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63
363화
지옥의 중심에 서서 싸늘한 눈빛으로 노국태의 시신을 내려다보고 선 진무.
지켜보고 있던 이들은 감히 진무의 곁으로 다가설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침묵을 유지했다.
“우웩!”
이런 참혹한 전장이 익숙지 않았던 우양진은 한쪽에서 토악질을 해 댔다. 임무의 특성상 가장 많은 격전을 치러 온 대궁조차도 얼굴을 찡그릴 정도니 당연했다.
휘익!
다만, 청상과 청우만이 상황이 끝남과 동시에 진무를 향해 몸을 날렸다.
“사, 사숙…….”
“…….”
다가온 청상이 진무의 모습에 멈칫했다.
그의 눈동자에 맴도는 살기.
얼마나 극심한 분노를 느꼈는지가 여실히 느껴진다.
진무의 몸에 새겨진 적지 않은 상처가 걱정되어 살피고 싶었지만 좀처럼 손을 뻗을 수가 없었다.
사숙은 지나치게 흥분해 있었다.
들끓는 살의가 그의 몸 주위를 가득히 채워 배회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이동천으로 달려가 그 짐승 새끼와 그 수하들의 목을 꺾어 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청상은 누구보다 그의 분노를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이 그러했기에.
옅어지기는 했으나 화적에게 가족을 잃었던 그 순간이 지금도 가슴속에 응어리가 되어 남아 있었다.
아이들을 납치하고 죄 없는 민초들에게 해악을 끼친 궁의 무인들을 절대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막아야 한다.
사숙이 강한 것은 알지만, 홀로 그들 전체를 상대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대관절 어찌 막아야 한단 말인가?
누가 있어서 그의 앞걸음을 막을 수가 있단 말인가?
청상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그때.
찌이익, 슥, 슥.
“…….”
천이 찢기고 무언가를 닦아 내는 소리에 고민하던 청상이 고개를 돌리고, 진무가 흉포한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을 내려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청우다. 청우가 말없이 제 옷을 찢어 핏물로 흠뻑 젖은 진무의 손을 정성스럽게 닦아 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진무가 덤덤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뭐 하냐?”
“……안 어울려서요.”
“…….”
“그냥 왠지…… 자주 패고 욕하며 야단을 치시는 고집쟁이 사숙이라곤 해도…… 이런 잔인한 모습은 어울리지 않아서요. 이제까지 이렇게 피로 흠뻑 젖으신 적은 없잖아요.”
“…….”
청우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진무의 눈동자에 가득했던 살의가 조금씩 누그러진다.
“닦아 내지 않으면 계속 이렇게 손에 피를 묻히실까 봐……. 사숙은 무당에서 가장 존경받는 도사이신데…… 그런 분인데…….”
청우는 진무의 손에 묻은 피를 계속해서 문질러 닦았다.
청우, 이 녀석…….
그 모습을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진무가 천천히 한숨을 내쉬며 손을 들어 올렸다.
따악!
“아극!”
졸지에 머리통을 얻어맞은 청우가 양손으로 제 머리를 움켜쥐고 볼을 잔뜩 부풀렸다.
“때 미냐? 때 밀어? 덩치는 산만 한 놈이 울기는 왜 울어?”
“누가 울었다고 그러세요?”
“이게? 확 그냥! 어디서 말대꾸야?”
진무는 눈을 부라리며 잔뜩 튀어나온 입을 삐죽거리는 청우를 향해 다시금 움켜쥔 주먹을 들어 올렸다.
“아, 진짜 오랜만에 만나서 자꾸 때리실 겁니까? 걱정돼서 그러잖아요! 걱정돼서!”
“…….”
진무와 청상은 동시에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청우를 쳐다보았다.
저게 미쳤나?
미치지 않고서야…… 아아, 그러고 보니 저 귀돈께서 안 처맞은 지 오래되셨었지.
그래서 감을 잃으셨어, 지금.
진무가 눈썹을 역팔자로 올리며 휙 날아올랐다.
자신에게 닥쳐올 운명이 무엇인지 아는 청우가 재빨리 뒷걸음질 치며 칠성권의 자세를 잡았다.
어쭈? 요 새끼 봐라?
“저도 꽤 늘었습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요!”
지랄하네. 니가 지렁이냐? 돼지지!
이름만 깃털 우 자를 쓰는 입 싼 놈이 어디서 날씬한 척이야!
오늘 한번 죽어 봐라!
진무의 사랑 어린 구타를 피하기 위해 엄청난 속도로 구르던 청우는 당연하다는 듯 이내 뒷덜미가 잡혔다.
“어? 잡혔네?”
“그, 그러게요…….”
어색한 미소에 화답하듯 돌아오는 스산한 미소.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누구나 아는 그 정겨운 소리.
쿵뻑쩍, 쿵뻑쩍!
처맞고 구르고 짓밟히고.
“꾸에엑!”
살집을 두드리는 흥겨운 구타에 비명까지 뒤섞이니 참으로 정답게 노니는 한 쌍이로구나.
“크핫핫핫! 죽어라! 돼지야!”
“꾸에엑!”
진무는 악귀처럼 호탕하게 웃고, 청우는 쉴 새 없이 멱따는 소리를 내질렀다.
멍하니 그 구타의 현장을 바라보던 청상은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사숙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서.
어찌 막을까 고민스럽던 사숙의 살심을 청우가 막아 내었다.
너무나 청우답게. 제 한 몸 아낌없이 희생해서…….
* * *
한바탕 난리가 정리된 이후.
전장에서 벗어 인근의 설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진무의 곁으로 검혜와 정사의 추격대가 둘러앉았다.
“아까 베인 데는 괜찮냐?”
“…….”
진무의 물음에 눈이 시퍼렇게 물든 청우가 퉁퉁 부은 입을 삐죽거렸다.
젠장할, 베인 데가 괜찮냐고?
쉬지 않고 줘 패 놓고 그게 할 소리냐?
하지만 슬쩍 들어 올리는 진무의 주먹에 냉큼 실눈을 휘어 웃는다.
“암요! 괜찮습니다. 이까짓 건 생채기죠, 생채기. 그럼요!”
“그래? 그럼 다행이네.”
역시 처맞고 나더니 기억이 돌아왔나 보다.
진무가 피식 웃는데 검혜가 말을 걸어왔다.
격전이 끝나자마자 청우가 구타당한 터라 미처 하지 못한 말이었다.
“구명(救命)의 은혜를 입었네. 무당지검에게 어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네.”
“스승님을 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 뭐.”
검혜와 제갈산산의 인사에 진무가 대수롭지 않게 손사래를 쳤다.
검혜를 구한 것은 오로지 청상과 청우의 마음에 빚을 두지 않기 위해서였지, 둘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내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네. 반드시 보답하지.”
“저 역시…….”
“…….”
응? 그래? 보답하겠다고?
그럼 또 안 받을 수가 없지.
그래, 어쨌든 빚이라는 건 이쪽에서 지워 놓으면 다 도움이 되는 법 아니던가.
그러고 보니 보타문에는 안 가 봤는데 보물이 좀 있으려나?
뭐, 언젠가 가 볼 날이 있겠지.
시큰둥하던 진무는 이내 표정을 바꾸어 진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은혜를 갚겠다는 말, 잊지 말아 주십시오. 반드시 기억하겠습니다.”
“……어? 아, 그, 그러시게.”
갑작스러운 진무의 반응에 검혜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이제 자네는 어찌할 셈인가? 이대로 이동천을 공격할 작정인가?”
“글쎄요…….”
진무가 잠시 고민하듯 말끝을 흐리자 제갈산산이 심각한 표정으로 급히 끼어들었다.
“그것은 좋지 않은 생각입니다.”
“……?”
“비록 이궁주 노국태를 쉽게 제압하셨다고는 하나 한 명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
“일전에 대궁 조장이 저들의 근거지에 숨어들었다가 발각되었을 때, 노국태와 같은 자가 둘이나 더 있었다고 했습니다. 더욱이 흡성마공을 익힌 괴물까지 있으니…….”
제갈산산의 말에 대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더한다.
“맞습니다. 제가 천주님의 무위를 감히 평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지만, 그들 셋을 한 번에 상대하기는 어려우십니다.”
뭐, 그건 그렇지.
이궁주 노국태.
죽이기는 했으나 그리 약한 상대가 아니었다.
종려군, 송여방에 이어 노국태까지.
궁주라는 자들은 강했다.
세상이 절대라 부르는 정무칠성, 사패오왕, 마도육제보다 한 단계 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함강의 끝자락에 있는 북리도천이나 자신보다는 한 단계 아래.
말하자면 함강과 유강의 중간 정도의 실력을 가진 무인이었다.
함강에 근접한 노국태 정도의 무인이 둘 이상 모이면 아무리 진무라고 해도 위험을 무릅써야 했고, 재수가 없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
대궁이 보았다는 나머지 둘이 노국태와 비슷한 경지라고 하고, 거기에 흡성마공을 익힌 짐승 새끼까지 더해지면 아무리 용빼는 재주를 가졌다고 해도 진무의 패배는 십 할에 가깝다.
처음에 아이들이 모조리 짐승의 먹잇감이 되었을 때만 해도 분노가 치밀어 눈에 뵈는 것이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청우 덕에 정신이 맑아진 진무는 차갑게 상황을 분석했다.
하마터면 기세 타서 꽁지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날뛰다가 비명횡사할 뻔했다.
그 고마움을 구타로 표현하기는 했지만, 나중에 청우에게 당과나 하나 사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터다.
원래 진무는 확실한 상황이 아니면 절대로 싸우지 않는 사람이다. 지금처럼 뚜껑이 열려 버리는 경우만 아니라면…….
어쨌든 처음 검성과 싸울 때도 은위단을 이용해 그의 무공은 물론 가족사까지 조사한 뒤에야 승부를 시작했다. 실력이 우위에 있었음에도 그랬다.
아마 당시에 마교가 좀 더 개방적인 곳이었다면 북리도천을 철저히 분석해서 이겼을지도 모른다. 망할 놈이 꽁꽁 싸매고 있어서 계속 무승부를 내었을 뿐.
어쨌든 지금 이동천을 홀로 친다는 것은 자살행위다.
그런 멍청한 짓을 왜 한단 말인가? 청우나 천우명도 아니고.
“적들이 너무 많습니다. 차라리 적의 수좌를 유인할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시죠.”
제갈산산의 말에 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옳네. 저들은 이미 마교의 이동천을 차지했어. 자네 혼자서는 힘들 것이니 내가 돕겠네.”
“맞습니다. 이미 암황 어른과 천 단주님께서 독혈각과 철검단을 이끌고 삼동천의 남쪽 경계에 대기 중이십니다. 놈들을 그쪽으로 유인하기만 하면…….”
대궁의 말까지 이어졌을 때 진무가 손을 들어 말을 멈췄다.
이 사람들 이거 큰일 낼 사람들이네.
뭐? 제갈산산이 계획을 세우고, 당위에 우명에 독혈각과 철검단까지?
“어르신.”
“응?”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을 태우시려는 겁니까?”
“……?”
진무의 말에 검혜와 제갈산산, 그리고 정사의 추격대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놈들 잡겠다고 다들 불러들이면 북리도천이 ‘어이구, 어서 오게.’ 하며 손이라도 흔들어 준답니까?”
“…….”
“한둘은 몰라도 세력이 경계를 넘으면 어찌 될 것 같습니까?”
“그야…….”
“곧바로 정마대전입니다. 아니 이제 정사 연합이 되었으니 중원과 마교의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야 할까요?”
“…….”
진무의 말에 검혜를 비롯한 모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옳은 말이다.
진무가 동천을 통일하고 있는 것은 오직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 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력이 끼어든다면 이는 중원의 침공으로 비칠 수 있는 일. 북리도천이 그냥 두고 볼 리가 없다.
“그냥 돌아가세요. 그만하면 추격대의 목표는 충분히 달성했으니까.”
“하지만…….”
“모르시겠습니까? 저와 검혜 어르신은 다릅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정무칠성으로 명망 높으신 분이 마교의 영역을 돌아다니다가는 당장에 칼부림이 납니다.”
“아니 되네. 자네를 홀로 보낼 수는 없네.”
“…….”
이 양반이 진짜. 기껏 살려 놓았더니만……. 구명지은을 갚지도 않고 죽을 생각이야?
그리고 누가 그 위험한 데를 혼자 간대?
“걱정 마십시오. 제겐 이미 든든한 지원군이 있으니까.”
“지원…… 아!”
검혜가 문득 탄성을 터트렸다.
중원과 마교의 교역이 시작된 이후로 알려진 진무의 새로운 신분.
마교 동천 연맹주.
뭔가를 깨달은 표정의 검혜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진무가 사악하게 웃었다.
이동천을 먹었어? 이쪽은 동천 연맹이다 이거야.
싸그리, 압도적으로 밀어 주마.
진무는 계획의 선후를 바꾸기로 했다.
애초에 자신이 먼저 가고 양진을 시켜 사동천의 무인들을 부르려던 것을, 반대로 자신 휘하의 동천의 무인들을 전부 모아 이동천을 치고 그 뒤를 진무가 따르는 것으로.
자고로 다구리에 장사 없는 법.
기다려라, 짐승 새끼들아.
나의 분노를 몸소 체험하게 해 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