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42
342화
“으아악!”
“크악!”
흙더미와 함께 솟구친 성벽의 무인들이 메뚜기 떼처럼 솟구치고, 자욱한 먼지가 호천지부를 가득하게 채웠다.
“이, 이런!”
적의 습격에 대비해 무인들을 이끌고 대기하던 호천지부장 이옥상이 휘몰아쳐 들어온 먼지바람에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적이 뛰어넘는다는 외침을 들었는데, 이건 뭐지?
화약? 대포?
토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무인이 군문의 것을 사용하다니. 망할 육동천 놈들이 미친 건가?
피윳!
매섭게 노려보는 이옥상의 시선에 자욱했던 먼지구름을 뚫고 들어온 무언가가 보였다.
흙먼지가 가득 내려앉은 검은 피풍의를 휘날리며 차지 않은 검을 검집째로 어깨에 걸친 약관의 사내, 진무.
“카악, 퉤! 젠장, 빌어먹을 먼지.”
“…….”
짜증이 팍팍 담긴 한마디와 함께 손으로 먼지를 툭툭 털어 낸 진무가 호천지부의 내부를 찬찬히 쓸어 보았다.
차자자작!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정신을 차린 호천지부의 무인들이 일제히 무기를 치켜세우고 진무를 향해 겨누었다.
두두두두.
뒤이어 토성이 무너진 틈으로 말발굽 소리와 함께 줄지어 들이닥치는 적들.
“성벽을 점거해라!”
아직 가라앉지 않은 먼지 속에서 육중한 체구를 드러낸 사내의 외침에 난입한 무인들이 성벽을 지키던 이들을 제압했고, 뒤이어 쏟아져 들어온 말 탄 무인들은 일사불란하게 좌우로 늘어서 포위망을 구축했다.
“젠장!”
이옥상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육동천, 망할 놈들.
사전에 이런 상황을 대비해 훈련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일진일퇴를 반복하며 치열하게 싸워도 모자랄 전투가 이렇게 순식간에 끝나 버릴 리가 없었다.
젠장, 하필이면 양천지부에 지원병력을 보내자마자 이런 일이 터진단 말인가?
“괴충! 물 가져와. 입에 먼지 들어갔다.”
“…….”
와중에 이름이 불린 덩치 큰 놈이 쿵쿵 소리를 내며 달려와 물주머니를 바친다.
그러게 왜 토성을 굳이 부수고 들어가셔서……. 별로 높지도 않구만.
하지만 속마음과는 달리 몸에 밴 듯한 극진한 예우.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옥상의 눈에 의아함이 어린다.
괴충이라면…… 육동천주 괴뢰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고 떠들고 다니는 그 망나니 아들놈이 분명한데?
“아그르르, 퉤!”
“…….”
“젠장, 오랜만이라 너무 무리했나……. 다음부터는 흙벽을 뚫고 들어오는 짓 따위는 하지 말아야지. 괜히 흙만 처먹었네.”
오랜만……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고, 뚫었다고? 대포가 아니었단 말인가?
이옥상의 얼굴에 다시금 놀라움이 서렸다.
저걸 사람이 뚫을 수 있는 거였나?
그런데 어째…… 상황이 묘하다. 무엇보다 서로가 칼을 세우고 대치한 급박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저 여유로움.
대체 저놈은 뭐지?
“어이, 지부장이 누구냐?”
“…….”
피풍을 펄럭거리며 먼지를 마저 털어 낸 진무가 객점 점소이라도 부르듯 시큰둥한 어조로 물었다.
“나다. 네놈은 누구냐?”
그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하마터면 ‘저요!’ 하고 손을 들어 답할 뻔한 이옥상이 흉흉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대답했다.
“나? 신임 육동천주 무진.”
“무, 무진?”
이옥상의 말에 진무가 친절하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렇군, 괴뢰를 쓰러뜨리고 육동천을 차지했다는 중원의 꼬마 놈이 바로 너로군.”
“꼬마? 눈 삐었냐?”
“…….”
“어쨌든 벌써 소문이 났다니 잘됐네. 내가 지금 쓸데없이 먼지를 뒤집어쓰는 바람에 기분이 상당히 찝찝하거든. 빨리 끝내고 씻게 대충 하고 무릎부터 꿇어 봐.”
껄렁거리는 진무의 태도에 이옥상의 눈동자에 서슬 퍼런 살기가 비쳤다.
“닥쳐라!”
“…….”
이옥상의 외침에 진무의 표정이 샐쭉해졌다.
기껏 기회를 줘도……. 버르장머리 없게스리…….
“이곳을 노리고 왔다면 우리가 관문을 공격받아 지원대를 보내는 모습을 보았을 터.”
“당연하지. 그걸 기다리고 있었는데.”
“비열한 중원 놈.”
“…….”
“관문을 공격당하는 것은 마교 전체의 문제이거늘! 육동천주가 되었다는 자가 돕지는 못할망정 공격을 해?”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고래고래 외치는 이옥상을 진무가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도와? 내가 왜?”
“뭐?”
“니들이 공격받았는데 내가 왜 돕냐고.”
“……그, 그건.”
“별 희한한 소리 하고 있네. 적의 약점을 공격하는 건 태곳적부터 내려온 기본 중의 기본 전략이라고.”
“이놈…… 같은 마교인으로서 어찌 그따위 말을!”
지랄, 한 입으로 두말하기는.
비열한 중원 놈이라며?
“잡설은 그만하고 무릎이나 꿇어. 이 마당에 싸워 봐야 애꿎은 수하들만 뒈질 테니까.”
한결같이 시건방진 진무의 태도에 이옥상의 눈 주위가 분노로 쉴 새 없이 경련했다.
그의 말대로 결과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토성이 뚫렸고, 경계 병력마저 제압당해 버렸다.
남은 것은 진무의 앞에 횡진을 이룬 무인 수십이 고작이었다.
“닥쳐라! 네놈에겐 이 호천지부가 그리 우스워 보이더냐?”
응, 우스워.
“뭐, 투항하지 않겠다는 말처럼 들리네?”
“당연하다. 나는 위대한 마교의 무인. 침략해 온 적에게 절대로 무릎을 꿇지 않는다!”
“…….”
그으래?
진무의 시선이 비장한 표정으로 결사항전을 다짐하는 이옥상을 넘어 횡진을 이루고 칼을 세운 호천지부의 무인들을 향했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동공. 잘게 떨리는 칼끝.
명백히 불안해하고 있음이다.
아무리 마교의 무인이라고는 하지만 승패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마당에 전의가 남아 있을 리가 없다.
“쯧쯧, 저러니 지부장이나 하고 있지. 주변 좀 봐라. 버틴다고 버틸 수 있는 상황이냐, 이게?”
“닥쳐라, 네…….”
“너나 닥쳐. 뭘 자꾸 닥치래?”
“…….”
“자고로 우두머리에 선 자는 많은 것을 생각하고 말을 뱉어야 하는 법이다. 네 말 한마디에 수하들의 목숨이 걸려 있어.”
“…….”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을 알고 적에게 돌진하는 것처럼 멍청한 짓은 없고.”
“닥쳐라. 우리 마교인은…….”
“니네 마교인은 그래서 안 되는 거야. 실력이 안 되면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승산도 없는 싸움에 목숨을 걸려고 하지. 마교의 긍지 어쩌고 하면서 말이야, 쯧쯧.”
“…….”
“너는 그렇다 치고,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들어야 하는 니 부하들은 어쩌라는 거냐?”
“뭐?”
“타인의 삶을 결정할 정도로 강하지도 못한 놈이 허세는.”
진무가 귀를 후비면서 찬찬히 한 발을 내딛자 거대한 공간이 통째로 밀려오는 듯한 착각이 느껴졌다.
“예전 같았으면 귀찮게 설득 같은 거 안 하고 그냥 모가지를 죄 뽑아 버렸을 거야.”
“…….”
“그런데 내가 역사와 전통을 가진 곳에서 도가 공부를 좀 했더니 무턱대고 사람 죽이는 게 좀 껄끄러워졌거든? 그러니까 딱 한 번만 더 물어봐 줄게.”
“…….”
“이쯤 하고 투항하면 모두 살려 준다.”
가공할 기세가 주는 압박감에 긴장감이 최고조로 달한 상황.
살려 준다는 진무의 한마디에 호천지부의 무인들 틈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동요하고 있는 것이다.
“머저리 같은 것들! 중원 놈의 궤변에 휘둘리다니! 빼앗긴 자의 끝이 어떤지 모르는 것이냐! 어서 칼을 똑바로 쥐어라!”
“…….”
“오냐, 네놈이 강하다는 것은 인정하지.”
이옥상이 안개처럼 스산하게 깔리는 진무의 기세를 떨쳐 내기 위해서 양손으로 검을 억세게 움켜쥐었다.
“하지만 피의 율법. 패배는 곧 죽음. 그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설사 네놈이 살려 준다 해도 호천지부를 빼앗긴 우리는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
“중원인인 네놈은 알 리가 없지. 투항은 죽음보다 더 큰 굴욕이다.”
이옥상의 결연한 말에 진무가 그를 지그시 바라본다.
지랄하고 있네.
세상에 뒈지는 것보다 더 큰 악재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머리가 나쁜 건가, 아니면 이해력이 떨어지는 건가. 도통 말이 안 통하는 새끼다.
“하아, 어쩔 수 없지. 대가리가 나쁘면 몸으로 이해시켜 줄 수밖에.”
자박.
두 번째 걸음.
꾸우우.
분명 가볍기 그지없는 걸음이었으나 그의 발이 닿을 때마다 대지가 지그시 눌려 파이고, 뭉글거리며 퍼지던 살기가 일시에 그 존재감을 뿌리며 공간을 집어삼킨다.
“양보는 여기까지야. 이제부터 설득은 없어. 내일 아침 해 보기 싫은 놈들은 계속 그렇게 고집부려 보든가.”
사기를 가득 머금고 섬뜩하게 희번덕거리는 진무의 눈동자를 본 호천지부의 무인들이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크으…….”
꼿꼿하게 버티던 이옥상마저도 긴장한 표정으로 한 걸음 물러나며 마른침을 삼켰다.
고작 두 걸음이었다.
그 짧은 순간에 계절이 바뀐 것만 같은 차가움이 살기와 함께 몰려들었다.
무거워진 공기가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유형화된 살기가 작은 생채기를 내며 그들의 주위를 배회한다.
그들에게 너무도 익숙했던 죽음의 냄새가 사방에 진동하고 있었다.
이, 이런 자가 중원인이라고?
저리도 어린 나이에 어찌 이 정도의 기세를 가질 수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절대 물러날 수 없는 일도 있는 법.
적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호천지부는 사동천의 관문이다.
마교인이 아닌 중원인 따위에게 자긍심을 버리고 무릎을 꿇을 수는 없었다.
“하아압!”
“……?”
죽음을 각오한 이옥상이 거친 기합성과 함께 마기를 한계치까지 끌어 올렸다.
츠츠츠.
시커먼 마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사방을 짓누르고 있던 진무의 기운을 밀어 내고, 제 영역을 확보한다.
호오, 요놈 보게?
진무의 입꼬리가 묘하게 말려 올라갔다.
전력을 다한 건 아니었다.
도사 된 자가 살인귀도 아닌데 덤비는 족족 죽여서야 쓰겠는가?
무엇보다 전부 투항시켜 앞으로의 전쟁을 위한 전력으로 삼을 작정인데, 여기서 죄 터트릴 수는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걸 이겨 냈어?
묵룡안까지 사용했는데?
와중에 놈의 마기에 힘을 얻은 호천지부의 무인들이 진무의 제압을 뿌리치고 눈알을 검게 물들이며 마기를 더한다.
살짝 기분이 언짢다.
손만 휘저어도 모가지가 날아갈 약한 놈들이 독기를 품고 목덜미를 물어뜯으려 하는 꼴이라니.
죽여 달라는데 안 죽여 줄 수도 없고……. 이런 난감할 데가 있나.
“차앗!”
“…….”
진무가 잠시 고민에 빠진 틈을 타 이옥상이 높이 솟구쳐 올랐다.
흠, 어쩐다.
대충 기세를 봤을 때 아마 제대로 한 방? 아니면 두 방? 그 정도면 충분할 놈이다.
웬만하면 죽이지 않으려고 했지만…….
“도, 동천주님!”
이옥상의 검이 머리통을 반으로 쪼개 버릴 듯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는데도 진무가 움직이지 않자 괴충이 다급히 경고성을 토하며 달려들었다.
그래, 살리자.
수장 놈을 죽였다가 아랫놈들마저 마교의 긍지 어쩌고 하면서 덤비면 어쩔 수 없이 다 때려죽여야 하니까.
아쉬운 놈이 우물 파야지 어쩌겠는가?
“쳇, 억세게 운이 좋은 하루라는 것만 알아라.”
히죽거리는 미소와 함께 진무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슈아악!
“베었……!”
마땅히 튀었어야 할 피도, 자르는 느낌도 없었다.
벤 것은 잔상? 그렇다면 놈은?
터억!
“……컥!”
빠르게 이옥상의 목을 움켜쥐는 손아귀.
피……했다고?
불신을 가득 머금고 부릅뜬 이옥상의 눈동자에 악귀 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진무의 얼굴이 비쳤다.
“아무리 그래도 우물을 맨손으로 팔 수야 있나.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의 체면이 있는데.”
“……!”
쩌어억!
진무를 바라보던 이옥상의 얼굴이 반대편으로 세차게 돌아갔다.
“크악!”
진무는 턱뼈가 으스러지는 충격을 느끼며 날아가던 이옥상의 발목을 잡아챘다.
어딜 가, 이 새끼야.
“…….”
이옥상을 거꾸로 잡아든 진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호천지부의 무인들을 스산하게 노려보았다.
“자, 삽자루도 쥐었겠다, 어디 파 볼까.”
후아악!
쩌억! 퍼억! 콰직!
사방을 울리는 잔혹한 타격음에 괴충과 육동천의 무인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파기…… 아니, 패기 시작했다.
이옥상을 들고, 미친 듯이 휘두르며.
“크핫핫핫!”
이곳저곳에 모습을 드러내는 진무가 광소를 터트리며 파고…… 아니 패고 있다.
사방에서 대가리가 터져 나가고 팔다리가 부러지는 소리가 난무한다.
물론 가장 큰 충격이야 진무의 손에 삽이 된 이옥상의 몫이지만, 그 잔인한 모습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에 피아의 구분 따위는 없었다.
반항하지 말아야지.
절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