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72
372화
신강 기대현(奇臺縣)에는 북으로 평원을 바라보고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가 있었다.
입구라고는 하나가 전부인데 그마저도 성곽처럼 돌벽을 높다랗게 쌓아 올려 두었다.
후우웅!
한 줄기 바람이 스치자 돌벽의 망루에 세워진 깃발이 홀로 외롭게 펄럭였다.
해와 달을 그린 바탕 위에 쓰인 하나의 글자, 삼(三).
바로 마교 삼동천의 본성이었다.
돌벽의 거대한 성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었으나 본래 삼동천에 터를 잡은 이들이나 마교의 무인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진득하게 풍겨 나오는 마기가 마치 지옥의 입구 같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외지인의 접근을 자연스레 차단한 지 수십 해.
삼동천의 본성은 처음으로 문을 걸어 잠갔고, 돌벽 위는 흉흉한 안광을 뿜어내는 무인들로 빼곡히 차 있었다.
지루한 기다림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둥, 둥, 둥.
북소리가 들려온다.
귀를 기울여야 간신히 들리던 소리는 점점 더 선명해져 평원을 가득 메웠고, 뒤이어 수많은 발소리가 지축을 뒤흔들었다.
“저, 적이다!”
망루에서 터져 나온 일갈에 모두의 시선이 평원 너머로 집중되었다.
일렁이는 평원의 아지랑이를 뚫고 점차 선명하게 드러나는 수많은 인영.
이동천과 궁의 무인들이 평원을 거멓게 물들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느긋하면서도 절도 있는 그들의 진군에 돌벽의 무인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가득 차오른 긴장에 등줄기마저 뻣뻣해졌을 즈음.
선두의 수신호에 멈춰 선 그들은 곧장 전열을 가다듬었다.
세 개의 무리가 아홉으로 쪼개져 학이 날개를 펼친 듯 좌우로 늘어선 진형.
오백여 장의 거리를 격하고 서로의 전의(戰意)가 팽팽하게 맞섰다.
횡진의 중앙, 가장 선두에 있던 상관평은 돌벽 위를 가득 메우고 있는 무인들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위태로운 돌벽이 아닌가.
때려 부수면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날 저따위 성곽을 방비하기 위해 노력하는 꼴이라니.
상관평의 눈빛이 스산하게 가라앉았다.
노국태는 생사가 불분명하고 사마도와 묵검대는 몰살당했다.
그의 심중에 자리한 불안감은 분명 저 삼동천 안에 그 흉수가 있을 것이라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보다 강한 고수나, 계략이 뛰어난 놈이 저 안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이든 관계없다.
자신의 손에는 그 무엇으로도 어찌해 볼 수 없는 짐승이 있었다.
가만히 이를 악문 상관평이 한승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삼동천의 영역에 도착한 순간부터 탐욕스러운 눈동자를 감추지 못하고 당장이라도 뛰어나갈 듯 마기를 피워 올리며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는 그다.
허기에 미친 짐승이 먹잇감을 발견했으니 더는 참기 힘들 터.
이제껏 죄었던 그의 목줄을 끌러 줄 때가 되었다.
저곳 본성에.
주제도 모르고 사마도와 묵검대를 죽이고 자신들을 가로막은 모든 것들의 살을 찢고 뼈를 바수어 산천을 피로 물들일 것이다.
“소궁주님.”
“……?”
“저들은 소궁주님의 허락도 없이 궁의 무인들을 죽인 이들입니다.”
목놓아 외치는 상관평의 비통한 목소리에 한승이 돌벽을 힐끗 쳐다봤다.
상관평의 감정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이어진 한마디가 한승의 귓가에 주문처럼 파고들었다.
“살 가치가 없는 버러지들입니다. 이제 마음껏 허기를 달래셔도 될 듯합니다.”
“……!”
사마도가 죽은 이후 먹잇감이 사라진 탓에 달랠 길 없었던 지독한 허기가 한승의 탐욕을 자극했다.
“마음껏…….”
쿠우우우.
중얼거리듯이 내뱉은 음산한 목소리와 함께 솟구친 마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두 발 달린 요수, 탐(貪)이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우우우!
짐승의 그것과 닮은 장소성과 함께 돌벽으로 쏘아져 나가는 한승을 응시하던 상관평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선두는 이동천의 무인들이다. 그들을 보내 성벽을 무너뜨린다!”
힘차게 아래로 떨어진 손을 신호 삼아, 우람한 역사가 북채를 미친 듯이 휘둘렀다.
둥둥둥둥!
길게 울려 퍼지는 북소리에 정지했던 대열의 움직임이 역동적으로 바뀌고.
두두두두!
횡진의 선두열에 대기하던 이동천의 무인들이 지축을 울리며 한승의 뒤를 따른다.
그들은 적의 힘을 빼 놓을 칼받이다.
짐승의 광기와 그들의 죽음을 발판 삼아 자신들은 아무런 피해 없이 삼동천을 함락시킬 것이다.
전력이 줄어드는 것은 상관없다. 삼동천을 무너뜨린 뒤 다시 채우면 될 일이니까.
멋대로 날뛰어라.
마음껏 서로 죽고 죽이려무나.
“내궁! 후미를 따라 천천히 진격한다.”
상관평이 외침과 함께 말을 몰아 나가자 궁의 무인들로 구성된 횡진의 이 열이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 * *
분지를 감싸 안은 산의 좌측 끝자락.
진무는 딱히 이렇다 할 전략을 세우지 않았다.
그저 적에게 이쪽의 숫자를 속이기 위한 약간의 매복과 피해를 입지 않도록 근방의 민초들을 남김없이 피신시킨 정도?
적생 정도 되는 놈이라면 생각지도 못한 전술을 세우고 남의 뒤통수를 거하게 후려 까겠지만, 자신의 전략은 그다지 신선할 것이 없다.
어차피 전쟁이란 서로 죽고 죽이다가 마지막에 살아남는 놈이 이기는 것.
지금의 경우에는 특히나 그렇다.
이동천을 차지한 궁 놈들의 공격을, 그들보다 더 많은 병력을 규합해서 막는 것. 그게 전부다.
이미 적을 압도할 정도로 많은 수의 무인들이 도착했다.
궁의 족속들이 더 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수적 우세를 뒤집을 순 없다.
물론 그것도 저쪽에 적생처럼 머리를 굴릴 줄 아는 놈이 있으면 가능하겠지.
하지만 삼동천 앞에는 거대한 평원이 펼쳐져 숨을 곳이 없고, 이런 대낮에는 그 어떤 계략도 무용지물이다.
그러니 무조건 쪽수 많은 놈이 이긴다.
다만 대궁이 보았다는 네 명의 고수.
노국태와 사마도를 죽였으니 이제 두 놈이 남았다는 건데…….
한 놈은 짐승일 것이고 한 놈은 아직 모르겠다.
그들이 노국태와 비슷한 실력이라면 지금 모인 무인들 중에서 오직 자신만이 상대할 수 있다.
다른 이들이 끼어들었다가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 명확하기에 일부러 무인들과 떨어져 산자락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혹시 몰라서 황신과 아이들과 두 사질, 신호를 보낼 대궁까지 끌고 올라왔다.
그런데 북소리와 함께 놈들이 나타났다.
대략 천은 넘고 이천은 조금 못 되어 보이는 대병력을 이끌고, 횡진을 이룬 채.
진무의 눈동자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어디냐, 사람들의 생기로 길러진 짐승 놈아.
사람들을 납치해 애지중지 키운 짐승 놈을 곧바로 내놓을 리야 없겠지만, 서둘러 찾아야 했다.
더 많은 이가 무의미하게 희생되지 않도록.
진무의 시선이 횡진을 세밀하게 훑던 그때, 갑자기 한 놈이 튀어나왔다.
대열에서 이탈해 홀로 삼동천의 돌벽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놈.
그놈이다.
그 망할 짐승이 분명하다.
시커먼 마기에 휩싸여 내달리는 그 모습을 본 순간 진무는 주먹을 움켜쥐며 벌떡 일어났다.
눈동자에 불길이 솟구치고 한기를 머금은 살기가 온몸에서 피어오른다.
“대궁!”
외침과 동시에 대궁이 빠르게 활시위를 당겼다.
피잉! 퍼엉!
허공으로 솟구쳐 오른 화살이 폭음과 함께 터졌다.
분지 뒤편 산악 좌우에 매복하고 있는 무인들에게 보내는 신호.
짐승이 나타났고, 놈들의 열이 둘로 나뉘었으니 더 기다릴 필요가 없다.
“황신! 소동보! 목표는 성벽의 방어막! 전장에 뛰어들어 수좌급 무인을 사냥해라!”
“예!”
“짐승 놈이 성벽을 무너뜨릴 것이다. 청상 이하 나머지는 무너진 성벽 방어를 지원해라!”
“예!”
“대궁은 위에서 전황을 살피고, 각 무인대에게 신호를 보내 통제한다!”
“알겠습니다.”
각자에게 임무를 빠르게 배정한 진무는 시선을 한곳에 고정한 채 재빨리 몸을 날렸다.
망할 짐승 새끼.
꼭꼭 숨어서 머리카락도 안 보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기어 나올 줄이야.
그래, 배가 고팠을 테지.
흡정마공으로 마성이 대가리 안에 가득 차, 하루라도 생기를 흡수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었을 테지.
이제 진무가 해야 할 일은 하나.
짐승을 사냥한다.
* * *
“활을 쏴라!”
핑! 피핑!
“커억!”
“케엑!”
비처럼 떨어지는 화살에 꿰여 버린 무인들은 달리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혔다.
하지만 가장 먼저 달려오는 무인에게는 아무런 해가 되지 못했다.
그는 마치 피부에 철갑이라도 두른 것처럼 줄줄이 화살을 튕겨 내며 거대한 철문을 향해 곧장 돌진했다.
어째서? 설마 들이받으려고?
철문 두께가 한 뼘을 넘는데?
성벽 궁술대에 배치될 정도로 무공 수준이 낮은 이들에게 철로 만들어진 성문을 부순다는 것은 상상 밖의 일이었다.
그렇기에 자신들에게 일어날 일을 미처 대비하지 못했다.
콰아앙!
달려온 속도 그대로 성문에 몸을 때려 박은 한승에 의해 거대한 철문이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종잇장처럼 우그러져 튕겨 나갔다.
“…….”
성문이 박살 난 충격으로 덩달아 무너져 내린 돌벽 앞에서 걸음을 멈춘 한승이 시커먼 마기로 물든 눈동자로 뻥 뚫린 내부를 훑었다.
검을 겨눈 채 앞을 막아선 수많은 무인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기이한 빛을 발한다.
갈증, 탐욕, 살기…….
“큭큭큭.”
인간이라고 하기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섬뜩한 웃음소리.
마교인으로 살아온 그들임에도 한승이 온몸으로 뿜어내는 지독한 마기에 절로 얼굴을 찌푸렸다.
“좋군. 아주 좋아.”
무엇이 좋다는 말일까?
“어떤 놈부터 먹어 줄까?”
“……!”
한승의 말에 무인들이 눈을 부릅뜨며 경악했다.
지금 자신들을 먹잇감 취급하고 있단 말인가?
“이런 살육에 미친 짐승 놈! 네놈이구나, 이동천에서 살육을 자행했다는 그 괴물 놈이!”
“……?”
호기로운 무인 하나가 용기를 내어 검을 겨누며 나서자 고개를 돌린 한승이 음산하게 웃었다.
“네놈이 첫 번째로구나.”
“무슨 개소리냐!”
한승의 말에 무인이 몸을 솟구치며 검을 휘둘렀다.
슈가각!
당장에 목을 벨 듯 날카로운 기세에도 한승은 피할 생각 자체가 없는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까아앙!
“……!”
분명 살갗에 닿았는데.
무인이 당황하는 순간 한승이 손을 쭉 뻗더니 그대로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컥!”
숨이 막혀 버둥거리던 무인은 한승의 손아귀가 죄어드는 순간 눈을 허옇게 까뒤집었다.
꾸득, 꾸드득!
동시에 뒤틀려 쪼그라드는 사지와 퍼석퍼석해지는 피부.
툭.
발밑으로 떨어지는 시체와 광기 어린 미소, 뱀처럼 혀를 날름거리는 한승의 눈빛에 저마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모조리…… 먹어 치워 주마.”
몸을 낮추고 힘껏 지면을 박찬 한승이 무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으으, 으아악!”
질려 버린 무인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사방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한승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기의 그물이 펼쳐지는 순간 그의 근처에 있는 무인들의 움직임이 모조리 묶였다.
그리고 한승이 그들 중 하나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쐐애애액!
대기를 꿰뚫으며 날아온 무언가가 그 틈을 비집고 때려 박혔다.
따아앙!
제 손목을 때린 백색 날의 검에 한승이 미간을 찌푸렸다.
살갗이 베이지는 않았으나 얼얼할 정도로 시큰한 충격.
와중에 검이 살아 있는 듯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한승을 공격했다.
땅, 따다당! 땅!
한승은 검과 부딪칠 때마다 느껴지는 생소한 충격에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
그리고 물러난 그를 위협하듯 허공에 떠올라 미간을 겨누는 검.
이기어검? 어떤 놈이?
고개를 휙휙 돌리며 자신을 공격한 이를 찾는 한승의 귀에 빈정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새낀 처먹긴 뭘 자꾸 처먹는다는 거야? 식인종이냐?”
“…….”
사뿐히 내려서는 진무.
한승은 무인들의 앞을 막아선 진무를 매섭게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하, 이 새끼. 짐승 주제에 사람을 야려?
눈깔을 확 파 버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