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45
345화
“이런 쌍!”
각출이 성을 내며 호천지부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안 왔다.
뜬눈으로 꼬박 새웠는데도.
“시펄, 이건 해도 너무하잖아!”
한껏 투덜거리지만 차마 ‘주어’를 넣을 수는 없었고, 투덜거리는 목소리는 개미 소리인가 싶을 만큼 작았다.
옛말에 이르길 낮말은 새가 듣고…… 멀리 떨어진 욕설은 황신이 듣는다.
괜히 대상을 정확히 지목했다가 처맞을 수 있는 일이니 홀로 중얼거릴 수밖에.
그런데 호천지부 근처 분위기가 조금 묘하다.
웬 사람들이 저렇게 몰려 있지? 하나같이 겁에 질린 표정에…….
응? 무릎을 꿇고 있네?
그리고 저 사람은 황신 형님?
각출이 사람들 너머로 보이는 풍경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릎을 꿇고 있는 열 명의 무인들의 복색을 보아하니 분명 육동천 소속인데.
그 앞에는 황신이 흉흉한 눈빛으로 망나니처럼 칼을 들고 있었다.
원래 송곳이나 쓰던 양반이 어울리지도 않게.
근데 어디서 많이 보던 느낌…….
“푸우!”
칼에 물까지 뿌리고 춤까지 추는…… 처형식?
뭐 하는 거지? 이참에 직업을 망나니로 바꾸었나?
각출이 사람들 틈을 비집고 다가서려는데 별안간 황신이 손에 쥔 칼을 세차게 휘둘렀다.
“에구머니!”
“저런!”
곳곳에서 비명을 토하며 눈을 가리는 사람들.
“……육동천주라는 분이 참 대단하시구만.”
“암, 소문에 육동천에서도 대단했던 모양이야.”
“살기가 좋아졌다지?”
“그럼. 수탈이라고는 아예 없어졌다지 않는가?”
“허! 참으로 요상한 일일세그려.”
“차라리 잘된 거야. 저런 양반이 주인이면 이제 우리도 눈치 좀 덜 보고 살지 않겠나?”
“암만, 그 척박한 육동천이 중원과 교역을 하면서 돈을 물처럼 쓴다지 않아.”
“좋구먼, 좋아. 이참에 우리도 저분 덕에 잘살게 되었으면 좋겠어.”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속삭임에 각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람들이 진무를 칭송하는 것은 좋은데…… 대체 간밤에 뭔 일이 있었던 거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해할 수가 없다.
각출은 조금 전까지 가득했던 불만을 떨치고 서둘러 황신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황신 형님!”
“…….”
가까이 다가온 각출의 부름에 습관처럼 칼에 묻은 피를 혓바닥으로 핥던 황신이 매섭게 눈을 치떴다.
“이런 빌어먹을 자식이! 넌 밤새도록 어딜 쏘다니다가 이제 나타난 거야? 모가지를 잘라 버릴까 보다.”
“……?”
“그리고 오는 길에 욕을 해?”
드, 들었냐?
기껏 주어까지 생략했는데…….
“너 이따 두고 보자.”
“…….”
제기랄, 망할 귀 밝은 형님 새끼.
아니, 근데 이거 너무한 거 아냐?
니들이 객점에 자리 잡으랬잖아. 밤새도록 기다렸다고, 밤새도록!
하지만 두고 보자는 황신의 저 잔인한 말을 들은 뒤라 꿍얼거릴 수도 없었다.
억울해도 참는 수밖에.
“모두 들어라!”
각출이 속으로 쉴 새 없이 투덜거리는 와중에 황신이 처형을 끝내자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일환이 큰소리로 외쳤다.
“동천주님께서는 민가를 약탈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앞으로 이를 어기는 자는 엄중하게 다스릴 것이며, 혹여 피해를 입는 자가 있다면 그 즉시 고하라!”
일환의 선언에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살핀다.
하지만 함성만 없을 뿐이지 그들의 표정에는 이전에 없던 환호가 물씬 느껴졌다.
* * *
육동천 호천지부에서의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민가에 행해지던 약탈은 즉시로 근절되었다.
오랜 관습처럼 이어져 왔던 수탈이었으나 신임 동천주가 하지 말라고 엄포까지 놓았는데 몰래 할 간 큰 자는 없었다.
본보기로 행해진 처형식 때문이 아니었다.
육동천 무인들의 마음속에 변화를 만들어 내는 진무에 대한 신뢰와 충성심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호천지부의 관도는 점차 활기 넘치게 변해 가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그동안 무인들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걷혔고, 더러는 반갑게 인사까지 해 왔다.
그 살가운 반응이 영 익숙지 않았는지 무인들은 어색하게 손만 까닥여 답하곤 급히 자리를 벗어나기 일쑤였지만, 그러면서도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것이 아주 싫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보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 * *
“타압!”
팡! 파파팡!
황신을 향해 손을 뿌려 내는 우양진의 기세가 제법 매섭다.
아직 충기(充氣)까지도 안 되는 미약한 실력이지만 뻗은 손끝의 공기를 터트릴 줄 안다.
“후우…….”
후원 연무장에서 턱을 괴고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진무가 문득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내 새끼가 잘 크고 있는 건 좋은데, 염병할 사동천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차라리 화를 내며 싸우러 오면 좋으련만 거북이처럼 등껍질에 숨어서 버티기만 하지, 이오현의 관문은 여전히 천웅방과 팽팽하게 대치하는 중이고…….
빨리 해결을 해야 하는데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턱을 괸 채 술을 홀짝이며 고민하던 진무가 우양진을 수련시키고 있는 황신을 불렀다.
“황신.”
“예!”
“…….”
간결하고 힘이 담긴 대답과 함께 황신이 섬전처럼 달려왔다.
“적생에게 서신 좀 보내라.”
“총사에게요?”
“그래.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고 사동천을 무너뜨릴 대책을 내놓으라고 해.”
“…….”
진무의 심드렁한 말에 황신이 눈을 끔벅거렸다.
그런 표정 짓지 마라. 나도 안다.
오죽 답답하면 내가 이역만리 떨어진 적생에게 도움을 청하겠냐?
“어쨌든 보내. 뭐라도 찾아 주겠지.”
“……알겠습니다.”
황신의 대답을 들은 진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양진아.”
“예, 사부님.”
“오늘 수련은 이만하고 산책이라도 가자.”
“예.”
우양진은 한 점 의문도 품지 않은 채 곧장 진무를 뒤따랐다.
언제나와 똑같은 모습.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힘들어도 참고, 성취를 이루어도 티 나게 기뻐하지 않는다. 그저 진무의 말이라면 묵묵하게 따르기만 한다.
진무가 직접 제자로 삼았으니만큼 마교의 논리로 따지자면 지금 진무의 곁에 있는 이들 중 가장 서열이 높다고 봐도 무방한데, 거만해지기는커녕 되레 그들을 존중하고 주의 깊게 들으며 항시 배우려 했다.
실수라고는 좀처럼 저지르지 않는 데다 기본적으로 일체의 반발이 없으니 때려 가르치는 맛도 없다.
너무 올곧기만 하면 재미가 없는데 말이지…….
녀석을 보고 있자면 타락시켜 보고 싶은 충동이 절로 든다.
좋아. 안 그래도 답답했는데, 이 기회에 술이나 진탕 먹여 봐야겠다.
“가자.”
“예.”
관도로 나선 두 사람에게 사람들이 하나둘 반갑게 말을 걸어 왔다.
“아이구 동천주님 아니십니까? 이것 좀 드셔 보십시오. 저희 집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비전으로 만든 전병입니다.”
“…….”
“저희는 만두.”
“당과.”
“노리개.”
“…….”
조금 걸었을 뿐인데 이놈 저놈 어찌나 반가워하는지 벌써 품 안에 한가득이다.
뭘 이런 걸 다. 공짜로 주니 좋긴 하다만.
“이걸 한번 입어 보십시오.”
“저런, 피풍의가 낡으셨네요.”
그만해. 이젠 더 이상 들 수도 없어.
젠장, 다들 왜 이렇게까지 친한 척이야? 귀찮게.
버젓이 객점을 잡고 술을 마시려는 계획은 변경해야겠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걸음을 옮기는 진무의 시선이 길 가장자리에서 비럭질을 하는 남자에게 가 닿았다.
정말이지 거지는 어느 곳에든 있구나.
침투력 좋은 새끼들 같…… 아니다, 개방 소속은 아닐 테니까.
그래, 이거 너 다 가져라.
진무는 품에 받았던 물건들 중 안주로 먹을 음식 몇 개를 제외하고 걸인에게 던져 주었다.
“양진!”
“……!”
답도 하기 전에 진무가 양진의 뒷덜미를 잡고 담벼락을 밟으며 몸을 솟구쳤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모습에 물건을 바치려 다가오던 이들이 아쉬운 얼굴을 했다.
“불쌍한 사람을 도우셨어.”
“역시, 동천주님은 천인이야. 천인. 하늘이 내린 분이라니까.”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진무에 대한 우호적인 소문과 칭송은 이제 신격화에 가깝게 부풀려져 있었다.
사람들을 뒤로한 진무는 우양진을 품에 끼고는 관도와 조금 떨어진 곳의 지붕 위에 자리를 잡았다.
음, 그런데 안주는 있는데 술이 없다.
술도가에 가서 사 오기는 귀찮고, 우양진을 보내자니 아직 지붕 위로 뛰어다닐 실력은 안 되고.
“양진아.”
“예, 사부님.”
“황신에게 술 몇 병 사 오라고 해라.”
진무의 말에 우양진이 처음으로 당황스러운 얼굴을 했다.
“……지금요?”
“그래.”
“……어떻게요?”
“그냥 대충 소리 질러.”
“…….”
뭔 개소린가 싶었지만 우양진은 늘 그랬듯 시키는 대로 두 손을 모아 입에 대고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화앙시인 니임! 수울 가져오세에요!”
“…….”
그, 아직 황신의 능력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건가?
저렇게까지 고래고래 외칠 필요는 없는데. 괜히 사람들 시선만 집중되게시리.
저 봐라. 니 목소리 듣고 우릴 발견한 저놈들이 또 귀찮게 이것저것 들고 모이잖냐.
“아오, 젠장.”
기어이 다른 지붕으로 옮긴 둘의 앞에 술병을 든 황신이 휙 나타났다.
“대단하시네요.”
“……?”
진무의 잔을 채운 우양진이 황신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소곤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무는 호천지부의 전경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일상.
중원 사람들은 괴물이라도 사는 것처럼 생각하겠지만, 이곳 역시 사람 사는 곳일 뿐이다.
그러다 문득 멀리 소란스러움이 밀려오는 곳에 눈길을 주었다.
“허허, 요즘 애들도 전쟁놀이를 하는구나.”
“…….”
“오호? 전략도 있어?”
“그러네요. 어딜 가나 애들 노는 건 똑같네요.”
우양진 역시 자신이 살던 곳에서 해 본 적이 있는 것인지 흐뭇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호오? 이것 봐라?
열 살 언저리 애들이 놀이로 하는 전쟁이 보다 보니 과하게 체계적이다.
마치 무림의 세력전을 방불케 하는 모습.
조잡하긴 했으나 전략과 전술이 있었고, 치고 빠지는 순서까지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양측의 대장 격인 아이들이 앞으로 나와 무언가 심각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무언가 문제라도 일어난 건가?
“황신.”
“예?”
“뭐라고 하고 있냐?”
“…….”
진무의 말에 황신이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하다 하다 전쟁놀이하는 애들 소리에까지 귀를 기울이라니.
망할 개천주 같으니. 사람을 뭘로 보고.
하지만 싫다고 했다가 맞으면 본인만 손해가 아니던가?
귀를 쫑긋거리는 황신이 덩치 큰 아이의 말부터 흉내 내며 연기를 시작했다.
“야! 왜 니가 대장이야? 너 며칠 전에는 서열이 웅산이 밑이었잖아!”
“하도 지 혼자 다 해 처먹길래 바꿨다.”
“그런 게 어디 있어?”
“놀고 있네. 넌 서열전도 모르냐?”
“뭐?”
“어제 서열전 신청해서 내가 이겼다.”
“야! 그건 아니지!”
“뭐가?”
“서열전을 하려면 윗말 큰 대장의 허락이 있어야 하잖아.”
“놀고 있네.”
“뭐어?”
“넌 무진 님 이야기도 못 들었냐?”
“…….”
“귀 좀 열고 살아라. 홀로 육동천에 나타나서 서열 정리 싹 하시고, 이제 사동천을 손에 넣으실 거라잖아.”
“무진 님이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큰 대장한테 허락받지 못한 이상 난 너를 인정할 수 없어!”
“병신, 그건 니 생각이지. 이젠 내가 기준이야.”
“…….”
“나는 무진 님이랑 똑같이 할 거야. 이참에 큰 대장까지 쓰러뜨릴 거니까 허락 같은 건 안 받아도 돼.”
“이 쪼그만 새끼가 진짜.”
“이 새끼고 저 새끼고, 전쟁이 잘 안 풀리니까 괜히 트집 잡지 마.”
“야! 이건 트집이 아니라…… 라고 하네요.”
황신의 전달이 끝났을 때, 진무의 눈은 찢어질 듯이 커져 있었다.
그러다 이내 깨달음을 얻은 노승처럼 기쁘게 활짝 웃는 진무.
하! 이런 염병.
왜 저 생각을 못 했지?
별안간 진무가 벌떡 일어나자 황신이 흠칫 놀라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혹시 자신의 연기에 무슨 문제라도?
“크크크, 으하하핫! 이런 쉬운 방법을 생각하지 못하다니.”
“……?”
갑자기 광소를 터트리는 진무의 반응에 황신과 우양진이 서로 고개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신!”
“예.”
“서신을 또 보내야겠다.”
“……?”
“천웅방에는 그만 물러나라고 하고, 괴뢰와 소동보에게는 이만 돌아와서 본대와 합류하라고 해.”
“예? 그게 무슨?”
“그리고, 수뇌부를 전부 모아라. 지금부터 사동천과 일전을 시작한다.”
“……?”
대체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이 음흉한 천주가 또 뭘 꾸며서 자신들을 힘들게 할 생각이지?
“알겠습니다.”
좌우지간 일단은 대답하고 본다.
뭘 하든…… 힘들 건 당연하니까.
“청각도 청각이지만 연기력이 대단하시네요. 경극 보는 줄 알았습니다, 하하.”
“…….”
우양진의 말에 황신의 얼굴이 살풋 일그러졌다.
좋냐? 재밌어? 이런 씨알이 반만 한 새끼가 제자라고 대우해 줬더니 사람 약을 올려도 유분수지. 뭐? 연기력이 대단해? 제대로 여물지도 못한 저 빌어먹을 옥수수 싸그리 함 털어 줘야……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기쁨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깨닫게 해 줘야 저게…….
하지만 언제나처럼 진무가 함께 있는 상황이라 그 말은 전음으로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우양진의 어깨를 잡으며 어색하게 웃을 뿐.
“아이구, 제자님. 칭찬 금스흡니다. 승그스럽네요.”
“…….”
우양진은 어깨를 잡은 황신의 손길에서 억눌린 듯한 살기를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양반이 왜 이러지?
혹시 칭찬을 싫어하는 성격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