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85
385화
뭐지?
지금 잘못 들은 건가?
잠시 멍해진 진무가 싸늘하게 다음 말을 잇는 용문장포의 무인을 바라보았다.
“아버님께서는 적에게 굴복한 채 비굴하게 살아남아 마룡의 명예를 더럽힌 가문의 수치.”
수, 수치이?
듣자 듣자 하니 이 자식이?
상대가 난데 당연한 거 아니냐?
진무의 눈썹이 점점 팔자 모양으로 일그러짐에도 무인의 말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새로운 마룡의 주인으로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킬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
와중에 주인이 바뀌었어?
갈성혁이 처맞고 길 안내를 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분명 아버님이라 불렀으니 저 장포 입은 새끼가 갈성혁의 아들쯤 되는 모양인데.
통상 이런 상황이면 ‘아버님을 풀어 주라.’라든지, ‘조금만 참으십시오.’ 같은 말을 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니냐?
아무리 마교라고 해도 부모 자식 간에는 마땅히 혈육의 정이라는 게 있기 마련인데 자결을 하라고 검을 줬어? 자식새끼가? 제 놈 아비한테?
이 무슨 삼강오륜에 정면 승부를 거는 말이란 말인가?
생각지도 못한 패륜에 진무는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다짜고짜 외쳤다.
“야!”
“…….”
“이런 씨발 놈이! 돌았냐? 아무리 돼먹지 못한 아비라고 해도 그따위 말을 씨불여?”
정제되지 못한 진무의 욕설에도 용문장포의 사내는 무덤덤했다.
“그대가…… 권좌에 도전한다는 진라는 자로군.”
“……뭐?”
“이는 우리 마룡 갈가 내부의 문제. 아무리 권좌에 도전하는 자라고 하지만 그대가 나설 일이 아니다.”
“…….”
그렇지. 내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지.
그런데 열이 좀 받네?
꼭지가 돌다 못해 터져 버릴 것 같은데?
“아버님, 머뭇거리시는 이유가 뭡니까? 제 손으로 베어 드리기를 바라는 겁니까?”
날 선 음성에 갈성혁이 굳은 얼굴로 자신의 앞에 떨구어진 검을 잡았다.
스르릉.
갈성혁이 역으로 잡은 검극을 천천히 자신의 목에 겨눈다.
미쳤네. 자결하라는 자식놈이나 그걸 또 행하는 아비 놈이나 쌍으로 미쳤어, 아주.
슈욱!
말릴 새도 없이 파고드는 검극.
따아앙!
거친 쇳소리와 함께 갈성혁의 목을 향해 날아들던 검이 허공에 솟구치는가 싶더니, 진무가 악귀처럼 눈을 번득이며 갈성혁의 앞을 막고 서 있었다.
뿌드득.
갈리는 잇새로 소름 끼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느새 점혈까지 당한 탓에 갈성혁이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풀썩 쓰러지자 용문장포의 사내는 싸늘한 눈으로 진무를 노려보았다.
“지금 뭐 하는 짓이지?”
“…….”
진무는 답하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떠한 상황에도 유지하던 미소는 간데없었고, 눈동자에서는 검은 광망이 흉흉하게 이글거렸다.
“부위자강(父爲子綱), 자식은 부모를 섬기는 것이 근본이고, 부자유친(父子有親), 부모는 자식을 자애로이 살피며 자식은 부모를 존경과 섬김으로 돌본다.”
“…….”
“이것은 인륜이며 천륜이다.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라는 뜻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내가 마교에 와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었다. 모두가 찢어 죽일 놈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더라.”
“…….”
“저 탐욕스러웠던 괴뢰 녀석도 제 자식 괴충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괴충이 잘되는 일이라면 제 놈이 욕을 먹더라도 행하더란 말이지. 괴뢰가 다쳤을 때는 괴충이 몇 날 며칠 밤을 지새워 가며 간호도 하더라.”
이글거리는 사기를 토해 내며 노려보는 진무의 모습에 피식 웃은 용문장포의 사내가 괴뢰와 괴충을 힐끗 쳐다보았다.
“육동천의 괴뢰? 그들과 우리를 비교하려는 건가? 권좌에 오르려는 자가?”
“너희는 다르다?”
“우리는 그들을 마교라 부르지 않으니까.”
“뭐?”
“마(魔)는 파괴를 쫓는 자들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다. 본능에 가장 충실하고 순수한 그 이름은 저따위 약한 종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아, 그래?”
그러셨구만?
편해서 좋겠네. 스스로 마라 불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니.
하긴, 좀 이상하긴 했지. 쟤들은 그냥 사람 같았거든.
근데 넌 아니라는 이야기네.
한승이라는 놈과 별반 차이가 없는 그런 놈이라는 뜻이지?
어쩐지 얼굴을 짓이겨 놓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니.
진무는 용문장포의 사내를 향해 일보를 내디뎠다.
치솟은 분노가 살기로 유형화되어 걷는 걸음마다 세상을 가를 기세로 흘렀다.
“잘 들어라. 이 개만도 못한 자식아. 무릇 열을 주고도 하나를 더 주지 못해 가슴 아파하는 것이 부모이고, 열을 가지고도 하나를 더 갖지 못해 투덜거리는 것이 자식이라더라. 그렇기에 자식은 어떤 경우라도 부모를 죽음으로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
“…….”
“그건 태어나며 부모의 얼굴조차 보지 못한 나도 안다. 객점에서 함께 일하던 꼬맹이 동군호도 아는 것이다.”
치이익.
짓밟혀 움푹 팼던 땅이 타오르고 진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사기가 극으로 치닫는다.
“그래, 부모 같지 않은 부모도 있지. 도박 빚을 위해 자식을 팔아넘긴 놈들처럼.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니?”
용문장포의 사내는 잔잔히 말을 내뱉으며 걸어오는 진무를 조소로 맞이했다.
“재미있는 자로군. 마교의 정점에 서려는 자가 인간의 감정으로 세상을 대하려 하다니.”
“…….”
“고작 동천 따위에서 무엇을 느꼈는지는 모르나 우리에게 힘없는 혈육이란 그저 약점에 불과하다. 오직 강함만이 자신을 증명하는 척도. 그것이 적자생존이며, 진정한 피의 율법이다.”
자세하게 설명해 줘서 고맙기도 하지.
이제 알겠다. 니들이 어째서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음에도 움직이지 않았는지.
아무렇지도 않았겠지.
진무의 걸음이 용문장포의 사내와 삼 장의 거리를 두고 멈췄다.
그리고 그의 두 눈동자에 차올랐던 흉흉함은 무미건조한 한기로 뒤바뀌었다.
“그래……. 피의 율법, 적자생존. 니들이 뭐라 부르건 간에 지금 네놈의 행동을 나는 패륜(悖倫)이라 부른다.”
“……?”
“그러니까 너는 절대로 죽이지 않으마. 지금부터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만 하는 도리에 대해서 차근차근 가르쳐야 하니까.”
우직, 파앙!
땅을 짓누른 일보와 함께 진무의 신형이 쭉 늘어났다.
순식간에 허공을 격한 그 쾌속함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으나 용문장포의 사내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가볍게 몸을 뛰어 발을 물렸다.
그리고 대기를 찢어 내며 들어오는 진무를 향해 사방에서 싸늘한 예기가 날아들었다.
마룡 갈가를 수호하는 호법대.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수백의 마인들이 시커먼 마기를 토하며 진무를 향해 몸을 날려 왔다.
손놀림을 보아하니 마룡 갈가가 자랑하는 용조수.
고작 이따위 것들을 믿고 그렇게 나댄 거냐?
그랬다면 큰일이겠구나.
진무의 눈동자가 검은 빛무리를 흩뿌림과 동시에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사기가 겹겹이 그의 몸을 감쌌다.
묵룡혼원공, 용린(龍鱗).
용의 비늘은 그 어떤 갑주보다 튼튼하니 고작 모조 용의 발톱 따위로는 뚫을 수 없다.
까가가강!
모조리 튕겨 내 버린 진무가 싸늘하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용문장포의 사내를 뒤쫓았다.
딴 놈들은 필요 없다. 내 목표는 니놈이니까.
“청사아앙!”
진무의 외침과 함께 청상을 비롯해 그를 뒤따라 온 인물들이 일제히 전투에 참여했다.
홀로 맞서 싸우려 했으나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다.
모든 힘을 오직 네놈에게 집중해 주마.
패고 또 패고, 살려 달라 해도 죽도록 패서 그 썩어 빠진 정신머리를 고쳐 주마.
수백의 공격을 단번에 튕겨 내리라 예상하지 못한 용문장포의 사내는 재빨리 양손에 기운을 끌어모아 휘둘렀다.
용조수, 난할거조.
그래. 어지럽게 할퀴어 베어 내는 손톱이라지?
근데 어쩌냐, 갈성혁이 펼친 그걸 부수고 깨 버린 게 난데.
어쩌면 니가 태어나기도 전에 한 번, 바로 얼마 전에 두 번째로.
허공에서 몸을 비틀어 파고든 진무가 용조난작을 펼쳐 사내의 공격을 모조리 찢어 냈다.
슈가가각!
곧이어 허리의 살점을 뜯으려 날아간 진무의 손에 대경한 사내가 재빨리 측면으로 몸을 빼려 했다.
콱!
“……?”
밟혔다.
몸을 빼기는커녕, 발등이 부서지는 듯한 시큰한 아픔에 사내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진무의 발이 그의 발을 밟아 멈춰 세운 것이다.
그리고 흉악하게 빛나는 검은 눈동자가 그를 향해 다가들었다.
슈아악! 쩌어억!
크게 휘돌아 날아든 주먹이 사내의 턱을 강타해 크게 뒤흔들자 발이 밟혔던 사내가 휘청거리며 상체를 뒤로 휘었다.
콰악!
하지만 도망치지 못했다.
멱살을 잡고 잡아당긴 진무의 손이 그를 끌어당겼고, 뒤이어 연거푸 날아든 주먹이 그의 얼굴에 적중했다.
쩍, 쩌억! 쩍!
“크윽!”
짧은 신음과 함께 잡힌 옷자락을 잘라 낸 사내가 비틀거리며 물러나 주저앉았다.
“이놈…….”
졸지에 공격을 허용해 얼굴이 피범벅으로 변한 사내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진무를 노려보았다.
슈아악, 쩌억!
그리고 벌어진 간격을 채우듯 진무를 공격했던 갈가의 무인들이 어느새 그의 주먹에 강타당해 바닥에 처박혔다.
진무는 멈추지 않는 걸음으로 한 발 한 발 사내를 향해 다가왔다.
마치 자신들을 단죄하는 징벌자의 모습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신들이 어떻게 자라 왔고, 어떻게 키워졌는지도 모르는 놈이, 알량한 판단으로 꾸짖으며 단죄한다고?
무려 천 년의 역사다.
무림이라는 것이 생길 때부터 시작되어 온 그들의 삶이다.
“네놈 따위가…… 네놈 따위가!”
사내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끓어올랐다.
“크아압!”
주저앉았던 몸을 세우고 가공할 마기를 뿜어내며 정면에서 진무에게 맞선다.
차라리 죽음을 맞이하게 되더라도 제 아비처럼 굴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문의 무인들이 모조리 죽는 한이 있더라도 놈을 처단할 것이다.
“나는 새로운 마룡의 주인, 갈무천이다! 마룡 갈가의 무인들은 온 힘을 다해 놈을 죽여라!”
“…….”
갈가의 무인들이 일제히 청상과 청우를 비롯해 싸움에 뛰어든 이들에게서 방향을 바꾸어 시커먼 마기를 피우며 진무를 향해 달려들었다.
각기 뿜어낸 마기가 겹겹이 쌓이고 응집되어 거대한 공처럼 진무를 덮쳐 그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마기로 휩싸인 그곳에서 하나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말했지? 난 한 놈만 노린다고…… 막으면 모조리 뒈진다.”
우우웅!
마기를 뚫고 하나의 빛이 은은하게 퍼져 나오더니, 금세 수만 갈래로 찢어져 마기를 꿰뚫고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쿠우우우.
대기가 뒤흔들리고 대지가 진동한다.
사기를 가득히 응축시켜 박아넣은 묵룡의 기운이 지면의 그 깊은 곳에서 폭발을 일으키자 견디지 못한 지면이 들썩거렸다.
쿠아아앙!
연쇄적으로 일어난 폭발과 함께 마기가 볕을 받은 안개처럼 흩어져 바람에 흩날리고, 진무를 향해 뛰어들었던 무인들을 갈가리 찢었다.
그리고 온통 흉하게 난도질당한 대지의 중심에서 진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차갑게 빛나는 그의 시선이 피를 뿜으며 주저앉아 버린 용문장포의 사내. 갈무천을 향했다.
“우웩!”
거센 기침과 함께 토한 피가 흥건하게 바닥을 적시고, 입었던 옷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너덜거렸다.
진무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의 앞에 우뚝 섰다.
갈무천.
무천이든 유천이든, 칠득이든 뭐든, 니 이름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인간의 도리마저 내던져 버린 것이 마(魔)가 가진 본연의 뜻이라고?
그래, 차라리 잘되었다.
마교의 정점에 서야 할 이유가 제대로 생겼다.
죽이진 않겠다.
내가 비열함에 있어서는 종주에 가까운 사패천주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무당의 도사다.
악을 계도하고 갱생시키는 것이야말로 도인의 본분.
너희들이 마를 숭상하고 외쳐 댄다면 나는 도(道)로서 마주해 그 근원부터 모조리 부수어 주마.
콰직! 콰지직!
긴 침묵 속에서 진무의 주먹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갱생시키기 위해서.
아는 방법이 이거 하나라서가 아니야.
너 같은 놈에게 다른 방법 따위는 굳이 고민하고 싶지도 않거든.