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69
369화
쫓고 쫓는 자의 거리가 계속해서 변한다.
잡았다 싶으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고, 놓칠 듯이 멀어지면 곧바로 화살을 날려 분노를 부추겼다.
사마도는 지금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눈동자에는 대궁의 뒷모습뿐이었고, 머릿속은 그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사마도를 따르던 경태진은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뒤쫓기만 해서는 땅바닥을 보며 걷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어디로 가는지 파악하지도 못하고 끌려다니기만 할 뿐이거늘…….
동시에 이상함을 깨닫는다.
놈이 향하고 있는 길.
좌우로 번갈아 가며 방향을 틀어 대고 있으나 놈의 이동로는 분명 원을 그리고 있었다.
더욱이 놈의 위치는 항상 뒤쫓고 있는 묵검대의 움직임을 대략이나마 가늠할 수 있는 곳.
대주는 지금 놈의 꾐에 넘어가 분노로 이성을 잃고 있다.
그래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의 이 기이한 경로를.
“우태!”
“……?”
묵검 이 호 우태가 속도를 높여 그의 곁으로 다가선 경태진을 힐끗 쳐다보았다.
“부대주의 말이 맞았다. 놈이 우리를 유인하고 있다.”
“…….”
“조금 전 방향을 좌측으로 틀었으니 다음은 분명 우측으로 갈 것이다.”
경태진의 말에 우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앞질러 가서 놈을 차단하겠다. 너는 계속 대주님을 따라가라.”
“알겠다.”
우태의 대답에 경태진이 속도를 늦췄다.
그가 선택한 것은 모두 열 명.
휘하의 조원들을 모조리 데리고 빠지면 놈이 눈치를 챌 수도 있다.
뒤처지는 듯 모습을 감추어 놈이 생각지 못한 순간에 덜미를 잡아야만 했다.
“달리는 그대로 주변 지형지물에 몸을 숨겨라!”
대궁과의 거리가 벌어진 틈을 타 대열에서 뒤처진 무인들이 경태진의 명령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
백오십에 열. 놈은 절대로 눈치챌 수 없다.
후미가 멀어지기를 기다린 경태진이 방향을 틀어 달렸다.
놈은 마치 쏘아진 화살처럼 재빠른 경공을 가지고 있으나 둘러 가는 걸음이다.
자신들이 선택한 방향은 놈이 그린 원 안쪽 경계의 지름길.
놈이 원하는 함정에 도달하기 전에 잡는다.
* * *
대궁은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은위단의 경공술은 일 푼의 힘을 쪼개 천 리를 달린다.
하지만 그는 달리는 것 하나를 위해 필요 이상의 내공을 쏟아부어야 했다.
와중에 적의 움직임까지 살피는 통에 서서히 몸에 무리가 오고 있었다.
놈들을 자극하며 도망치기를 반나절 여.
내공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속도는 점차 느려져 사마도가 뿜어내는 살기가 뒷머리에 섬뜩하니 닿아 올 정도였다.
이대로 가면 잡힐 수밖에 없다. 조금만 더 힘을 짜내야만 했다.
이동천 때처럼 실수를 반복해 모두에게 짐이 될 수는 없었다.
적의 습격조에게서 구해 낸 삼동천의 무인 백여 명과 미리 연락을 취해 둔 황신이 선별해서 끌고 왔을 무인들.
모르기는 해도 도착했다면 미리 만든 함정에서 자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겨우 유인해 온 적이 멈추게 해서는 안 된다.
이제 곧이다. 곧 숲이 끝나고 함정을 준비한 협곡이 나올 것이다.
지금부터는 목숨을 건 도박을 감행할 수밖에 없다. 남아 있는 내력을 모조리 쏟아부어서 일직선으로 달린다.
슈아악!
금세 그를 따라잡아 휘두르는 사마도의 검에 머리카락이 우수수 잘려 나갔다.
대궁은 솜털이 바짝 곤두서는 것을 느끼며 온 힘을 다해 거리를 벌렸다.
파아앙!
쏜살같이 빠져나가는 대궁의 신형이 순식간에 숲의 끝에 다다랐다.
드디어 나뭇가지 사이로 멀리 협곡이 드러나 보였다. 이제 높다랗게 자리한 그 안으로 놈들을 끌고 들어가기만 하면 끝이다.
내공을 무리하게 사용하면서까지 전력으로 질주한 탓에 단전이 상하고 근육이 찢어진다 한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자신이 저 안에서 죽게 되더라도 뒤를 받쳐 줄 이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가까워져 오는 협곡의 입구.
대궁은 철궁에 화살 하나를 걸어 공중으로 빠르게 쏘아 아군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곤 이를 악물고 마지막 남은 진기를 용천혈에 때려 박아 숲의 경계 너머 확 트인 개활지로 들어가려는 순간…….
스스슷!
나뭇가지를 헤치는 소리와 함께 좌측 전방의 숲이 흔들리는 모습이 시야에 잡혔다.
“……?”
의아함이 가시기도 전에 숲을 헤치며 쏘아져 나오는 시커먼 그림자와 횡으로 휘둘러 오는 가혹한 묵빛 검.
속도를 더한 뒤였기에 자발적으로 검격에 몸을 들이민 듯한 모습이 되어 버렸다.
피할 수가 없다.
대궁은 재빨리 철궁의 시위를 잘랐다.
팅!
한껏 구부러져 있던 철궁이 곧게 펼쳐지는 것과 동시에 검격이 그 위를 가른다.
따아앙!
쇳소리와 함께 숲의 끝자락을 벗어난 대궁은 개활지의 바닥에 거칠게 처박혀 굴렀다.
“크윽!”
충격이 컸다.
날카로운 돌부리가 등 어림을 뚫고 들어와 박히고, 울혈이 치밀어 목구멍을 타고 올랐지만 대궁은 멈추지 않았다.
몸을 굴러 몸을 바로잡음과 동시에 협곡을 향해 달리는 그의 뒤를 경태진과 수하들이 빠르게 따라붙었다.
“잡아라! 지금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망할…… 경로를 예측하고 질러온 것인가?
그들이 다가오는 모습을 힐끗거린 대궁은 다급히 협곡까지의 거리를 가늠했다.
대략 백여 장.
어떻게든 협곡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자신이 잡혀 버리면 함정이 쓸모없어지는 것은 물론, 지금까지 펼쳤던 유인책이 도리어 아군의 위치를 알려 주는 꼴이 될 것이다.
경태진의 공격에 땅바닥을 구르느라 속도가 떨어진 탓에 사마도가 거칠게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뛰어야 한다.
자신의 생사는 나중의 문제였다. 놈들을 협곡 안으로 반드시 몰아넣어야 했다.
피로가 누적된 무릎이 욱신거리고 근육이 끊어질 듯 비명을 지른다.
이제 남은 거리는 십여 장, 협곡의 입구.
스슥! 촤아악!
입구에 들어섬과 동시에 등 어림에 화끈한 통증이 찾아왔고, 대궁은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지며 처박혔다.
상처가 깊다.
보지 않아도 축축해지는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발을 내디딜 힘만 남아 있다면 어떻게든 걸음을 옮겨야 했다.
대궁은 절뚝거리는 다리를 대신해 활로서의 수명을 다해 버린 쇠막대기에 몸을 의지해 협곡을 향해 달렸다.
“허억, 허억…… 이런 독한 자식.”
퍼억!
협곡의 경계를 넘는 순간 대궁을 따라잡은 경태진이 다가온 걸음 그대로 그의 등을 걷어찼다.
힘없이 땅바닥에 나뒹군 대궁은 지친 눈으로 주위를 바라보고는, 이내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됐다. 이제 협곡 안이다.
쇠막대에 의지한 채 겨우 몸을 일으킨 대궁이 협곡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경태진의 뒤로 빠르게 따라 들어오는 사마도와 묵검대.
“이런 개자식이 비웃어?”
“…….”
경태진의 말에 대궁은 답하지 않고 더욱 진한 웃음을 머금었다.
제 역할은 끝났다.
이제야 맘 편하게 죽어 먼저 간 녀석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망할, 이번 임무는 왜 이렇게나 힘이 드는지.
어떻게든 목표를 이룬 덕에 긴장이 풀려 버린 대궁은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자, 이제 죽여라.
움직일 힘도 없다, 이 개자식들아.
“이 망할 새끼가!”
죽을 위기에 처하고서도 실실 웃는 대궁의 모습에 있는 대로 열이 받은 경태진이 검을 들어 올렸다.
단숨에 베어 버릴 것이다.
일검에 목을 잘라 자신들을 우롱한 죄를 물을 것이다.
경태진의 검이 사선을 그리며 싸늘하게 그어진다.
“……!”
그 순간 대궁의 곁에서 무언가 솟구쳐 나왔다.
이, 이건? 은신자가 있었다고?
기겁한 경태진이 휘두르던 검을 급히 당겨 몸을 방어했다.
까아앙!
강렬한 충격과 함께 그의 검을 떨쳐 내는 비수.
그리고 열려 버린 가슴을 향해 섬전처럼 뻗어 들어오는…… 송곳?
푹! 푸푹!
“……!”
이런 젠장할…… 두 놈이었나?
생각지도 못했던 공격에 당해 버린 경태진이 불신 가득한 표정으로 제 목을 움켜쥐며 비틀거린다.
손가락 사이로 시뻘건 핏물이 울컥거리며 뿜어져 나왔다.
목이 꿰뚫려 버린 것이다.
“퉤. 이런 개 후레자식이 얻다 대고 망할 새끼래? 목구멍을 쑤실 게 아니라 저 염병할 아구창을 확 귀까지 잡아 찢었어야 했는데.”
“…….”
자신의 목을 꿰뚫어 버린 것은 곱상하게 생긴 꼬맹이였다.
공격을 마치고 물러난 그가 송곳에 묻은 피를 핥으며 싸늘히 웃는다.
그리고 흐릿해지는 눈동자에 아스라이 비치는 첫 번째 공격을 했던 사내.
젠장…… 이렇게 허무하게…….
경태진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다 바닥에 허물어졌다. 꿰뚫린 목에서 흐른 피로 바닥을 흥건히 적시면서.
“…….”
뒤이어 들어온 사마도가 암습자의 공격에 경태진이 쓰러지는 모습을 고스란히 눈에 담고 협곡의 좌우를 싸늘하게 바라본다.
쫓아온 곳에 암습자가 숨어 있다면 협곡은 함정이 분명했다.
과연 들키지 않기 위해 배를 대고 엎드려 있던 이들이 하나, 둘씩 일어나 협곡 위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지 않은가.
빌어먹을.
사마도는 이를 짧게 갈며 황신에게 부축받아 몸을 일으켜 세운 대궁을 노려보았다.
“네놈이 고작 이따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우리를 유인한 것이더냐?”
“…….”
“하지만 나 사마도가 이끄는 묵검대를 너무 우습게 보았구나. 고작 함정 따위로 우리를 위협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긴 게야?”
사마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흉포한 기세가 검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한다.
“우태!”
돌아보지 않고 외친 사마도의 외침에 우태가 협곡이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크게 외쳤다.
“묵검대! 전열을 정비하고 적의 공격에 대비한다!”
우태의 외침에 묵검대의 무인들이 좌우로 갈라서 등을 맞대고 차가운 표정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들은 눈앞에서 경태진이 절명했음에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래, 네놈들부터 죽여 주마. 그리고 절벽 위에 있는 놈들도 모조리 섬멸할 것이다.”
“…….”
대답은 절벽 위에서 들려왔다.
“누구 마음대로 네놈이 죽음을 결정하는가?”
카랑카랑한 목소리.
이어 고집스러운 인상의 여인이 날 듯이 협곡 아래로 뛰어내렸다.
“귀영마수 능서현?”
이궁주 노국태와 함께 마교의 그늘에서 살아온 사마도가 마교 서열 십이 위인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더욱이 그녀의 뒤를 따라 절벽 위에서 바닥으로 뛰어내리는 몇몇 인물들.
뚱뚱한 체구를 가진 터라 공이 굴러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노인 괴뢰와 완만한 곡도를 든 마령대주 일환.
오는 길에 우양진을 만나 전해 받은 천산설묘의 넓적다리 뼈를 든 각출과 괴충.
각기 다른 방향에서 뛰어내린 그들은 묵검대를 포위하듯이 자리를 잡았다.
“허, 이거 원 어이가 없구만.”
사마도는 실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이놈들은 함정이라는 개념을 모르는 것인가?
다른 놈들은 몰라도 능서현과 괴뢰의 얼굴은 안다. 나머지도 제 놈들 딴에는 이름 있는 고수겠지.
그런데 세력의 수뇌라는 놈들이 앞장서 함정 안으로 뛰어들면 어쩌자는 말인가?
이건 대놓고 죽여 달라고 하는 것 같지 않은가?
다른 누구도 아니고 자신에게 말이다.
“미친놈들…… 능서현과 괴뢰? 고작 성강에 오른 연놈 따위가 나 사마도를 상대로.”
사마도가 싸늘한 미소를 베어 물며 자신의 묵빛 검을 세운다.
“나는 묵검 사마도다. 전장의 사신이며…….”
“그 씨발, 더럽게 말 많네.”
“…….”
대뜸 말을 끊고 파고든 목소리.
이번엔 또 어떤 망할 자식이?
사마도는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획 돌렸다.
협곡의 입구.
네 명의 사내가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나 사마도는 어쩌고저쩌고. 뭐 대단한 이름이라고 저번부터 꼬박꼬박 씨불이는 거야? 거슬리게시리.”
“…….”
빈정거리는 말투에 사마도가 눈을 매섭게 치떴다.
흑립…… 묵검대의 복장?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지?
그리고 놈이 나타나는 순간 묵검대를 포위했던 고수들이 가볍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비켜, 이 잡스러운 새끼들아.”
사마도가 혼란에 빠진 사이 진무가 자신의 앞을 막아선 묵검대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사마도의 자랑스러운 묵검대는 비키기는커녕 오히려 검을 곧추세우며 위협하는 자세를 취했고…….
진무는 눈썹을 팔자로 일그러뜨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것들이 증말.
한숨의 끝에서 솟구쳐 오른 살기가 폭풍처럼 뻗어 나와 사방을 휘감고, 새카만 눈동자가 선득한 빛을 발했다.
나 사마도는…… 젠장, 그새 말투가 생각에 옮아 버렸다.
두 번 말 안 한다.
시작부터 뒈지고 싶은 새끼는 계속 길 처막고 있어라.
자근자근, 아주 형체도 남지 않게 밟아 터트려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