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75
375화
상관평은 학사였다.
망국의 학사 가문에서 태어나 평생을 쫓기며 살았다.
붓이 칼보다 강하다는 필강어검(筆强於劍)이라는 말은 그저 개소리였다.
안정된 나라에서는 법이라는 틀로써, 인간의 도리를 설파하는 혀로써 사람들을 다스릴 수 있으나 망해서 쫓겨난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힘이 필요함을 알았다.
그래서 무(武)를 익혔다.
하지만 재능이 부족했고 자질이 모자랐다. 무서를 외워 알고 이해해 깨닫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기에 대성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게 자괴감에 빠져 있는 그때 그의 손에 들어온 무공, 자철회륜(磁鐵回侖).
밀고 당기는 성질을 가진 자철석(磁鐵石)을 무기로 활용하는 무공이었다.
상관평은 오랜 연구 끝에 자철석을 가공해 암기처럼 만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자신의 손에 들린 자추회선판(磁錐回旋板)이었다.
내공으로 자성을 완벽에 가깝게 통제할 수 있게 된 그는 다른 궁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 무구 자체의 이점이 있으니 그들보다 강하다 여겼다.
그리고 그는 조금씩 자신의 대의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때로는 자신이 경멸해 온 무인들과 손을 잡고, 때로는 그가 꿈꿔 온 법치에 위배되더라도 세상이 안정된 뒤에 붓으로 다스려도 늦지 않으리라 스스로를 위안했다.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을지언정 조금씩 대의에 가까이 다가간다 생각했다.
그런데 어디선가부터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양의심공.
과거 주씨를 도와 자신들의 선대를 막아섰던 그 망할 도사 놈이 익힌 그 무공.
또다시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자신들이 대의를 향해 가는 길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생각했기에 백방으로 수소문했고, 드디어 길이 열렸다.
하지만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가장 아끼던 수하 대랑은 죽었으며, 자신은 좌천되었다.
그때부터였다.
백년대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토록 단단히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마치 누군가 주춧돌을 빼 버린 것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무당지검이라는 그 망할 도사 놈. 그놈이 설치고 다니면서부터였다.
정무맹을 움직여 삼궁을 뿌리째 뽑고, 종려군에 송여방까지 죽였다.
거기다 한승은 허기를 채우기 위해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로 전락했고, 대궁주는 중원을 되찾자던 그때의 맹세를 잊고 점차 권력에 안주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했다.
그를 위해 새로운 교두보로 삼은 것이 마교였는데, 하늘이 자신들을 방해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마교에 새로운 놈을 보내 자신들의 걸음을 막고 있었다.
눈앞의 이 버러지 같은 놈들이.
“하아압!”
쐐애액! 따아앙!
거친 기합성과 함께 휘두른 주판에서 알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쳐 나간다.
능서현의 미간으로 날아든 주판알을 괴뢰가 주먹으로 후려치며 막아섰다.
“능서현! 홀로 싸울 생각은 하지 마라! 지금은 자존심을 세울 때가 아니다!”
“…….”
능서현은 지친 눈으로 괴뢰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알았다. 조금 전 그가 돕지 않았다면 미간이 꿰뚫렸으리라는 것을.
“무기의 도움이건 아니건 지금 놈은 우리보다 강해! 홀로 상대하다가 놈이 본성으로 접근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합공해야 한다!”
“…….”
능서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합공이라는 것은 비겁자들이나 하는 짓이라 생각해 온 그녀였기에 괴뢰의 말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눈앞의 노인은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느껴지는 기세로만 보면 자신보다 조금 더 높은 경지에 불과하다. 그 종이 한 장의 차이를 무기의 신묘막측함으로 메꾸어 놓은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괴뢰의 말이 맞다.
입술을 강하게 깨문 그녀의 시선이 본성을 향했다.
막으려는 자와 뚫으려는 자들의 싸움이 치열하게 이어지는 아비규환의 중심에서 터져 나오는 폭발음.
진무다.
그가 지금 그 안에서 짐승 놈과 싸우고 있었다.
괴뢰의 말대로 자신이 눈앞의 적에게 뚫리면 진무는 감당 못 할 위협에 놓이게 될 것이다.
뿌드득.
결심을 굳힌 능서현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래, 지금의 전투는 비무가 아니라 전쟁이다.
전쟁에 있어서 과정은 무의미한 것.
오직 승리라는 결과만이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것이 바로 전쟁이다.
또한, 지금의 자신들이 수적 우세로 적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전쟁이라는 것은 한순간의 틈으로도 뒤집힐 수도 있는 법이었다.
“제길, 좋다! 후방을 지원해 다오!”
결국 능서현은 괴뢰와 함께 상관평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런 날파리 같은 것들이! 둘이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더냐!”
차게 비웃은 상관평이 또다시 주판을 휘둘렀다.
“하아압!”
자신을 궁주에 반열에 올려 준 자철회륜이다. 상관평의 내기에 주판알이 폭풍처럼 휘몰아치자 능서현의 장력이 연달아 허공을 터트리고, 괴뢰의 은사가 춤을 추었다.
하지만 합공을 했음에도 밀리는 쪽은 능서현과 괴뢰였다.
상관평의 자철회륜은 실로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무공은 둘째 치고 주판알들이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날아드는 데다, 조각난 부스러기마저 다시 암기가 되어 날아왔다.
셋이 어우러진 싸움이 점점 더 극으로 치닫고 괴뢰와 능서현의 몸에 상처가 늘었다.
피윳!
“크윽!”
정면으로 격돌했다가 몸에 수 개의 구멍이 뚫려 버린 능서현이 무릎을 꿇었고, 그 앞을 막은 괴뢰는 넝마처럼 변한 모습으로 피를 줄줄 흘리며 비틀거렸다.
“괴뢰…….”
“후우, 후우……. 일단 호흡부터 안정시켜라.”
“…….”
괴뢰는 상관평의 주위에 둥둥 떠 있는 주판알을 노려보았다.
“젠장, 이건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군. 암기를 이기어검처럼 사용하다니.”
“…….”
“대단해. 아마 그 암황 개자식이 보면 기함(氣陷)을 토하겠어.”
비릿한 웃음을 머금은 괴뢰의 말에 상관평이 피식 웃었다.
이기어검? 그리 보였나?
하긴 네놈들이 이미 오래전 절전된 자철회륜에 대해 알 리가 없겠지.
상관평이 내공을 밀어 넣자 주판의 몸체가 밝게 빛나고, 주판알은 물론 부서진 조각들까지 모조리 허공에 떠오른다.
“이제 끝내자꾸나. 네놈들을 죽이고도 할 일이 많으니……. 제법 버텼다만, 더는 어려울 것이다.”
휘오오오.
휘돈다.
자성을 머금은 주판알들이 회오리처럼 회전하며 그 범위를 넓히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괴뢰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능서현과 합공까지 했음에도 저놈에게 제대로 된 상처 하나 입히지 못했다.
저 망할 주판알들을 대체 어떻게 막아야 한단 말인가?
상관평이 막 움직이려는 찰나 절망적으로 그의 뒤편을 바라본 괴뢰의 눈동자에 한 줄기 희망이 스쳤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시기적절하게 도우러 오는구나.
“그래, 어차피 나이 들면 뒈질 거! 조금 일찍 간다고 무엇이 문제겠는가!”
힘찬 외침과 함께 은사를 힘껏 움켜쥐며 기를 불어넣는 괴뢰의 모습에 상관평의 눈동자가 스산하게 변했다.
실성했구나.
상대가 되지 못함을 알고 아예 실성을 했어.
오냐, 죽여 주마. 갈가리 찢어 주마.
상관평이 주판을 힘껏 움켜쥐자 기의 흐름이 미세한 변화를 일으킨다.
자철회륜, 산폭(散暴).
쓰아아아!
회전하던 주판알이 갑자기 속도를 더하며 휘둘러진 상관평의 손을 따라 일제히 쏘아지자 괴뢰가 기다렸다는 듯이 외친다.
“능서현! 퇴행보(退行步), 후발선제(後發先制)다!”
“…….”
동시에 양쪽으로 쫙 뻗은 괴뢰의 손에서 은사가 섬전처럼 쏘아져 나갔다.
동시에 괴뢰의 뜻을 눈치챈 능서현이 훌쩍 물러나 손안에 내공을 가득하게 담았다.
퇴행보는 이름 그대로 뒤로 물러나는 것을 뜻하나 후발선제는 그저 늦게 움직여 적을 제압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것은 적의 공격을 유도해 받아치고 허점을 노린다는 의미였다.
그렇다고 괴뢰가 상관평이 펼친 암기를 막아서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막아서는 것은.
쫘아악!
괴뢰가 펼쳐 냈던 은사를 힘껏 당기는 순간, 근처에 있던 궁의 무인들이 일시에 괴뢰의 앞을 막아선다.
마치 상관평의 암기를 향해 뛰어드는 모양새였다.
그들이 갑자기 미쳤냐고?
아니다.
괴뢰만이 할 수 있는 꼭두각시 조종술.
“이런 개 같은!”
졸지에 아군을 공격하게 된 상관평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오고.
파파파팍!
미처 회수되지 못한 주판알들이 수하들의 몸을 갈가리 찢어 놓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중 수십이 괴뢰의 몸을 꿰뚫고 들어왔으나 이미 움직임이 둔화된 주판알은 그의 몸을 찢어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능서현!”
괴뢰가 고통을 씹어 삼키며 외치자, 미리 물러나 준비하고 있던 능서현이 혼신을 다해 담은 쌍장을 뿜었다.
쿠르릉.
“……!”
틈을 보여 버린 상관평은 자추를 회수하기엔 늦었음을 깨닫고 주판의 몸체에 기운을 가득히 담아 능서현의 장력을 후려쳤다.
쩌어어엉!
거칠게 부딪혀 폭발하는 둘의 기운에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되돌아온 반탄력에 능서현이 피를 뿜으며 튕겨져 나갔다.
상관평 역시 능서현의 장력을 고스란히 받아 버린 터라 목으로 치솟아 오르는 핏물을 참아 내며 서너 걸음을 물러나야 했다.
그리고 괴뢰는 이미 능서현이 장력을 발출한 다음부터 움직이고 있었다.
빠르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손을 따라 흘러나온 은사가 상관평을 향해 섬광처럼 쏘아졌다.
괴뢰의 춤사위, 십지살무.
촤아아악!
은사가 쾌속하게 날아왔으나 상관평은 이미 주판알을 회수하고 있었다.
슈아아악! 따다다당!
“크으윽.”
십지살무는 되돌아온 주판알에 막혀 버렸고, 주판알들에 몸을 꿰뚫린 괴뢰는 짙은 신음을 흘렸다.
“놈…… 시도는 좋았다만 이제 끝이구나.”
상관평이 비웃음을 머금자 온몸에 크고 작은 구멍이 생겨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듯이 비틀거리던 괴뢰가 피를 게워 내며 웃었다.
“큭큭, 하나는 못 피했나 보네?”
“…….”
괴뢰의 미소에 언짢아진 상관평이 눈을 씰룩거렸다.
주판을 잡고 있는 팔에 박혀 있는 은사 하나.
“고작 이따위 실 한 가닥 박아 넣은 것이 그리 좋더냐?”
“이따위 실?”
“…….”
“고작 실일 거 같으냐?”
“뭐?”
어째서인지 괴뢰의 미소가 꺼림칙하다. 불안한 마음에 상관평이 팔 어림에 박힌 실을 급히 잡아 뽑았다.
“……?”
뽑히지……않아?
“나의 무공 괴뢰. 꼭두각시의 춤. 네놈을 조종할 순 없지만…… 남아 있는 힘을 전부 쓰면 팔 하나쯤은 움직이지 못하게 할 수 있지.”
괴뢰가 주름이 파이도록 웃으며 남아 있는 힘을 모조리 은사에 때려 박았다.
팽팽하게 곤두서는 은사와 함께 뜨끔함이 찾아오고, 이내 상관평의 팔이 뻣뻣해졌다.
“이…….”
주판에 내공이 실리지 않는다.
은사를 통해 흘러들어 온 괴뢰의 내공이 주판을 잡은 팔 쪽으로 흐르는 내공을 막고 있다.
자신의 무공인 자철회륜이 제압당한 것이다.
“내공이 들어가지 않으니 네놈이 믿고 있는 그 암기도 쓸 수 없을 것이다.”
“……!”
설마?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상관평이 다른 손으로 주판을 잡아당겨 보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마음대로 될 것 같으냐? 네놈 몸은 안 되더라도 손 하나쯤은 충분히 억압할 힘이 남아 있다 했거늘.”
내공은 물론 주판을 꽉 잡은 손가락도 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잠깐일 것이다.
자신의 한쪽 팔을 제어하고 있는 괴뢰의 내력?
밀어내 버리면 그만이다.
“고작 이따위 짓거리로 뭘 어찌……?”
그런데 괴뢰가 자신의 내력에 대항하기 위해 힘을 쏟느라 이마에 힘줄까지 돋아 올리면서도 미소를 지우지 않는다.
어째서?
의아한 가운데 뒤편에서 느껴지는 막대한 양의 기운.
설마?
괴뢰의 힘이 서서히 약해져 통제력을 잃어 가는 순간 상관평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희뿌연 기운을 머금고 휘둘러져 오는 곡도.
“차아압!”
일환, 그가 상관평의 목을 향해 온 힘을 다해 곡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슈아아악!
“……!”
때마침 괴뢰의 억제력이 해소되었으나 자철회륜을 사용하기에는 늦었다.
목이 잘려 버릴 위기에 처한 상관평이 사력을 다해 몸을 비틀며 철주판을 휘둘렀다.
까가가각!
맞부딪힌 두 개의 무기가 불꽃을 토해 내며 비껴 나간다.
스거걱! 뿌가각!
잘리는 소리와 부딪혀 으스러지는 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철주판에 옆구리를 얻어맞은 일환이 바닥에 처박혀 헐떡인다.
그 모습에 괴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젠장, 공격이 실패한 것인가?
괴뢰가 재빨리 상관평을 쳐다봤다.
“크으윽.”
공격이 실패한 것처럼 보였는데 상관평이 자신의 어깨를 잡고 비틀거리며 물러나고 있었다.
손으로 잡은 어깨에서 시뻘건 선혈이 울컥거리면서 뿜어져 나와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 떨어져 있는 팔 하나.
젠장, 목을 날렸어야 했는데…….
괴뢰는 아쉽기 그지없었다.
자신의 힘이 조금만 더 남아 있었다면 일환의 곡도가 놈의 모가지를 베어 버렸을 것인데.
“네, 네놈들이…… 버러지만도 못한 네놈들이…….”
상관평이 이를 부득부득 갈며 원독에 찬 눈으로 셋을 번갈아 노려봤다.
조금 전의 격돌에서 목이 잘리는 것은 피했다.
하지만 빗겨 나간 일환의 곡도가 상관평의 몸을 깊숙하게 베고 지나갔고, 팔이 잘렸다.
내상을 입은 능서현, 기력을 모조리 쏟아 버린 괴뢰. 그리고 일환은 땅바닥에 처박힌 채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상관평의 승리였고 셋 모두를 죽일 수 있으나 그에게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미 그들과 시간을 끄는 사이에 전쟁이 정리되어 가고 있었다.
한승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으나 내궁의 무인들과 이동천의 무인들을 처리한 동천연맹의 무인들이 거멓게 몰려오고 있었다.
패배했다.
물러나야 했다.
짐승은 다음을 노릴 머리가 없으니 자신만이라도 살아야 한다.
새로운 소궁주가 될 그를 위해서라도…….
결국 상관평은 이를 꽉 깨물고 몸을 돌렸다.
“두고 보자. 이 치욕을 절대로 잊지 않겠다. 다시 오는 날 반드시 네놈들의 목을 벨 것이다.”
살기등등한 눈으로 셋을 노려보던 상관평이 적들의 수가 적은 방향을 골라 몸을 날렸다.
“두고 보자는 놈 치고 제대로 된 놈 못 봤다, 이 새끼야.”
멀어지는 상관평의 뒷모습을 보며 괴뢰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젠장, 그런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놈을 추격해 죽여야 하는데…….
문득 괴뢰가 고개를 돌려 멀리 삼동천의 본성을 바라봤다.
그쪽도 얼추 싸움이 끝나 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거친 폭음과 충격파가 세상을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있다.
연맹주……가 아직 싸우고 있는 건가?
뭐, 그 괴물 같은 사람이면 뭐든 알아서 하시겠지.
몸이 너무 힘들다, 이젠 늙었나 보다.
괴충도 연맹주의 가르침을 받으며 점점 더 성장하고 있으니 언젠가 천산의 중심으로 성장할 터.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번 일이 끝나면 천산이고 뭐고 그냥 뒷방 노인 노릇이나 해야겠다.
애들도 인형극을 꽤나 좋아하는 것 같고…… 하다 보니 재미있기도 하고…….
괴충이 빨리 장가가서 손주 녀석이나 하나 낳아 주면 좋으련만.
멀리서 수하 놈들이 쓰러진 자신들을 향해 달려온다.
저 표정…… 걱정을 하고 있는 건가?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감정이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더는 버틸 힘이 없다.
눈이 자꾸 감긴다.
온몸이 꿰뚫려 벌집이 되어 버린 괴뢰가 고통 속에서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그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