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49
349화
검은 잔상을 만들어 낸 두 줄기의 손바닥이 가공할 기세를 머금고 올려 쳐 온다.
순간적으로 거대해진 손 모양이 능서현의 신형을 감추어 버렸다.
보이는 것이라곤 오직 마기를 겹겹이 두른 두 개의 손바닥.
파학!
당황한 진무가 뒤꿈치로 흙바닥을 찍어 누르며 몸을 뒤로 젖혔다.
“……!”
가슴께를 스치고 지나갔어야 했던 두 개의 손이 갑자기 폭포수처럼 뚝 하고 떨어져 내린다.
노리는 곳은…… 이런 씨발, 낭심?
갑자기? 대놓고? 보란 듯이?
너무 놀라 양 오금을 모으고 엉덩이를 쭉 빼는 기묘한 자세를 취하는 바람에 진무의 중심이 흐트러졌다.
뻐걱!
“큭!”
진무의 턱이 곧게 쳐들린다.
다행히 그 순간에 맞춰 머리를 꺾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턱뼈가 박살 날 뻔했다.
비틀거릴 새도 없이 어느새 진무의 영역 안쪽으로 파고든 능서현의 손이 빠르게 뻗어 온다.
가슴을 고스란히 얻어맞게 생긴 진무가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승기를 잡은 능서현은 놓치지 않고 진무를 따라잡았다.
검은 궤적을 이루며 채찍처럼 휘어져 들어온 손이 진무의 손목을 향해 날아온다.
진무는 그녀의 손을 떨치기 위해 손목을 비틀어 튕겼다.
하지만 마치 예상했다는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손이 그의 옷깃을 잡아챘다.
휘리릭!
회오리처럼 돌며 파고든 그녀의 몸이 진무의 몸에 닿는가 싶더니, 옷깃을 쥔 손이 포물선을 그리며 바깥쪽으로 당겨진다.
후웅!
“……!”
뭐지, 몸이 갑자기 붕 뜨는 이런 신박한 느낌은?
콰아앙!
떴다 싶은 순간 진무의 몸이 바닥에 깊숙하게 내리꽂혔다.
“크윽!”
땅바닥에 세차게 처박힌 순간 등뼈가 와르르 무너지는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하압!”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명확하게 파악하기도 전에 공중에 떠오른 능서현이 지면을 향해 강하게 일장을 뻗어 왔다. 그것도 강기를 가득 담아서.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
아마도 저걸 처맞으면 기를 둘러 방비를 한다고 해도 갈비뼈가 작살날 각오는 해야 할 것이다.
제기랄…… 이건 오랜만인데.
이럴 때 피하는 건 딱 한 가지 방법뿐이다.
궁극의 회피기. 나려타곤(懶驢打滾).
게으른 당나귀를 진무에 비교하겠는가? 청우에게 전광석화와 같은 구르기를 가르친 게 나다.
파라라락!
진무의 몸이 땅바닥에서 세찬 팽이처럼 회전하자 흙먼지가 사방으로 피어올라 능서현의 시야를 가렸다.
쿠아아앙!
동시에 거칠게 떨어지는 일장에 대지가 뒤흔들린다.
“…….”
뒤집혀 버린 대지에 거대한 짐승 발자국과 비슷한 크기의 장인(掌印)을 새긴 능서현이 고개를 돌렸다.
파라라락!
이미 공격권을 한참이나 벗어났음에도 여전히 구르고 있는 진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회전을 멈춘 진무가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천천히 일어났다.
“허 참…….”
겨우 몸을 세운 진무가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멈춰 자신을 바라보는 능서현을 향해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옷을 툭툭 털었다.
실로 기묘한 무공.
귀신의 손이라 불린다더니 헛말이 아니다.
빠르기도 빠르지만 금서현이 보여 준 움직임은 생전 처음 보는 수법이었다.
“잘…… 구르더군.”
“…….”
능서현의 목소리는 무덤덤했으나 조롱이 잔뜩 담겨 있었다.
옆에서 참관 중인 동천주 놈들의 입가에도 비웃음이 서려 있었으나, 그딴 거에 낯부끄러워할 진무가 아니었다.
진무가 보고 있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능서현. 생각보다 뛰어나다.
무인들은 대체로 경지에 중점을 두고 초식을 등한시한다.
강을 이루고 나면 더욱 그러하다. 그저 기운을 남발해 가면서 공격할 줄만 알지, 세세한 초식 운용까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녀는 효율적인 움직임과 필요한 만큼의 내공을 사용해 자신을 몰아붙였다.
승기를 잡았을 때는 강기를 모조리 발출해 일격필살을 노릴 줄도 알았다.
즉, 쉽게만 생각했던 지금의 전투가 무척이나 재미있어질 거라는 뜻이었다.
“지금 건 좋았어. 하마터면 턱뼈에 가슴뼈까지 박살 날 뻔했지 뭐야?”
“…….”
능서현의 눈매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진무를 흔들어 놓기 위해 사용했던 첫 번째 공격 낭심.
비록 잔인할지라도 유구한 역사를 가진 마교는 정파만큼이나 자신들의 무공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
치졸한 수법으로 상대를 공략하는 것은 타인의 손가락질을 받을 만한 수법이다.
그런데 놈은 자신을 비난하기는커녕 치욕스러운 나려타곤을 시전해 피해 버렸다.
화를 내지 않는 건가?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건가?
진무의 저 표정과 웃음.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능서현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가 한층 진해졌다.
“재미있는 녀석이군. 아주 재미있어.”
“…….”
“그런데, 그대 같은 무인이 이 많은 이들 앞에서 보이기에는 조금 부끄러운 모습이 아니었나? 힘은 언제 증명할 거지?”
오, 도발.
번데기 앞에서 백날 주름 잡아 봐라.
도발은 원래 내 전문이다.
어쨌든 그녀에 대한 파악은 끝났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서슴지 않는 것.
비열한 거? 부끄러운 거?
그게 뭐 대수일까?
남은 것은 그녀를 무릎 꿇리는 것뿐이다.
“어, 지금부터 하려고.”
피식 웃은 진무가 가슴을 크게 부풀려 호흡을 진정시켰다.
“후우…….”
조금씩 내뱉은 숨에 부풀었던 가슴이 제자리를 찾아갈 때 진무의 눈에 스산한 검은 빛무리가 스친다.
“귀영마수랬지? 꽤나 신선했어. 그런 식으로 처맞아 본 건 처음이거든.”
“…….”
“자, 지금부터 똑같이 부숴 주마.”
파학!
가볍게 땅을 박차는 걸음.
뒤로 살짝 젖혔던 허리가 바로 서는 것과 동시에 그의 신형이 엿가락처럼 쭉 늘어났다.
“……구, 궁신탄영(弓身彈影)?”
제법 멀리 떨어져 있던 진무의 신형이 한순간에 눈앞으로 다가왔다.
뭘 자꾸 놀라고 그러냐.
이형환위나 허공답보에 비하면 이까짓 건 삼류지, 삼류.
코앞까지 다가온 진무의 미소를 향해 능서현이 다급하게 손을 움직였다.
중지를 향해 곧게 모인 그녀의 손이 얼굴을 노리고 창처럼 쏘아져 들어오자 진무는 고개를 꺾어 그를 피한 뒤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목표를 놓친 능서현의 손이 뱀처럼 휘어지며 날아오는 진무의 주먹을 감싸 왔다.
취리릭!
곧장 비틀어 떨쳐 낸 진무가 활짝 편 손으로 능서현의 옷깃을 잡아챈다.
팍! 파파팍!
한순간에 이어지는 둘 사이의 공방은 손과 손의 싸움.
막을 때의 손끝은 창이고, 벨 때의 손날은 칼이다.
막을 때는 든든한 방패와 같았고, 움켜쥔 주먹을 뻗을 때는 거대한 쇠망치처럼 둔탁하다.
작은 승기의 조각 하나를 잡기 위해 그들의 손은 더욱 빠르게 움직였고, 우세를 점하기 위한 그들의 발은 자욱한 흙먼지를 일으켰다.
종내 그들의 모습은 먼지에 가려 보이지 않았고…….
파팍, 후웅! 퍽, 빡, 쿵!
서로가 부딪혀 만들어 내는 격타음이 사방을 진동시킨다.
능서현과 진무가 사용하는 무공.
금나(擒拿).
상대를 붙잡음으로써 제압하고 권(拳), 각(脚), 장(掌), 지(指), 조(爪)의 다양한 공격으로 무력화한다.
진무는 그 빠른 손짓과 발의 움직임 안에서 능서현의 동작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살폈다.
동작의 끊어짐이 없다.
마치 하나처럼 연결되어 유연하게 이어지는 그녀의 움직임은 회오리를 방불케 했다.
손과 발이 작은 회오리를 만들고 그것이 이어져 폭풍처럼 뻗어 온다.
진무는 바람 속에 갇혀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느끼며 미소 지었다.
휘어지고, 비틀리고. 이쯤에서 변화.
불어오는 바람처럼 일정한 투로 없이 변화하는 손길.
잡으려 해선 안 된다. 그 흐름에 동화되어야 한다.
“……!”
초식이 흐를수록 능서현은 답답함을 느껴야만 했다.
분명 거의 다 잡은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자신이 쫓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무의 움직임.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아니, 많이 본 정도가 아니다. 저것은 분명 자신의 귀영마수?
이 짧은 시간에 흉내를 내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럴 리 없다.
능서현은 평생을 금나수, 그 하나에만 매달려 온 무인이었다.
즉, 누구보다 특화되어…….
와락.
“……!”
잡혔다.
후우웅!
파고든 진무의 몸이 회오리처럼 비틀리고 능서현이 허공에 떠올랐다.
“이, 이놈이!”
쿠아악!
하지만 땅바닥에 처박힌 충격에 머리가 울려 분노를 이어 갈 수가 없다.
설마 다음은……?
능서현이 부릅뜬 눈으로 진무의 신형을 찾았다.
허공의 공간을 찢어발기고 뛰어나온 악마처럼 흉흉한 미소를 만면에 띄운 진무가 곧게 주먹을 뻗어 왔다.
아까와 완전히 똑같은 공격법.
설마하니 자신이 조금 전 진무에게 펼쳤던 방법에 그대로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피할 수 있는 것은…….
생각과 동시에 능서현이 몸을 옆으로 구른…… 턱.
턱? 터억?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대경한 능서현의 눈에 보인 것은 진무의 두 다리였다.
느끼지 못했다.
능서현의 몸은 진무의 가랑이 사이에 끼어 있었고, 두 다리가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기둥처럼 단단히 옭아매고 있었다.
망할…….
능서현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 얼굴을 향해 진무의 주먹이 세차게 떨어져 내렸다.
꾸우우.
주먹에 담긴 거대한 기운이 먼저 다가와 땅을 짓누르고, 그녀의 몸까지 땅속에 파묻었다.
그녀는 끝을 직감했다.
저 주먹은 멈추지 않는다. 자신의 코를 바스러뜨리고 얼굴에 틀어박힐 것이다.
후우웅!
끝이라 생각한 순간 태풍처럼 세찬 바람이 얼굴을 강타한다.
그 여파에 피부가 찢어질 듯이 밀려났고, 눈은 절로 가늘어졌다.
주먹이…… 멈췄다.
코 한 치 앞에서 주먹을 멈춘 진무가 히죽 웃고는 훌쩍 뛰어 뒤로 물러났다.
“…….”
주먹이 만들어 낸 압력으로 움푹 팬 땅 위에 누운 능서현이 두 눈을 깜박였다.
어째서?
조금 전 그 한 방으로 승부는 결정 난 것이나 다름없는데.
팔로 지탱해 몸을 세운 능서현이 물러난 진무를 바라봤다.
“뭐 해, 일어나.”
“……?”
“고작 흉내 내기 정도로 쓰러뜨릴 생각은 없다고.”
뭐라고?
능서현이 눈을 크게 떴다.
“어때? 괜찮았어? 조금 서투르기는 했지?”
“…….”
히죽 웃으며 말하는 진무로 인해 능서현의 놀람은 더욱 커져 갔다.
자신이 평생을 노력해 온 금나수를 고작 방금 보고 따라 한 금나수로 무너뜨렸다고? 더욱이 서툴렀어?
이자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놀랄 것 없어. 만류귀종이란 말도 있잖아. 극의에 이르면 상대의 움직임, 내공의 운용, 디딤발의 위치 정도만 봐도 충분히 따라 할 수 있는 거니까. 실은 너보다 훨씬 뛰어난 수법(手法)을 익히기도 했고.”
“……더 뛰어난 금나수를 익혔다고?”
그래. 들어는 봤니?
무당의 태청산수.
진무는 그것이 지고한 절학이라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호부호형(呼父呼兄)을…… 아니 도사라 말할 수 없는 처지라 차마 뒷말은 하지 않았다.
“뭐, 정도의 차이야. 네 무공도 제법이니까. 나를 그런 식으로 땅에 처박은 건 니가 처음이거든.”
“…….”
진무가 어울리지도 않게 손사래를 치며 부끄러워한다.
“자, 감탄은 그만하고. 그럼 이제 진짜로 시작하지.”
“…….”
“내 장기는 금나수가 아니라 권각 쪽이거든. 검도 좀 다루고.”
진무가 발로 땅바닥을 툭툭 차며 깍지 낀 손으로 우두둑 소리를 낸다.
“…….”
그 모습을 바라보던 능서현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희한한 놈이 나타났다.
해 볼 만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장난스러움에 진심이 담기고, 가벼운 움직임에 무거움이 묻어난다.
조용하던 마교에, 정말로 일대의 파란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교주…… 어쩌면 제법 힘든 상대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겠소.
그리고 왠지 모르게 나는 저 젊은 친구에게 끌리는군요.
“하압!”
입꼬리가 광대까지 올라갈 정도로 환히 웃은 능서현이 자신이 가진 모든 내기를 방출해 냈다.
시커먼 마기가 줄기줄기 피어나 검은 먹구름이 되고, 그녀의 움직임에 속도를 더한다.
어차피 질 것이라면 후회 없이 싸워나 봐야 하지 않겠는가.
파아앙!
진무와 능서현이 마주 서 있던 자리에 공기가 터져 나가고, 발에 차인 흙더미가 사방으로 솟구친다.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 그들은 자욱하게 피어오른 먼지의 중심에서 진한 미소와 함께 격돌했다.
쩌어어엉!
“…….”
신이 난 듯 공방을 주고받는 둘의 모습에 초조해진 것은 금마영을 비롯한 동천주들이었다.
능서현이 무너졌다.
아직까지 싸우고 있지만 이미 승세는 기울었다.
능서현은 사력을 다하고 있었고, 무진은 마치 가르침을 내리듯이 허점을 발견하고도 비껴서 공격하고 있으니까.
십이동천 중 단우강, 백천립과 함께 최강의 자리를 다투어 온 초절의 고수인 그녀였다.
서열전이 끝나고 그녀가 무진이라는 놈의 손을 들어 준다면?
놈은 남부의 패자로 군림하게 된다.
그때가 되면, 자신들은 절대로 막을 수가 없다.
무인이든 전력이든 무엇에도 우위를 점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자신들의 영역에서 왕처럼 군림해 왔던 그들이었다.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죽여야만 했다.
비록 능서현의 말처럼 마교인의 긍지를 버리는 한이 있어도.
금마영이 남은 세 곳 동천의 주인들을 바라봤다.
“…….”
“…….”
“…….”
침묵 속에서 끄덕여지는 서로의 고개.
무언의 긍정.
모두가 같은 마음이다.
가진 자는 빼앗기기 싫어하는 법이고, 올라선 자는 내려오기 싫은 법이다.
그들은 시퍼렇게 날 선 자신들의 무구를 들고 진무와 능서현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눈동자에 각기 다른 탐욕이 어린다.
그래. 둘을 죽이면…… 세 개 동천의 주인 자리가 비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의 주인은 살아남은 자들의 것이 될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