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48
348화
애써 분을 가라앉힌 능서현과 동천주를 바라보던 진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들었지? 나는 권좌에 앉을 생각이다.”
“…….”
약간의 놀람.
이미 듣기야 했지만 막상 눈앞에서 들으니 더 위험천만한 말이었다.
“기회를 주마.”
“……무슨 기회를 말하는 거지?”
“내 옆에서 천산의 꼭대기까지 올라가 볼 기회.”
“…….”
진무의 말에 잔뜩 긴장했던 능서현과 동천주들의 표정에 조소가 번졌다.
“미친 소리를 하는군.”
“뭐가?”
“네놈 같은 철없는 애송이가 교주님과 맞붙어 싸우겠다고?”
“…….”
“육동천 하나 손에 넣었다고 겁대가리를 상실한 것이냐? 아니면 원래부터 생각이라는 것이 없는가?”
“…….”
각이 선명하게 진 얼굴에 제법 묵직한 체구의 중년 사내.
“이름은?”
“뭐?”
“니 이름 말이야.”
“이 애송이 자식이,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말끝마다 반말지거리를!”
사내가 눈을 세모로 뜨고 진무를 향해 분노를 드러냈다.
알면 묻겠냐, 이 꽁지에 불붙은 돼지 새끼처럼 꽥꽥대는 자식아?
그리고 반말할 만하니까 하는 거야. 내 반 토막 정도밖에 안 살아 본 놈이 어디서 예의를 따지고 지랄이야?
“그는 삼동천주 나관수다.”
대답은 그의 옆에 있던 인물에게서 들려왔다.
나관수와는 달리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
진무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옆구리에 찬 칼처럼 예리한 인상을 가진 사내가 있었다.
“내 소개부터 하지. 귀영마수 능서현은 알 테고, 나는 일동천주 금마영이다.”
“…….”
“이 친구들은 오동천주 뇌공, 십일동천주 석중하라고 하지.”
그의 차분한 설명에 진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그래도 말이 통하는 놈이 하나는 있어서.
어쨌든 일동천, 삼동천, 사동천, 오동천과 십일동천까지.
총 다섯 곳, 십이동천과 이동천을 제외한 북부 지역의 주인들이 모조리 모였다.
아니, 내가 칠동천과 육동천의 주인이니 십이동천 중 일곱 곳의 주인이 모인 셈인가? 좋아. 과반수는 채웠고.
“그대는 우리에게 기회를 준다고 했다.”
“맞아.”
“하나 묻고 싶군.”
“……?”
“자네가 우리를 포섭하려는 생각인 것은 알겠다. 그 세를 이용해 권좌에 도전하려는 것이겠지.”
“포섭?”
그 말을 들은 진무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그저 일일이 찾아다니기 귀찮아서였다.
그리고 진무는 그리 멍청한 사람이 아니다.
현재 자신의 무위를 잘 알고 있기에 적을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동천주들은 모두가 성강의 고수.
함강과 성강의 차이를 고려했을 때 넷은 비슷하고, 다섯은 약간 무리, 여섯부터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렇기에 약간의 무리를 감수하고 능서현까지 다섯이 되기를 기다린 것이다.
“계속해 봐.”
“사람을 품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자네가 우리 개개인보다 강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우리 모두를 품기에는 아직 그릇이 작아 보이는군.”
“…….”
진무는 금마영의 말을 묵묵히 들으며 침묵을 지켰다.
“그대는 아직 젊다. 지금의 나이에 그만한 무위를 얻은 그대가 괜한 혈기에 휩쓸려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 권좌라는 자리는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그만 돌아가라. 후에 그만한 그릇을 갖추고 난 뒤에…….”
“큭큭.”
가만히 듣던 진무가 갑자기 낮게 웃음을 터트리자 금마영이 눈을 찌푸렸다.
“내 참, 대가리 좀 찬 놈 같아서 뭔 소리를 지껄이나 들어 보려 했더니, 겨우 시답잖은 그릇 타령이야?”
“……뭐?”
“권좌가 만만하지 않다고? 너한텐 그렇겠지. 고작 동천주에 만족해서 주저앉은 놈이니까.”
“뭐라?”
“틀렸어? 실력이 달려서 천산에 앉아 보지도 못하고 동천이나 다스리는 거 아냐?”
“이, 이놈이?”
“그리고 큰 그릇? 모두를 품어?”
“…….”
“지랄하고 있네.”
금마영의 눈빛이 매서워졌음에도 진무는 개의치 않고 말을 계속했다.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그릇이 작으면 윗자리에 앉을 생각 따위는 가지면 안 되는 거냐?”
“…….”
“아니면 마냥 기다려야 해? 그릇이 커질 때까지?”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지?”
“이봐, 너는 네 그릇의 크기를 알아?”
“…….”
“자신이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를 아는 사람은 없어. 남들이 그냥 그렇게 표현하는 거야. 그래서 경쟁하듯이 뭔가를 자꾸 욱여넣으려 한단 말이야, 사람이든 세력이든. 그래야 커 보일 테니까.”
“…….”
“잘 들어. 윗자리에 선다는 건 애초에 가진 그릇의 크기와는 상관없어. 얼마나 요령껏 잘 나누어 담는가 하는 거지. 능력이 부족하면 능력 되는 놈을 앉혀 놓으면 되고, 한구석에서 물이 좀 샌다 싶으면 깨 버리고 다른 그릇으로 바꾸면 되는 거야. 그게 윗사람이 할 일이다.”
진무의 말에 금마영의 얼굴이 은은하게 달아올랐다.
“난 그릇이 작지. 밴댕이처럼 속이 좁고, 누굴 담기는커녕 스스로도 제어를 못 해. 그래서 화가 많지. 뒤에서 손가락질하는 것도 못 참고, 누가 욕하는 것도 못 참아. 이해심도 부족하고, 탐욕? 말도 못 하지.”
“…….”
“근데 그게 뭐? 무슨 문제지?”
“…….”
“그런 이유로 마교의 정점에 서 보겠다는 뜻을 포기해야 하는 건가?”
“그, 그건…….”
진무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금마영의 말문이 막혔다.
“고민할 필요도, 이해할 필요도 없어. 이건 그냥 내 생각이야. 괜히 그릇 이야기로 내 한계를 정하려고 하니까 욱해서 나온 말이고.”
“…….”
이 자식이?
싱긋 웃는 진무를 바라보던 금마영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그러니까 그릇 타령은 너 혼자 하고.”
“……이.”
“미리 말해 두겠는데, 난 설득이나 포섭을 목적으로 여기 온 게 아니야.”
도무지 진지한 구석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장난스러운 말에 인내가 한계에 달한 금마영의 전신에서 칼날 같은 예기가 마기와 뒤섞여 새어 나왔다.
“중원의 꼬마 놈. 입심만큼은 대단하구나.”
“…….”
“하지만 넌 잘못된 선택을 했다. 스스로 포위망 안으로 걸어 들어온 이상, 네놈은 죽을 것이다.”
금마영이 짙은 마기를 끌어 올리며 위협적인 표정을 짓자 다른 동천주들도 경쟁하듯이 마기를 끌어 올렸다.
하, 이 새끼들.
말발에 밀리니까 곧바로 본색을 드러내는구만.
온몸을 찌르는 듯한 살기에 진무가 씩 웃으며 일어났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쿠쿠쿵!
“……!”
고작 단 한 동작.
앉은 자세가 일어난 것으로 바뀌었을 뿐인데.
진무를 포위했던 동천주들은 무지막지한 압력에 온몸이 짓눌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으음…….”
하지만 그들 역시 강의 무인.
진무의 기세에 행동이 제어당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의 힘 자체는 여실히 느껴졌기에 놀란 표정까지는 감출 수는 없었다.
괴뢰보다 조금 더 강한 정도가 아니었단 말인가?
설마하니 동천주 다섯이 뿜어 대는 마기를 모조리 짓누르고 자신의 존재감으로 사방을 가득 채우다니.
“이제 알겠어? 내가 걸어 들어온 것이 아니고 니들을 내 영역 안에 가둔 거야. 애초에 합공 따위는 걱정도 하지 않았다고.”
“…….”
금마영을 비롯한 나머지 동천주들이 재빨리 눈빛을 교환했다.
실로 대단한 기세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상대를 압박하는 기운과 실질적인 전투는 다르다.
자신들보다 강하다고는 해도 홀로 다섯을 이길 수는 없는 일.
또한 그의 성향을 봤을 때, 협상으로 무언가 얻어 내리란 기대도 할 수 없다.
죽여야 한다.
서로의 눈빛에서 같은 뜻을 확인한 동천주들이 실행에 나서려는 순간이었다.
탁!
가볍게 탁자를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돌아갔다.
“사내라는 것들이.”
잠자코 듣고만 있던 능서현이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좀스럽게 합공 따윌 할 생각이라면 집어치워라.”
“사동천주!”
“닥쳐라! 뇌공!”
능서현이 매섭게 소리쳐 뇌공의 입을 막았다.
“다들 동천에만 눌러앉아 살더니 그 안락함에 취해 마교의 긍지마저 잊었더냐!”
“…….”
“이곳은 사동천이며, 내가 지켜 온 나의 땅이다. 그는 나에게 서열전을 신청해 왔다. 긍지 높은 마인이 합공으로 적을 쓰러뜨리다니, 이 무슨 수치스러운 일이란 말이냐!”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동천주들을 훈계하는 능서현.
역시, 사람을 제대로 봤다.
그녀 역시 진무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챘을 터다.
하지만 그녀는 수하들 앞에서 자존심을 구길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철의 여인이라 불린다고 하더니, 수식어가 아깝지 않네.
능서현이 웃고 있는 진무를 싸늘한 눈길로 바라봤다.
“네놈이 기회를 운운할 정도라는 것을 증명해 보라. 나 역시 교주가 두렵기는 하지만 네가 나와 사동천을 이끌 만한 능력이 된다면 기꺼이 손을 잡도록 하겠다.”
“이보시오! 사동천주!”
“닥치라 했다!”
“…….”
“너희들이 뭐라고 해도 나는 이미 육동천주 무진이 청한 서열전을 받아들였다.”
“…….”
“끼어드는 놈이 있다면 그놈부터 죽일 것이다.”
서슬 퍼런 기세로 좌중을 노려보는 능서현의 눈빛에 금마영과 나머지 동천주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빠진 이상 합공은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남은 넷으로도 충분하다.
그녀와의 서열전이 끝나고 놈의 승리로 돌아간다면…….
“좋아. 아주 좋아.”
“…….”
진무는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봤다.
이 새끼들아, 눈빛이나 좀 감추고 계략을 꾸며라.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겠다.
어쨌든 그걸로 니들과 능서현에 대한 대우는 정해졌다.
능서현은 기회를 받아들였고, 니들은…… 기대해라.
피식 웃으며 일어선 진무가 천막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와, 증명해 줄 테니까.”
“…….”
천막에서 조금 떨어진 곳.
손가락 하나를 들어서 까딱거리는 진무의 모습에 능서현이 눈을 치켜뜨고 나섰다.
잘 단련된 모습.
두 손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고고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능서현의 모습이 진무의 눈동자에 고스란히 비쳤다.
쓸 만한 무인이다.
하지만 진무의 관점에서는 멍청한 결정이었다.
진무라면 합공을 했을 것이다. 표면적인 승률이 낮을수록 더욱.
자존심? 그딴 거 필요 없다. 이기면 그만이지.
하지만 지금의 싸움은 생사투가 아니라 증명이다.
무인이 자신의 강함을 타인에게 증명한다는 것.
배려, 아량…… 뭐 그딴 것들.
자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지만 넘볼 수 없는 강함으로 짓눌러 온몸으로 확인시켜 주마.
“내가 원래 실력 차이고 뭐고 선수필승(先手必勝)이라는 만고의 진리를 뼈마디에 새기고 있는 사람이거든?”
“…….”
“그런데 너한테는 기회를 한 번 더 줄게. 가진 바 최선을 다해 봐.”
뒷짐까지 지고 선 진무의 모습에 능서현이 차분하게 호흡을 가라앉히고 긴장감을 끌어 올렸다.
광오하리만치 느긋하고 오만한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똑똑하게 보았고, 느꼈다.
그는 그만한 힘을 가진 사람이다.
천산 어쩌고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자신에게 서열전을 운운할 정도로 뛰어난 무인이다.
남녀노소, 나이가 많고 적음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무인일 뿐이고, 전력을 다해 적을 말살하면 될 일이었다.
“좋다. 네가 준 기회, 알차게 사용하도록 하지!”
파핫!
능서현은 머뭇거리지 않고 양손을 들어 올림과 동시에 쏘아져 나왔다.
기수식 따위는 개밥으로 줘 버린 듯이 시작부터 교차하며 휘저어지는 그녀의 양손에서 엄청난 마기가 폭풍처럼 소용돌이쳤다.
지면을 밟았다 싶은 순간 전면으로 쇄도해 온 그녀의 흑빛 눈동자가 진무의 부릅뜬 눈앞에 나타났다.
“……!”
어? 이런 떠그랄?
귀영마수라며? 금나수가 주무공이라며?
그런데 이 속도 뭐야?
아니, 미리 말이라도 좀 해 주지.
이건 생각보다 너무 빠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