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59
359화
설산의 낮과 밤은 빠르게 흘렀다.
진무와 양진이 있던 곳은 원체 산세가 험한 탓에 사람이 다니지 않아 토끼 내단을 흡수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둘은 토끼 사체가 널린 그곳에서 닷새의 밤낮을 보냈다.
눈이 녹아 풀밭이 둥글게 드러난 공터의 중심.
“후우, 후우…….”
길고 고른 호흡이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양진의 가슴이 부풀었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가지런하게 정좌한 그의 몸은 이전에 없던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있었다.
양진의 명문혈에 손을 대고 그의 진기 운용을 돕던 진무가 감았던 눈을 뜨고 물러났다.
“내력을 흡수하면서 생기는 열기가 장난이 아니네. 굳이 불을 피우지 않아도 되겠어.”
굳어 버린 근육을 풀며 일어난 진무가 양진의 몸에서 느껴지는 후끈한 열기에 혀를 내둘렀다. 하긴, 이 정도니 눈이 녹았겠지.
“자, 이제 남은 건 양진이가 알아서 할 몫이고.”
진무는 양진의 몸에 자신이 익혔던 육양진기를 전했다.
제자이기는 하나, 그의 심성으로 봤을 때 사(邪)와 마(魔)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무당의 제자가 딱 적당하다.
청상은 몇 가지 가르침만 내려도 금세 성장하는 천재 녀석이고, 청우가 좀 섭섭할 터이나 원체 우직한 녀석이니 잘 받아들일 테지.
셋의 성격을 감안했을 때 상성도 어느 정도 잘 맞을 테니 앞으로 무당을 잘 이끌어 나갈 것이다.
어쨌든 진기를 몇 번이나 유도해 주었으니 남은 것은 반복을 통해 불순물을 제거해 순수한 선기를 남기는 과정뿐. 아마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양진이 섭취한 것은 자잘한 토끼 내단 십여 개.
이놈의 토끼가 얼마나 능력이 좋은지 내단에 불순물이 거의 없다.
오히려 너무 순수해서 문제였다.
덕분에 양진의 단전을 빵빵하게 채우고도 기운이 남았다. 진무는 남는 기운을 갈무리해 세맥으로 유도했다.
그 때문에 충기의 경지에 불과했던 놈이 탄기에 근접하는 내공을 가지긴 했는데…….
“나중에 깨달음을 얻어도 별문제는 없겠지?”
진무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양진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저어 떨치고 토끼 사체가 널린 쪽으로 향했다.
양진이 운기를 하는 사이에 대장 놈 가죽이나 벗겨야겠다.
슥슥.
빠진 곳 없이 구타했기 때문인지 연해진 가죽이 주머니칼질 몇 번에도 잘 벗겨진다.
그런데 괜히 죽였나?
이 정도로 순수한 기운을 모을 줄 아는 놈들인데…… 차라리 잡아서 사육할걸.
천산설초를 먹여 가면서 사육시키면 몇십 년, 아니 몇백 년 안에 내단 창고가 될지도 모르는 일인데.
물론 모든 토끼 놈들이 내단을 가지고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아까운 건 아까운 거다.
나중에 마교 놈들에게 일러서 혹여 푸르스름한 기운을 품은 토끼 놈들을 발견하면 보호종으로 구분해서 반드시 생포하라고 명해야겠다.
그리고 이 천산설초. 이게 진짜배기다.
토끼 놈들은 몰라도 이놈들은 전부가 미약한 선기를 머금고 있다.
마교 놈들에게는 독초이나 도사들에게는 하늘이 내린 축복과도 같다.
날것으로 먹어도 되고 연단술을 통해 영단으로도 제조가 가능할 것이다.
그래, 이참에 무당에 보내야겠다.
어차피 신강과의 교역이야 진무가 독점 아닌가?
마교 놈들에게는 나물거리밖에 되지 않는 천산설초를 싼값에 전량 매입해서 모조리 무당으로 보낸다.
그걸로 무인들을 마구잡이로 키워 내는 거다.
구파의 말석? 그딴 건 이제 옛말이다.
이제부턴 중원 최강의 도가 문파로 거듭난다.
이참에 아예 구파를 다 밀어내고 정무맹주의 자리까지 차지해 버려야겠다. 그쯤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무려 이 몸이 몸담은 곳인데.
어쨌든 천산설초에 대해서는 절대로 발설하지 말아야지. 괜히 소문이라도 나면 도사 놈들이 목숨을 걸고 전쟁까지 불사하면서 달려들지도 모르니까.
이건 전부 우리 무당 거다, 무당 거.
마냥 흐뭇한 진무가 시선을 옮겨 자신의 배를 바라보았다.
단전 가득 느껴지는 대장 놈의 선기.
한 방울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제 천산설초 몇 뿌리로 미세하게 조절해 가면서 묵룡혼원공과 균형만 이루면?
태극의 완성. 전무후무한 절대의 무인이 탄생하는 거다.
북리도천? 하하! 넌 이제 따위다, 따위.
백만 금군 모가지 전부 따 버리고 황……은 아직…… 잘못하면 역모가 되니까……. 일단 태극을 이루고 나서 생각하자.
어쨌든 흡족하기 그지없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에게 기연을 내리나니!
자, 그럼 어디서 수련한다?
조용하고 개미 한 마리 접근하지 않는 곳이면 좋겠는데.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되실 이 몸의 성지가 될 만한 곳이.
주변을 휘휘 둘러보던 진무의 귓가에 문득 무언가 불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병장기 소리? 싸움 났나?
혹시 사동천 놈들이 주인 잃은 삼동천을 병합하라고 명한 것을 벌써 완수하고 온 건가?
그럼 더욱 다행이다.
태극합일은 무척이나 예민한 작업이니 차라리 황신과 아이들을 불러서 호위나 세워야겠다.
진무는 흐뭇함을 감추지 못한 채 양진이 깨기를 기다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 *
챙! 따당!
검과 검의 부딪힘.
둥글게 뭉쳐 방어막을 형성한 무인들은 지친 기색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모두가 몸 여기저기에 상처를 입어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이 위태로웠다.
따라잡혔다.
은위단이 전멸한 상황에서 흔적을 지우지 못했기에 그들의 추격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흑립에 묵검을 든 자들.
그들은 마치 사냥감을 모는 것처럼 포위망을 좁혀 왔다.
청상과 운암, 청우와 갑무반의 무인들이 사력을 다해 공격했으나 그것도 이제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운암이 통솔하던 감찰단 무인들의 피해는 말할 것도 없었다.
쉬이익!
사이한 기운을 머금고 공기를 가르며 날아든 검이 청상의 유운검법에 튕겨져 나갔다.
“하아, 하아…….”
운암과 함께 일행 중 가장 강하다고 봐도 무방했던 청상조차 지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자들, 하나하나가 강하다.
하나하나는 자신보다 실력이 떨어지지만 둘 이상이 모였을 때는 압도해 올 정도였다.
설마 검혜 어른이 실패했단 말인가? 정무칠성의 이름으로 중원에 군림했던 그분이 죽었다고?
이미 그녀를 떠나올 때 어느 정도 각오는 했던 일이나 믿을 수가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의문을 가질 겨를조차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피해만 늘어난다. 일단 전열을 재정비해 피해를 줄이고 놈들의 방어막을 뚫을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또다시 사숙에게 의지하는 것은 죄송스러우나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도가 없는 상황.
삼동천의 경계만 넘는다면 활로가 생길 것이다.
“운암 도장!”
“……?”
“본진을 이끌고 내부에서 제갈 소저를 지켜 주십시오.”
앞뒤 설명을 생략한 명령이었지만 운암은 지체 없이 몸을 날렸다.
“제갈 소저! 갑무반이 외곽을 방어하고 본진이 내부를 지킵니다. 서둘러 적의 포위망을 분석하고 생로를 찾아 주십시오!”
“예!”
청상의 말에 제갈산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선택이었다.
스승이 도착하기도 전에 적의 추적이 이어졌다는 것이 불안했으나, 제갈산산은 자신의 역할을 잘 알고 있었다.
아직은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스승뿐 아니라 그들의 앞에 나타났던 노인 역시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스승은 강한 무인이다.
절대로…….
제갈산산은 불길한 생각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우고는, 날카로운 눈으로 사방에서 공격과 후퇴를 반복하는 흑립 무인들의 진형을 살폈다.
다행히 아직은 나쁘지 않았다.
청상이 시기적절하게 원진을 만든 덕에 방어막이 튼튼해졌다.
“청우!”
후우웅! 쩌어억!
짧은 외침에 청우가 몸을 통째로 날려 다가온 흑립의 무인을 처박고, 그가 비틀거리는 틈을 놓치지 않은 청상의 검이 번개처럼 뻗어진다.
슈앗!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처음으로 그들 중에 희생자가 생긴 것이다.
덕분에 흑립의 무인들이 경계심을 품기 시작했다.
이어 용기를 얻은 남궁창위가 좌선을 맡고, 우선에서 해남의 이백의가 쾌검으로 적을 밀어붙였다.
됐다. 원진이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빠르게 적들의 규모와 공격하는 방법, 아군의 허와 실을 파악해 낸 제갈산산이 전음을 통해 명령을 내렸다.
그와 동시에 운암이 적진을 향해 운룡대팔식을 펼치며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파앙! 파팡!
경공과 일체화된 장법이 위력적으로 터지고.
핑, 피피핑!
내부의 진에 버티고 선 대궁이 사력을 다해 활을 쏘았다.
비록 포위망을 뚫지는 못했으나 형세가 한결 여유로워지자 갑무반의 무인들이 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제 포위망을 뚫을 방법만……!
희망이 감돌았던 제갈산산의 눈동자가 순간 절망으로 물들었다.
흑립인들이 곳곳에서 추가로 모습을 드러낸 탓이었다.
삼십…… 아니 오십.
망할. 이렇게 되면 배로 불어난 꼴이 아닌가.
“제갈 소저!”
설상가상으로 대궁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화살이 동난 것이다.
“크윽!”
전세가 역전되자 다시금 피해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진정 이것으로 끝이란 말인가?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때, 무언가 괴상한 물체가 뛰어들었다.
손에 거대한…… 흰 짐승 털을 들고 있는…… 심마니?
* * *
양진과 함께 천천히 걸음을 옮겨 전투의 현장을 향해 다가서던 진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또 뭐야? 어째서 선기가 느껴지는 거지?
설마 돌연변이 토끼가 더? 이런 횡재수가 있나.
느껴지는 기운이 아주 좋은 걸 보니, 영물화가 되어 자신에게 가죽까지 아낌없이 내어 줬던 그 토끼 놈이 다가 아닌 모양이다.
육양진기도 가득히 채웠겠다, 이놈들은 반드시 생포해서 목줄을 채울 것이다.
천산설초를 주식으로 먹여 나중에 우리 청상이랑 청우에게…….
희희낙락하던 진무의 눈에 들어온 것은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었다.
흑립을 쓰고 달려드는 놈들은 마교에서 본 적이 없는 놈들이고, 나머지는 어디서 많이 뵌 정파 놈들인데.
운암에, 사슴 눈깔에…… 방금까지 머릿속에 떠올렸던 청상 청우까지.
내가 지금 꿈을 꾸나. 니들이 왜 여기서 나오니?
진무가 황당함에 눈을 끔벅거리는 순간 뒤 구르기로 공격을 피하던 청우가 검은빛을 내는 검에 어깨를 베였다.
내 새끼가…… 본 적도 없는 놈에게 상처를 입었다.
무식하지만 순박하고, 멍청하지만 우직한 내 새끼가. 내 최초의 부하가!
진무의 눈에 불이 튀었다.
슈아아악!
목숨이 경각에 달한 청우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순간, 검은 형체가 흑립의 무인을 뒤덮었다.
와드득, 콰직, 퍼억!
“……?”
어…… 그러니까 자신의 몸에서 난 소리는 분명히 아닌데.
아주 가까운 거리 외에는 신경을 쓸 겨를조차 없었던 청우가 갑자기 나타난 이를 멍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망태를 두르고 새하얀 털을 휘날리며 나타나 흑립의 괴인을 철판처럼 우그러뜨려 버린…… 너무도 익숙한 얼굴의 사내.
“사숙!”
반가움, 아니 환희를 머금은 청우의 외침에 청상은 물론 모두가 고개를 획 돌렸다.
청우가 사숙이라 부르는 사내라면 누구겠는가?
무당지검이자 사패천주, 진무.
기사회생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그의 등장에 제갈산산은 안도감에 다리에 힘이 쭉 빠져 주저앉을 뻔한 것을 겨우 버텼고.
“미친! 진무! 오랜만! 감사!”
운암은 콧김까지 내뿜으며 흥분했다.
진무는 그들의 인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청우를 상처 입힌 무인을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버러지만도 못한 새카만 호로 잡것들이 감히 내 새끼 몸에 흠집을 내?”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로 검은 사기를 아낌없이 피워 내는 광폭한 용이 그들의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흑립의 무인들은 자신들에게 찾아온 최대, 최악의 불행을 모른 채 검을 휘둘러 왔다.
쾌속하게.
죽음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