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62
362화
분노를 가득히 담은 노국태의 장력이 노도(怒濤)처럼 휘몰아쳐 들어온다.
쿠콰콰콰!
거센 폭풍이 만들어 낸 해일처럼 진무의 시야를 가득히 메우고 땅바닥을 뒤집어 행로에 위치한 아름드리나무를 송두리째 뽑아 놓는 무시무시한 기운.
장력이 채 진무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기운에 밀려난 대기가 세찬 바람이 되어 옷자락을 찢을 듯 불어닥쳤다.
피부까지 밀려날 정도로 압력이 거셌지만, 진무는 양발로 지면을 밟고 꼿꼿하게 서서 노국태를 바라보았다.
알게 해 주마, 머저리들.
너희들이 익혀 온 무공, 그리고 모두를 위한답시고 뭉쳐 놓은 세력. 그따위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모조리 없애 버릴 것이다.
짐승이 된 너희의 죽음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느끼게 해 주마.
대의를 빙자하여 세상을 어지럽힌 너희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똑똑하게 알아야 할 것이다.
진무가 묵묵히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킨다.
츠츠츠츠.
칙칙함을 머금은 검은 사기가 뿜어져 손끝을 타고 올라 하늘을 향해 뻗고, 이내 펼쳐진 손가락마다 어리니 용의 발톱과 진배없는 형상이었다.
묵룡혼원공, 용조난작(龍爪亂斫).
용의 거대한 발이 발톱을 세운 채 호선을 그리며 떨어져 세상을 할퀸다.
쿠하학!
용의 발톱에 버틸 만큼 강한 것은 없으니 노국태가 뻗어 낸 해일 같은 장력쯤이야.
맥없이 갈라진 장력이 진무를 스치고 지나가 폭발했다.
팡! 파파파팡!
하지만 이미 예상했던 것일까?
몸을 훌쩍 솟구친 노국태가 쉼 없이 손을 뻗어 내자 수백의 장영(掌影)이 하늘을 가득하게 채웠다가 유성처럼 쏟아져 내렸다.
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조밀한 장력의 그물을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진무가 양손을 펼쳐 무당의 태청산수를 펼친다.
애초에 무공의 초식은 만류귀종이라, 무엇을 담는가에 따라 그 위력이 천차만별이다.
선기의 육양진기와 사기의 묵룡혼원공을 동시에 쓰면 충돌할 일이지만, 초식을 빌려 쓰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슈아아악!
노국태가 만들어 낸 장영의 수만큼 검은빛을 띤 손의 그림자가 지상을 가득히 채워 솟구쳐 올랐다.
쾅! 콰콰쾅! 콰앙!
태청산수는 금나의 일종인 동시에 모든 기운을 상쇄하는 초절의 방어막.
다만 묵룡을 담아 그 형질이 변한바, 지금은 모든 것의 핵심을 짓이겨 부순다.
쩌정! 쩡!
허공에서 맞부딪히는 두 사람의 장력에 대기가 괴성을 지르고, 그 여파가 사방으로 뻗어 돌풍을 일으켰다.
가히 공전절후라고 불러도 좋을 격전에 대지가 난도질당하고 주변이 흉물스럽게 변했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어닥치는 기의 폭풍에 눈을 찡그리고 지켜보던 청상을 비롯한 정사의 추격대는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저들이 정녕 우리와 같은 사람이란 말이오?”
양소방의 가르침으로 제법 많은 성취를 얻었던 갑무반의 황보웅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나름 권장에 자신이 있다 여겼던 자신이 진무와 노국태의 격전 앞에서는 너무도 보잘것없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들을 어찌 우리의 눈으로 판단하겠느냐?”
“……?”
제갈산산의 돌봄에 겨우 정신을 차린 검혜가 지친 목소리로 말하자 황보웅을 비롯한 갑무반의 무인들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강하다는 것은 이미 겪어 알고 있으나…… 저자는 마치 쉴 새 없이 불어오는 질풍과 같구나.”
질풍. 그 표현이 가장 적합해 보였다.
일정한 투로도 형식도 없이 몰아치는 노국태의 장법이 꼭 그와 같았으므로.
“한데 진무 도장께선 어찌 움직이지 않으시는지……. 저런 위력의 무공에 갇히는 것은 좋지 않은데. 이미 몸에 상처가…….”
또 다른 갑무반원인 개방의 취구개가 계속해서 상처가 늘어 가는 진무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드러내자 검혜가 고개를 내저었다.
“글쎄……. 진무 도장이 그리 생각이 없어 보이지는 않는구나. 저 안에서도 마치 고목처럼 흔들림이 없지 않으냐.”
“……?”
검혜의 감탄사에 모두가 다시 한번 둘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진무는 지금까지 처음 서 있던 그 자리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장력에 버티며 상처를 입고 있음에도 걸음을 걷지 않은 것은 물론 지면을 딛고 선 발이 밀린 흔적도 없었다.
“천년 고목은 아무리 거센 바람이 몰아쳐도 잎사귀와 잔가지는 흔들릴지언정 기둥은 미동도 하지 않는 법이다.”
“하면?”
“보이지 않느냐? 진무 도장은 그저 가만히 선 채로 저 변화막측한 장력을 모조리 깨부수고 있음을.”
“…….”
“저것이 격의 차이다. 그는 이궁주라는 자에게 마치 보여 주려는 것 같구나. 그들의 무공 따위는 자신에게 조금도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지막한 검혜의 감상에 모두가 침을 삼키며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그사이 산악을 허물 정도로 거대한 일격을 내질러 산천을 울려 놓는 노국태.
쩌어어엉!
하지만 그마저도 검은 사기를 담아 후려친 진무의 등주먹에 부서지는 얼음 조각처럼 아스러졌다.
“허억, 허억…….”
공력을 쉴 틈 없이 쏟아붓던 노국태가 멀찍이 물러나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진무를 매섭게 살폈다.
그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처음 그 자리에서 담담히 자신을 바라봐 오고 있었다.
기분 나쁜 눈빛이다.
마치 자신이 거대한 철옹성에 헛되이 힘을 쏟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옷자락이 찢어져 넝마가 되고 몸 곳곳에 상처가 생겨 피가 흐르고 있음에도 진무는 그의 장법 안에서 고고하게 버티며 그저 가르고 부수고 짓누르는 것으로 전부를 소멸시켜 버렸다.
“벌써 끝이냐?”
“…….”
“고작 이 정도라니…….”
진무의 무심한 감상에 노국태가 콧잔등을 씰룩거렸다.
“나 하나도 어쩌지 못하는 실력으로 세상을 뒤엎어 보겠다 했던 것이냐?”
“닥쳐라! 궁의 사대호법공인 구풍장법을 무시하지 마라!”
“…….”
빽빽거리기는. 무시할 만하니까 무시하지.
구풍(颶風)?
맹렬한 폭풍 같은 장법이라고?
염병하네. 이런 산들바람 같은 게 폭풍씩이나 된다고?
“쯧쯧, 되지도 않는 이유를 가지고 한 줌이나 될까 싶은 힘으로 세상을 바꾼다 말하며, 그 많은 사람에게 그토록 고통스러운 슬픔을 안겨 준 것이냐?”
혀를 차며 책망하는 말에 노국태가 발악하듯이 외쳤다.
“네놈이, 네놈이 뭘 안다고 지껄이는 것이냐?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우리의 백성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연명해 왔는지도 모르면서!”
자신의 무공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이후부터 평정심을 완전히 잃어버린 그였다.
“그래서?”
“뭐?”
“이해라도 해 줄까? 수고했다 애썼다 등이라도 토닥여 줘?”
“…….”
“너흰 그저 자신들보다 나약한 이들을 방패 삼아 뜻을 이루려 했던 것뿐이다. 당당하게 모습도 드러내지 못하고 숨어서 세상을 바꾸네 어쩌네 하면서.”
“우리는…… 우리는…….”
“왜? 아니더냐?”
불쌍하다는 듯 쳐다보는 눈빛과 심장을 후벼 파고 소금을 뿌리는 말이 노국태의 자책감을 더욱 깊어지게 만든다.
“네놈들이 말하는 백성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너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너희가 백성이라 부르는 이들이 얼마나 힘들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은 있느냐?”
“…….”
“사람은 제 손톱 아래 박힌 가시는 아파하면서도 남의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은 이해하지 못한다. 너희가 백성들을 대변한다고 생각하겠지? 그들은 원했을까? 그저 너희들이 다시 권력을 얻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아니다. 우린 모두를 위해서 싸우는 것이다.”
노국태가 항변하듯이 고개를 저었다.
“멍청한 놈들. 전쟁은 그저 권력자들이 만들어 낸 수단일 뿐. 민초는 애초에 주인이 누가 되든 아무런 상관도 없다.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니까.”
“…….”
“그러니까 하지 말았어야 했다. 민초를 건드리는 일 따위는…… 아이를 납치해 어미의 심장에 대못을 박는 일 따윈 하지 말았어야 했어.”
진무가 무심한 표정으로 장력의 폭풍 안에서도 굳건히 멈췄던 발을 한 발 한 발 무겁게 내디뎌 노국태를 향해 다가왔다.
“너는 네놈들이 만든 궁이 변한 것을 후회하기 전에 죽어 구천을 떠도는 아이들에게 사죄해야 했다.”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더욱더 섬찟해지는 진무의 눈이 흑요석처럼 빛나고, 그의 등 뒤로는 뿜어져 모인 사기에 살기가 더해져 넘실거린다.
“짐승에게 바치기 위해 그 손가락으로 지시를 내렸겠지, 그 발로 걸었을 것이고, 그 입으로 명을 내렸을 것이며, 그 눈으로 지켜보았을 터.”
“…….”
“그 아이들이 짐승의 먹이가 되어 죽어 갈 때 너는 그 손으로 음식을 떠먹고, 네놈의 내장은 소화를 시켜 변을 보고 소피를 보았겠지.”
걸음마다 뿜어져 나온 사기가 쌓이고 쌓여 점점 더 짙어졌다.
“이제부터 그 하나하나를 모조리 찢어 죽음으로 사죄하게 만들어 주마.”
“……!”
노국태가 순간적으로 걸음을 뒤로 물렸다.
뇌를 관통하는 것처럼 날카로운 진무의 시선과 심장을 움켜쥐어 터트릴 듯 옥죄는 사기.
“으으…….”
분명 황량한 공터인데 물러날 곳 없는 절벽처럼 느껴졌다.
가볍게 찬 걸음에 진무의 몸이 지면을 스치며 날아온다.
노국태는 궁지에 몰린 쥐처럼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다.
진무의 사기가 주는 극도의 공포심에 마구잡이로 손을 뻗어 장력을 날렸다.
구풍장법의 요는 형체 없는 바람.
날카로운 예기를 머금은 폭풍이 칼날이 되어 진무를 헤집을 듯이 다가온다.
하지만 아느냐?
애초에 바람을 통제하여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이 바로 용이 가진 신묘한 공능인 것을.
보여 주마.
용이 어째서 용인지.
다가서던 진무가 가볍게 일보를 밟아 몸을 띄우며 진기를 전신 세맥으로 퍼트리자 온몸의 근육이 이완되고 탄성이 극을 향해 치닫는다.
묵룡혼원공, 투사체.
근육이 풀리는 순간 속도가 배가되고 극도로 유연한 상태가 된 진무가 세찬 바람 같은 장력 안으로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노국태의 몸 안쪽으로 파고든 진무가 날카롭게 세운 손을 긁어 할퀴자 노국태가 대경실색하며 허리를 젖혔다.
찌이익.
“크윽!”
용조가 지나간 노국태의 가슴팍에 다섯 줄기의 골이 파이고, 살점과 핏물이 튀어 올랐다.
펑! 퍼펑! 펑!
사방에 장력이 맞부딪혀 폭발하는 와중, 진무는 바람을 따라잡는다.
취리릭!
허리춤에 비틀어 당겨졌던 진무의 손이 빠르게 앞으로 뻗었다.
터어엉!
“크으윽!”
졸지에 가슴을 얻어맞은 노국태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는 틈을 타 진무가 그의 정면으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활짝 드러난 가슴에 사력을 다해 차 올린 무릎은 허공을 가르고, 휘어지듯 방향을 틀어 접근한 진무의 손가락이 옆구리를 찢어 놓는다.
짜아악!
“커억!”
생살이 뜯기는 고통에 노국태가 일발의 비명과 함께 휘청거렸다.
그를 놓치지 않고 거머리처럼 따라붙은 진무의 손길이 짐승의 발톱처럼 노국태의 몸을 찢고 지나갔다.
쫙, 쫘자자작!
장법은 기본적으로 근접전에도 뛰어난 위력을 발휘하는 무공.
그러나 바람마저 찢어 내는 용의 발톱 앞에 그의 장력은 무력했고, 그는 순식간에 넝마가 되어 가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닿지 않는가?
발버둥 칠수록 더욱 수렁에 빠져드는 느낌에 노국태는 끝없는 절망감을 느껴야만 했다.
진무가 펼치고 있는 묵룡혼원공 근접 박투술의 또 다른 절기.
벗어날 수 없는 늪.
묵룡혼원공, 폐수(閉藪).
강대한 무공으로 이궁을 지배해 왔던 절대자, 노국태는 끈질기게 따라붙는 진무의 공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력하게 찢겨 나가고 있었다.
“하압!”
전면에서 치고 들어오는 진무를 가까스로 찾아낸 노국태가 사력을 다해 쌍장을 날렸다.
쩌어어엉!
“……!”
이전과 달리 쌍장을 그대로 받아쳐 버린 진무는 반탄력에 몸이 통으로 떨리는 충격을 받았음에도 그대로 힘을 더해 노국태의 양손에 깍지를 꼈다.
“내가 말했지? 하나씩 찢어 놓겠다고.”
“……!”
우두둑!
“크윽!”
진무가 깍지 껴 잡은 손을 망설임 없이 꺾어 버렸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뼈가 부러짐과 동시에 꽉 잡혔던 손가락이 세차게 당겨졌다.
트드득!
“끄아악!”
엄지를 제외한 손가락이 모조리 뽑히고 피가 뿜어지자 노국태가 핏대가 설 정도로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시끄럽다. 짖지 마라.”
콰직!
섬뜩한 한마디와 함께 이어진 주먹이 노국태의 입에 틀어박히며 이빨을 물론 턱뼈까지 아스러뜨린다.
“이제 겨우 둘이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도 지를 수 없는 와중에 진무가 노국태의 손목을 움켜잡으며 양발로 가슴을 찼다.
뿌가각! 쩌어억!
생으로 팔이 뽑히는 고통에 노국태의 눈이 허옇게 까뒤집어졌다.
노국태가 양팔을 잃어 전투력을 상실했음에도 진무의 손은 무덤덤했다.
용의 발톱처럼 세워진 그의 손가락이 살점을 뜯어내고 뼈를 바수었다.
푸하학!
할퀴는 손가락에 복부가 길게 찢어지고 창자가 피와 함께 흘러내렸다.
설 힘을 잃고 허물어지듯 바닥에 무릎을 꿇어 버린 노국태가 진무를 올려다본다.
가만히 두어도 죽을 만큼 깊은 상처였으나 진무는 여전히 잔혹했다.
퍼억!
중지를 꺾어 세운 주먹이 눈가를 때린다.
눈이 터져 흐른 피는 눈물처럼 번져 노국태의 세상을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였다.
주저앉은 채 흘러나오는 내장을 그러모으려 했지만 이미 손과 팔이 없으니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숨을 헐떡이는 노국태를 진무가 싸늘히 내려다보았다.
“지시를 내린 손가락, 명을 내린 입, 지켜본 눈, 음식을 소화시킨 네놈의 내장…… 그리고 걸음을 걸었던 네놈의 두 발.”
뿌드득! 뿌득!
진무가 노국태의 두 다리를 꺾어 버렸다.
노국태는 더 이상 명을 이어 가지 못하고 참혹한 모습으로 차디찬 땅바닥에 쓰러졌다.
“이 정도로는 턱없이 모자라지만…… 나머진 그놈에게 받아 주마.”
진무의 싸늘한 말이 수의가 되어 시신 위에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