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83
383화
신강의 북쪽 끝에 위치한 천혜의 요새와 같은 곳, 천산.
사람들은 그곳을 마(魔)의 근원이라 불렀다.
오랫동안 세상 사람들에게 두려움으로 존재해 온 신비로운 곳.
사람이라고는 살지 않을 듯한 북풍한설의 산 정상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고, 그 아래 줄기는 신강 전역을 향해 뻗어 있었다.
마치 신강을 지배해 온 마교처럼.
거대한 산봉우리는 줄지어 늘어서고 소리 없이 까마득한 협곡은 곳곳에 자리해 괴괴함을 느끼게 한다.
천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 앞에는 오직 하나의 길처럼 존재해 온 협곡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양쪽 절벽에 거대한 철문을 달아 막아 두었기에 그 내부를 살피기는 어려웠다.
휘이잉.
칼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새벽의 어느 때.
협곡을 가로막은 거대한 철문 앞에 우람한 역사(力士)들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수십씩 나란히 붙어 근육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도록 힘주어 밀어 대기 시작했다.
그긍, 그그긍.
잔뜩 돋은 힘줄이 터질 것처럼 곤두섰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케케묵은 녹이 떨어져 나가며 중앙이 반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그긍, 쿠우웅.
나누어진 철문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천천히 미끄러져 협곡의 벽면에 닿자 그 주위로 돌 부스러기가 우수수 떨어지고, 갑작스러운 굉음에 놀란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하늘을 가득 채웠다.
쿵, 쿵, 쿵…….
그것을 시작으로 거대한 문을 따라 산정으로 향하는 직선 경로에 위치한 문들이 순차적으로 메아리치듯 굉음을 내며 열렸다.
마종지로(魔宗之路).
북리도천이 천산의 주인으로 군림한 지 수십 해.
오랫동안 굳건하게 닫혀 녹마저 잔뜩 슬어 있던 그 문이 열려 새로운 마도의 주인이 될 이를 위해 그 내부를 훤하게 드러내었다.
그 안에 몸담은 수많은 전각과 높다란 탑들이 긴 잠에서 깨어나듯 기지개를 켠다.
그 모든 곳에 자리 잡아 마교를 지탱해 온 수많은 세력이 그곳에 있었다.
교주를 중심으로 호법 무인들이 자리한 일월대전(日月大殿), 전대의 거마들이 여생을 보내는 원로원, 당금의 교주에 의해 임명된 장로부.
그리고 마도육제라 불리며 마교의 여섯 기둥을 자처해 온 육가(六家).
대대로 교주는 천산에 발을 걸치고 있던 이들에게서 나왔고, 외인이 마교의 하늘에 오른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북리도천 역시도 육가의 하나인 염인(炎印) 북리가의 태생이었다.
말하자면 어려서부터 각종 영약으로 목욕을 하고, 벌모세수까지 받아 온 금맥(金脈) 중의 금맥이라는 뜻이다.
천산에서 태어나 천산의 권좌에 앉았고, 오래도록 마도의 하늘로 군림한 그.
지금 그에게 대적하기 위해 마도의 역사에 유일무이한 업적을 세운 이가 찾아오고 있었다.
아래에서 개혁을 이루듯이 십이동천을 통일하고 북리도천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이들을 하나씩 굴복시키며 천산으로 걸음하고 있었다.
북리도천은 신이었으나 새로운 자는 민중의 아픔을 대변한 영웅이자 변혁의 바람이었다.
이른바 민무(民武)의 분리를 외치며 약자의 편에서 마교의 정상으로 가는 그의 행보에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고, 지나는 길목마다 뛰어나와 타고난 신분에서 기인한 굴종이 아닌 마음으로 엎드려 칭송했다.
그리고 그의 느긋한 발걸음 뒤로 동천주들과 십이동천의 정예들이 열 지어 따르며 대지를 울리는 소리.
마치 심장 소리를 대변하는 것 같은 그 소리는 지켜보는 이들에게 묘한 흥분마저 일게 했다.
* * *
휘이이잉!
눈으로 가득한 천산의 정상.
옷자락을 자르고 피부를 베어 내는 칼바람이 부는 절벽의 끝자락에 한 노인이 붉은 수염을 휘날리며 앉아 있었다.
신강의 지배자, 일월마교주.
명실공히 중원 무림의 최강자라 칭해지는 북리도천, 그였다.
몸서리치도록 차가운 그곳에서 추위를 전혀 느끼지 않는 듯 반개한 눈으로 은은한 빛을 뿜으며 구름에 가려진 천산의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신녀가 돌아왔다고?”
“예.”
한참 만에 그의 입에서 나온 질문에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염왕대주 마강이 속히 대답했다.
“민중의 어려움을 외면한 신녀 따위는 필요 없다 하였다지?”
“예.”
이미 알면서 묻는 말이라 다른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불쾌할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북리도천의 입가에는 언짢음이 아닌 흐뭇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과연 그 녀석의 제자답군.”
“…….”
“그 사고뭉치 녀석도 그랬지. 민가에 피해라도 생기면 눈이 뒤집히곤 했어.”
“…….”
“자신이 지나온 모든 동천에서 민가에 행해지던 수탈을 금지했다지?”
“예.”
“여하간에 재미있는 녀석이야.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해야 하나.”
북리도천의 말에 마강의 얼굴이 조금 찌푸려졌다.
“마강, 기세가 조금 변했구나. 언짢은 게냐?”
“죄송합니다.”
속마음을 들켜 버린 마강이 급히 눈밭에 엎드려 죄를 청했다.
“죄송은 무슨. 혈육조차 믿을 수 없는 이 마교에서 너는 나의 유일한 벗이다. 이 정도 일에 괘념치 말라.”
“…….”
“그보다 연유가 무엇인가?”
북리도천의 질문에 마강은 얼굴을 굳힌 채로 입을 꾹 다물었다.
“허락할 테니 가감 없이 말해 보라.”
마강은 결심을 굳히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지금이 아니라면 왠지 물을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어찌하여 그리하신 겁니까?”
“무얼?”
“교주님의 뜻이니 따르긴 했으나 평소답지 않으셨습니다. 한승이라는 자는 교주님의 백성에게 칼을 댄 자입니다. 결코 좌시하신 적 없는 일을 왜 이번에는…….”
마강의 말에 북리도천이 빙긋 웃었다.
“나의 칭송을 그가 독차지하여 뿔이 난 게로구나.”
“교주님!”
“언성 높일 것 없다.”
“…….”
“모두가 같은 생각이겠지. 마교는 마교로서 이어져야 한다 말하면서. 천산의 무인들도 육가도, 어쩌면 지금은 그 녀석에게 돌아선 십이동천의 무인들도 그러했겠지.”
그랬다.
천 년의 역사에 외인이 주인이 되었던 적은 있으나 오랫동안 지탱되어 온 전통을 바꾼 자는 없었다.
마교의 주인은 언제나 두려움으로써 군림해 왔다.
그런데 진무는 상생을 부르짖으며 마교를 밑바닥부터 바꾸어 놓고 있었다.
와중에 북리도천은 비난을 감수해 가며 그에게 칭송을 양보하고 있지 않은가.
마치 마지막을 준비하는 자가 후대를 위해 자리를 깔아 주는 것처럼.
“아시지 않습니까. 마교는 정파나 사파와는 다릅니다.”
“…….”
“중원을 다스리는 것은 주씨의 황실이나, 신강을 다스리는 것은 일월의 지배자이십니다. 어찌하여 권력을 나누어 가지려 하는 그에게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까?”
평소답지 않은 마강의 열변에 북리도천이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그를 응시했다.
“마강.”
“예.”
“우리가 옳았던 것이냐?”
“……?”
“아니면 옳다 자위하며 스스로를 세뇌해 온 것이더냐?”
“…….”
“이제껏 천산은 마치 썩은 물에서 피어난 고고한 연꽃처럼 존재했다. 신강에 사는 그 어떤 이들과는 다르다 여겼지. 특혜를 당연히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북리도천이 오랜 기억을 끄집어내듯 아득한 눈길로 북풍한설이 휘몰아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천 년…… 기나긴 마교의 역사 내내 우리는 상하를 명확히 나누고 모두 위에서 군림만을 부르짖어 왔지. 그것이 곧 성화의 뜻이라 말하면서.”
“…….”
“하지만 오래전 내게 다른 말을 한 녀석이 있었다.”
마강은 그것이 혁련무강을 말하는 것임을 모르지 않았다.
“피어난 연꽃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피워 낸 것은 남들이 썩었다 손가락질하는 그 물이라더구나.”
연꽃과 그 물이 의미하는 바가 천산과 신강에서 살아가며 마교에 충성해 온 이들임을 눈치 못 챌 마강이 아니었다.
“교주님. 연꽃이 있기에 그 썩은 물이 대단해 보이는 것입니다.”
정면으로 반박하는 마강의 말에 북리도천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 나도 그리 말했었지. 하지만 놈은 나를 비웃으며 꾸짖었다. 연꽃이 있기에 물이 대단해 보이나, 그 물이 없으면 연꽃 따위는 애초에 피지 못한다고.”
차분하게 이어지는 북리도천의 말에 마강의 얼굴이 천천히 일그러졌다.
“내겐 충격이었다. 사파의 버러지로 살아온 녀석이 나의 자긍심을 무너뜨리고 짓밟았지.”
“속하가 기억하기로 패배하신 적은 없었습니다.”
“무승부는 곧 패배나 다름없다. 홀로 삶을 쟁취해 온 놈과 달리 나는 혜택받은 삶을 누렸으니까.”
“…….”
“우리는 틀렸을지도 모른다.”
마강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막강한 힘을 얻는다 해도 내부의 치열한 다툼에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 점점 더 폐쇄적으로 변해 갔을 뿐.”
“…….”
“나는 나의 대에서 끝을 낼 생각이다. 그간 독식했던 권력을 모두에게 돌려주고, 우리 마교가 새로운 길을 걸어가도록 하고 싶다.”
“그래서 그를 택한 것입니까?”
“그래.”
“…….”
“처음에는 그저 성화의 예언에 따라 지루하고 고독했던 내 오랜 삶을 끝내 줄 녀석이라고만 생각했다.”
북리도천의 목소리가 찬찬히 가라앉는다.
“네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안다.”
“…….”
“한데, 놈이 한 일을 보거라.”
“…….”
“두려움으로 군림해 온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우리가 전통이랍시고 지배를 위해 세웠던 위계를 무너뜨려 놓으며 다가오고 있지 않으냐? 우리가 모든 것을 가져야 한다 여겼던 생각을 무너뜨리고 모두에게 나누어 줌에도 우리가 여태껏 이루어 왔던 것보다 훨씬 더 부강해지고 있다.”
“교주님.”
“저 사막 한가운데서 막혔던 교역을 뚫어 거리에 활기를 만들어 놓았다. 세금은 늘었고, 사람들은 더욱 칭송한다. 우리를 바라본 시선은 두려움이었으나 녀석을 바라보는 시선은 진심이 담긴 충성이었다. 단단히 뭉치고 있지. 굳이 뒤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하지만 그에 대한 충성입니다. 다음 대, 그다음 대는 어찌합니까? 그만한 인물이 나오지 않으면 마교는 결국 사라질 것입니다.”
마강이 약함을 드러내는 말을 끊어 놓으려 했으나 북리도천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마강, 천 년이라는 세월은 허투루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변혁(變革)이라는 것은 옷을 갈아입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 법. 가죽을 벗겨 내고 새살을 돋아 올리려면 그만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그리고 마교는 변화를 겪으며 더욱 단단해지고, 강해질 것이다.”
한없이 차분한 어조에 마강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만약, 그로 인해 붕괴한다면 그 또한 우리의 운명일 터.”
“…….”
“진정으로 강하다는 것은 우리가 지켜 온 체제가 붕괴함으로써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혼탁한 와중에서도 새로운 연꽃을 피워 내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인 게야. 나는 그 길에 거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놈이 우리의 땅을 기름지게 일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아.”
북리도천은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마치 끝을 향한 유언처럼 들리는 그 말에 마강은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늙은 주인은 여전히 생생하기만 한데 어찌하여 저리도 약한 모습을 보인단 말인가?
“듣자니 갈 문주가 호되게 당했다더구나.”
“예.”
“와중에 나의 배려마저 무시하고 왔으니 육가의 반발이 매섭겠어.”
“망할 놈들이 교주님께서 허락한 마종지로 곳곳에 무인들을 포진시키고 있습니다.”
“허허, 그대로 두어라.”
“…….”
“그가 소신녀의 안내를 거절했으니 그 또한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이다.”
북리도천의 시선이 다시 구름으로 가려진 천산 아래쪽으로 향했다.
“지켜보자꾸나. 육가의 방해를 뿌리치고 피의 길을 걸어올지. 아니면 이 천산에 발조차 들이지 못하고 멈춰 서게 될지. 그 또한 그의 운명이 될 테니까.”
“예, 교주님.”
마강은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기로 했다.
확고한 주인의 뜻과 더불어 마지막을 짐작하게 하는 목소리가 너무도 슬프게 들렸기 때문이다.
북리도천은 마강의 마음을 알면서도 천산 아래를 묵묵히 응시했다.
한 줄기 바람으로 다가온 진무가 천산에 오르는 동안 용으로 변해 구름을 뚫고 자신에게 다가오기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