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51
351화
전장이 벌어진 곳에서 조금 떨어져 있던 언덕.
한가롭게 뒷짐을 진 노인, 북리도천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붉은 수염을 쓸었다.
“마강.”
“예. 교주님.”
“네가 보기엔 어떠냐?”
“…….”
“어린놈이 겁대가리를 상실한 것 같지 않으냐?”
마강은 은연중에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다.
교주의 저 즐거운 표정하며, 전신에서 은은하게 흐르는 살기와 막대한 존재감.
마교가 배출한 최강의 무인이라 불려 온 괴물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설마…… 저 대단한 양반이 약관밖에 되지 않은 애송이를 상대로 인정하고 있단 말인가?
“……동천주 셋을 무너뜨린 것은 의외입니다. 하지만 육제께서도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십니다. 교주님에 비하면…….”
“마강.”
“예.”
“모르겠느냐?”
“……?”
“저 녀석…… 그놈의 후예다.”
“예?”
마강이 되물었으나 북리도천은 혼잣말과 같은 중얼거림을 끝으로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웃으며 사동천의 성문으로 걸어 들어가는 진무를 지그시 바라볼 뿐.
그 모습에 마강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천산을 은밀하게 나와 사동천까지 온 이유.
궁금증을 느낀 것이다.
자신의 자리를 노리고 동천을 통일하겠다 공언한 어린 애송이가 어떤 놈인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교주의 저 미소를 설명할 수 없다.
이제껏 실의에 빠진 사람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다.
지난 삼 년.
침묵으로 일관해 왔던 그를 향해 모두가 이제는 노쇠했다 말했다.
모두가 입 밖으로는 차마 꺼내지 못했으나 저 북리도천마저도 결국 세월이라는 강대한 적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달랐다.
숙적이라 인정했던 사황 혁련무강과 싸웠던 그때처럼 그가 웃고 있다. 한없이 들뜬 얼굴로.
북리도천의 옆을 지켜 온 마강은 혁련무강을 안다.
하늘아래 대항할 자가 없을 것이라는 북리도천이 중원을 향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번번이 막아섰던 그.
매일 놈을 찢어 죽이겠다며 길길이 날뛰면서도 그토록 즐거워했던 북리도천.
마치 저녁에 만날 연인에 대한 기대감으로 새벽부터 잠에서 깨어 준비하듯 놈을 이길 방법을 연구했던 그가 아닌가.
마강 역시도 적 이전에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존경했던 사패천의 지배자였다.
그 대단한…….
불현듯 마강이 눈을 부릅떴다.
그의 후예라 함은…… 무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그가 사황의……?
듣기로 그는 무당의 검이며, 근래 유월청을 무너뜨리고 사패천을 되찾았다고 했다. 저자가 그라고?
“그 망할 자식이 제자를 똑같이 키워 놨구나. 무진이라니, 고작 거꾸로 된 이름이 아닌가?”
“…….”
북리도천의 말에 마강은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닫힌 사동천의 성문에 모습을 감추는 진무의 뒷모습을 시선으로 쫓았다.
“사패천을 되찾고 정파에서 이름을 좀 얻었다더니 이제는 나에게 마교를 달라 덤비는구나.”
“……교주님. 그가 정말 무당지검, 아니 사황의 전인 진무란 말입니까?”
“…….”
북리도천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이제 겨우 한 걸음.”
“…….”
“마강, 일전에 만난 녀석이 이동천을 손에 넣었다고?”
“예.”
“흡성을 익혔다지?”
“그렇습니다. 닥치는 대로 생기를 흡수하며 마성에 젖어 들고 있다는군요.”
이동천에 나타난 괴물을 떠올린 마강이 미간을 깊이 찌푸렸다.
교주의 명으로 이미 살펴본 바, 교주의 허락이 있었다고는 하나 그는 금지된 마공을 익히고 있었다.
이미 마교에서도 절전된 지 오래인 그것을 어찌 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교주의 명령으로 직접 목격한 그의 무공은 분명 흡성마공이었다.
“좋아. 기대되는군. 한 놈은 짐승의 길을 걸어 다가오고 한 놈은 과거 나를 흥분시킨 추억으로 다가온다.”
“…….”
“기대되지 않느냐?”
“……교주님, 흡성마공은 위험한 무공입니다.”
“두거라.”
“예?”
“그 녀석의 후예에게 주는 선물로 남기자꾸나.”
“그게 무슨?”
마강은 도저히 교주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다.
“흡성에 빠져 마성이 극으로 치달은 그놈은 짐승이 될 것이다. 아니, 이미 짐승인지도 모르지. 두려움과 원망, 독기를 머금은 짐승.”
“…….”
“나를 찾아왔던 상관평이라는 놈에게 동천을 손에 넣고 찾아오면 중원 정벌을 허락하겠다 하였다. 그러니 빠른 시일 안에 둘은 부딪힌다.”
“…….”
“두려움을 먹은 짐승을 베면 환호를 받는 법이지.”
아!
마강은 비로소 깨달았다. 북리도천의 마음이 진무라는 젊은 사내에게 가 있음을.
짐승을 죽이고 신강에 터를 잡은 이들에게 환호를 받으며 자신을 찾아오기를.
“그래. 권좌에 도전하려면 그에 걸맞은 이름값은 가지고 있어야지, 암.”
“교주님……. 하지만 한승이라는 자는 생각보다 강합니다.”
마강은 우려 섞인 어조로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직접 보았던 한승에 대해 느낀 것은 위대한 무인에 대한 존경이 아니라 억누르기 힘든 두려움과 치미는 살의.
“안다. 하지만 그쯤은 이겨 내 줘야지.”
“…….”
“그래야 나 북리도천의 목을 노릴 수 있지 않겠느냐?”
“하지만 그가 짐승에게 먹히면.”
“게 무슨 상관이더냐?”
“예?”
“어차피 나의 생은 얼마 남지 않았다.”
“교주님!”
“소란 떨 것 없다. 아무리 강대한 무인도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는 일이다.”
어딘가 처연한 느낌마저 드는 북리도천의 목소리에 마강은 한마디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놈이 짐승에게 먹힌다면 나는 죽기 전에 중원을 피로 물들일 수 있겠지. 평생의 소원이 아니더냐? 지금은 지켜보는 것, 그것이 나 북리도천의 선택이다.”
북리도천은 환하게 웃고는 장포를 펄럭이며 몸을 돌렸다.
“그만 가자. 간만에 피가 끓으니 참을 수가 없구나. 놈이 찾아올 때까지 최상의 상태를 유지해 둘 것이다.”
“명을 받듭니다.”
명을 받은 마강이 북리도천을 뒤따르며 가볍게 손을 휘젓자 사방의 지형지물이 일제히 일어났다.
일월마교의 주인, 북리도천을 호위하는 염왕대.
그들이 북리도천이 나아가는 걸음을 호위하듯이 따라붙었다.
* * *
바뀐 주인이 몰고 온 변화에 사동천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오현의 관문을 놓고 대치했던 천웅방이 막대한 예물과 함께 관원 원공후가 친히 작성한 사과 서신을 보내 왔다.
이로 인해 유례없던 휴전 협정이 맺어졌다.
상호 불가침의 조약.
천웅방은 이오현의 관문 오백 리 내에 있던 지부를 모조리 남쪽으로 물렸고, 그 뒤를 이어 미리 대기하고 있던 산서상회의 마차들이 줄지어 관문을 넘었다.
휴전에 이어 중원과의 교역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이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신(新) 동천 연맹의 주인이 된 진무였다.
육동천주의 자리는 괴뢰에게 다시 돌아갔고, 칠동천은 일환, 사동천은 새로운 인물에게 돌아갔다.
능서현이 자리를 고사하고 진무의 곁에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 * *
진무의 거처가 된 사동천 내부의 전각.
쪼르륵.
가득 채워진 술잔을 능서현이 공손하게 받아 입가로 가져갔다.
“이봐, 그래도 명색이 사동천주였는데 반대 정도는 했어야 하는 거 아냐? 협정을 맺어도, 중원과 교역을 시작해도 어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지?”
“주군께서 결정하신 일입니다. 종인 제가 어찌 반대를 입에 담겠습니까? 그저 따를 뿐입니다.”
지극히 공손한 태도로도 모자라 스스로를 종이라 칭하는 능서현.
그녀에게 종 따위가 되라고 강요한 적은 없다. 그저 천산으로 함께 가자고 했지.
그런데 전투가 끝난 이후 그녀는 납작 엎드려 충성을 맹세하더니 자신의 곁에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거참…….”
잔에 담긴 술을 단숨에 들이켠 진무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거의 생짜다.
직접 부하가 되라 지목해 본 적은 있어도 먼저 부하가 되겠다면서 뻗댄 놈은 없었다.
더욱이 그녀는 개인 호위를 자처하는 황신과 아이들, 심지어 괴충의 아래에 있겠다고 하면서까지 극구 고집을 부렸다.
말이 안 된다.
무공으로 따지면 황신과 아이들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그녀였다.
하물며 조금 방심했다고는 하지만 진무의 턱을 때리고 바닥에 메다꽂아 버린 그녀가 아니던가?
꽤 마음에 드는 무인이기는 하지만 막상 지가 먼저 수하를 청하니 떼 버리고 싶다.
당세령과는 결이 다르긴 하지만 비슷하게 집요한 느낌이라 더 껄끄러웠다.
아, 그러고 보니 그 계집애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그냥 사동천주 해.”
“싫습니다.”
“…….”
진무는 단호하게 고개를 내젓는 그녀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대체 이유가 뭐야? 기껏 한 번 진 것 때문에 그렇다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나는 중원인이야. 마교의 율법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고.”
“…….”
진무의 물음에 능서현은 대답 없이 살포시 웃기만 했다.
“이런 젠장. 옆에서 지켜보다가 내 목이라도 따려는 거야, 뭐야?”
“어찌 종이 되어 그런 불충을 담겠습니까? 능력도 없거니와 그럴 마음도 없습니다.”
“…….”
불충 같은 소리 하네. 애송이 어쩌면서 죽이겠다며 눈을 세모로 뜨고 노려볼 때는 언제고.
뭔 고집이 이리도 쇠심줄 같은가?
자존심만 강한 줄 알았더니 고집은 더하네. 도통 들어 먹을 생각을 안 해, 아주.
“니가 몰라서 그러는 모양인데, 난 자주 패. 화도 내고, 또…… 에이 쌍!”
수하로 받지 않겠다는 이유를 열거하던 진무가 냅다 각출을 향해 외쳤다.
“야! 각출!”
“예?”
우양진의 수련을 돕고 있던 각출이 급히 뛰어왔다.
“니가 대신 말 좀 해. 내가 얼마나 괴팍하고 지랄 맞은지.”
“……?”
순간 각출이 움찔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말하라고? 정말? 그 개 같은 성격을 일일이 다?
혹시 충성도 시험, 뭐 그런 건가?
아니, 설령 진심이라고 해도 지금까지 진무에 대해서 느낀 바를 곧이곧대로 이야기했다가는…… 맞겠지. 엉망진창으로 처맞을 거야.
“에…… 천주님으로 말씀드리자면…… 영명하시고…… 강하시고…… 상남자이시며…….”
각출은 떠듬떠듬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나씩 뱉어 냈다.
야, 이 새끼야. 지어내기 힘들면 그냥 하지 마라.
진무가 눈살을 찌푸리며 주먹을 슬쩍 들어 올리는데 능서현이 눈을 휘어 웃으며 말을 잘랐다.
“역시, 모두가 천주님에 대한 충성이 넘치는군요. 아직은 첫인상뿐이지만 저 역시 그리 느끼고 있습니다.”
“…….”
저 눈치도 더럽게 없는 머저리가 그녀를 더욱 충동질해 놨다. 차라리 황신이나 소동보, 아니 괴충을 불러서 자신의 험담을 하라고 할걸.
“됐다, 됐어. 너 그냥 부하 구 호해라. 대신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다.”
손을 휘휘 내저은 진무의 모습에 능서현이 두 손을 바닥에 짚고는 절을 올렸다.
“주군을 뫼심에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
그러든가 말든가.
진무는 짧게 혀를 차고는 술병을 통째로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주군.”
“왜?”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
“주군께선 분명 강하십니다. 세 곳 동천을 손에 넣으시고, 동천주 넷을 쓰러뜨리셨으니 명실공히 남부의 패자가 되신 겁니다.”
“뭐…….”
“하지만 이릅니다. 저를 제외한 동천주 넷을 쓰러뜨리긴 하셨으나 아직은 부족합니다.”
“…….”
“제가 느낀 바가 맞다면 주군께선 아직 북리교주님을 완벽하게 무너뜨리실 수 없습니다.”
“…….”
알고 있다. 과거의 힘을 되찾은 정도로는 안 된다는 건.
과거의 힘으로는 북리도천과 비등한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까.
양의심공으로 묵룡혼원공에 육양진기까지 때려 박아 장기전으로 간다면 몰라도 완벽하게 짓밟을 수는 없다.
그래서 태극합일을 이루려고 한 것인데 그 귀한 남궁가의 대연단(大衍丹)을 스승님을 회복시키는 데 써 버려서…….
후회하지는 않지만 역시 조금 아깝긴 했다.
그것만 있었어도 걱정 따위는 발톱의 때만큼도 안 할 텐데.
서서히 굳는 진무의 얼굴을 응시하던 능서현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고 품에서 자그마한 옥갑을 꺼내 내밀었다.
자신을 수하로 받아 주지 않는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려 했던 귀한 것이다. 분명 기뻐하리라.
“제가 어렵게 구한 마교의 역천마령단(逆天魔靈丹)입니다.”
“…….”
여, 역천마령단?
진무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탐욕으로 물들었다.
그럴싸하다. 이름부터 뭔가 있어 보인다.
“교주님께 바칠 것이었으나 주인이 바뀌었으니 마땅히 주군께 바치는 것이 도리라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마기의 정수라 불리는…….”
“…….”
아, 마기셨구나.
흥분으로 들썩이던 진무의 엉덩이가 힘없이 바닥에 퍼질러졌다.
꽤나 있어 보이는 이름의 영단.
탐난다. 분명히 전에 가지고 있었다면 묵룡혼원공을 익힐 때 큰 도움이 되었을 거야. 아마 양소방 그 노인네 내공을 빨아먹지 않아도 됐겠지. 묵룡혼원공은 선기와 사기, 마기를 가리지 않으니까.
하지만 육양진기는 다르다.
유서 깊은 심법답게 고고하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다.
쌓기도 힘든데 영약을 처먹어도 선기를 머금지 않은 놈이면 불순물 취급해서 다 뱉어 내고 마는 요망한 놈.
그러니 그거 먹어 봐야 지금의 진무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마기와 흡사한 색을 가진 묵룡혼원공만 더 오르겠지.
그럼 육양진기의 선기와 더욱 큰 차이가 벌어진다.
두 기운의 균형을 이루어도 태극이 될까 말까인데…… 염병.
청무 조사께서도 한순간의 실수로 마성에 빠졌다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묵룡혼원공? 내공이 늘어 봐야 이젠 거기서 거기다. 함강의 경지에서는 이미 극한에 이르렀으니까.
그 이상을 얻으려면 혁련무강의 시절에 경험하지 못한 깨달음이 필요하다.
그 벽을 넘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그래서 반드시 태극을 이루어야 한다. 어쩌면 함강 너머에 있을지 모르는 경지를 깨닫게 될지도 모르니까.
망할…… 그러자면 육양진기를 연단할 수 있는 선기가 필요한데 마기를 담은 영단이라니.
쓸모가 없잖아, 쓸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