌 이곳에서 찾는가?”
“놈을 추적한 결과 그쪽으로 넘어간 흔적을 찾았소. 하니 길을 열어 주기 바라오.”
“길을 열어?”
이런 미친놈들을 봤나. 마교의 관문이 무슨 동네 개집 정문이냐?
말도 안 되는 원천호의 요구에 왕곤은 위협이 가득 담긴 표정을 지으며 우렁차게 외쳤다.
못 들어온다 하면 지들이 어쩌겠는가?
“턱도 없는 소리! 관문을 넘어왔다면 우리 쪽에서 모를 리가 없다. 이곳으로 들어온 놈은 없었으니 그만 물러가라!”
“그건 우리가 판단할 문제요.”
“뭐?”
원천호의 대답에 왕곤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허세를 부리는 것인가?
하긴, 젊은 나이에 방주가 되었으니 부하들 앞에서 기죽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을 일이다만…….
왕곤은 눈을 시퍼렇게 뜨고 다시 한번 으름장을 놓았다.
“비켜 주지 않겠다면 어찌할 것인가?”
“…….”
원천호는 대답 대신 허리춤에 매달린 검을 뽑아 들었다.
“……!”
그 모습에 왕곤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진다.
멀리서도 선명히 보이는 그의 푸른빛 검기는 답이 되고도 남음이었다.
아니 저 새끼가 돌았나? 갑자기 왜 이래?
관월 원공후조차 마교의 영역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는데, 고작 탈주범 하나 잡겠다고 이 사달을 내?
감히 사패천의 떨거지 따위가 마교의 관문 앞에 와서 행패라니.
지금 전쟁이라도 하자는 거야, 뭐야?
“이봐, 천웅방주.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공격한다면 말리진 않는다. 하지만 각오해야 할 거야!”
서슬 퍼런 기세를 담은 왕곤의 고함을 듣는 원천호 역시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자신도 지금의 이 상황이 너무나 싫다. 근데 어쩌라고?
탈주범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는 사흘 전 비응에 실려 날아온 서신의 내용을 떠올렸다.
‘이오현의 관문을 공격하라.’
‘공격하되 전면전으로 가지 말고, 위협만 가해 적을 충분히 끌어낸 뒤 물러날 것.’
제길. 망할 놈의 천주. 마교의 관문을 공격하라니 이런 무책임한 명령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지만 까라면 까야지.
한낱 천웅방주가 무슨 힘이 있다고.
물러나지 않고 팽팽한 대치를 해 오는 원천호의 모습에 왕곤이 급히 휘하에 명을 내렸다.
“해령!”
“예, 관문장님.”
“지금 즉시 동천주님께 연락을 보내라. 천웅방이 관문을 공격했다고.”
“공격이요?”
“그래, 이 새끼야. 그렇게 적어. 수백 명, 아니 천 명쯤 공격해 왔다고 해. 지원을 요청한다고. 빨리 가!”
“……알겠습니다.”
명을 받은 해령이 급히 뛰어갔다.
왕곤은 관문을 둘러싸고 있는 천웅방의 무인들을 바라보며 까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갈고는, 흑부월을 힘껏 움켜쥐었다.
쌍놈의 새끼들.
죽더라도 관문은 지킨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 왕곤의 죽음으로 관문을 넘어온 놈은 물론 천웅방 본성까지 싹 다 쓸려 나갈 것임을.
* * *
멀리 사동천 호천(昊天)지부가 세워진 도시가 보이는 곳.
육동천과 사동천이 경계를 지은 황폐한 절벽 면 위에 진무가 한 발을 바위에 올리고 서 있었다.
그의 발아래로 너른 강이 흐르고 멀리 초목이 무성한 목초지가 펼쳐져 있었다.
“그래도 이 새끼들은 잘사는 모양이네?”
그럼 좀 서로서로 돕고 살지.
육동천과 칠동천은 그리 불쌍하게 살고 있는데……. 치사한 마교 놈들 같으니.
뭐 어쨌거나 상관은 없다. 이제 곧 있으면 저 푸른 목초지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수하들과 살아가게 될 테니까.
“천주님.”
진무가 사동천의 호천지부를 감상하던 와중에 옆에 있던 소동보가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두두두두.
멀리서도 들릴 만큼 힘차게 줄지어 달리는, 백여 기가 훌쩍 넘는 인마.
“새끼들, 더럽게 몰려가는구만.”
진무가 피식 웃는다.
대충 예상한 바였다.
황신과 소동보에 의해 알아낸 사동천의 상황.
지금쯤 천웅방이 움직여서 이오현에 위치한 양천 관문을 포위했을 터.
수백쯤 끌고 공격하는 척하라고 했으니 고작 수십이 전부일 관문의 무인들은 당연히 혼비백산해서 지원을 요청했을 것이고…….
대충 위협만 가하고 전투는 하지 말라 했으니 전쟁이 벌어질 위험은 없었다.
하지만 가만히 뒤로 물러나 있을 마교 놈들이 아니니만큼, 당장에 천웅방과 일전을 벌이려 들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사동천주가 있는 북쪽의 현천지부에서 본대가 움직이기에는 시일이 촉박할 테니 필시 가까운 호천지부의 병력을 먼저 움직일 것이라는 예상이 적중했다.
고로 지금 호천지부는 비었다.
호천지부장이라는 놈과 관문을 지키는 병력이 남아 있기야 하겠지만 그래 봐야 얼마나 되겠는가? 이거야말로 무주공산이고 빈집 털이지.
진무가 슬쩍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괴뢰, 일환이 이끄는 육동천의 자랑스러운 무인들.
헐벗고 굶주렸던 과거의 때를 벗고 교역의 도움으로 번쩍거리는 무구를 장착한 채 대기 중이었다.
“괴뢰!”
“예, 동천주님!”
이젠 곧잘 진무를 향해 충성을 보이는 괴뢰가 절도 있게 답했다.
“북쪽의 관문으로 가서 적의 지원을 막는다.”
“알겠습니다.”
“일환! 우리의 공격이 시작된 뒤 남쪽의 입구 인근에 숨어라. 소식을 듣고 되돌아오는 녀석들을 기다렸다가 뒤를 친다.”
“알겠습니다.”
“좋아. 나머진 나를 따른다.”
“명을 받듭니다!”
육동천의 무인들이 일제히 진무를 향해 목청 높여 화답해 왔다.
이런 늠름한 녀석들을 봤나.
흡족한 듯도, 음흉한 듯도 한 미소를 한껏 머금은 진무가 말에 훌쩍 뛰어 올라 거세게 말채찍을 때렸다.
순식간에 그의 뒤를 따라 수백 기의 인마가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사동천의 영역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거친 황무지를 넘어 내달리는 인마의 행렬은 마치 호천지부를 향해 날아가는 한 자루의 창과 같았다.
뿌우우우!
경계 병력이 적을 발견하고 다급하게 불어 대는 뿔피리 소리가 멀리까지 선명히 들려왔다.
발견했다고 해도 이미 늦었다, 이놈들아.
자, 그럼 어디 조금 더 혼란을 줘 볼까?
“황신! 병력을 나눈다. 소동보는 괴뢰와 함께 북쪽, 각출은 일환을 따라 남쪽으로, 괴충은 본대와 함께 간다!”
“예!”
진무의 명령에 황신이 급히 수기를 들어 올리자 일직선으로 달리며 쏘아지던 인마가 세 갈래로 찢어져 삼지창의 형상으로 변한다.
“이, 이런! 적이 갈라졌다. 서둘러 방어진을 분산시켜라!”
“지부장님은! 지부장님께 어서 이 사실을 알려라!”
“육동천이다. 육동천이 공격해 온다!”
그리 높지 않아 담벼락처럼도 보이는 토성의 벽 위에 있던 호천지부의 무인들이 대경해서 저마다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이오현 관문의 사정을 돕기 위해 절반의 전력이 빠져나가 버린 상황.
지금 호천지부에 남은 무인들의 수는 끽해야 백여 명.
와중에 셋으로 찢어졌으니 그 정도의 방어 병력으로 이쪽을 막는다는 것은…….
풉!
막아 봐라, 막아 봐. 자신 있으면 어디 재주껏 한번 막아 봐.
“천주님! 방향을 틀겠습니다!”
괴충의 말에 진무가 자신의 정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들이 향하고 있는 곳은 성문이 있는 쪽에서 좌측으로 삼십여 장 정도 떨어진 토성의 벽.
문은 아니지만 뭐, 전쟁에 임하면서 문으로 들어가 본 것이 몇 번이나 된단 말인가?
지금의 진무는 침략자다.
저깟 토성이야 무너지든 말든 알 바 아니다.
“방향 전환은 없다! 멈추지 말고 곧장 지부의 중심까지 뚫는다!”
“예!”
진무의 말에 괴충은 토성이 그리 높지 않으니 넘어 들어감으로써 시간을 줄이려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잘 달리던 진무가 위험천만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닌가.
“도, 동천주님?”
괴충의 물음엔 답도 하지 않고 북방 유목민들처럼 말 위로 올라가 쪼그려 앉은 진무.
쿠우우.
접힌 종아리와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고 근육이 팽팽하게 부푼다.
파아앙!
터질 듯이 부풀었던 종아리와 허벅지가 직선으로 뻗은 순간 말이 달리는 것보다 수배는 빠르게 쏘아져 나가는 진무의 속도에 먼지가 꼬리처럼 달려들어 뒤를 쫓는다.
“저…….”
먼지가 들어오건 말건 괴충은 입을 떡하니 벌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었지?
근데 뭘 하려…… 젠장, 뭐든 하시겠지.
심중 깊숙한 곳에서 우러났다기보다는 구타를 통해 만들어진 믿음과 신뢰가 그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속도를 올려라! 천주님을 뒤쫓는다. 뒤처지는 놈은 용서하지 않겠다!”
괴충이 놀란 가슴을 빠르게 진정시키고 말채찍을 쉼 없이 때리는 사이, 진무는 이미 토성의 근처에 다다르고 있었다.
꾸우웅! 슈아아아!
한 번에 뛰어넘기에는 먼 거리.
강하게 때려 밟은 발에 지면이 거칠게 울리고, 진무의 몸이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토성의 벽을 향해 날아갔다.
“적이다. 적이 토성을 넘으려 한다! 전력을 집중해 놈의 접근에 대비해라!”
악쓰듯 외치는 소리가 진무의 귓가에 뚜렷하게 들려올 정도의 거리.
넘기는?
쿠루루루.
양쪽으로 활짝 펼쳐지는 진무의 손에 각기 검은 기운이 응축되어 몰려들었다가 주먹만 한 구체를 생성한다.
날아가는 속도에 더해 곧게 뻗어 내는 양손을 따라 검은 구체가 토성을 향해 쏘아지며 묵룡의 형상을 이루고, 완성된 두 마리의 용이 이내 토성을 집어삼킨다.
묵룡혼원공 쌍룡투 뢰격.
콰르릉! 콰아아앙!
포악하게 날아간 묵룡이 토성에 거칠게 부딪히며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