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80
380화
“놈! 언제까지 피할 참이냐!”
분노의 외침과 함께 갈성혁이 빠르게 날아들자 진무가 스산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가볍게 일보를 내디뎠다.
안 그래도 이젠 안 피하려고.
파팟!
순간 진무의 신형이 분리되었다.
하나에서 시작한 것이 나누어지고 나누어져 순식간에 전각의 내부를 가득 채웠다.
네까짓 것의 손톱 몇 개 피하는 건 이 정도로 충분하다.
살막의 환영미리보, 흉내 내기.
“헛!”
진무의 보법이 만들어 낸 분영들에 갈성혁이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빠르게 손을 휘저었다.
시커먼 마기가 헤집고 지나간 곳의 잔상이 모조리 흩어졌음에도 본체가 드러나지 않자 갈성혁이 빠르게 시선을 돌려 진무의 신형을 찾았다.
턱.
“……!”
순간 어깨를 짚어 오는 손.
갈성혁이 그것을 떨침과 동시에 공격하려는 생각으로 손을 뻗으려는데…….
우둑, 쿠아악.
“크윽!”
무지막지한 힘에 짓눌린 갈성혁은 어깨뼈가 부서지는 고통을 느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여기까지야.”
“…….”
“애교로 봐주는 건.”
애교? 감히 자신에게?
광오하기 짝이 없는 말에 갈성혁이 시퍼런 안광을 토하며 고개를 쳐들었다.
용조수, 난할거조(亂割去爪).
슈가가각!
솟구쳐 오르는 섬뜩한 예기와 함께 날카로운 손톱이 진무의 전신을 난도질할 듯 날아들었다.
“…….”
겨우 그거?
잊었냐? 예전에 내가 네 손톱 죄다 뽑고, 손가락도 마디마디 꺾어 놓은걸?
몸을 슬쩍 뒤로 물리며 손톱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진무가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진짜 용의 손톱이 어떤 것인지 다시 한번 보여 주마.
묵룡혼원공, 용조난작(龍爪亂斫).
“……!”
활짝 펼쳐진 진무의 손이 일순 거대해졌다가 수직으로 내리쳐졌다.
제아무리 변화가 많아 봐야 찢어 버리면 그만이고, 그 시작은 결국 하나일 뿐.
진무의 손이 갈성혁이 만들어 낸 변화의 중심을 향해 파고들었다.
콰득.
“큭!”
변화가 순식간에 사라짐과 동시에 온 세상을 할퀴려는 듯했던 갈성혁의 손아귀가 진무에게 잡혔다.
깍지를 낀 듯이 잡은 손.
진무는 히죽 웃고는 잡은 그대로 손목을 꺾어 갈성혁의 몸을 마룻바닥에 처박아 버렸다.
우드득, 콰아앙!
“커억!”
바닥에 세차게 처박힌 갈성혁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막혔던 숨을 토하듯이 신음을 내었다.
쓰러진 갈성혁의 등을 향해 눈동자를 흑요석처럼 빛낸 진무가 주먹을 쏟아부었다.
콰직! 퍽, 퍽퍽퍽!
“쿠에엑!”
주먹이 등뼈를 무자비하게 두들기고 있음에도 갈성혁은 피할 수가 없었다.
진무가 잡아채었던 그의 손을 여전히 꼭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우…….”
진무가 한참을 그렇게 소나기처럼 퍼붓고 난 뒤.
등뼈가 부서지는 고통 속에서 부서진 마룻바닥에 아예 파묻히다시피 한 갈성혁은 어느새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제 좀 속이 시원하다.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서 눈깔을 부라리길 부라린단 말인가?
북리도천의 심부름이나 하는 새끼가, 그 많은 사람이 죽어서 나자빠지고 있을 때는 꼼짝도 안 했던 것들이.
“야! 이거 치워.”
갈성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진무가 소리치자 둘의 싸움을 멍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능서현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맙소사…….
진무의 강함을 모르지 않았다. 직접 싸워 보기도 했고 옆에서 지켜본 적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쉬울지는 몰랐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마도의 하늘로 군림해 온…….
“뭐 해?”
“예?”
“치우라고.”
“아, 알겠습니다.”
진무의 스산한 눈빛에 능서현이 침을 꿀꺽 삼키며 갈성혁을 들쳐 메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일환, 넌 의자나 좀 가져와.”
“옙!”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것은 일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저런 인간과 싸웠었다니.
대대손손 자랑할 거리가 생겼다.
잠시 후 일환이 의자를 가져다 놓고 물러나자 전각 내부에 남은 사람은 진무와 소신녀, 소향뿐이었다.
“꽤 악취미를 즐기시는군요.”
“…….”
담담한 말에 진무가 피식 웃으며 그녀를 쳐다봤다.
“당신의 실력이라면 굳이 갈 문주님을 자극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나요?”
“…….”
“그는 그저 자신의 직분에 따라 행동했을 뿐입니다. 어째서 그에게 모멸감을 준 거죠?”
“모멸감이라…….”
진무가 소향의 말을 곱씹듯이 되뇌고는 피식 웃었다.
“너랑 시답잖은 대화 나눌 생각은 없으니까 잡설은 집어치우고 찾아온 목적이나 말해 봐.”
“…….”
“육제씩이나 되는 갈성혁이 어려워할 정도면 북리도천이 보낸 진짜 전령은 저놈이 아니라 너일 거 아냐.”
잠시 침묵했던 소향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무의 앞에 섰다.
그러고는 다소곳이 절을 올리더니 이내 무릎을 꿇었다.
“뭐 하는 짓이지?”
“그대는 성화가 전해 온 남쪽의 푸른 불꽃이자, 권좌에 도전할 자. 교주님과 신녀님의 명에 따라 그대를 천산으로 데려가기 위해 뫼시러 왔습니다.”
“뫼시러 왔다?”
“예. 교주님께서 만나 뵙고자 하십니다.”
“웃기는군. 그런 절차가 있었나? 내가 듣기로는 십이동천을 통일하고 권좌에 도전하면 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절차가 아닌 교주님의 배려입니다.”
“배려?”
“예, 불필요한 싸움을 하지 않기 위함이지요.”
“…….”
“십이동천을 통일하고 천산에 도전하려면 천산의 인증을 받아야 할 터, 그 과정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것입니다. 교주님께서는 그 과정을 생략하기 위해 그대…….”
“큭큭, 크핫핫핫!”
갑자기 진무가 웃어 버리는 바람에 소향은 말을 잇지 못하고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 미안하구만. 그 배려라는 말이, 죽어 갈 사람들을 걱정하고 있다는 말이 너무 웃겨서 말이야. 계속 지껄여 봐. 전하러 온 말은 끝까지 들어 주도록 하지.”
투박한 말투와 진무의 입가에 떠오른 비웃음이 의아했으나 소향은 다시 말을 이어 갔다.
“……교주님께서는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겠다 하시며 그대를 뫼셔 오라 했습니다.”
“그래서 너를 보냈다?”
“저는 천산신녀의 뒤를 이을 후계입니다. 다음 대의 교주와 삶을 나누어 가져야 하는 운명이지요.”
“그래서?”
“진무 님을 모시라 했습니다.”
“나를 모셔? 나를 다음 대의 교주로 선택이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그건 아닙니다.”
“…….”
“그대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일뿐입니다.”
“나를 보호한다고?”
이상하게도 진무는 계속해서 소향의 말을 되짚듯이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느냐 묻는 것처럼.
“예, 보호입니다. 제가 함께 움직이면 천산이 그대를 공격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 그렇단 말이지?”
진무가 자신의 턱 언저리를 쓸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혼자 가셔야 합니다.”
“……?”
“이곳 마교의 정점에 있는 권좌를 향한 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소향의 말이 끝나자 진무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게 북리도천의 전언인가? 그렇게 전하라고 했나?”
“예.”
“그럼 거절하지.”
“……예?”
“거절한다고.”
진무는 손을 휘휘 젓고는 일어나 버렸다.
설마하니 그가 이토록 쉽게 거절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소향이 물었다.
“설마 이대로 전쟁을 할 생각입니까? 천산과?”
“무슨 문제라도 있나?”
“분명 많은 사람들이…….”
순간 소향이 팔에 돋아 오른 소름에 흠칫 놀랐다.
찬 바람? 아니다.
자신의 몸에 소름을 돋게 한 것은 진무가 뿜어내는 서릿발 같은 기세였다.
그가 검게 물든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흑요석처럼 빛나는 그 눈에 담긴 지독한 살의가 뱀처럼 혀를 날름거리며 그녀를 옥죄어 놓는다.
시종일관 담담하고 차분했던 그녀였지만 더 이상 평정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무공을 알지 못하기에 진무의 작은 살의에 저항할 수도 없어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고, 숨을 쉬기 위해서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야 했다.
어째서?
어째서 그가 자신에게 살의를 품는단 말인가? 그리고 저 비웃음은 대체 뭐란 말인가?
“정말 가식적인 년이군.”
“……?”
“너 같은 년보단 차라리 당세령, 그 또라이가 훨씬 더 신녀라는 이름에 더 어울려.”
당세령? 그녀는 또 누구지?
“온갖 민폐를 끼치고 다니기는 하지만 적어도 그 녀석은 솔직해. 또라이기는 해도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슬플 땐 울고, 걱정이 되면 도우려고 노력은 한다.”
“…….”
“그런데 너는 그런 민폐 녀석보다도 못하군.”
소향은 진무의 말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전쟁의 피해로 죽어 갈 사람들을 걱정해서 배려했다고? 명색이 신녀의 후계라는 년이 그따위 말을 할 줄은 몰랐군.”
차가운 한기를 머금은 채 사방을 가득 채운 진무의 살기에 소향은 안간힘을 쥐어짜 진무의 의중을 물었다.
“……무슨 말씀이죠?”
“몰랐나?”
“……?”
“한승이라는 놈이 이동천의 영역에서 자행했던 살육.”
진무의 한마디에 차분했던 그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알면서도 모른 척한 거군. 그거야말로 악취미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진무의 빈정거림에 소향은 말없이 침묵을 지켰다.
“……그에 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군요.”
소향의 표정에서 다시 동요라는 감정이 사라졌다.
“정말 웃기는 년일세.”
“…….”
“사람이 그토록 많이 죽었는데 할 말이 없다?”
“저는 그저 뜻을 전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뜻을 전해?”
“성화의 뜻을 전하고, 교주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저희들의 직분입니다.”
“그래서 외면했다?”
“…….”
“재미있네. 아주 재미있어.”
얼굴 가득히 웃음을 머금었던 진무의 몸에서 갑자기 스산한 살기가 끈적하게 뿜어져 나왔다.
그러고는 살의를 가득히 머금은 눈빛으로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소향을 노려봤다.
“내가 아는 신녀라는 의미가 마교에서 부르는 신녀의 의미와 같다면 그대는 힘없이 죽어 간 이들에 대해 슬퍼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
“신패를 무시했음에도 화를 참던 갈성혁이 너를 무시했을 때 화를 낼 정도라면 네가 가진 신분의 힘이 보통은 아니라는 뜻이겠지.”
싸늘하게 뱉어진 진무의 말에 소향은 얼굴을 굳힌 채 묵묵하게 듣기만 했다.
“말할 수 있었겠지. 이동천에 한승이라는 짐승이 나타났을 때, 그들을 구해 달라 간청했어야 했다. 들어주지 않는다면 힘이 없더라도 구하려고 노력은 해 봤어야 하는 게 아닌가 말이지.”
“…….”
“힘없는 이들이 죽어 간 것에는 아무런 말조차 하지 않고 구경만 하다가, 이제 와 전쟁에서 죽어 갈 이들의 목숨이 걱정되니 나 홀로 오라? 신녀의 후계인 네년과 함께 가면 위험이 없을 것이다? 정말 웃긴 소리가 아닌가?”
분명 웃고 있었으나 진무의 목소리에는 스산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신녀가 교주와 삶을 함께 나눈다고?”
진무가 코웃음을 쳤다.
“개소리하지 말아라. 힘없는 이들의 목숨에 무감각한 존재가 신녀라 불린다면, 그저 뜻이나 전하는 인형 따위가 신녀라면 내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일 뿐이다.”
“오해입니다.”
“오해? 무슨 오해?”
“이동천의 일을 그대로 둔 것은 모두가 그대를 위한 일이었습니다.”
“나를 위했다?”
“권좌에 도전하는 그대가 칭송받을 수 있도록…….”
쉬익, 콱!
소향은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진무의 손이 그녀의 목을 힘껏 움켜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웃긴 년이 아니라 미친년이었군.”
“…….”
“칭송받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짐승을 내버려 뒀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내가 그따위 칭송을 원한다고 누가 그러던가?”
“…….”
차가운 경고가 담긴 눈빛이 그녀의 뇌리를 파고들어 두려움을 만든다.
“무인이 아니었던 걸 다행으로 알아라.”
털썩.
세차게 던져버린 힘에 바닥에 처박힌 그녀가 겨우 숨을 몰아 내쉬며 헐떡거렸다.
“돌아가. 전해라. 내겐 너 같은 신녀는 필요하지 않다고, 내 발로 직접 찾아가겠다고.”
싸늘한 눈초리를 끝으로 진무가 몸을 돌려 전각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