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43
343화
호천지부의 전투가 끝났다.
진무 혼자 토성을 부수고 뛰어들어서, 혼자 호천지부를 점령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부상 삼십육 명.
사경을 헤매는 환자 이십팔 명.
특이 사항. 이옥상.
온몸의 뼈가 부서짐. 회복 기간 육 개월…… 혹은 이상.
진무가 이룬 전투의 성과였다.
저항은 없었다.
진무의 삽질…… 아니, 기묘하리만치 잔인한 구타를 목도한 무인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투항했으니까.
어쨌든 전투는 끝났고, 호천지부의 대전각에서는 다음 전투를 위한 계획이 한창이었다.
사동천에 대한 황신의 대략적인 설명이 끝나고, 세부적인 계획을 세우기 위해 일환과 각출이 머릴 맞대었다.
“천주님, 이오현의 관문을 계속해서 압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
“자칫, 전투가 벌어지게 되면 천웅방이 큰 피해를 입게 될지도 모릅니다.”
각출의 말에 진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후가 없다고 해도 천웅방은 일개 동천이 어찌해 볼 만큼 약하지 않아.”
진무의 말에 일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오현은 그렇다 쳐도 남은 현천지부의 본진은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그렇겠지.”
진무가 눈살을 찌푸린다.
사동천주의 반응이 예상보다 빨랐다.
미리 뿌려 둔 첩자들과 천웅방에서 날아온 소식.
호천지부가 육동천에 점령당한 순간 사동천주는 이오현의 관문을 지원하기 위해 보냈던 무인들을 재빨리 복귀시켰다.
천웅방이 아무리 무모하게 관문을 압박해 왔다 해도 마교의 영역으로 함부로 들어오지 않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즉, 호천지부를 공격한 육동천에 비중을 뒀다는 뜻.
처음 진무가 세운 계획은 두 가지였다.
이오현의 관문을 압박하고 병력이 빠져나간 호천지부를 점령하는 것이 첫 번째.
화가 난 사동천주가 양쪽으로 본진의 전력을 분산시키면 재빨리 우회해서 적의 심장부를 노리는 것이 두 번째다.
하지만 눈치가 빠른 것인지, 아니면 차분한 성격인지 사동천주는 움직이지 않았고, 되레 방어막을 견고하게 만들었다.
이대로 뚫고 들어가서 사동천주를 잡기에는 피해가 막심할 터다.
본진에 남은 무인의 수가 일천을 넘는다고 했던가?
사동천을 정벌하기 위해 출진한 무인의 수는 고작해야 수백. 몇몇 고수의 힘으로 메꿀 수 있는 전력이 아니었다.
버티며 추이를 지켜보는 것을 택했으니 진무가 세운 무주공산에 빈집 털이 전략은 절반의 성공으로 끝나 버린 것이다.
자, 이제 어떻게 한다?
“일환.”
“예.”
“사동천주 능서현은 어떤 인물이지?”
일단은 상대를 먼저 알아야겠다.
자고로 손자라는 양반이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그렇게 주장하지 않았던가.
“능서현은…….”
진무의 물음에 일환이 설명을 시작했다.
귀영마수(鬼影魔手) 능서현.
여인들이 종종 택하는 환영술이나 미혹공이 아닌, 금나수 하나로 사내들과 경쟁해 당당히 사동천주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마교 서열 십이 위이자 십이동천주들의 무위를 논할 때 항상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자로, 그 성정 또한 몹시 잔인하고 포악하기로 알려져 있었다.
특히나 그녀의 휘하에 있는 귀영십비(鬼影十秘)는 아직 정확한 모습을 본 자가 없을 만큼 신출귀몰하다고 했다.
“……그것은 귀영십비를 본 자가 다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십이동천 내에서도 손꼽히는 고수입니다. 저와 비슷하거나 약간 아래로, 서열 백 위권 내에 위치한.”
“잠깐만, 근데 니들은 왜 그렇게 서열에 집착하는 거냐? 애들도 아니고.”
항상 궁금했다. 뭔 줄 세우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아, 그건 강자존의 율법 때문입니다.”
“강자존?”
“예. 마교는 철저히 교주님을 중심으로 일원화된 체계입니다. 서열은 그 강함의 척도이며, 그에 따라 직급이 결정되는 것이죠.”
“그럼 서열이 올라가면 직급도 올라가냐?”
“예. 그래야만 통제가 되니까요. 누가 자신보다 약한 무인에게 충성을 바치겠습니까?”
서열 십 위까지의 무인.
정사에 진정한 강의 경지를 이룬 무인으로 알려진 마도육제가 그곳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럼 일곱 명뿐이잖아?”
“일곱 명이요? 아, 교주님은 애초에 서열 따위에 포함될 분이 아니시지요.”
“그래? 그럼 마도육제를 제외하고 나머지 넷은 누구야?”
“그분들은 조금 특별하게 서열이 올라가신 분들입니다.”
“특별?”
“예. 대장로, 총군사, 원로원주, 염왕대주. 그 넷은 교주님의 지목에 의해서 무공의 경지와 상관없이 서열이 결정된 분들이지요.”
“이랬다가 저랬다가…… 척도가 무슨 그따위야? 순전 교주 마음이구만.”
“십 위까지만 그렇습니다. 그 이하로는 일 년에 두 번씩 열리는 서열전으로 결정되지요.”
“무투대회라도 열린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별…….
하긴 뭐, 중원에서도 무공의 우열을 가리기 위한 비무대회가 열리는 건 비일비재하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비무대회를 통해서 서열을 결정짓고 그게 곧 직급이 되다니.
참, 마교답다.
어쨌든 십 위 이후로는 십이동천주로 이어지고, 그 이하의 서열은 대부분 천산 소속이란 이야기다.
“근데 모두가 성강의 경지를 넘었다고?”
“예.”
그건 몰랐던 사실이었다.
성강의 경지야 따지자면 강의 경지라고 하기는 좀 애매하지만, 어쨌거나 강의 고수가 대충 스물을 넘는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중원 전체를 통틀어 스물을 넘지 않는다고 알려진 강의 고수가 널리고 깔렸다는 이야기다.
확실히 마교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그만한 고수들을 데리고 곤륜이 지키는 청해를 넘지 못했다니.
북리도천, 부러운 놈.
자신은 평생에 걸쳐서 겨우 다섯 놈 쓸 만하게 키워 냈는데.
만약 자신이 그 정도 전력을 가진 마교의 교주였다면 진작에 중원을 정벌해 버렸을 텐데.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마교가 약한 것이 아닙니다. 십이동천주는 언제나 서로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경쟁했고, 천산의 고수들은 교주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으니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이유도, 여유도 없었지요.”
“흠…….”
“하지만 그마저도 교주님께서 정벌을 결심하시면 끝날 문제입니다. 아마 사황, 그자가 있지 않았다면 중원은 진작에 현 교주님께 무너졌을 것입니다.”
“…….”
일환이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맺었다.
그래. 니들 참 잘났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중원 놈들에게 절을 받아도 모자랄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마도천하가 되지 않은 것이 오로지 자신의 공인데, 연일 손가락질하면서 간악하니 뭐니 씨불이지 않았던가?
망할 놈들 같으니. 엿이나 먹어라.
“뭐 어쨌든 말이 옆으로 좀 샜네. 내가 궁금한 건 잘 못 참아서.”
“…….”
“어쨌든 요약하자면 능서현이 꽤 뛰어나다는 건 알겠어.”
“그렇습니다. 동천주들 사이에서도 손에 꼽히는 그녀를 쓰러뜨린다면 다른 동천에서 먼저 연락을 취해 올 가능성이 큽니다.”
“흐음, 그럼 어떻게 불러내는가 하는 거군.”
칠동천과 육동천을 손에 넣은 것은 무척이나 수월했다.
때마침 괴충이 등장해 줬으니까.
하지만 사동천이라면 상황이 조금 다르다.
호천지부를 잃고도 흥분하지 않을 정도로 수양이 잘된 그녀라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길 자신은 있는데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문제.
망할, 사패천 전투 때도 똑같은 제약이 있더니…….
어떻게 한다?
어찌하면 사동천 본진의 전력을 빼내고 능서현과 맞붙을 수 있을까?
머리가 복잡해지기만 할 뿐, 확실한 무언가가 떠오르지 않는다.
비열함과 잔머리로 달통한 진무라고 해도 전략을 세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의 전략은 어디까지나 질러서 되면 다행이고 아니면 모조리 때려 부순다를 기초로 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적생을 잠깐 부를까?
상황에 환경, 심지어 바람까지 이용하는 신출귀몰한 그놈이라면 며칠 안에 필승의 전략을 떠올릴지도 모르는데.
진무가 전략을 논의하고 있는 수뇌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마령대주 일환, 개방 거지 각출, 하오문 은위단 황신, 덩어리 괴충.
무력이야 차고 넘치는 녀석들이지만…… 이런 부분에선 아무래도 한참 떨어진다.
“후우, 일단 좀 쉬자. 머리가 복잡하니 생각도 잘 안 떠오른다.”
“알겠습니다. 물러가겠습니다.”
일환과 괴충이 물러나고 황신과 각출은 대전각에 남아 진무의 곁에서 조용히 각자의 휴식을 취했다.
의자에 몸을 깊이 파묻고 생각을 정리하던 그때.
휘이잉.
열린 창문으로 상쾌한 찬 바람이 불어온다.
숨을 한껏 들이켜니 폐 안에 찬기가 들고 머리가 조금 맑아지는 것 같았다.
그래, 일단은 머리를 비우자.
“각출아.”
“……!”
휘이……?
진무가 이름을 부르자 매섭게 눈을 치켜뜬 각출이 본능적으로 청죽봉을 움켜쥐고 뛰어나……가려다 고개를 돌린다.
“……너 뭐 하냐?”
“아, 습관적으로 그만.”
“…….”
하여간 제정신인 놈이 없다.
“가서 괜찮은 객점 하나 찾아서 불러라. 머리가 복잡해서 안 되겠다.”
“알겠습니다. 자리를 잡고 나서 뫼시러…… 아!”
각출이 황신을 힐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숙이고 뛰어나갔다.
호천지부 어디에서 불러도 들을 수 있는 황신이 있으니 굳이 모시러 올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각출이 나가고 난 뒤 진무가 겉옷을 챙겨 입자 황신이 일휘를 품 안에 들고 뒤를 따랐다.
자고로 머리를 비우는 데는 술이 최고다. 복잡함을 술과 함께 삼켜 버리면 분명 좋은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 * *
“천주님.”
대전각을 나온 진무를 향해 귀를 쫑긋거리던 황신이 한 곳을 가리켰다.
각출이 객점을 찾은 모양이다.
그래, 오늘은 진탕 마셔 보자. 어쨌거나 좋은 날 아닌가?
이 정도면 호천지부에 한해서는 완벽한 승리요, 무혈입성이었다.
자축이 아니라 잔치를 해도 모자랄 판이다.
흐뭇한 표정으로 걷던 진무의 눈길이 문득 황신에게 가 닿았다.
그런데 이놈은 왜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지?
기껏 좋은 기분에 술을 사 주려 했더니 기분 잡치게시리.
“천주님.”
“……응?”
뒤통수를 한 대 후갈기려 손을 들어 올렸다가 황신이 고개를 홱 돌리는 바람에 진무가 머쓱하게 웃었다.
“잠시 가 보셔야겠습니다.”
“……?”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황신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진다.
진무를 대할 때면 늘 헤실거리던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심각한 표정에 진무가 슬며시 손을 내려놓았다.
이 귀 밝은 놈이 허투루 저런 표정을 지을 리도 없고…….
“어, 그래.”
진무가 속으로 약간 민망해하며 대답하자 고개를 끄덕인 황신이 관도의 외곽을 향해 빠르게 걸었다.
맨날 앞서 걷다가 뒤를 따라가려 하니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이 새끼가 어디까지 가는 거야?
“야! 황신, 어디까지……?”
관도가 끝나는 막다른 골목, 민가로 접어드는 곳에서 들리기 시작한 고함과 비명.
무슨 소리지? 설마 사동천?
아니, 아닐 것이다.
점령이 끝난 후에 무인들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호천지부의 외곽을 감시하게 했다.
사동천이 쳐들어왔다면 비상종부터 울렸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이 소란은 대체?
얼굴을 찡그린 진무가 황신을 제치고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빠르게 달렸다.
얼마 가지 않아 도착한 곳은 호천지부 외곽의 작은 마을.
칼을 든 자들의 복색을 보니 육동천의 하급 무인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겁에 질린 민초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근데 어째 상황이 이상하다.
사방에 어지럽게 널린 집기와 깨어진 장독의 잔해.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더럽혀진 이불과 옷가지들.
“아이구 무사님, 저희가 먹을 곡식도 없습니다요.”
“…….”
바짓단을 부여잡으며 애원하는 촌로를 싸늘하게 내려다보는 무인.
퍼억!
“아이구구.”
매몰찬 발길질에 노인이 나동그라지며 신음을 흘리고, 그의 아들인 듯한 사내가 노인을 부축하며 겁먹은 눈초리로 무인들을 바라보았다.
“감히 우리의 행사를 막아? 아주 죽고 싶어 환장했구만.”
“그러게 말이야.”
“더 볼 것 없어. 그냥 죽여 버리자.”
무인들이 시시덕거리는 표정으로 저마다 한마디씩을 내뱉고 시퍼렇게 날 선 칼을 꺼내 든다.
“사, 살려 주십시오. 곡식이든 물건이든 죄다 가져가시고 목숨만은 제발…….”
무인들의 위협에 민초들이 바닥에 고개를 조아리며 사정을 하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어째서 육동천의 하급 무인들이 호천지부의 민가를 약탈하는 모양새인 거지?
파학!
진무가 눈을 찌푸리자 눈치 빠른 황신이 재빨리 몸을 날렸다.
“……?”
양손에 비수와 송곳을 나누어 든 황신이 매섭게 눈을 치켜뜨고 무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건 또 뭐야?”
“…….”
“네놈, 호천지부의 잔당이냐?”
하급 무인들이 항상 진무의 곁에 붙어 있는 황신을 본 적이 있을 리가 없다.
당연히 못 알아볼 수밖에.
“잘됐군. 안 그래도 동천주님이 직접 호천지부를 무너뜨리셔서 공적을 하나도 못 쌓았는데, 네놈의 목을 잘라서 동천주님께 바쳐야겠다.”
“…….”
서슬 퍼런 기세로 포위해 오는 모습에 황신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병신들, 그 동천주님 니들 뒤에 계시거든?
그리고 니들 큰 실수한 거야. 저 괴물 앞에서 민가를 습격하다니.
복창해라, 엿 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